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얼굴 대신에 촉수 다발을 가진 곰 괴물.
다파르가.
근처에 있는 생물은 모두 잡아먹는 식탐의 괴물은 지금 자기 앞에 있는 한 존재 때문에.
몸도 옴짝달싹 못 하고, 생전 느껴본 적 없는 크나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포식자로서 피식자를 삼키는 것이 당연한 다파르가의 삶이다.
그렇게 오늘도 자기 삶을 관철하던 순간.
자기가 쫓던 피식자가 단검을 쥐었다.
그 순간 다파르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심에 휘감겼다.
한순간에 자신이 포식자에서 피식자가 된 거 같은 기분.
그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다파르가는 몸을 굳힌 채 옴짝달싹 못 했다.
그러는 순간 그자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손에 자루 하나를 쥔 그는 등을 맞대고 선 남자와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다파르가는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토끼가 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너무 크게 겁에 질리면, 근육이 굳어버려 아무것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파르가가 지금 딱 그 꼴이었다.
“가.”
다파르가의 코앞까지 다가온 백두산이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잼미니를 향해 말했다.
“으으, 내가, 내가 왜.”
“뒤지고 싶지 않으면 얼른.”
잼미니는 붉은색 스카프를 눈물로 물들이며 자기 가방과 호롱을 든 채 반대편에 있는 다파르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며 백두산은 자기 앞의 다파르가를 올려다보았다.
백두산을 본 다파르가는 여전히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백두산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지만.
다파르가의 눈에 그는 그저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와, 왔어!”
그 순간 겁을 잔뜩 머금은 잼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붙여.”
그 목소리를 듣고 백두산은 자신이 들고 있는 자루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잼미니 또한 들고 있던 가방 안에 불을 붙여넣었다.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백두산은 긴장 속에서 심호흡하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숫자 센다. 삼이라고 외치면 바로 던져 넣을 준비 해.”
“입을, 입을 안 벌리면 어떡해!”
“너 쫓아 올 때 계속 입 벌리던 거 잊어버렸냐! 하나.”
그리고 백두산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으으으으!”
“둘.”
손에 땀이 차도록 그람을 세게 쥔 채, 백두산은 불이 붙은 자루를 휙휙 돌리기 시작했다.
“셋!”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왼손에 쥐었던 그람을 즉시 벨트에 찼다.
깜빡.
백두산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테지만.
촉수 내부에 있던 다파르가의 두 눈이 움직였다.
방금까지 자신을 두렵게 만들던 눈앞의 존재가 급격하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백두산이 포식자에서 한순간에 피식자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그 상황에 의문을 품은 다파르가였지만.
놈의 지능은 인간과 비교하면 한없이 낮기 그지없었다.
잼미니보다도 멍청한 다파르가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공포심을 잊었다.
이성보다는 본능.
오직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괴물답게 다파르가는 한순간에.
평생 살아온 포식자로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평생을 함께한 본능.
눈앞의 상대를 먹는다.
그것 하나만을 떠올리며.
쩌억!
다파르가는 그 즉시 촉수를 벌림과 함께 눈앞의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작해야 한 걸음.
입을 벌리면 한입에 삼킬 수 있는 거리였다.
“던져!”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다파르가의 입으로 무언가 수욱하고 날아들었다.
던져 넣어진 것은 다름 아닌 불붙은 자루였다.
그람을 들고 있을 때, 오직 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다파르가는.
그가 불을 붙인 자루를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은 그저 입으로 날아든 것을 반사적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꿀꺽.
그리고 그것은 다파르가에게 있어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화르르르르르륵!
성대가 없는 다파르가의 촉수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뱃속으로 들어온 불붙은 자루가 그의 내장 기관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잼미니가 가지고 있던 기름은 이쪽 세계에서 나는 특별한 기름으로 한 번 불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특이한 기름이었다.
그 기름을 두른 것을 삼켰으니 산소가 부족한 놈의 위장에서 적어도 놈이 죽을 때까지는 불이 꺼지지 않으리라.
쿵쿵쿵쿵쿵!
