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제프람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와 내 키는 거의 비슷했다.
딥판 속에서 내 키가 상당했던 걸 감안하면 그 또한 큰 키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거슬리기라도 했던 걸까, 그는 나를 보곤 진한 눈썹을 모았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제프람을 중심으로 오러가 몰려들며 그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딱 봐도 위협을 하는 꼬락서니라, 나는 이 녀석이 지금 의도로 이러는지 눈치챘다.
‘한 판 붙자는 건가.’
원래 새로운 인물이 집단에 들어올 때, 그 존재 자체에 반감을 보이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이미 형성된 그룹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혹시나 자신이 잡은 자리가 빼앗길까 은연중에 신경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흔히들 텃세라고 한다.
아마 제프람은 지금 나에게 그런 텃세를 부리고 있는 것일 거다.
내가 군대에 있을 당시 선임들이 괜히 후임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낸 것처럼 말이다.
내 눈이 차갑게 식었다.
상대는 수습 사도잡이지만 헬리오스 소속이다.
이들의 수준이 기본 은급 모험가라고 했던 만큼.
조금 전 실눈이의 반응을 보면 이 녀석은 이들 중에서도 강자일 것이다.
느껴지는 기세만 봐도 나보다 스텟이 높을 게 분명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제프, 람.”
그러는 순간 아벨이 내 앞을 막아서듯 섰다.
우리보다 한참 작은 그는 맹수 앞에 선 소동물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써 제프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아벨의 모습을 보고, 제프람의 눈이 찌푸려졌다.
마치 너 따위가 어딜 끼어드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아벨, 너는 꺼…….”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내 손은 이미 허리춤에 닿아 있었다.
속전속결.
내 손에서 뽑혀 나온 검이 제프람을 향해 쇄도했다.
“엇?”
내가 검을 휘두를 거로는 예상 못 한 제프람의 입에서 순간 당황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놈의 자신감은 거짓이 아닌 듯, 그는 순간적으로 발을 뒤로 빼며 내 검을 피했다.
꽤나 예리하게 들어갔는데도 피할 줄이야.
역시 실력이 좋은 놈이었다.
“이 미친놈이!”
그 순간 놈의 팔에 갑자기 웬 문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푸르른 빛에 휘감긴 순간, 나는 그게 직감적으로 오러와 비슷한 무언가임을 눈치챘다.
나는 파고들던 자세를 슬쩍 비틀며 검을 내던졌다.
그러자 비검술의 묘리에 따라 내 검이 제프람을 향해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그는 그걸 보자마자 급히 손을 들어, 내 검을 받아쳤다.
어느샌가 녀석의 몸 전체를 감쌀 정도로 퍼진 푸른 기운이 그의 손을 보호한 것이었다.
‘마나로 된 갑옷 같은 건가.’
하지만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그가 휘두른 팔과 함께 그의 바로 앞에 도달한 내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극?”
그것은 다름 아닌 그람이었다.
그를 덮친 극심한 공포가 절로 몸을 굳게 만들었다.
제프람의 눈에 당황이 서렸을 때, 나는 놈이 받아쳤던 검을 받고, 오러를 담아 놈의 배를 걷어찼다.
쿵!
내 검을 받아치느라 불안정했던 자세.
거기다 그람을 본 공포로 굳은 몸.
아무리 마나 갑옷을 두르고 있어도, 그 상황에서 비슷한 체격인 나한테 걷어차이면 그 결과는 뻔했다.
쿠당탕!
순식간에 바닥을 구르듯 제프람이 넘어졌다.
“개자식이!”
하지만 그 영향으로 그람의 공포에서 깨어난 듯.
그는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검을 받아든 내가 놈의 위에 올라타 양팔과 어깨를 내 두 다리로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제프람이 소리치려는 순간 놈의 목소리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
왜냐하면, 그의 위에 올라탄 내가 하늘 높이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제프람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마치, 정말로 내려칠 건 아니지? 라고 묻는 듯했기에 나는 바로 답을 알려주기로 하였다.
쾅!
내려쳐 진 검이 놈의 머리에 꽂히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나 갑옷의 강도가 상당한 건지 힘껏 내려쳤음에도 깨지지 않았다.
“미, 미친 새끼가!”
내가 진짜로 내려친 것에 당황한 듯 제프람이 소리를 내자 나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마나 갑옷이 깨질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나는 다시 검을 내려쳤다.
쾅!
“당장…….”
쾅!
“그만하고…….”
쾅!
“그, 그만.”
쾅!
나는 제프람이 뭐라 지껄이건 말건 순식간에 다섯 번이나 검을 내려쳤다.
반복된 행동 속에서 내 흉흉한 눈과 마주친 제프람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일말의 자비 없이 또다시 검을 내려칠 뿐이었다.
그렇게 세 번을 더 반복한 순간이었다.
쨍그랑!
마나 갑옷이 깨져 나가는 청명한 소리가 들려오며 제프람이 두 눈이 부릅떠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 또 한 번 검을 들어 올렸다.
제프람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설마 마나 갑옷이 깨졌는데 또 내려칠 거냐는 물음을 담은 눈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런 나를 본 제프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정답이다. 사도잡이.
