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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고인물 친구 계정에 빙의했다-52화 (48/110)

52화

날아다니고 있는 종이들을 보며 나는 눈을 한차례 비볐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은 조금 전 내가 있던 장소와는 다른 곳이란 거다.

‘심상 세계.’

왜인지 그게 떠오른 나는 턱을 더듬었다.

느낌상 저 중의 하나가 내게 필요한 기억인 거 같았다.

‘뭔가 느낌이 오는데.’

그냥 아무거나 잡았다가는 엉뚱한 기억이 떠오를 각이다.

“썩을, 이거 뭐 잡으란 거야.”

잡고 싶어도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통에 짜증을 한 번 낸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래, 어차피 저기 있는 것들은 죄다 내 육체의 옛 기억이다.

내 몸 가는 대로 잡는 게,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거겠지.

‘내 몸의 감을 믿는다.’

그것밖에 답이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 즉시 손을 뻗었다.

텁, 파드드득!

손에 잡힌 종이가 발버둥 치듯 떨었다.

이거 어떻게 흡수하는 거지.

내가 손에 쥐고 그걸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갑자기 종이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어?”

그러는 순간이었다.

이마 쪽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이에 내가 눈살을 팍 찡그리자 갑자기 웬 기억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상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 눈에 회색 머리카락의 잘생긴 남자가 보였다.

그의 앞에는 강철로 된 뱀이 있었다.

똬리를 틀고 강철의 혀를 내미는 놈은 딱 봐도 검으로 내려치면 검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렸다.

문제는 그의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 의아함이 깃든 그 순간 내 시야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강철 뱀이 보였다.

‘깜빡이도 없네.’

강철 뱀은 거대했다.

내가 검으로 내려치면 베이기나 할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놈은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손을 중심으로 오러가 모여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빛이 모여들듯 내 손아귀에 모여들기 시작한 빛이 붉은색의 스파크가 되었다.

별빛 같은 후광이 내 손아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파지지직!

튀어 오른 스파크가 작렬하며 주위에 퍼져 나가자 강철 뱀이 철로 된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 놈과 마주한 내 손아귀에서 붉은 오러로 이루어진 검 한 자루가 쥐어졌다.

나는 지금 이게 무슨 기술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검의 영역.

이 순간 나는 오러만으로도 검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이 만들어졌다.

강철의 뱀과 내가 마주 본 순간, 기억을 따라 나는 검을 휘둘렀다.

강철의 뱀과 내가 교차했다.

서걱!

절대로 벨 수 없을 것 같았던 강철 뱀을 가르고 심검이 빠져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뱀의 머리 사이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것을 시작으로 강철의 뱀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심검은 어떠한 것도 베어 가를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육체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기억이 머리에 직접 주입된 그 순간 내 눈이 떠졌다.

눈앞에 헬리오스 부단장의 창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보니, 회상을 발동하고 나서 1초도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네.’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회상을 통해 겪은 흐름대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지금 내 능력치로는 심검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짜 심검의 영역에는 닿지 못한다.

그러나 내게는 한가지 묘수가 있었다.

‘마나 차징.’

그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어도 약간이나마 재현은 할 수 있는 스킬.

나는 기억과 스킬을 응용해 당시를 재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 손아귀에 기억 속과 같이 빛 응어리가 모여들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오러가 서리기 시작하며 붉은빛이 투명하게 빛났다.

“음?”

헬리오스 부단장의 눈이 살짝 치켜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심검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시작된 내 집중력이 주변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마치 이 공간에 혼자 서있는 듯한 감각.

그 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오러의 움직임만이 느껴졌다.

다른 이는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는 오직 육체의 기억만으로 그 영역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고요한 공간 속, 내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빛났다.

검의 극의에 다다른 검사가 마음속에서 얻은 검, 심검.

그 영역이 내 손아귀에서 만들어진 그 순간, 붉은 섬광이 대기를 갈랐다.

그어진 검이 창을 빠져나왔다.

“하아.”

나는 한계치까지 몰려든 집중력에 의해 참았던 숨을 거칠게 토해내곤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내 검이 빠져나온 자리를 중심으로 창에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챙강!

이윽고 그 균열이 커지며 창이 두 동강이 났다.

땡그랑!

“호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가리드가 바로 눈을 번뜩였다.

부단장의 창에는 알게 모르게 그의 오러가 서려 있었다.

오러와 오러가 부딪쳤을 때 나는 승부는 오로지 상대의 오러가 더 강했을 때뿐.

그런 그의 창을 내가 검으로 갈랐으니, 나는 이 순간 부단장의 오러를 넘어선 일격을 날린 것이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검사에게 오러의 양은 무의미하다.’

한 줌의 오러로도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경지에 들어선 검사.

심검의 영역을 엿보며 그것을 깨우친 내가 겨울임에도 흐르는 땀방울을 훔쳤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부단장을 바라보았다.

