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폴만 씨도 모험가로 일하십니까?”
성기사인 폴만이 모험가 길드에 있는 게 의문이긴 했다만.
설마 임무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하, 저도 모험가 길드원 중 한 명입니다! 철급 모험가가 부족해 동급 모험가까지 고용하시는 상황에 제가 놀 수는 없죠!”
그러니까 모험가 길드 쪽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니 돕고 있다는 소리였다.
성기사답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인 모양이다.
“폴만 씨는 몇 급이신가요?”
“미천하지만, 강철급입니다.”
아몬드랑 같은 등급이네.
왜 본래 철급 모험가만 받는다는 포레스트 울프가 동급도 받는지 알겠다.
강철급 모험가가 두 명이나 있으니 잡일 쪽을 시킬 목적이겠지.
“그래서 산 형제님, 혹시 이번에도 무언가 사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퀘스트가 있었지.
나는 혹시나 해 산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폴만은 손뼉까지 치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사도 신도를 도운 시점에서 그자들 또한 사도의 종자! 무척이나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띠링!
[ 퀘스트 획득 ‘폴만의 사도 신도 잡담’ ]
[ 클리어 횟수 2/10 ]
그 순간 나는 바로 퀘스트가 카운트되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해본 건데, 이게 될 줄이야.
뜻밖의 행운이었다.
“여기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보답으로 중급 성수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나는 그가 주는 중급 성수를 정중히 받았다.
이제 두 개 쌓였구만.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이제 다 모였구만, 그럼 출발해 볼까?”
그러는 순간 아몬드가 출발을 알렸다.
고개를 돌리니 나와 같은 동급의 모험가들이 여럿 보였다.
수는 네 명 정도로 방패와 한 손 검을 들고 있는 남자보다 듬직한 체격의 여성을 빼면.
전원 남자였다.
일단 나도 동급이니 저쪽으로 가야겠지.
“안녕하십니까.”
“어, 너도 동급이야?”
그러자 내 또래로 보이는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치아가 고르지 않은지 툭 튀어나온 입술 사이로 보이는 앞니는 쥐를 연상케 하였다.
하지만 녀석의 옷차림은 범상치 않았다.
아몬드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장비를 챙겨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검은 한눈에 봐도 상당한 고가로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 그러한 옷은 무척이나 안 어울렸다.
정확히는 몸을 별로 안 써본 티가 났다.
‘그러네, 뭔지 알겠다.’
어디 잘사는 집 도련님이 갑자기 모험 병이 도져서 나온 모양이다.
특히 저 버릇 없어 보이는 얼굴은 그에 딱 알맞았다.
“그래, 동급이다.”
괜히 엮여봤자 좋은 거 없는 기운이 물씬 났기에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헹, 아몬드 씨랑 같이 오길래 철급인 줄 알았더니. 그냥 동급이었구만? 본적 없는 얼굴인데 신입?”
“그런데?”
그러자 그는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기색과 함께 이죽거렸다.
“크, 신입 좋을 때다. 난 곧 철급이거든, 선배니까 깍듯이 모셔라.”
동급 모험가는 보통 한 달 정도면 승급한다.
그런 주제에 선배 행세하는 그를 보곤 나는 어이없음을 느꼈다.
얘는 잼미니 보다 더 등신인가?
“하여튼 아몬드 씨는 신입까지 챙겨 주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나는 버릇처럼 그람으로 손을 올렸다가 아몬드라는 말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이번 임무에서 내가 세 놈을 이탈시켰다.
여기서 또 수를 줄였다간 임무에 지장이 있겠지.
‘한 번은 봐준다.’
나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다.
한차례 호흡을 한 나는 그람에서 손을 떼었다.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한 번은.
“그럼 가지.”
아몬드의 지시와 함께 동급 다섯과 강철급 둘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일곱이나 되는 수라서일까.
이동 자체는 꽤 왁자지껄했다.
정확히는 동급 쪽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떠드는 게 많았다.
“그러고 보니 네피 패거리 세 놈은 왜 안 보인대?”
“그러게. 그놈들 어제 자기들도 이번 임무에 참여한다며 떠들고 다녔잖아.”
그런 순간, 네피 패거리라는 언급을 듣고 나는 아까 전 건달 세 명이 떠올랐다.
그놈들이 네피 패거리인가.
아무래도 저 사람들은 놈들과도 아는 사이인 듯싶었다.
‘귀찮으니, 조용히 있자.’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자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자 거기에는 아까 본, 내 키만 한 근육질 여전사가 있었다.
주홍빛 머리카락을 목 아래 칼같이 깔끔하게 자른 단발 사이로.
주먹코에 두꺼운 입술을 지닌 그녀는 상당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깨까지 오는 옷 아래 드러난 이두박근 덕분에.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의 외모가 오히려 강인함의 상징이 되어 잘 어울렸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남자들이 괜히 기가 죽어 그녀를 슬쩍 피할 정도였다.
“아까 봤다.”
나는 그녀가 한 말이 아까 전 내가 네피 패거리와 싸우던 걸 가리키는 것을 깨달았다.
“저쪽한테 말해도 상관없어.”
내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 자기 말이 어떻게 해석될지 이제야 눈치챈 양 덧붙였다.
“협박할 생각은 없다. 그냥 봤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야.
“단지, 아까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사람을 베는 게 인상 깊은 세상이라니.
