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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고인물 친구 계정에 빙의했다-56화 (52/110)

56화

“그래서 그 대부분 중 수습을 뽑지 않은 한 명이 바로 가리드 너인 거냐?”

“정답. 눈에 차는 놈들이 없었거든. 그래서 지금까지 미뤘었지.”

사람을 뽑는데 어디까지 자유가 주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라도 딱 한 번 뽑을 수 있는 걸 눈에 차지 않는 놈으로 뽑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산이 너를 딱 발견한 거지. 이놈은 무조건 크게 될 놈이다 싶어서 냉큼 물어 온 거야. 내가.”

그가 나를 뽑은 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이, 나는 극심한 피로감에 서서히 눈앞이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하는 상태였다.

아무리 강철 같은 정신력을 지닌 나라도 육체적 피로까지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리드는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만 하며 걸었다.

“수습 사도잡이로 모인 녀석들은 거의 일 년 정도를 수련으로 보낸 만큼, 그들을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아까 말했던 육체 능력 차이겠지.

나는 애써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다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가리드의 발걸음 속도는 점차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라면 충분히 그 녀석들 사이에서도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어느샌가 가리드가 멈추어 섰다.

내가 눈밭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절벽 아래로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분명 하늘에서 이토록 많은 눈을 내려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절벽 아래 보이는 구조물 근처에는 눈송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구조물은 공중에 반쯤 떠서 날고 있었는데.

그 기이한 부유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축하한다.”

그와 동시에 가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습 사도잡이로서 치러야 하는 첫 시험 통과다.”

통과.

나는 이 기나긴 길을 걷는 것이 사도잡이의 시험 중 하나였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아마 느낌상 앞으로 있을 일을 버틸 수 있는 육체 능력 테스트 같았다.

“그만 쉬어도 된다.”

나는 가리드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저편으로 날아가 기절했다.

옘병, 진작 말해줄 것이지.

* * *

“아.”

입으로 소리를 냄과 함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던 것은 못 보던 천장이었다.

그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시동안 멍하니 있던 나는 서둘러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내가 살다 살다 걷다가 체력이 다해 기절을 다 해보네.

“그래도 다행히 몸은 안 아프구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걷는 기술이 몸에 자연스럽게 베여 있었던 만큼.

나는 이런 쪽에서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젖혔다.

일단 주위에 의료 약품이나 병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가리드가 기절한 나를 여기로 옮긴 모양이다.

‘여기가 그 헬리오스란 말이지.’

기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하늘에 떠 있던 부유성이었는데.

지금 이곳이 그 안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일단 가리드부터 찾아야겠군.

“거기, 꼬마, 잠깐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문 쪽에 가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듯한 어린 목소리를 들었다.

의아함을 품은 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돌돌 말린 하얀 이불째로 포박된 기이한 뭔가를 발견했다.

그 끝에는 사람 정수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이 몸을 좀 구해주지 않겠나? 내 특별히 사례는 하지.”

나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병실 문고리를 잡았다.

“싫어.”

“뭣, 자, 잠깐만!”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병실을 나왔다.

수상쩍은 거랑 엮일까 보냐.

클리셰는 생략이 정석이다.

자신의 냉철한 판단력에 만족한 나는 유유히 복도로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구경했다.

창문 밖에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특이하기 그지없었다.

성 주위에는 조금의 눈도 존재하지 않는데. 성밖에는 잔뜩 눈이 쌓인.

극과 극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험가 때는 강제 중세 시대를 체험시키더니.’

그래도 이런 판타지적인 부분이 나와주니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비루한 모험가 인생에서 겨우 해방된 느낌이랄까.

앞으로 여기서 특급 사도잡이까지 올라가는 게, 가장 가까운 목표가 되리라.

‘그것보다 지금은 가리드를 찾는 게 우선인데.’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니 이거야 원.

그렇게 내가 슬슬 인기척이라도 하나 나타났으면 하던 순간이었다.

