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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고인물 친구 계정에 빙의했다-20화 (16/110)

20화

“미, 미친 뭐야. 저게!?”

라투스가 손도끼를 쥔 채 촉수뱀을 보고 벌벌 떨며 외쳤다.

통나무보다도 몸이 굵은 녀석이 그 머리는 전부 촉수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만큼 그로테스크한 광경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저 촉수뱀.’

십중팔구 저번에 만났던 다파르가보다 상위 개체다.

지금이라면 다파르가를 쓰러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이지만.

지금 눈앞에 촉수뱀을 상대로는 도저히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까 전, 몸을 말아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기술은 명백히 위험했다.

만약 내가 저걸 받아치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그 순간 아몬드가 뒤를 잡으며 빠르게 촉수뱀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모두가 굳어 있는 와중에도 능숙하게 놈의 빈틈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노린 일격이 닿기도 전에 촉수뱀은 아까 보았던 유령 모습과 같이 천 조각처럼 얇아졌다.

후웅!

표적이 얇아진 탓에 닿지 못한 아몬드의 검이 허공을 날았다.

“뭣.”

이런 건 아몬드조차, 본적 없는지 그가 당황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 모험가였다.

그는 촉수뱀에게 특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그 즉시 검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천 조각이 된 촉수뱀이라 할지라도 아몬드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베어 갈라졌다.

쿠웅! 쿵!

놈은 다파르가 때와 같이 성대가 없는 듯, 비명 없이 몸부림을 치더니.

그대로 수풀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뒤늦게 아몬드가 쫓아가려 했지만, 놈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산, 자네 괜찮나?”

“예.”

아몬드가 물어오는 것에 답하며 나는 검을 꽈악 쥐었다.

조금 전 충격에서 겨우 회복된 몸과 함께 나는 스산한 바람이 코끝에 스침을 느꼈다.

이 감각.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강철급 모험가가 두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명백한 위기 상황이다.

“다들 모이십쇼! 사악한 사도의 종자에게 저희는 대항해야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폴만은 신의 사도인 양 거친 투지를 불태우며 외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에 비해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정확히 그 어수선함은 동급 모험가 쪽에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등장.

아몬드조차 일격에 끝장내지 못한 놈이 지금 숲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당연히 동급 모험가 입장에서는 재앙 그 자체니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다들 모여! 잘못 움직였다간 당한다!”

그들을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아몬드가 경고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촉수뱀이 숲사이로 다시금 똬리를 스프링처럼 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망…….”

“도망쳐!”

콰앙!

촉수뱀이 또 한 번 뛰어오르자 동급 모험가들은 나 몰라라 하며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 자기 몸을 지킬 수단이 없으니 도주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어, 어?”

동급 모험가 중 마이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은 라투스가 당황한 음색을 터트렸다.

갑자기 알고 지내던 동급 모험가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버렸으니 당황한 것이다.

“바보 녀석들.”

마이링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몬드와 폴만의 협공에 맞서는 촉수뱀을 노려보았다.

‘강해.’

저들은 강철급 모험가답게 기본기가 남달랐다.

그런 그들이 촉수뱀을 상대로 상상 이상으로 곤란해하고 있었다.

‘치명타가 안 들어가.’

게다가 촉수뱀의 공격을 잘 피하고 있는 두 사람이라고는 하나.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저쪽은 특수 능력으로 피하는 것에 반해 이쪽은 직접 눈으로 보고 피하는 중이다.

당연히 이쪽이 더 빠르게 지칠 수밖에 없다.

아몬드와 폴만의 체력이 동나는 순간 끝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단 한 순간.

촉수뱀의 시선을 온전히 내게 향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이들이 그람에 노출되지 않고, 오직 촉수뱀만 노릴 수 있도록.

나는 이 상황을 뒤집어엎을 역전의 카드가 돼야만 했다.

그러는 내 눈에 마이링이 들어왔다.

촉수뱀은 폴만과 아몬드조차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는 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름의 실력이 있는 그녀라도 어찌할 방도를 모른 채 주춤거리고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오히려 아몬드와 폴만의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큭?!”

그 순간 촉수뱀에 얻어맞은 폴만이 저 멀리 튕겨 날아갔다.

나보다 훨씬 몸무게가 더 나갈 것 같은 그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촉수뱀의 힘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만약 저걸 정면으로 받는다면 아무런 장비도 없는 나는 십중팔구 내장이 터져 즉사다.

“썩을!”

그 광경을 보고 아몬드가 급히 검을 횡으로 휘둘러 촉수뱀을 갈랐다.

서걱!

촉수뱀도 폴만을 공격하고자 나름대로 내던진 수였던 만큼, 빈틈이 있었고, 공격당한 놈은 분노하듯 몸을 뒤틀었다.

그럼과 함께 꼬리를 이용해 아몬드의 다리를 후려쳐버렸다.

쩌억!

“윽!?”

강철급 모험가인 아몬드가 공중제비와 함께 바닥을 한차례 굴렀다.

그가 실력자임을 증명하듯 마지막에 몸을 튼 것 같긴 하나.

삽시간에 부어 버린 그의 다리가 부상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사이, 공격당한 촉수뱀이 빠른 속도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놈의 움직임을 보면 분명히 다시 우리를 습격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나는 마이링을 보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이링, 나 좀 도와줘.”

“도와달라고? 산, 방법이 있나?”

그녀가 긴장한 듯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 말고는 답이 안 보인다.

“……폴만.”

그사이 부어오른 다리를 털어낸 아몬드가 폴만의 이름을 불렀다.

“하아, 큭, 예,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적입니다.”