그렇기에 비명 대신 다파르가는 미친 듯이 몸을 구르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놈들과 거리를 벌린 백두산은 롱소드와 그람을 동시에 뽑아 들어서 쥐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스산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최고치로 올라간 위기를 스스로의 기지로 돌파했을 때만 지을 수 있는 미소.
그리고 그것이 다파르가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었다.
* * *
타오르는 촉수곰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성공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아아아악!”
그 순간 뒤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흠칫한 내가 급히 고개를 돌렸을 때, 잼미니는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설마 실패한 건가?
‘아니다.’
그가 쥐고 있던 불붙은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멍청한 잼미니라도 대놓고 입을 벌린 촉수곰의 입속에 가방 하나 넣는 걸 실패할 리가 없다.
문제는 내 쪽보다 저쪽 촉수곰이 더 호전적이었던 거 같다.
놈은 고통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상대를 공격한 것이다.
잼미니가 바닥을 나뒹굴자 촉수곰이 그를 죽이고자 미친 듯이 다리를 내려찍었다.
그러자 잼미니는 그 와중에도 살려고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촉수곰의 다리를 피했다.
그 신묘한 움직임에 나도 감탄했지만,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촉수곰은 몸집이 크다.
내부가 다 타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전에 잼미니가 발에 밟혀 죽을 확률이 높았다.
“으휴, 저 머저리.”
바닥을 박찬 나는 즉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성을 잃은 촉수곰은 단순한 공격밖에 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놈의 코앞에서 기회를 노렸다.
놈은 뱃속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빼고자 입을 최대한 벌리고 있었다.
외피는 분명 뚫을 수 없으나 입안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속살이다.
그걸 본 나는 촉수곰의 앞발 사이로 능숙하게 파고듦과 함께 롱소드를 입속을 향해 내질렀다.
푸욱!
“!!!”
성대가 없는 촉수곰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촉수곰의 입속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롱소드를 타고 내 손아귀로 흘러나왔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롱소드를 놓곤 잼미니의 뒷덜미를 잡은 채 뒤로 뛰었다.
“얼른 일어나 등신아!”
“으흐윽, 고마워! 너무 고마워! 살아서 돌아가면 오늘 번 거 반띵 해줄게!”
“사망 플래그 세우지 말라고!”
잼미니는 엉엉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던 나는 그람을 역수로 쥐곤 촉수곰을 노려보았다.
그람을 꺼냈음에도 촉수곰은 공포에 질린 기색이 없었다.
고통이 심할 때는 공포고 뭐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거겠지.
‘공격당하면 풀리는 디버프라는 소리네.’
그 사실을 파악한 나는 계속해서 촉수곰의 행동을 경계하며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놈은 한계에 달했는지 바닥을 구르다가 이내 추욱하고 늘어졌다.
그 모습을 벌벌 떨고 있는 잼미니와 얼마 동안 지켜보고 있자.
놈은 몇 차례 몸을 꿈틀거리다 더 이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뒤쪽을 흘깃 보자 내가 불붙은 자루를 뱃속에 처넣었던 촉수곰도 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잼미니를 바라봤고, 때마침 그도 나를 바라봤다.
“우, 우리 산 거야?”
“……아마.”
“하, 하하! 살았다. 살았어! 산 거야! 오, 신이시여!”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은 잼미니가 신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꼴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이제야 풀린 긴장감과 함께 한숨을 내쉬곤.
잼미니가 안 보이게 그람을 벨트에 다시 넣었다.
위기를 돌파하고 나니 한순간에 피로가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산아, 진짜 넌 내 최고의 친구야! 너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거야. 만약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말해! 내가 뭐든 도와줄게!”
“우리 아까 절교했어.”
“아니, 이렇게 살아남았는데 그러기야!?”
수다스러워진 잼미니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이런 놈 말고, 디온느 같이 착한 사람이 살았어야 했는데.
왜 이런 놈은 명줄이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촉수곰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입 주변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는 게.
아직도 뱃속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놈 어쩌냐?”
“으음, 일단 촉수라도 잘라가서 모험가 길드에 보고하면 어떨까 싶은데. 나도 본 적 없는 놈이라 얼마나 가격이 나올지 모르겠네.”
