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세 놈의 정체를 알기까지 두 시간 전.
나는 레비 덕분에 하게 된 에든 던전 임무를 위해 팀을 찾았다.
이번 임무는 에든 던전의 4층에서만 자라는 동굴 수초를 가져오는 것.
그 임무는 총 네 명이 필요했고.
내가 딱 마지막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그들은 모험가 길드 쪽 구석에 모여 있었기에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그쪽 세 분이 에든 던전 가시는 파티 맞습니까?”
첫 만남인 만큼 내가 정중하게 말을 걸자 그 녀석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맞네. 에든 던전에 가는 팀일세.”
그러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대답해 보였다.
어디에서든 볼법한 외모를 지닌 그는 검 한 자루를 찬 전형적인 철급 모험가였다.
“나는 철급 모험가 포핀이라 하네.”
“철급 모험가 산입니다.”
통성명한 나는 다른 쪽 두 명을 보았다.
한 명은 신기하게도 귀가 길쭉했다.
외모도 특이했는데 연두색 머리에다가.
기다란 귀만큼이나 얼굴 전체 길이가 길어 말이 떠오를 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눈만은 커다랗고 속눈썹도 길어 언밸런스 했다.
그는 다름 아닌 하프 엘프였다.
“하아, 하등한 인간답게 또 내 얼굴에 시선이 꽂힌 모양이구만.”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놈이 정상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래, 팀에 이런 놈 하나 정도는 원래 끼어있는 법이지.’
이미 예상한 결과였기 때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그래서 그쪽 이름은?”
“라프할렌 나르시다. 철급이지. 내 이름을 들은 걸 감사히 여겨라.”
이름 한 번 외우기 힘드네.
나는 대충 흘려들으며 다른 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밤송이 같은 연갈색 머리와 소심해 보이는 짧은 눈매를 지닌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내게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동급 모험가 지오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쪽은 썩 나쁜 인상이 아니었기에 통성명을 마친 우리는 시간 지체할 거 없이 곧장 출발하기 시작했다.
팀 리더는 자연스럽게 포핀이 맡았다.
나야 맨 마지막에 참가한 사람이고.
나르시나 등급이 하나 낮은 지오 보다는 그가 나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산은 던전에 가봤나?”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하, 그래? 그럼 나만 믿고 따라오게나. 내가 에든 던전 경험자거든.”
그때까지는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았다.
“하프 엘프인 내가 있는데 던전 따위야.”
“이야, 다들 정말 믿음직스럽습니다.”
조금 걸리는 게 있긴 해도, 던전에 도착할 때까지는 싸움도 없고, 다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에든 던전.
마치 커다란 나무 하나가 던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는데, 노상 상인도 꽤 있었다.
“저 녀석들은 던전에서 죽은 모험가들의 물건을 가져오면 사주는 녀석들이야.”
포핀이 내게 설명해주었다.
“다른 모험가 물건을 챙겨서 돌아가기에는 무거우니 저런 놈들에게 적당히 파는 거지.”
“이야, 포핀 씨는 아는 게 많네요!”
그는 잡지식이 꽤 많은 것 같았다.
거기에 지오가 옆에서 추켜세워 주니 더더욱 말이 많았다.
“자, 바로 들어가자고.”
포핀은 리더가 돼서 그런지 신이 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까지 입수할 수 있으려나.’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니 그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던전에 진입한 순간 트롤러의 두각이 드러나고 말았다.
에든 던전 1층.
여기서 나무 수액을 빨아 먹고 사는 애벌레 우드웜들은 그 생김새가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했다.
몸에 난 가시 같은 솜털에다가 크기는 사람 반만 한 놈들이 꾸물꾸물하니.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게다가 어두운 던전 특성상 나무 색깔인 놈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놈들은 애벌레답게 천장에 붙어 있다가 갑자기 떨어지곤 했다.
“으아아악! 징그러운 것들이익!”
그 증거로 나르시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급 정령을 다룰 줄 아는 나르시는 옆에 하급 빛의 정령 위스프를 하나 켜두고 있었는데.
우드웜들이 나방처럼 나르시의 위스프 쪽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나르시가 우드웜에게 닿기도 싫다는 듯 손도끼만 휘두를 뿐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놈 앞에 몰린 우드웜을 죽였다.
“뭐하냐. 너?”