복도 모퉁이를 돈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옅은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 수준만 따진다면 자그마한 곤충이라고 떠올릴 만큼 미세한 기척이었다.

그러나 내 육체에 쌓인 경험은 그런 기척이라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었다.

내 고개가 스리슬쩍 뒤로 향했다.

그러자 텅 빈 복도가 내 눈에 들어왔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시선.

분명히 누군가 있다.

그러한 복도를 한참을 보던 나는 허리춤에서 그람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내가 마음속으로 딱 1초를 센 순간이었다.

쿠당탕!

“그우아악!?”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분명 방금까지 그곳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나뒹구는 녀석을 본 나는 그람을 허리에 다시 넣었다.

그러곤 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극, 대, 대체 뭐가.”

거기에는 청장발의 한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얼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정도.

목을 중심으로 길게 난 흉터 자국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신비로운 금색의 눈을 가진 녀석이었다.

곱게 생긴 것이 딱 귀족 자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좀 여리여리한 게 중성적인 느낌도 좀 있었다.

10대에서 20대 초반 여자들에게 무척이나 인기 있을 것처럼 말이다.

“반갑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다짜고짜 인사를 내뱉었다.

“잘 가, 아니, 이게 아니지. 왜 숨어서 따라왔냐?”

버릇처럼 보낼 때 쓰는 인사말을 쓰려했던 나는 이를 수정하며 용무를 물었다.

그런 내 질문을 듣고,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이제야 나를 올려다봤다.

“그, 그야 처음 보는 사람, 이 있었으, 니까.”

이 녀석, 왜 말을 더듬나?

그렇다 해서 딱히 동정할 마음은 없었던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냐? 그럼 미안했다. 나도 누가 쫓아 오길래 무심코 반응했을 뿐이니 이해 좀 해줘라.”

딱 봐도 헬리오스 쪽 관련 인물인 것 같은데, 무작정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내 사과를 듣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아까 처음 보는 사람이라 했지? 난 산이다. 이번에 가리드를 따라온 수습 사도잡이야.”

“수, 습 사도, 잡이?”

눈을 땡그랗게 뜬 그를 보고 나는 한 번 더 확인시켜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그랬구, 나! 반가워! 나도 최근, 에 뽑혀서 온 아벨이야!”

이쪽도 신참인 건가.

수습 사도잡이 지인이 생기는 건 좋은 이야기였다.

“그래, 잘 부탁한다.”

“응, 자, 잘 부탁해! 헤헤.”

소박하고, 하나하나에 반응이 밝은 녀석이다.

내가 동기라 생각해서인지 눈이 초롱초롱해졌군.

“그런데 내가 길을 좀 잃어버렸거든. 오는 도중에 기절해서 침대에 누워 있었더니, 나를 데려온 사도잡이가 없어져 버려서.”

“아, 그, 그렇구나! 걱정 마. 내가 안, 내 해줄게!”

그렇다면야.

그는 신이 난 표정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뒤따라 걷자 기나긴 복도가 쭉쭉 이어졌다.

그것을 보며 나는 벽들을 보았다.

‘이거 아드리드의 권능이랑 비슷한 게 적용된 거 같은데.’

물론, 그때와는 달리 그 규모 자체는 훨씬 큰 거 같았다.

마치, 한 층마다 무언가 적용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벨, 너도 최근에 들어 왔다고 했지. 들어온 지 얼마나 됐냐?”

“나, 나는 이 주, 정도야!”

이 주라.

확실히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가리드 같은 녀석이 한 명 더 있었나 보군.’

그렇게 생각하며 3층에 들어섰을 때, 나는 누가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귀에 울리는 목소리들이 딱 내 나이 또래 느낌이었다.

“수, 습 사도잡이, 들 훈련실이야. 지금 마침 훈, 련 시간이라서. 여기 있으면 교관님이 가리드라, 는 분을 데려와 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해 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벨의 어깨를 툭 두드려 주었다.

