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소리친 사도 신도를 보고, 그람을 멈춘 나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왜 잠깐 멈추라 했냐?”
내가 질문하자 사도 신도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그게.”
사도 신도는 막상 입을 열 상황이 닥쳐오니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대답 안 할 거면 하지 마. 그냥.”
“지, 지하에 길이 하나 있습니다!”
사도 신도가 급하게 외치자 나는 옳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안내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나는 냉큼 그람을 허리에 넣곤 녀석을 일으켜 몸을 털어 주었다.
물론 몸을 털어 준 이유는 이 녀석에게 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이놈은 처음에 있던 검 말고는 다른 무기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에게 어깨동무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너는 앞으로 내 친구야! 친구 이름은?”
“도, 도비입니다.”
“도비? 와, 씨, 너 엄청 좋은 이름을 가졌구나!”
일을 열심히 하는 해리포터의 소중한 친구의 이름이라니.
이 녀석 정말 무척이나 좋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뻐하며 도비의 어깨를 탕탕 내려쳤다.
“좋아. 내 친구 도비, 얼른 안내해 보자고!”
도비는 내 말을 듣고, 애써 따라 웃음을 지었다.
웃음도 도비 같은 녀석이로군.
도비는 그 웃음을 억지로 유지한 채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도비의 등 뒤에 선 나는 바닥에 있던 사도 신도의 검을 주워 겨누고 있었다.
혹여나 도비가 나쁜 도비가 되지 않도록 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나 덕분에라도 도비는 나쁜 도비가 되지 않겠지.
“근데 어째 길이 위로 가는 거 같냐?”
그러는 순간 나는 도비의 안내가 이상하여 그람이 채워진 허리에 손을 내리자 놈이 급히 대답했다.
“그, 그게 이 건물은 저희 힘으로 좀 뒤틀려 있어서요. 정해진 루트가 아니면 그곳에 도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장치를 해놨었나.
확실히 주변을 보니 아까 보았던 미세한 틈들이 여럿 보였다.
이제야 알아차리긴 했지만, 도비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는 계단을 오르고 있음에도 어느샌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구조로구만.
‘이러니 다른 모험가들도 죄다 당했던 거겠지.’
나야 복도에 걸린 힘의 파훼법이 보여서 그렇지.
이쪽에 지식이 없었으면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남았니?”
“거, 거의 다 왔습니다.”
내가 친절하게 묻자 도비는 냉큼 대답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틈들을 꾸준히 보고 있었다.
도비는 내 친구지만 장승민이 나를 이곳에 빠트렸듯이 함정에 빠트릴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도비는 나를 위해 길을 잘 안내해주었다.
지하 공간에 도착하자 닫힌 문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도비에게 문을 열라고 턱짓했다.
그는 주저하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도 함부로 문을 못 여는 모습의 나는 허리에 손을 내렸다.
“그람, 맛 좀 더 볼래?”
“힉!”
내가 재촉하자 도비가 결국 급하게 문을 열었고.
그렇게 문 너머에 있던 사도 신도 한 명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음? 도비랑…….”
그놈이 나와 도비를 보고 의아함을 띄웠을 때, 나는 이미 들고 있던 검을 던지고 있었다.
퍼걱!
“끄윽?!”
날아든 검에 얻어맞은 사도 신도가 신음을 내뱉었다.
검이 정확하게 녀석의 어깻죽지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놈을 보고 그대로 머리채를 잡아 벽에 박아 넣었다.
“으, 으극.”
그가 고통의 신음을 내뱉자 나는 놈의 머리를 짓누른 채 쏘아붙이듯 물었다.
“여기에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모아 놨냐?”
“너, 넌, 대체, 누구길래.”
“나? 아드리스 님의 사자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도 신도 녀석이 두 눈을 부릅떴다.
“불경한!”
“이걸 안 넘어오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놈의 목덜미에 에든의 검을 박아 넣었다.
그대로 무너져 버리는 그를 보고 나는 검을 회수한 뒤 도비를 돌아보았다.
“계속 가자. 도비야.”
“네, 네엣.”
도비는 몸을 덜덜 떨며 다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람 쪽에 다시 손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커다란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에는 저장 창고 같은 게 있는 듯하였다.
벽에 붙은 내가 열린 문 사이로 안쪽을 확인하니 다수의 사람이 보였다.
거기서 나는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사도 신도 놈들이 사로잡은 사람들을 투명한 박스 안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순간 저게 뭔 광경인가 싶어서 잠깐 멍해졌다.
나는 그렇게 내부를 바라보다가 눈이 피로해 눈가를 잠시 손으로 더듬었다.
