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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고인물 친구 계정에 빙의했다-4화 (4/110)

4화

“장승민 녀석 게임을 대체 얼마나 했길래. 이 꼴이냐.”

하지만 지금만큼은 놈에게 감사해야겠다.

“기익!”

또 한 번 그렘린 한 마리가 왼쪽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그 즉시 그람을 역수로 뽑아 놈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으직!

그람이 살을 뚫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한 번으로 그렘린은 즉사했다.

내 얼굴 위로 스산한 미소가 그려졌다.

살아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 것에 대한 기쁨을 담은 미소였다.

“기익?”

“긱긱!”

그러나 그렘린들에게 그건 마치 사신의 웃음과도 같았다.

내가 역수로 쥔 그람을 빙글 돌려 제대로 쥔 그 순간.

나를 바라보던 그렘린 전원이 마치 발작하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람의 성능은 몬스터에게도 확실했다.

“내가 이 녀석들 붙잡아 둘 테니까 그 틈에 해치워…….”

그런 놈들을 보며 잼미니를 부르려던 순간, 나는 말을 멈췄다.

내가 그람을 들자마자 나무 구석에 머리를 박고 덜덜 떨고 있는 잼미니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나무 둥지에 자기 방을 만들어 그렘린과도 친구가 될 법한 모양새였다.

“어후, 저 등신.”

피아 구분 없이 공포라는 상태 이상을 거는 건 좀 문제구만.

나는 그냥 내가 직접 움직여 그렘린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람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는 그렘린 따위야, 혼자서도 문제없었다.

“어어, 산 씨.”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그람을 벨트에 다시 넣고.

마지막 그렘린과 씨름하는 디온느를 도와주었다.

다행히 그는 눈앞의 싸움에 집중하느라 이쪽을 못 봤다.

그 뒤, 나는 아직도 떨고 있는 잼미니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놈의 엉덩이를 전력으로 걷어차 주었다.

“끄악!”

“야이 트롤러 놈아. 우리 다 일하고 있는데, 혼자 구석에 박혀서 뭐하냐.”

“헉, 아, 아니, 이건 너 때문이잖아!”

“그람 맛 좀 더 볼래?”

“으아아!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벌벌 기는 그를 보곤 몸을 가볍게 푼 뒤,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냐? 이렇게 하고 그냥 돌아가?”

“끄읍, 머리를 잘라 가야 해. 길드에 제출해야 하니까.”

“그럼 잘라. 내가 남은 놈들 다 처리했으니 안 도와줘도 되지?”

“으으, 알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인지.

잼미니는 가방에서 자루 하나를 꺼내 들곤 그렘린의 머리를 잘라 담기 시작했다.

디온느도 따라 돕는 것을 보며 나는 나무 밑동에 털썩 앉았다.

‘그람의 성능도, 내 육체 스펙도 대충 알았으니.’

남은 건 헬리오스에 스카웃 될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는 거다.

‘그런데 그 유명세라는 게…….’

말이야 쉽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아직 감이 안 잡힌다.

‘당장의 목표는 은급 모험가로 정해야 하나.’

그렇다면 일단 당분간은 모험가 일에 집중해보는 수밖에.

‘썩을, 내가 하는 게임이 아니니 죄다 모르는 것투성이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이 된 기분이라 짜증이 났다.

‘그래도 겁먹고 있어봤자 의미 없다.’

신중함은 필요하지만, 행동에서 소극적이면 안 된다.

그것 하나만큼은 나도 확신할 수 있었다.

소극적이라면 오던 행운도 죄다 놓쳐버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고 있자 디온느와 잼미니가 함께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다 했냐?”

“그래. 둥지도 다 살펴봤으니 내가 받은 임무는 완수한 거다. 후우, 이제 마을로 돌아가서 성공 보고만 하면 끝이야.”

그는 드디어 돌아간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딱 봐도 나랑 있는 게 피곤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저놈이랑 더 길게 있고픈 마음은 없었다.

“마을로 가는 길은?”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나올 거야.”

잼미니는 익숙한 길인 듯, 앞장서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며 나는 저물어가는 해를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데만 반나절을 쓴 탓에 벌써 저녁이 다 되어갔다.

“와, 그런데 산 씨, 진짜 잘 싸우시네요.”

복귀하는 와중에 디온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가요?”

“네, 잠깐 봤는데 막 날아다니시던데요. 도저히 동급 모험가 실력으로는 안 보이던데, 혹시 용병 생활 같은 걸 하셨나요?”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쪽 업계 사정을 잘 모릅니다.”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디온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주로 이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디온느는 별 의심 없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잼미니 녀석도 심심했는지 중간중간 우리 쪽 대화에 끼어들어서 생각보다 정보가 잘 모였다.

‘내가 봐도 나 좀 많이 침착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정말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생각해 보면 내가 게임 해본 짬이 몇 년인데.’

처음 보는 게임이라고 해서 뭐 그리 다르겠어.