폴만 또한 우그러진 플레이트 메일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상당한 피해였는지 그의 얼굴도 마냥 곱지는 않았다.

원래도 사람보다도 커다란 촉수뱀이다.

그런 녀석에게 둘 다 정면으로 얻어맞았으니 멀쩡한 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신성력으로 어쩔 수 없나?”

“아까부터 계속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 이미 사용 중이었나.

나는 폴만의 메이스에서 은은하게 보이는 빛을 느끼곤 주위를 탐색했다.

“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숲 안쪽에서 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게 조금 전 뛰쳐나간 동급 모험가의 것이라는 사실은 여기 있는 전부가 알았다.

“으아, 아아.”

날카롭게 울리는 비명을 듣고 라투스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녀석은 이를 달달 부딪치며 조금 전에 봤던 촉수뱀에게 동료가 먹히는 것을 상상하는 듯하였다.

‘정확히는 상상이 아니겠지만.’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또다시 비명 하나가 더 울려 퍼졌다.

도망친 녀석은 세 명이었으니 두 번째 놈이 따라 잡힌 것이다.

“감히 사도의 종이 신께서 은총을 내려주신 제 앞에서!”

폴만은 거칠게 분노를 토해내며 메이스를 땅에 쿵 내려찍었으나.

눈이 돌아가 촉수뱀을 쫓아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도 지금 자신이 돌발 행동을 하는 순간 팀이 위험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마이링의 곁에 선 채 침묵하였다.

촉수뱀은 다파르가와 달리 머리가 나쁘지 않다.

그 증거로 그는 팀에서 떨어져 나간 동급 모험가부터 해치우며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려 했다.

그건 즉 놈이 지성이 있고, 약자를 노릴 줄 아는 놈이라는 것이다.

“아아아아악! 살려! 살려줘!”

곧이어 세 명 중 마지막 동급 모험가의 비명이 울린 순간 숲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달달달달―

라투스 녀석이 이를 부딪치며 죽음의 공포 앞에 떠는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촉수뱀은 그러한 공포를 이용하듯 능숙하게 숲 사이로 슥슥 지나다니기만 했다.

놈은 무척이나 영악한 놈이었다.

공포를 조성하는 그 집요한 움직임과 함께 놈이 또 한 번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도의 종이 감히 우릴 우롱하다니!”

그걸 보자마자 폴만이 땅을 박차고 나가 촉수뱀이 있는 장소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무기는 허공만을 휘저었다.

촉수뱀이 폴만의 공격을 손쉽게 회파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촉수뱀은 똬리를 스프링 틀듯 말았다.

놈이 동급 모험가들을 공격한 시점에서 그 계획은 뻔했다.

놈은 우리 일행 중 가장 약한 이부터 친다.

투쾅!

아니나 다를까, 놈은 우리 중 가장 약자인 라투스를 향해 쇄도했다.

“마이링!”

그러나 나와 마이링은 어느새 앞으로 나서서 놈을 막아서고 있었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드는 촉수뱀을 향해 마이링은 버티기 자세로 방패를 들어 올렸고.

나는 그녀의 바로 뒤편에서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쩌엉!

그 순간 마이링의 방패와 촉수뱀이 맞부딪치며 거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처음부터 놈이 튀어 오를 장소를 사전에 이야기해두긴 했지만.

그걸 받아내는 건 실전과 다른 법이었다.

“그윽!”

마이링 쪽에서 고통을 억누르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뒤에서 지탱하는 나도 그 충격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는데.

이를 정면으로 받은 마이링은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마이링의 방패가 우그러졌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순간 딱 한 번 기회가 왔다.

저 속도로 철 덩어리인 방패에다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생물인 이상 촉수뱀이라 할지라도 충격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놈의 몸이 휘청이고 있었다.

방패 사이로 내 몸이 마치 유영하듯 빠져나왔다.

자연스럽게 허리춤에서 뽑아 든 그람과 함께.

어딘지 모를 촉수뱀의 눈을 향해 새까만 공포가 몰아쳤다.

촉수뱀의 근육이 수축하며 놈이 경직되었다.

촉수뱀이라 할지라도 그람의 공포 앞에서는 모든 게 부질없었다.

이 한순간.

나는 호흡을 최대로 당김과 함께 근육의 탄력 전체를 검에 온전히 전했다.

비늘과 가죽 탓에 자체적으로 방어력이 높은 촉수뱀이다.

지금의 내 일격으로 놈을 절단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내가 노린 것은 오직 단 하나.

아까 전 아몬드가 딱 한 번 제대로 된 일격을 먹여 지금도 핏물이 흐르는 곳.

‘대쉬.’

일순간 공간이 압축되듯 줄어들었다.

나와 촉수뱀의 거리가 단 한 번의 폭발적인 도약으로 줄어듦과 함께 나는 검을 뒤로 한껏 당겼다.

‘더, 더 필요하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된다.

촉수뱀을 끝장낼 최고의 수가 하나 더 필요했다.

그것을 깨달은 내 몸에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육체는 이 상황을 이미 오래전에 겪은 듯.

뱃속에서 시작된 뜨거움이 삽시간에 몸 전체로 번져 검으로까지 타고 들어갔다.

그 순간 내 검 위에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는 붉은빛이 서렸다.

하지만 그 빛의 세기는 미약할지언정.

그 안에 담긴 예기는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된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내 검이 휘둘러졌다.

붉은빛의 실선이 이어졌다.

서걱!

이윽고 단두대처럼 내려쳐 진 검에 베어 갈라지는 소리가 숲 안을 거세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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