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던전을 막 끝내고 온 뒤라 피로감이 남아 있었지만.
쥬르나가 이야기만 듣고 가도 된다고 하길래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간 곳은 어느 선술집이었다.
아무래도 쥬르나는 내가 모험가 길드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산, 데려왔다.”
“오, 산, 왔구나!”
나를 보자마자 라리즈가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벌써 몇 잔 걸친 듯, 라리즈에게서 술 향이 물씬 풍겨 나왔다.
“아몬드 씨는요?”
“자던데?”
그렇게 말한 내가 시선을 옮기자 앞에 쌓인 술잔과 함께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아몬드가 보였다.
라리즈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고작 몇 잔 걸친 줄 알았더니.
이 인간, 엄청난 주당이었다.
“하하, 아몬드는 술이 약하거든.”
본인이 강한 것은 인식 못 하는 듯 라리즈는 쾌활하게 웃었다.
“잘됐다. 쥬르나는 리저드맨이라 술을 못하거든. 산, 네가 같이 한잔해줘.”
“쉭, 인간족이 술을 마시는 건 이해 못 하겠다.”
리저드맨은 술을 못 먹는구나.
“제가 오늘 막 던전을 끝내고 와서요. 많이는 못 마십니다.”
“아하핫, 강요는 안 해!”
이런 말 하는 사람 치고 강요를 안 하는 사람을 못 보긴 했다만.
나는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쥬르나 씨를 통해 저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그 이야기도 겸해서 말이야. 주인장, 여기 맥주 하나만 더 줘.”
라리즈는 주문을 넣으며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그렇게 내가 쥬르나와 함께 라리즈의 앞에 앉자 아몬드가 스르륵 고개를 들었다.
“끄으음, 산인가?”
“예, 아몬드 씨, 살아 계셨네요.”
“살아, 살아는 있지.”
아몬드는 그렇게 말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얼굴부터 목까지 전부 새빨간 게 어지간히 취한 듯싶었다.
“산.”
그런 아몬드를 잠시 안쓰럽게 보고 있으려니 라리즈가 나를 불렀다.
“예, 라리즈 씨.”
“대충 예상은 했겠지만 이번에 임무 하나가 들어왔어.”
역시나 임무 쪽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리즈는 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건 좀 위험해서 산이나 아몬드, 그리고 쥬르나는 굳이 따라올 필요 없다고 봐.”
그렇게 말한 라리즈는 주인장이 들고 온 잔을 내게 건넸다.
내가 이를 받자 라리즈는 옅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잘 듣고 산이 직접 판단해.”
팀원의 의견을 묻는 라리즈는 역시 좋은 팀장이었다.
“일단 이번에 들어온 임무는 오스널 영지 쪽 임무야.”
오스널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왜냐하면, 낮에 에든 던전 앞에 있던 상인 녀석들이 이야기할 때 나왔던 영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사도가 강림했다는 그 영지 말입니까?”
“응, 이미 들었구나. 지금 아마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영지 쪽 팀들에게도 이 임무가 들어갔을 거야.”
왜 라리즈가 위험하다고 말하였는지 잘 알겠다.
“우리에게 들어온 임무는 다름 아닌 행방불명된 오스널 남작의 아들을 찾는 일이야.”
“오스널 남작 본인은 어떻게 됐습니까?”
라리즈는 그 말을 듣자 씁쓸하게 웃었다.
“현재 사망했다고 판명 났어.”
영지의 계승자를 찾는 일인 건가.
“지금 영지 상황은 어느 정도인 겁니까?”
“사실상 궤멸이야. 다행히 강림한 사도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고 하긴 하는데, 사도 신도들은 여전히 영지에 머물고 있어.”
“사도 신도들과 무조건 부딪치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사도를 다시 부를지도 모를 일이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리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가볼 생각이야. 오스널 영지에는 아는 녀석이 있어서 괜찮을지 보러 가기 위해서라도.”
그 말을 듣고 나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알았어요. 가보죠.”
“정말로?”
어차피 내가 딥판을 클리어하려면 사도와 계속 부딪쳐야 한다.
게다가 위험이 있는 곳에 더 좋은 아이템이 있을 게 분명하니.
피할 수만은 없다.
‘사도 신도나 종자를 해치우면 스킬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나는 오히려 사도 신도가 있는 곳에 찾아가야 했다.
“……산, 너 역시 좋은 녀석이구나.”
하지만 내가 이런 이득 관계로 움직일 거란 걸 알 수 없는 라리즈 입장에서는 꽤 감동한 듯하였다.
마치, 팀을 저버리지 않고 위험을 함께 하는 동료처럼 비친 모양이다.
“쉭, 산, 좋은 인간.”
쥬르나도 손등으로 내 등을 툭툭 쳐주었다.
“좋아! 출발은 이틀 뒤야. 가기 전에 먹고 죽자고.”
“무슨 죽으러 가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 오늘 조금만 마시다가 갈 거라니까요?”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지.
“흐윽, 산, 자네 다 들었어. 오늘 내가 살 테니 마음껏 먹게나.”
어느새 눈만 겨우 뜬 아몬드를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이미 오늘은 술을 먹고 죽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몬드와 라리즈는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회차를 반복해오며 경험이 쌓인 내 육체는 주량마저 미치도록 강했던 걸 말이다.
