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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고인물 친구 계정에 빙의했다-12화 (12/110)

12화

내 물음을 듣고 산적 남성의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 나는 모험가야!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팔에서 오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외치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코웃음 쳤다.

“그러냐? 사실 나는 산적이야.”

“어, 뭐, 어?”

설마 본인을 산적이라 소개할 줄 몰랐던 산적 남성이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서로의 직업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산적이 모험가 물품 강탈하려고 죽였는데 불만 있냐?”

내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자, 산적 남성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놈을 보는듯한 표정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나 몰라, 사람 상처받게.

“너, 너 산, 산적 아니잖아!”

“왜? 인마, 내가 산적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데? 말해봐, 그럼 산적 아니라고 인정해주마.”

내 검이 그의 다리를 쿡 찔렀다.

“대신 내가 산적 맞으면, 넌 네 입으로 모험가라 했으니까, 나는 너 죽이고 네 돈 털어 갈 거다.”

언제든지 벨 기색인 나를 보고 산적 남성은 패닉에 빠졌다.

그러면서 횡설수설함과 함께 나를 향해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 그게, 그건 이 숲에서 널 본적 없으니까!”

“아, 그래.”

그리 말한 나는 웃음을 지었다.

“너 모험가랬잖아. 이 숲에서 날 본적 없는 게 왜 내가 산적이 아니라는 거냐?”

“나, 나는 모험가 일로 이 숲에 자주 와!”

“나도 너 모험가 길드에서 본 적 없는데.”

모험가 길드에 간 것도 어제랑 오늘이 처음이었으니, 봤어도 알 리가 없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럼 너도 모험가 아닌 거네?”

산적이 모험가 길드를 갈 이유도 없을 테니 ,당연히 저쪽도 나를 모른다.

산적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다가 포기한 건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그, 그래, 나 사실 산적이야! 너랑 같은 산적이라고오!”

“이 새끼 지금 나한테 구라친 거였냐? 모험가인 줄 알고 털어먹을 뻔했잖아.”

나는 깜짝 놀라 그렇게 말했다.

“진짜 깜빡 속을 뻔했네.”

그는 내 말을 듣고 감격했는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크흡, 맞아.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산적 동지잖아.”

“그런데 나 모험가인데?”

어디서 동지 취급이야.

“산적 새끼가 감히 모험가 행세를 해? 안 되겠다. 넌 가중 처벌이야.”

“뭐? 살려줘! 으아아아!”

빠져나갈 수 없는 순환에 빠졌음을 깨달은 산적 남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뭐하냐?”

그때, 달린이 그제야 일어난 듯 모자를 고쳐 쓰며 다가왔다.

이에 나도 그를 힐끗 봤고,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그의 표정에는 황당함 만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달린에게 안 보이도록 그람을 벨트에 넣곤.

산적의 목에 칼침을 꽂은 뒤, 그의 위에서 내려왔다.

“산적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중이었어.”

“확인? 한 놈은 이미 죽어 있던데?”

달린이 옆을 돌아보자 거기에는 내가 제일 처음 베었던 산적이 있었다.

“자기 입으로 방금 산적이라고 호소했으니까. 저놈도 어차피 산적이야.”

“흠, 맞는 말이긴 하군.”

달린은 딱히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것보다 왜 돌아왔지?”

“아, 약초 채집용 단검 좀 빌리고 싶어서.”

그리 말하며 나는 산적의 검을 들어 보았다.

아쉽게도 이쪽은 아이템 등록이 안 되었다.

산적은 죽여도 아이템을 안 준다.

마음속에 메모해두자.

대신 쿠퍼 몇 개를 얻었다.

“내건 마법 사용 용도다. 약초 채집 같은 비위생적인 거에 못 쓴다.”

“그래? 그럼 괜찮아.”

나는 그리 말하며 잼미니가 했던 것처럼 산적을 뒤졌다.