‘이대로만 가면 된다.’

나는 오늘 일을 겪고 겨우 불안이 조금 해소된 기분이었다.

그람도 있고, 육체의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기다 내가 원래 천연덕스러운 성격이라 사람과 어울리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막연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생겼던 불안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만 놓고 보면 개같이 암울했으니까.’

원래는 집에서 태평하게 치킨 좀 뜯다가 게임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해본 적도 없는 다크 판타지 게임의 친구 캐릭터에 빙의되었다.

그것도 군대 전역한 지 겨우 일주일 만에 말이다.

이것보다 개같은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뭐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마을이다.”

날이 다 저물어 가방에서 호롱 같은 걸 꺼내어 길을 밝히던 잼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한 마을이 보였다.

시골 풍경이 저절로 떠오르는 마을은 멀리서 보기에도 허름했다.

‘아마 저게 도시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의 평균이겠지.’

그렇게 두 사람과 함께 마을 입구로 들어서던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코끝을 파고든 한 냄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경험이 누적된 육체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다.

“……야.”

“응?”

이건 분명히 혈향이었다.

잼미니가 나를 의아하게 돌아봤고, 그의 태연한 모습에 나는 인상을 더 굳혔다.

평생 살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건.

초등학교 때 아무도 없던 골목길에서 백수 형과 마주쳤을 때밖에 없었다.

이건 위기감이었다.

“피 냄새다.”

“아, 여기 근처에 푸줏간이 있거든. 거기서 나는 냄새일 거야.”

그러자 잼미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히려 그는 나를 보며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겁도 많구만. 피 냄새 좀 난다고 쫄기는.”

나중에 입에다가 그람을 꽂아 넣어주든가 해야지.

디온느만이 나의 말에 반응하여 주변을 경계했다.

그 상황에서도 잼미니는 오히려 당당하게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도크만, 어딨나. 그렘린을 잡아 와줬는데.”

거기다 그는 이 마을이 익숙한 듯, 지인을 부르며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디온느와 서로를 돌아보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천천히 한 발짝씩 물러났다.

그렇게 잼미니는 혼자서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잠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골목을 앞서가던 잼미니가 다급한 모습으로 튀어나오더니 전력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쿠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그의 뒤를 따라 무언가가 땅바닥을 구르듯이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몸집만큼 모락모락 흙먼지를 일으킨 놈은 괴물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외형이었다.

그리고 나는 놈을 보자마자 잼미니와 똑같이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망했다.’

얼굴이 시커먼 촉수 다발로 이루어진 거대한 곰.

딱 봐도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놈은 잼미니 녀석이 말한 푸줏간에서 튀어 나왔는지 죽은 돼지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역시, 푸줏간에서 나던 피 냄새는 맞았네!’

“으아아아악!”

놈은 몸을 세우자마자 다시 잼미니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잼미니 저놈이 이쪽으로 곧장 뛰어오고 있단 거였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그 즉시 뒤로 돌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디온느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뛰어야 했다.

“미친놈아, 이쪽으로 오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

내가 잼미니를 향해 외쳤지만, 놈은 스카프를 휘날리며 계속 따라왔다.

“우리 친구잖아아악!”

“오늘부터 절교야. 이 인마!”

“너무해!”

너무하기는 개뿔이!

암만 봐도 다 같이 죽자고 따라오는 잼미니를 욕하며, 나는 우리가 어느새 산 초입부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잼미니의 뒤를 쫓는 저 괴물은 딱 봐도 인간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다회차의 경험이 몸에 남아 있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디온느 씨, 저게 뭔지 아십니까?!”

나는 몬스터 지식 따윈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디온느를 향해 묻자, 그는 들고 있던 그렘린 머리 자루를 내던지며 사색이 된 표정으로 도리질했다.

“모, 모르겠어요! 저런 괴물은 처음 봐요! 저, 저런 사악한 모습, 사도, 사도의 종인 게 분명해요!”

사도의 종.

내가 사도잡이 집단인 헬리오스를 목표로 하고 있긴 한데, 벌써부터 마주칠 필요는 없잖아!

“엄청 위험한 놈들이라는 거잖아요!”

“그러게요옷!”

이렇게 농담 따먹기나 할 때가 아니다.

인간보다 우월한 육체를 지닌 저 괴물은 우리보다 명백히 빨랐다.

물론 디온느와 나를 덮치기 전에 잼미니가 먼저 잡아 먹혀주긴 하겠지만.

살욕에 돌아버린 저놈이 잼미니를 후려치고 나서도 우릴 계속 쫓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젠장.’

가팔라 오는 숨이 체력의 한계가 곧 다가올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력 질주로 달리고 있다.

아무리 몸을 쓸 줄 알아도 기초 체력 단련을 따로 하지 않은 이상 그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언제까지고 도망만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 즉시 벨트로 손을 옮겼다.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건 딱 하나.

‘그람.’