“짜식, 너 좋은 친구네.”

“치, 친구?”

“그래, 나한테 잘해주는 놈은 친구지. 동기니까 친구 먹자고.”

썩을 놈의 장승민 녀석보다야 아벨 같은 애가 진짜 좋은 친구지.

“친, 구라니. 기쁘네.”

아벨은 기쁜 듯이 작게 웃었다.

별게 다 기쁘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닫혀 있던 문을 드륵 열었다.

그 순간 안쪽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확 쏟아졌다.

“응?”

“누구셔? 선배님이신가?”

“잘생겼다.”

처음 그들의 눈에 깃든 것은 의문이었다.

그야,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옆에 있는 아벨에게 향한 순간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못마땅함이 언뜻 그들 사이에서 비췄다.

아벨은 그 시선을 마주하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

‘이놈들한테 아벨이 뭔 짓 했나?’

뭔지는 몰라도 동기들과 아벨의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흔히 말하는 텃세인가.

아벨도 헬리오스에 들어온 지 이 주밖에 안 됐다고 하니 말이다.

내 친구인 아벨을 저렇게 보는 걸 보니, 나는 이 녀석들이 바로 아니꼬워졌다.

혀를 쯧쯧 찬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인원은 눈대중으로 훑어보니 20명 정도 되어 보였다.

딱 내가 학교 다니던 당시 한 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였다.

“아벨, 교관님은?”

“어, 그, 게 잠깐 자리 비우, 셨나 봐.”

아벨은 동기들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한층 더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십니까?”

그러는 순간 한 녀석이 대뜸 튀어나왔다.

나보다는 작지만, 꽤 큰 키와 말끔하게 생긴 녀석은 눈을 거의 감고 다니는지,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딱 뒤에서 악당 짓 할 거같이 수상쩍게 생겼다.

눈이 저래서인지 생각도 잘 안 읽혔으니까.

하지만 저쪽이 나를 정중하게 대한 만큼 나도 막 대할 생각은 없었다.

“난 산이라고 한다. 이번에 수습 사도잡이로 뽑혔어.”

“아, 네가!”

내가 그리 말하자마자 그는 감탄한 듯이 외쳤다.

왜 이런 반응이지.

“너였냐?”

순간, 의문이 들자마자 안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내가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자, 거기에는 잘 다져진 구릿빛 근육이 눈에 띄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진한 검은색 눈썹과 턱 바로 위에까지 이어진 구레나룻에 두툼한 입술.

거기다가 눈에 그늘이 질 정도로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를 지닌 그는 남성미가 드러나는 외모였다.

게다가 목도 꽤 두꺼운 게, 헬스 좀 한 사람이 딱 좋아할 만한 체격이었다.

“크흠, 제프람.”

그 사이 실눈이가 슬쩍 내 곁에서 발을 빼는 게 보였다.

반응을 보니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제프람은 이내 옆에 있던 동기들을 두곤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부단장님이신 실베스타 님의 창을 부서트리고, 가리드 선배님의 수습 사도잡이로 채택된 게.”

그 사이에 소문이라도 퍼졌던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녀석을 보고 대답했다.

“어, 맞는데.”

다 알려졌다면야 딱히 부정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와, 정말인가 봐.”

“실베스타 님의 창을 부서트린 수습 사도잡이는 여태까지 한 명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게다가 그 가리드 선배님이 데려 온 수습이잖아.”

부단장, 그 인간은 수습 사도잡이 후보라면 죄다 창을 내미는 건가.

그 사람도 어지간히 특이하다.

‘그것보다 가리드 그 녀석은 헬리오스에서도 꽤 유명인인가?’

그때 사도잡이들이 가리드의 의견을 존중하는 건, 그 녀석이 헬리오스 소속이라 그런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헬리오스에서도 꽤 높은 지위에 있는 녀석인 모양이었다.

‘그냥 괴짜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더 좋게 쳐줘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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