그러자 별로 안 쓴 거처럼 보이는 단검이 하나 나왔다.

이놈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산에서 약초나 먹을 걸 벨 때 쓰는 용도인 것 같았다.

이건 쓸 만하군.

“그럼 나는 다시 약초 채집하러 갈게.”

“기다려라. 나도 가겠다.”

달린은 시체 옆에 있을 생각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이놈들 감히 날 노린 거 같고. 입구라고 혼자 있으면 안 되겠군. 산, 너한테는 감사하마.”

다행히 그 정도 눈치는 있었는지 달린은 감사 인사를 해왔다.

아까도 그렇고 그는 투덜거림은 많아도 인간이 덜되지는 않은 거 같았다.

“고마우면 나중에 마법이나 좀 더 알려줘.”

“어차피 마나 못 쓰면 못쓴다.”

“그 마나라도 알려 주던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나는 문득 상태창을 떠올렸다.

사도 신도의 검을 등록했을 때 추가로 올라간 힘 스텟.

그렇다면 혹시 마나 스텟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 스텟이 있다면.’

마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된다면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숲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곧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아까 브로디가 있던 곳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뿌려진 핏물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앞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산적은 혼자 있는 달린을 노렸었다.

그리고 브로디 또한 혼자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브로디가 산적에게 잡혀갔다.’

게다가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무슨 다크 판타지 세계관 아니랄까 봐, 사람들이 주야장천 죽어 나간다.

“브로디는?”

“다른 산적 놈들도 있었던 모양이야, 아마 잡혀갔거나 이미 죽었거나.”

내가 썩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달린이 눈을 팍 일그러트렸다.

“이상하군.”

“뭐가?”

내가 그를 돌아보자 달린은 핏물이 묻은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이 피를 보면 아마 브로디는 죽지 않은 것 같다.”

확실히…… 흩뿌려진 피가 너무 적었다.

머리 뒤를 내려쳤을 때 나오는 피가 딱 이 정도이지 않을까.

“산적 놈들이 뭐 하러 모험가를 죽이지 않고 납치한 거지? 젊은 여성이라면 노예로 팔아넘기거나 하겠지만 브로디는 중년 남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잼미니 같은 모험가 놈들도 자기가 죽인 시체를 버리고 가는데, 산적 놈들이 뭐 하러 브로디를 데려가.’

나는 턱을 매만졌다.

아직 현대 사회의 사고관이 남아 있는 나이기에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산적 놈들이라 할지라도 원래 숲의 입구 쪽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잡힐 확률이 높아지니까.”

이 또한 이상하다며 달린이 지적을 해왔다.

“이번 임무의 중심은 달린, 너야. 어쩔래?”

내 마음 같아서는 상황이 이상해진 만큼 바로 빠지고 싶다.

브로디는 안타깝지만, 그와는 오늘 처음 본 사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 위험한 놈들의 소굴로 뛰어 들어갈 만큼.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임무를 맡은 건 어디까지나 달린이다.

‘잼미니가 옆에서 열심히 떠들던 이야기를 보면.’

동급 모험가는 임무에서 도망치거나 할 시 임무 제한이라는 페널티를 받는다.

동급 모험가가 하는 20번의 의뢰는 신뢰도를 보는 인턴 같은 것이기 때문에.

중간 이탈은 자격을 잃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급 모험가는 재량에 따라 임무를 그만두고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달린에게 의사를 물었다.

“가시 불초는 얼마나 모았지?”

달린 또한 브로디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임무 실패를 더 신경 쓰는 듯하였다.

철급 모험가도 임무 실패가 쌓이면 좋은 거 없으니까.

“이제부터 다시 모아야 해. 보니까 브로디 씨가 모으던 것도 다 가져간 거 같다.”

같이 가져온 가방도 안 보이는 걸 보니, 수확은 제로다.

임무에 제시한 가시 불초의 기본 수확량은 50개다.