내가 등신 취급하듯 그를 보자 나르시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곧 땀 묻은 자신의 옆 머리카락을 촤락 넘겼다.
“나 같은 고귀한 하프 엘프들은 이런 것들과 맞지 않는다. 너희 같은 하등한 인간이 처리하는 게 당연하지!”
이 녀석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너 병신이냐? 어디서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지껄여.”
“병, 뭐?”
내가 그대로 욕 박을 줄은 몰랐는지 나르시가 멈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 더 열받은 내가 정신 교육을 시키려고 목을 풀던 참이었다.
“와아! 포핀 씨, 나르시 씨, 산 씨, 진짜 대단하네요! 다들 실력이 너무 좋으세요!”
“하핫, 그런가? 지오, 자네도 노력하면 이리될 거야.”
“그럼요. 그럼요!”
갑자기 지오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칭찬하기 시작했다.
아까 슬쩍 보니 뒤에 물러서서 숨어 있던 놈이.
인제 와서 검 한 자루 들고 와 죽은 우드웜을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꼈다.
“하, 당연하지. 나 같은 고귀한 하프 엘프에게 이쯤이야!”
그러자 지오 녀석의 칭찬에 기가 살아난 나르시가 당찬 미소를 지었다.
‘세 번.’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숫자를 세었다.
‘앞으로 세 번만 더 참아준다.’
기껏 온 던전이다.
케이브 모스 로브를 얻기 위해서라도 나는 세 번까지는 참아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리 파티는 다시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지오의 아부는 멈추지를 않았다.
“와, 어떻게 해야 포핀 씨 같은 철급 모험가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평소에 너무 약해서 민폐만 끼치거든요.”
“음, 임무를 잘하고 매일 단련하고, 식단을 잘해야지.”
지오의 말을 듣고 포핀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는 이런 아부에 상당히 약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우리는 지하 2층 진입로에 도착했다.
에든 던전은 위에는 평평하고 거대한 나무 형태지만.
그 뿌리 아래로는 깊은 굴 형태의 던전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드웜은 소재로써 사실상 쓸 수 있는 게 없다시피 하니.
우리는 좀 더 아래층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었다.
“포핀 씨, 여기 길은 다 압니까?”
나는 에든 던전이 초행인 만큼 포핀을 향해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아까부터 계속된 지오의 아부 탓에 자신감이 부쩍 오른 건 지 씩하니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에든 던전만 3회차일세. 길은 다 꿰고 있네.”
실제로 지하 2층을 찾는 계단까지는 전부 그가 안내했던 만큼.
나는 그 말을 믿어 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포핀의 길 안내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쪽일세.”
그는 3회차라는 말답게 망설임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본격적으로 돈 되는 몬스터가 나오는 건 3층부터다.
그런 만큼 우리는 몬스터와 조우 할 때마다 돈 되는 놈만 챙기며 빠르게 이동했다.
“다들 그거 아나? 사실 던전 또한 일종에 몬스터라는걸? 던전은 보통 몬스터를 배양하고, 인간이 발산하는 투기라는 걸 먹고자 인간을 끌어들인다고 하네.”
그 사이 포핀은 딥판에 기본 상식을 몇 가지 알려 주었다.
“게다가 던전이 자체적으로 가지는 함정도 많지. 특히 던전 전이 같은 건, 예기치 못한 층에 날아갈 수 있으니 주의하게.”
유익하긴 했다만 길 안내나 좀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벌써 막다른 길만 세 번째였기 때문이었다.
“이봐, 인간, 길을 똑바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응? 맞네. 설마 자네는 나를 못 믿나?”
어느새 지치기 시작한 나르시가 포핀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도리어 정색하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포핀은 3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자 그는 나르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거보게. 내가 금방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하, 세 번이나 길을 잃어버려 놓고, 뭐가 잘났다고 노려봐? 하등한 인간이.”
그러자 나르시도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하등한 인간보다 길눈이 어두운 하프 엘프는 또 뭐가 잘났나?”
던전이란 기본적으로 폐쇄되고 어두운 공간이다.
사람은 이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날이 서게 되고.
그 결과 포핀과 나르시가 서로 싸울 분위기가 되기 시작했다.
“에이, 두 분 왜 그러세요. 길 잘 찾았잖아요. 포핀 씨도 길 찾느라 수고했고, 나르시 씨도 정령으로 길 밝혀준 덕분에 찾은 거죠!”