역시 지극히 현대인 감성인 나는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나면 대련으로 배움을 한번 청하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깜빡이었다.
“그러니까, 스파링하자고?”
“스파링? 대련이다.”
“그래, 스파링.”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내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귀찮은데.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구만.”
그러는 순간 어느샌가 우리 옆에 아몬드가 불쑥 튀어나왔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그를 보고 우리 둘이 동시에 놀라자 그는 수염 사이로 이를 드러내며 씩하니 웃어 보였다.
“한 번 붙어 볼 거라면 내가 봐주지. 마이링, 너도 심판 정도 있는 게 괜찮겠지?”
“부탁한다.”
나는 허락도 안 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저는 수락 안 했습니다만.”
“에이, 배우고 싶다고 저렇게 청하는데, 들어주는 게 검사의 도리 아니겠나.”
검사의 도리고 자시고 나는 검을 쥐어본 지 이제 사흘 됐다.
모험가 녀석들은 죄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건가.
그러다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저쪽이 막무가내라면 나도 막무가내로 나가보자.
“그럼 마이링과 대련할 테니 대신 제가 이길 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부탁? 일단 말해보게나.”
아몬드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보수 대신 포레스트 울프 가죽을 좀 챙겨 가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몬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게나. 내가 사냥한 포레스트 울프랑 자네가 사냥한 쪽은 가죽을 다 주도록 하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러면 나도 싸울 마음이 생기지.
“그럼, 다음 휴식 구간에서 대련하도록 하지.”
“포레스트 울프랑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당장 임무가 있는 만큼, 내가 질문하자 그는 어려운 것 없다는 양 웃었다.
“서로 죽일 생각인가?”
당연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그리고 자네라면 그 정도는 조절할 수 있을 테고.”
그리 말한 아몬드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하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나를 왜 저리 높게 평가하는 걸까.
‘내가 검든지 사흘 된 거 알면 까무러치겠구만.’
“뭐야, 야, 너 대체 아몬드 씨랑 방금 무슨 이야기 한 거냐? 동급한테 어떻게 아몬드 씨가 먼저 말 걸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몬드 추종자로 옷만 번지르르한 동급 모험가 라투스라는 녀석이 있었다.
“선배인 나도 아몬드 씨랑 별로 대화 못 해봤는데, 어디서 버릇없게 후배가. 아몬드 씨한테 뭐 조언이라도 들었냐?”
딱 봐도 무시하는 본새가 가득 느껴지자 나는 귀를 후벼 파곤 후하고 불었다.
나는 조금 전에 이 녀석을 한 번 봐줬다.
그러나 두 번까지 봐줄 생각은 없었다.
내 넓은 아량도 한계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한테 그걸 왜 알려줘야 하냐?”
그렇기에 나는 무척이나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뭐? 너 방금 뭐라 했냐?”
그러자 그도 내 싸가지 없음에 잘못 들었나 싶어 내게 다시 물어왔다.
그 물음에는 보답해 줘야겠지.
“너한테 내가 왜 알려 줘야 하냐고. 새끼야.”
“허, 참.”
그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기 앞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신입이라 눈에 뵈는 게 없지. 막? 하늘 같은 선배가 말하고 있는데.”
“선배는 개뿔이, 같은 동급인 놈이 왜 자꾸 아까부터 위에 놈인 척 구냐?”
“아니, 야, 너 신입이라며! 너 모험가 된 지 며칠 찬데.”
“어, 3일 됐다.”
“난 이제 한 달 차라고! 그리고 이번 임무 끝나면 철급이야.”
“근데 지금은 동급이잖아.”
내 말에 그는 입을 뻐끔거렸다.
“……말장난해?”
“장난하는 건 너지. 아까부터 자꾸 와서 아몬드, 아몬드. 네가 무슨 견과류 좋아하는 다람쥐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어느샌가 그의 바로 앞에 접근해 있었다.
고작해야 170대 초반에 근접한 키인 그는 나와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났다.
처음에는 내 말을 듣고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내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생각보다 더 차이 나는 체격 차에 그가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몸으로 싸워야 하는 전투 특성상 체격이 크면 웬만하면 유리했다.
거기에 타고난 위압감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 잇! 다가와서 뭐, 선배 한 대 치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체격 차에 조금 겁을 집어먹은 듯 센 척을 해 보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 다람쥐 같은 놈이 열 내봤자 같잖아질 뿐이었다.
일단 두드려 패고 싶어졌는데.
임무 중이니 그건 참도록 하고.
나는 정당하게 패기로 마음먹었다.
“아몬드 씨.”
내가 손을 들어 아몬드를 부르자 그가 뭔 일 있냐는 듯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갑자기 아몬드를 호령한 탓에 당황한 라투스를 가리켰다.
“이 녀석도 저랑 대련 한번 해보고 싶다는데, 있다가 좀 해도 되겠습니까?”
“엉? 뭐, 그리하게나.”
그는 라투스를 흥미 없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링을 상대로도 나에게 조절하라는 양 이야기하던 그다.
라투스 정도는 검 없이도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겠지.
“대, 대련? 갑자기 뭔?”
“뭐긴 뭐야.”
나는 목을 두둑 풀며 미소를 지었다.
“너, 엄청 처맞을 거란 거지.”
어디 합법적으로 정신 교육 좀 받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