여기서 앉아 50개를 주야장천 뜯고 있다면, 산적 놈들이 몰려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아까 전의 두 명이라면 모를까, 나도 이런 숲속에서의 난전은 달갑지 않았다.

“임무 실패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면, 실패 기록은 남지 않는다.”

달린은 그리 말하며 곧장 가방을 열어 시약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 오히려 유용한 정보를 가져왔을 시, 임무 실패 면제는 물론 웃돈을 얹어 주기도 하지.”

이건 모험가 길드의 또 다른 사업 수단이기도 했다.

“이 숲에 있는 사람의 기척을 다 찾겠다. 산적 놈들의 위치도 알 수 있겠지.”

“그럼 산적들이 왜 이러는지도 파악해 볼 수 있겠네.”

돈도 얻고, 임무 실패 기록도 면한다.

일거양득의 찬스였다.

나는 스킬석 상인을 떠올렸다.

거기 있는 스킬석을 더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돈이 필요했다.

아까 전, 대쉬의 성능을 톡톡히 봤기에 스킬석은 다 구해두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아까 전 일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으면 아까 그놈들을 죽이지 말 걸 그랬나.”

“이럴 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다.”

달린의 말대로 그쪽은 불가항력이었다.

“좋아. 해보자고.”

달린이 산적의 위치를 파악해 주는 만큼 위험은 급격하게 낮아졌다.

게다가 달린은 산적과 굳이 전면전을 벌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보만 얻고 빠지자는 소리였다.

그러니 나도 선뜻 그의 말에 찬성한 거다.

“준비하지.”

달린이 곧바로 시약을 씀과 함께 마법진을 그려 나가자 나는 주위를 경계했다.

다행히 그동안 산적이 오는 일은 없었다.

달린은 능숙하게 마법진 그리는 일을 마쳤고.

전과 같이 마나로 마법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땅에서 시작된 빛이 달린에게 정보를 건넸다.

그 정보를 다 확인한 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을 보았다.

“산적들의 위치는 다 파악했다. 숲 안쪽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양이군.”

“그럼 그쪽은 피하고, 혹시 주변에 따로 다니는 녀석들은 없어?”

“두 팀 정도 있군. 다른 쪽은 2명, 여기서 가장 가까운 놈들은 3명이다.”

“두 팀이라…….”

달린은 마법사다.

스크롤 같은 게 있다면 모를까, 마법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달린은 그냥 일반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싸워야 하는 건 나 혼자.

‘무장 상태는 아까 그놈들이 평균일 게 뻔하고.’

엄청난 강자인 라데슈를 상대해 봐서인지 일개 산적 놈들이 딱히 겁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쪽은 위치를 다 알고 있는 만큼 기습 공격이 가능했다.

그람이 있기에 기습만큼은 자신 있었다.

‘잠깐만.’

그러다 문득 내 머릿속에 다른 게 떠올랐다.

“달린, 혹시 그 3명 팀이 우리랑 가장 가깝냐?”

“맞다. 가장 가까이 있는 놈들이다.”

“그래? 그럼 그중 한 명은 브로디구만.”

브로디는 키는 작아도 꽤 체중이 있는 몸이었다.

그가 협박받아 제 발로 걸어갔다면 이미 도착했겠지만.

그 3명은 아직도 이 주위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산적 놈들은 그를 기절시켜 들고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다 이놈들 2인 1조로 움직이고 있다.’

아까 내가 죽였던 놈들도 두 명, 그리고 달린이 언급한 다른 팀도 두 명.

그런 남은 팀이 세 명이라는 건 당연히 누군가를 데리고 있다는 소리와 같다.

“잘됐네.”

브로디와 전투를 하고, 성인 남성을 들고 가고 있다면 당연히 놈들의 체력도 거의 다 바닥났을 터.

기회다.

“3명이 있는 쪽으로 간다.”

겸사겸사 브로디도 구하고, 정보도 캐낸다.

두 마리 토끼 한 번에 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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