그러자 지오가 옆에 껴서 포핀과 나르시를 동시에 달랬다.
나는 그것을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3층.
본격적으로 돈이 되는 소재가 나오는 만큼 몬스터의 난이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포핀은 이번에도 길을 안다는 양 쭉쭉 나아갔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어째선가 가면 갈수록 몬스터와의 조우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었다.
“인간, 몬스터가 좀 많아 보이는데, 길 안내 괜찮은 거 맞나?”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긴, 잘 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3층이니 당연히 몬스터가 많지.”
그 때문인지 나르시와 포핀이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다.
막다른 길만 벌써 일곱 번.
그중에서 몬스터 무리와 조우한 건 열 번.
서서히 지쳐가는 파티 속에서 가장 말짱한 것은 지오였다.
왜냐하면, 이놈은 몬스터 무리가 나오기만 하면 뒤로 슬쩍 몸을 빼고 다른 이에게 어그로를 떠넘겼다가.
마지막에 슬쩍 나타나 마무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막다른 길 여덟 번째에 들어섰던 때였다.
이번에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우드 크랩이었다.
사람 크기만 한 놈들은 단단한 나무 외피, 큰 덩치, 게다가 근육 자체가 질겨 칼이 잘 안 들었다.
문제는 이놈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인데.
지금은 지하 3층 나무 벽을 까맣게 메울 정도로 몰려 있었다.
“우, 우드 크랩!”
그리고 포핀이 그걸 보자마자 멍청하게 소리부터 내질렀다.
우드 크랩은 포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몰려들었고, 그 탓에 난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별문제 없었다.
내 남다른 힘이 깃든 엘리쉬 쌍검은 휘두를 때마다 우드 크랩을 박살 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곁에 다가오는 우드 크랩을 죄다 박살 내놓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눈에 아비규환이 보였다.
“으아아아!”
지오 녀석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나 몰라라 하며 도망가는 꼴과.
“썩을! 자네들이 자꾸 옆에서 말을 거니 길을 또 잘못 들었지 않았나!”
본인이 길을 잃어버린 주제에 우리 탓을 하는 포핀.
“하등한 인간들을 믿다니 내가 멍청했지! 아아악!”
실력은 없는 주제에 아직도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외치고 있는 나르시까지.
아주 가관이 따로 없었다.
그야말로 조별 과제 절망 편이었다.
“하, 팀 조졌다.”
가볍게 숨을 내쉰 나는 결심했다.
그냥 이놈들 버리고 나 혼자서라도 동굴 수초를 얻어와야겠다고.
그러던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우드 크랩에게 도망치던 지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것을 내가 봤을 때 덜컹하고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솜털이 오소소 솟으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내가 급히 이곳을 뜨고자 했을 때.
부유감과 함께 이미 내 시야가 뒤바뀌어 있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상황.
내가 잠시 눈을 깜빡였을 때,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푸른색의 난초 같은 것이 벽에서 삐죽 튀어나와 옅은 빛을 내고.
아까보다 한참 지하인 듯 바닥의 색도 달랐다.
거기에다가 아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더, 던전 전이 함정?”
그 순간 얼빵하게 서 있던 포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는 넘어져 있는 지오를 발견하곤 서서히 그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지오, 자네 설마 뭔가 밟았나?”
“어, 예에? 아, 아뇨! 우드 크랩에게 당하기 직전에 넘어졌을 뿐이에요!”
“던전 전이 함정이라니? 지금 우리가 뭘 당한 거지?! 설명해라! 하등한 인간!”
“시끄럽네! 내가 그토록 던전에서는 주의하라 했건만, 지금 누가 부주의하게 함정을 밟았다 하지 않나!”
“저는 아니에요! 두 분이 아니라면 산 씨, 산 씨가 밟으셨겠죠!”
터져 나오는 아우성과 함께 지오가 나를 가리키자 나머지 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누구에게든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상황.
지오가 정치질을 한 것이었다.
“하등한 인간 빨리 말해라! 네가 밟았나!”
“산, 어쩌자고 그런 걸 밟았나! 내가 길 안내를 하며 누누이 함정을 조심하라 했건만! 나만 잘 따라왔으면 문제없었지 않았나!”
“산 씨, 어서 사과하세요. 두 분 화나신 거 같아요!”
그 세 놈을 보고 나는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삼, 이, 일. 땡이다.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