나는 상대가 정답을 맞힌 기념으로 두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쉬익!
쇄도한 검이 제프람의 머리를 향해 내려쳐 졌다.
“아악!”
콰직!
제프람의 짧은 비명과 함께 훈련장 바닥을 부수고, 검이 박혀 들었다.
제프람의 귀 바로 옆에 박힌 검이 창문에서 온 빛을 받아 한차례 번들거렸다.
그 빛은 검의 날이 무척이나 날카롭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어억…….”
제프람은 몸을 발발 떨다 이내 까뒤집듯 눈이 돌아갔다.
그걸 보고,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 동기 친구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얼빠진 듯한 표정의 그들은 지금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았다.
“반갑다.”
그러니 나는 우선 인사부터 해주었다.
“산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처음 만났을 때, 자기소개는 필수였으니 그것도 잘 챙겨주었다.
“그르윽.”
그리고 그사이, 죽음을 본 제프람이 거품을 무는 것을 끝으로.
나는 자기소개를 무사히 마쳤다.
기절한 제프람을 두고, 나는 검을 회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벨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산, 산아.”
“신고식으로는 적당했냐?”
내가 그리 묻자 아벨은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제프람을 힐끗 보았다.
“……응.”
그래서인지 아벨은 내 물음을 듣고 쓰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신고식이라. 이거, 참 재밌게들 사는구나.”
그 순간 바로 등 뒤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어린애 한 명이 있었다.
뽀얀 피부에 조그마한 얼굴.
흰색의 짧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가진 꼬마는 1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알비노인가.’
꼬마가 백색증을 앓고 있음을 눈치챈 나는 꼬마의 정수리가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기억을 타고 올라가니까 갑자기 이곳에서 처음 눈을 뜬 병실이 떠올랐다.
거기에 김밥마냥 말아져 있던 녀석 말이다.
“네가 실베스타의 창을 부쉈다는 그 꼬마지?”
누가 봐도 본인이 꼬마였지만 그 아이는 애늙은이 같은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슬쩍 다른 수습 사도잡이들 쪽을 보았다.
이 아이에 관해 나는 아는 게 전혀 없으니 다른 녀석들의 반응으로 좀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이?”
“누구 애야?”
하지만 그들 중에 이 아이의 정체를 아는 듯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기세도 좋고, 움직임도 좋고, 근육과 검 쓰는 게 터무니없이 익숙하군. 천부적인 재능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오직 노력만으로 도달한 경지로구나.”
이게 뭔 헛소리지.
천부적인 재능?
노력으로만 도달한 경지?
나는 지금까지 육체의 경험만을 이용해 전투를 해왔다.
내 육체는 모든 걸 경험해봤었으니까.
하지만 반면에 남들의 눈에는 그게 다르게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내 육체에 쌓여 있는 것은 다 경험이니까.’
오직 경험으로 쌓은 실력.
경험이란 노력하지 않고서는 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꼬마는 나를 그렇게 평가한 듯했다.
“이것저것 많이 할 수 있단 건 좋은 거지. 앞으로도 증진하도록 하거라, 하지만.”
꼬마는 그렇게 말하며 뒷짐 쥔 자세로 내 앞에 다가와 섰다.
“동기를 이렇게 만든 벌은 똑같이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순간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당겼다.
제프람 녀석이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백이 꼬마로부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내 옷이 식은땀으로 잔뜩 절어 있자, 꼬마는 나를 보곤 입술을 틀어 올렸다.
“감 하나만큼은 타고났구나.”
그 순간이었다.
나는 배 쪽에서 온 충격과 함께 한순간 시야가 흐트러졌다.
“하나, 감에 비해 몸이 아직 못 따라오는 게 보이니, 더 노력이 필요하겠어.”
“컥, 후웁.”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기침을 토해냈다.
그러는 순간 꼬마가 나를 보곤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왜냐하면, 내 배 쪽으로 들어 올려진 건틀렛이 우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전히 감으로 이걸 막아?”
투둑―
우그러진 건틀렛이 바닥에 떨어졌다.
주먹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저 작은 손으로 이 꼴을 만든 모양이었다.
“흐음, 벌은 깔끔하게 이걸로 끝내려 했…….”
“벌을 주시기는 뭘 주십니까.”
그 순간, 꼬마의 옆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뒤로 묶은 갈색 머리에다가 동그란 안경을 치켜 쓴 그녀는 성이 난 듯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는 냉큼 손을 뻗어 꼬마의 볼을 잡아당겼다.
“제가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기어코 또 나오셔서는.”
“윽, 게, 게온나.”
볼이 잡아당겨 진 꼬마가 당황한 음색을 내뱉었다.
“응? 무슨 소란이야?”
그러는 순간, 뒤늦게 교관으로 보이는 이가 등장했다.
그는 주변 상황을 보다가 이내 게온나라는 여성을 보더니 그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게온나 님? 단장님 직속 비서님이 여기는 왜…….”
나는 교관의 말을 듣자마자 꼬마 쪽을 돌아보았다.
교관의 말에 의하면 게온나라는 저 여자 단장의 직속 비서라는데.
말이나 행동은 저래도 게온나가 꼬마를 대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상관을 대하는 듯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