* * *
그렇게 이틀 뒤.
나는 케이브 로브를 대장장이에게 주문해놓고, 장비를 챙겨 모험가 길드로 향하고 있었다.
그 피곤한 상태에서 상당한 양의 술을 들이부었건만.
내 강철 같은 육체는 술에 전혀 굴하지 않았다.
‘소주 석 잔 먹고 해롱거리던 시절은 이제 안녕인 건가.’
나조차도 이렇게 잘 마실 줄은 몰랐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숙취 하나 없이 어제 푹 쉰 뒤, 편안하게 모험가 길드를 방문할 수 있었다.
“으윽, 산.”
그런 순간 나는 모험가 길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아몬드를 발견했다.
그는 숙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몬드 씨, 아직도 그 상태입니까?”
“걷다 보면 분명 괜찮아질걸세…….”
쥬르나야 원래 술을 못 마시니 상관없었지만.
아몬드의 경우 가뜩이나 취한 상태로 라리즈와 내 사이에 껴서 술을 더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숙취 없는 자네가 부럽구만.”
아몬드의 시선을 받으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안녕! 빨리 왔네.”
거기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라리즈였다.
평소와 같이 말끔한 미남인 그는 아몬드와 달리 숙취도 없어 보였다.
나도 그렇고, 오러 사용자는 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쉭, 식량이다.”
그러자 뒤따라온 쥬르나가 아몬드와 나에게 임무를 가는 동안 먹어야 할 식량을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길드 쪽에서 받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곧바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우리는 중간 지점까지 가주는 마차에 올랐다.
오스널 영지에서 사도가 강림한 만큼 아무도 안 가려고 한 탓에.
모험가 길드 측에서 특별히 고용한 사람이었다.
덜컹―
“솔직히 말해서 남작의 아들을 찾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할 거야.”
울려 퍼지는 마차 바퀴 소리와 함께 라리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이번 일을 처음부터 그다지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쪽에 온 임무니까. 한다면 최선을 다할 거니, 다들 각오 정도는 해둬.”
“팀장, 걱정하지 마요. 위험하면 팀장님만 두고 도망칠 테니.”
“어쭈.”
농담을 던진 아몬드가 머리를 한 대 맞으며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은 알게 모르게 쭉 유지되고 있었다.
‘이틀 전에 포핀 파티보다야 차라리 이게 낫지.’
적어도 라리즈 파티는 전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마차 여행과 함께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자동차로 간다면 금방이었을 거리였지만.
말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 중간 지점까지 온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여기서 몇 시간 정도 더 걸어가면 오스널 영지야.”
그렇게 말한 라리즈의 표정은 마차 때와는 사뭇 달랐다.
돌아가는 마부에게 삯을 지불한 그가 선두에 서자 우리가 그 뒤를 따랐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
그러자 쥬르나가 고통스럽다는 양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 또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강한 악의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사도 신도 녀석들에게서 자주 느껴지던 그런 느낌이었다.
삐죽삐죽 선 솜털과 함께 나는 팔을 짧게 비볐다.
그러자 저 멀리 새까만 연기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숲을 지나가자 오스널 영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사도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오스널 영지가 죄다 날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어째선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아래 건물들은 죄다 반파되어 무너져 황량하게 변해 있었고.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오스널 영지를 이 꼴로 만든 놈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데마르가 강림했다면.’
이프할렌 또한 저 꼴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란 게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내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사람의 기척을 느낀 내 눈에 모험가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다른 팀이로군.”
아몬드도 그들을 발견한 듯 말해왔다.
“서쪽의 데프랑 쪽 녀석들이네.”
그러자 라리즈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어찌합니까?”
곧 진입할 분위기인 그들을 보고 라리즈는 가볍게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야기 좀 해볼게!”
아무래도 전문팀끼리 뭉칠듯싶었다.
데프랑 쪽 전문 팀은 우리와 같이 은급 모험가를 필두로 구성된 팀이었다.
“라리즈, 오랜만이네.”
상대 팀의 리더는 풍만한 풍채에 주홍색 뽀글거리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여성인 마틸다였다.
등에 자기 키만 한 메이스를 멘 그녀는 듬직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고.
라리즈도 그녀와 아는 사이였던 듯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틸다, 오랜만에 보니 더 살찐 거 같은데.”
“너야말로 더 하얗게 변한 느낌인데?”
라리즈와 마틸다는 서로 친한 사이인지 농담을 나누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팀원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마법사인 듯 스태프 같은 것을 쥔 남성이었고.
나머지 둘은 각각 전사 쪽 강철급 모험가인 것 같았다.
“데프랑 쪽에서도 역시 임무가 들어갔구나.”
“우리뿐만 아니라 다 들어갔겠지.”
라리즈의 말을 듣고 마틸다는 혀를 찼다.
표정을 보아하니 딱 봐도 썩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사도잡이들 쪽에서도 온 거 같던데.”
사도잡이라는 말에 내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야, 사도는 걔들 전문이니까. 당연히 왔겠지.”
라리즈가 말하자 나는 슬쩍 다가갔다.
“라리즈 씨, 혹시.”
“아.”
그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 마틸다를 보았다.
“마틸다, 헬리오스도 왔어?”
“응? 듣기로는 왔다더라.”
헬리오스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