일단 안쪽에 사도 신도 놈들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내가 도비에게 문을 열도록 지시하자 그가 조심히 문을 열었다.
“도비, 저기 벽 보고 서 있어.”
그는 쭈뼛쭈뼛하면서 벽에 다가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도비를 두고, 박스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안에 갇힌 사람들은 다들 정신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나는 머리를 잠시동안 긁적였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남작의 아들이 누군지 얼굴을 모르잖아.’
살짝 골치가 아파졌다.
그러다 나는 도비에게 시선이 닿았다.
“야, 도비.”
“예, 예?”
“남작의 아들이 이들 중 누구인지 맞히면 너도 그냥 보내줄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도비는 눈을 한차례 끔뻑였다.
그러면서도 도비의 눈동자 속에 한줄기 의심이 깃들었다.
저놈은 내가 한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진짜 살려준다니까?”
“어, 그, 알았습니다.”
도비는 주춤거리는 자세로 박스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가 뒤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잠시 후 도비가 어느 한 박스 앞에서 나를 불렀다.
“어, 찾았냐?”
“예, 여기 이 박스에 계신 분이 남작의 아드님입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곤 박스 앞에 삐딱하게 서서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박스 안을 바라보았다.
“확실하냐?”
나는 다시금 되물었다.
그러자 도비가 입술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 예, 확실합니다만.”
“정말로? 확실한 거 맞아?”
내가 또 한 번 되묻자 도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예, 예, 맞습니다!”
도비가 다시금 커다랗게 소리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확인할 때는 이게 제격이지.
내가 군대에서 많이 당해봐서 안다.
“그래, 그럼 다시 벽 보고 서있어.”
“네에.”
도비가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벽을 보는 사이 나는 상자를 보았다.
거기에는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의 한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얼추 십 대 중후반 정도 되지 않을까.
그의 나이를 대강 짐작한 나는 박스를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말랑한 느낌과 함께 박스의 벽이 한차례 흔들렸다.
신기한 재질이구만.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검날을 박스 면과 면 사이에 넣었다.
다행히 박스에 막히지 않고 그대로 주욱 밀려들어 갔다.
지익, 지이이이익―
박스 면이 잘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젤리 같은 박스 면이 투욱하고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안에 있는 남작의 아들을 밖으로 꺼내었다.
그동안에도 남작의 아들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뺨을 한두 대 대충 쳐보았지만, 정신이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다.
“야, 도비야? 이 친구 안 일어나는데. 어떻게 방법 없을까?”
“그, 제가 주술적인 거에는 재능이 없어서.”
“도비는 길 안내만 할 줄 아는 친구구나.”
그래도 본인 할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기에 나는 정상 참작해주며 팔찌에 손을 올렸다.
될지도 모르겠고, 아깝기도 했지만.
임무를 위해서라도 남작의 아들을 데려가야 했다.
당연하지만 데려나가기 위해서는 제 발로 걷게 하는 게 더 편했다.
그렇기에 나는 소년에게 친히 팔찌를 직접 채워 주었다.
무슨 프러포즈하는 기분이네.
“윽, 크흑.”
그 순간 소년의 정신이 깨어난 듯,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도 강림 저지 팔찌에 있는 항마의 힘 효과가 그에게 발동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정신을 다 차리기 전에 팔찌를 빼서 다시 끼곤 그를 불렀다.
“오스널 남작 아들 씨, 정신 드십니까?”
“어, 큭, 여, 여긴.”
“사도 신도의 본거지 중 하나인 지하 공간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작의 아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제, 젠장, 도망쳐야 해!”
그러곤 횡설수설하며 그가 뛰쳐나가려 하자 나는 그의 어깨를 탁하니 잡았다.
“아드님, 진정 좀 해보십쇼.”
“넌 뭐야! 당장 이거 놓지 못해! 무엄하다! 감히 내 어깨를 만지다니!”
그 말을 듣고 내 이마에 핏줄이 살짝 서기 시작했다.
방금 일어나서 정신없는 거야 이해하겠는데 슬슬 평소 행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놈, 이거, 영락없는 철부지 귀족 아들내미였다.
“당장 놔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 따위가 내 몸에 손을 대거나 해서는 안 될 귀족님이시다! 이 천한 것아!”
나는 손을 들어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바로 내려쳤다.
“그익!”
머리를 얻어맞은 아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얼떨떨한 기색으로 나를 올려다보자 나는 허리에서 그람을 꺼냈다.
“너도 그냥 그람 맛 좀 보자.”
내 말을 듣고 괜이 도비 녀석이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곧 꺼억꺼억 우는 소리가 지하 공간을 메웠다.
그때마다 도비는 귀를 막으며 벌벌벌 떨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탈출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은 늘 필요한 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