시험으로 내민 창을 부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응시자인 나도 잘 알았다.

그러자 그는 부러진 창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아끼는 거였는데.”

나는 부단장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순간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남이 기껏 회상까지 써가며 회심의 일격을 날렸는데, 칭찬은 못 할지언정 저런 말을 하다니.

‘얘도 정상은 아니네.’

인간의 몸으로 사도랑 싸우는 녀석답게 그도 멀쩡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부단장은 부서진 창대를 등에 멨다.

“가리드”

“예, 부단장.”

부단장의 부름의 가리드가 신나하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가 몸을 돌렸다.

“허락하마.”

그리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내가 가리드를 휙 하니 돌아보았다.

그는 부단장 쪽에서 내게 시선을 돌리곤 곧 키득거리는 웃음을 내었다.

“내가 살다 살다 부단장 창을 자르는 놈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그는 감탄하듯 소리를 내며 내 등을 툭 두드렸다.

“축하한다. 너도 이제 헬리오스 수습 단원이다.”

인정받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손에는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 고생 끝에 드디어 헬리오스에 들어왔잖아.

여기서 힘이 풀려서는 안 되었다.

띠링!

[ 퀘스트 획득 ‘헬리오스 소속 특급 사도잡이 되기’ ]

그러는 순간, 웬 퀘스트가 떠올랐다.

‘특급.’

마치, 이게 내 다음 목표라는 듯.

떠오른 퀘스트 창을 보고 나는 내가 옳게 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라리즈의 검을 내려다본 나는 그걸 다시 허리에 찼다.

라리즈가 내 모험가 인생에서의 마지막 팀장임을 되새기며 말이다.

“이것저것 짐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겠지?”

“그래, 나도 활동하던 곳이 있어서.”

케이브 모스의 로브도 챙겨야 하고 말이다.

“그럼 따라가 주마. 어차피 혼자서는 헬리오스 본부로 오지도 못할 테고.”

그거참 고마운 이야기다.

“그리고 헬리오스 관련해서 할 말도 있으니 말이야.”

그것도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잿빛 하늘이 서서히 걷혀 가기 시작했다.

아드리스가 죽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하늘을 보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잿빛만이 보였던 내 하늘도 조금은 걷혀 다음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되었다.

‘알피지 게임으로 치면 2차 전직인가.’

조금의 후련함과 함께, 그날 나는 그렇게 사도잡이가 되었다.

* * *

이후 나는 가리드와 함께 이프할렌으로 돌아왔다.

가리드는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헬리오스 단으로 안내해주기 위해 이프할렌까지 날 따라와 주었다.

“다 챙겼냐?”

그가 그리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출발할 거냐?”

“기다려. 모험가 길드에 좀 잠시 들리자.”

그래도 그동안 나름 모험가로서 쌓아온 인간관계가 꽤 돼서 이래저래 인사 좀 할 게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게 하나 있었다.

‘이번 일 끝낸 거 돈은 받아야지.’

아무리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지.

나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모험가 길드로 옮겼다.

거기에 더해 돈을 받고 나서 하나 더 확인하려는 게 있었다.

‘폴만의 일도 이번에 이야기하면 끝이니까.’

가리드를 따라가면 더 이상 폴만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모험가 길드로 들어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폴만은 없군.’

뒤에서 하품하며 나를 따라오는 가리드를 두고, 나는 레비를 찾았다.

“레비 씨.”

“아, 산 씨!”

언제나처럼 환한 표정을 짓는 레비를 보고, 나는 따라 웃어 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돈을 받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보상금 찾으러 오셨죠? 아몬드 씨가 맡겨 놓고 가셨어요.”

“역시, 아몬드 씨는 어디 갔는지 아시나요?”

“오늘은 하루 쉰다고 하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쉬는 게 당연하겠지.

‘라리즈의 시체도 해결해야 할 테고.’

시간이 필요하겠지.

얼굴을 못 보고 이별하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나는 보상금부터 받기로 하였다.

“여기 보상금 5골드에요.”

5골드라는 말을 듣고, 순간 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5골드라니.

상당한 거금이지 않은가.

“라리즈 씨가 돌아가시면서 그 몫의 일부를 남은 팀원들에게 분배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이 무게는 라리즈의 몫이었다.

나는 1골드 하나를 꺼내 레비에게 내밀었다.

“레비 씨, 이거 아몬드 씨와 쥬르나 씨한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1골드씩이나요?”

“예, 전 받은 게 있거든요.”

내 허리춤에는 라리즈의 은빛 장검이 걸려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몫은 그들이 가지는 게 맞았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내게 미소 짓곤 1골드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거 같아서요.”

“앗, 정말요?”

레비는 내 말을 듣자 아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다가도 금세 표정을 고쳤다.

그녀는 금세 담담한 눈빛이 되었다.

모험가는 자주 목숨을 잃는다.

일이 험하다 보니 떠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레비도 이러한 이별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하였다.

여러모로 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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