저놈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 도망만 치다가 힘 빠져 죽느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디온느 씨, 계속 달려요! 잼미니, 너 인마. 넌 눈 감고 전력으로 뛰어!”

그렇게 외치며 나는 달리던 몸에 브레이크를 걸어 멈추곤 그람을 쥐었다.

동시에 몸을 돌리며 오른손으로는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잼미니 녀석이 눈감고 전력으로 달리는 게 보였다.

그람의 효력을 아는 놈인지라 죽기 싫어서 어떻게든 눈을 감은 모양이었다.

쿵쿵쿵쿵!

머리가 촉수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성대조차 없는 괴물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도 사람을 찢을 수 있을 거 같은 놈을 보며.

나는 긴장된 눈으로 그람을 겨누었다.

“잠깐, 저거 눈은 있나?”

한순간 그런 불길한 생각이 스친 순간이었다.

우뚝!

미친 듯이 달려오던 괴물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놈은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로 몸을 꼿꼿이 세웠고.

나는 그걸 보자마자 그람이 통했음을 직감했다.

살았다.

“어디가 인마.”

“끄악!”

그사이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내 옆을 지나치려는 잼미니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이놈은 절대 도망가게 못 둔다.

나는 긴장한 기색으로 그람을 역수로 쥐었다.

괴물은 계속해서 머리 위 촉수를 흔들거리며 징그럽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외형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겉보기만으로는 놈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두꺼워 보이는 가죽을 검으로 벨 수 있다고 확신도 못 하니.

“나, 나는 왜 붙잡아!”

“그럼,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을 내가 그냥 보내 주겠냐?”

내 단호한 목소리에 울상을 짓는 잼미니였다.

놈에게 한소리 쏘아붙인 나는 그람을 앞세운 채 한두 걸음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거 오판이었다.

괴물은 내가 뒤로 빠지자 몸을 움찔움찔하더니 나와 똑같이 한 발씩 앞으로 다가왔다.

“…….”

내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냐하면, 놈이 지금 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썩을, 그람과 멀어지면 디버프도 풀리는구나.’

공포에 빠진 놈을 이대로 두고 도망칠 속셈이었는데, 이렇게 되니 상황이 더 골치 아파지고 말았다.

“아아아악!”

그 순간 뒤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눈앞의 괴물에게 집중하고 있던 내 시선이 슬쩍 뒤로 향했다.

거기에는 앞에 있는 괴물과 똑같은 촉수 곰이 있었다.

놈은 디온느를 앞발로 붙잡고 있었는데.

그의 팔은 반대로 꺾여, 피부를 뚫고 뼈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 디온느의 비명은 계속 울려 퍼졌다.

으직!

그 순간 촉수 다발 중앙이 벌어지며 그의 머리가 통째로 삼켜졌다.

그걸로 디온느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단지, 촉수 곰이 목을 꿀렁거릴 때마다 그의 육신이 조금씩 놈의 뱃속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디온느를 먹은 촉수곰도 거기까지였다.

두 번째 촉수 곰이 남은 먹잇감들도 처리하고자 앞으로 더 다가온 순간 녀석의 몸도 그 자리에서 굳었다.

놈도 그람의 디버프 반경 안에 들어온 것이다.

“으, 아악, 아아악!”

그 사이 멘탈이 완전히 부서진 듯, 잼미니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가 코앞까지 다가오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려고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있을지도 모를 도주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7,677회차를 기억하고 있는 육체를 믿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단지, 지금 확실한 건 이런 침착함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장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 장승민 녀석에게 넌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평가받았었다.

내가 그런 말을 들었던 건, 어떤 상황이 오던 항상 침착함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놈의 촉수 다발이 열렸을 때 보인 그 내부는 연한 속살이었어.’

겉가죽은 아까 마을에서 벽에 부딪히고도 아무런 생채기가 안 생겼었다.

아마 롱소드로는 베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가죽이 아닌 안쪽의 연한 속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저 촉수 속에 뇌가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 그게 약점인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일격에 즉사시키지 못한다면 끝장나는 건 내 쪽이다.

내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뭔가, 뭔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내부 속살, 그람, 롱소드, 잼미니…….

뭔가, 뭔가 더 있을 거다.

그렇게 식은땀과 함께 한참을 고민하던 내 눈이 서서히 뜨였다.

‘……호롱.’

빛이 보였다.

“……친구야. 이쪽 보지 말고 대답해. 조금 전에 호롱불 켤 때 썼던 기름이랑 부싯돌 있지.”

“어, 어. 있, 있어!”

잼미니가 급히 가방에서 기름과 부싯돌을 꺼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그람을 쥔 손을 유지한 채 턱짓했다.

“저기 그렘린 머리 자루 보이냐.”

아까 전에 디온느가 무게를 줄이려고 내던졌던 그렘린 머리 자루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잼미니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내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올라갔다.

위기 속에서 겨우 찾은 기회를 잡았을 때 자주 짓던 표정이었다.

“좋아. 우리 둘 다 살아서 돌아갈 길이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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