몬스터를 잡고 나서 가격부터 생각하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디온느에게 듣기로 모험가는 기본적으로 임무 의뢰비에 더해 몬스터 부산물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직업이라 하였다.
디온느를 떠올리니 이제야 그가 촉수곰에게 꿀꺽꿀꺽 먹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 헛구역질이 올라와 나는 입술을 잠시 눌렀다.
그렘린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긴장이 풀리고 나니, 아무래도 사람이 먹히는 모습만큼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기기 힘들었다.
‘진정하자. 벌써부터 이런 상황인 걸 보면 앞으로도 이런 꼴을 볼 일이 많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였다.
육체에 여러 경험이 남아 있는 만큼.
원래의 나보다 정신적으로 좀 더 면역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앞으로 익숙해져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디온느에게는 미안하지만 적어도 복수 정도는 해줬다고 위안을 하면서 말이다.
「넌 어딜 가든 살아남을 놈이다. 진짜.」
그러는 순간, 고등학교 시절 일진 형들에게 찍혀서 장승민과 함께 도망쳤을 때,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썩을 자식, 그래서 나를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보내 버린 건가.
한숨을 내쉰 나는 촉수곰의 목구멍 안쪽에 박힌 롱소드를 뽑아냈다.
롱소드는 그 상태가 이미 엉망이었다.
‘이거 다시 쓸 수나 있을까.’
그람을 제외하면 가진 무기가 이것 하나뿐인 만큼, 전투력 쪽으로 상당한 손실이었다.
저벅.
“어라? 다파르가가 왜 이 꼴이야.”
그런 순간이었다.
숲 쪽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대머리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손에 나뭇가지로 된 완드 하나를 들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그런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촉수곰과 나를 번갈아 바라본 그의 눈동자 속에 의문이 깃들었을 때.
나는 이미 직감적으로 발을 앞으로 내뻗고 있었다.
“이거 너희가…….”
그가 의문을 채 내뱉기도 전.
나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내가 쥔 롱소드를 뒤로 당겨 투척 자세를 취했다.
휘릭!
잠깐의 고민도 없이 던져진 롱소드가 원을 그리며 남성에게 날아들었다.
“어억?!”
기습적인 공격에 놀란 남성은 롱소드를 피하려 했으나 나는 그에 맞춰 이미 그람을 뽑고 있었다.
“하윽?!”
그 순간 그람에게서 뿜어져 나온 공포가 남성을 집어삼켰다.
그 공포 앞에 남성의 몸은 얼어붙듯 굳었고, 그것은 당연히 나에게는 큰 기회가 되었다.
푸욱!
날아든 롱소드가 그의 가슴팍을 베어 가르며 안쪽으로 박혀 들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짜고짜 검부터 던질 거라곤 조금도 예상 못 한 듯했다.
그가 뒤늦게 부릅뜬 눈으로 나를 찾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사각으로 파고든 뒤였다.
놈이 한순간 나를 놓쳤다.
대머리 남자가 오른쪽에 박힌 검을 신경 쓰게 한 틈을 타.
일부러 왼쪽 시야로 빠져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푸욱!
주의가 흐트러진, 단 한 순간, 그 기회를 노린 그람이 상대의 목에 그대로 박혀 들었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움직인 그 결단력은 대머리 남자조차 경악할 정도로 빨랐다.
“그르르륵.”
끝내 그 사내는 피거품을 내뱉으며 고꾸라졌다.
“뭐, 뭐야!?”
뒤늦게 사태 파악을 끝낸 잼미니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뛰어왔다.
“죽, 죽인 거야?”
“어.”
내가 잼미니의 시야 밖에서 그람을 갈무리하며 이야기하자, 그의 두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왜, 왜?”
“숲에서 나온 남자, 마법사로 보이는 도구, 이 상황을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마치 흥미로운 걸 본 듯한 표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괴물을 보고 다파르가라는 명칭을 말한 것.”
나는 한순간 폭발적인 움직임을 내느라 멈췄던 호흡을 정리하며 말했다.
“딱 봐도 엄청 수상하잖아.”
“……맞는 말이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