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5화 (5/350)

2화. 미르 생도 ‘한새벽’

1.

병원에서 읽었던 시사상식 책에 의하면 이 세상의 서울은 한 때 망한다는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송파구 전체가 가라앉고 그곳에 지하 미궁으로 향하는 통로가 뚫린 상황. 그곳에서 괴물이 올라온단 사실만으로도 소름끼치는데, 사태 발생 1년 뒤 뉴욕 쪽 방위선에서 ‘세계의 종말’이라고 표현할 만한 괴물들이 올라와 초강대국을 반 박살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한국에도 ‘황금의 악마’가 튀어나와 여의도와 그 일대를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도시 한복판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 이 때문에 그 당시엔 정말 심각하게 수도 이전 논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깔아놓은 수많은 인프라 시설이 아깝다고 해도 위험한 곳에 국가의 심장이 위치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서울은 망하지 않았다.

지하 미궁은 인류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원 또한 선사했다.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힘-마력과 그 마력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진귀한 물품과 재료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형태의 금광이나 다름없었다. 위험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를 지닌 곳.

게다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이종족들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황금의 악마’와 ‘3개의 재앙’ 같은 것들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고, 대부분의 외계종들은 현대화기의 우월한 화력 앞에 손쉽게 압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 종족은 말이 통했다. 그냥 문화만 좀 다른 외국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래, 인간과 너무 흡사했단다.

인간처럼 지성을 가졌다.

인간처럼 탐욕 또한 가졌다.

그럼 인간처럼 ‘써먹을 수 있다’는 소리다.

내가 읽은 시사책에 의하면 몇몇 국가 정부는 대응 방침을 바꿔 지하를 차지한 이종족에게 원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선진국이 빈곤한 개발도상국에 영향력을 뻗고 그들의 자원은 쏙쏙 빼먹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계획은 대 성공. 거미줄에 걸린 순진한 나비처럼 이종족들은 현대문명의 풍요로운 손길-콜라, 유튜브, 치킨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런 광경을 보고 있고.

“으와아...”

사회 적응의 일환으로 나온 시내, 선생과 함께 시내를 거닐며 난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지금까지 입원해 있던 곳은 송파구 지반 위에 세워진 특수 병원, 소설 속 묘사론 군부대가 되었다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완전히 번화한 도심까지는 아니지만 커다란 건물이 곳곳에 있다.

그래, 서울은 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상의 송파구는 마력과 관련된 산업이 집약된 곳으로 재탄생했다. 마력 관련 물품 연구소, 마력 제품 생산 공장, 초능력 교육 기관 미르, 지하 출입국 통제소, 경계 군부대... 거리에 으리으리한 건물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단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도심을 걸어가는 몇몇 이들이 인간이 아니란 것이었다!

이종족

지금은 엘프-드워프-오크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존재들이 세련된 정장 혹은 일상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든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일반인처럼! 병원에서 읽은 시사책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직접 보니 좀 그렇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이종족들을 보고 있자 선생이 웃는다.

“뭔가 이상하나요?”

“아, 이종족이 돌아다니는 것이... 좀 특이하게 느껴져서요.”

내 대답에 가볍게 웃음을 흘리는 선생, 그녀는 특유의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억양이 섞인 영어로 통화하고 있는 오크를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지상에 있는 이종족들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판명된 자들입니다. 충분한 재산과 지위를 가졌죠. 인근 회사의 마력 연구소 자문의원이거나, 혹은 자신만의 사업체를 가졌다거나...”

“...사업체요? 저들이?”

“네, 미궁에서 올라오는 원자재들은 대부분 이종족 원주민들이 공급한답니다. 그들이 만든 회사 법인을 통해 들어오죠. 아무래도 저희들이 직접 내려가는 것보단 저들이 익숙하니 훨씬 잘하죠. 혹시 모를 인명피해도 막을 수 있고.”

선생의 대답에 난 살짝 입이 벌어졌다. 그런 것은 책에서도 못 본 내용이다. 그나저나 원주민이 세운 회사에서 재료를 공급한다고? 허, 이거 완전...

“하청이네요?”

“그렇게도 볼 수 있죠.”

“...음,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뭐가 이해가 안 되나요?”

“그게...”

병원에서 읽은 시사책에 따르면 이종족의 지성은 인간과 비등하고 그 신체능력은 대부분 더 뛰어나다고 했다. 정독한 소설속 내용도 그러했고. 능히 ‘만류의 영장’ 자리를 위협할 만한 존재. 그런데, 인간이라는 호전적인 종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경쟁자를 저렇게 둔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런 내 의문을 말하자 선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갤 주억였다.

“확실히, 그런 말도 많이 나온답니다. 인간에 준하는 지성과 뛰어난 육체, 생명체로서의 스펙만 따지면 이종족들은 충분히 인간을 밀어낼 수 있는 종이죠. 그러니 무조건 죽여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많아요. 실제로 그 주장을 행동으로 옮기는 몇몇 나라들도 있고요. 하지만!”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런 위험쯤은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생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마력의 존재에 대해 파악했을 때, 인류는 전율했죠. 그 엄청난 활용도, 향후 나라를 먹여 살릴 미래 산업이 될 것이 확실했어요. 그럼 어서 개발해서 다른 나라보다 빨리 기술을 선점해야겠죠? 근데, 그 기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이 있네요?”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되묻자, 선생은 정답이라는 듯 고갤 끄덕인다.

“예, 가장 쉽고 빠르게 마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이종족과의 교류였답니다. 기술을 개발할 때도 그냥 맨 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이미 있는 것을 참고하는 것이 훨씬 빠르니까요. 실제로 지금 미르의 생도들이 배우는 마력 활용 방식도 근본은 이종족들의 것이 대부분이랍니다.”

나름 납득이 가는 이유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도 미래 산업의 특허 선점 경쟁은 굉장히 치열하니까. 이종족이라지만 말이 통하는데 한 번 찔러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내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자 선생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미궁에서 나오는 재료들은 우리가 직접 채취조를 꾸려서 파견하는 것보단 지하의 이종족에게 하청을 주는 게 훨씬 빠르고 싸게 먹힌답니다. 마력 연구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가려면 그들과의 거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빠르게 팽창하는 마력 관련 시장의 수요와 단가를 맞추기 위해선 그들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음, 몰랐던 사실이네요.”

한 마디로 자본주의의 승리란 거다.

인간은 탐욕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를 그냥 살려뒀고, 지하 미궁에서 올라온 이종족들도 그 자본주의의 마수에 취해 인간과 협력하고... 진짜 막장이네. 막장이야. 현실은 소설책과는 다르구나.

내가 황당하다는 의미의 실소를 흘리는 동안, 선생은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타는지 자기 몫의 아이스커피를 한 번 쪼옥 빨아들이곤 날 정면으로 응시했다.

“아무래도 한새벽 생도는 이종족에게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시선은 좋지 않답니다. 근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론 미궁의 몇몇 이종족들은 인간의 아종(亞種)이랍니다. 뭐, 서로 간에 혼혈을 낳는 것이 가능하단 것에서부터 예상되던 결과였지만.”

“아종이요?”

“예, 마력에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원시 인류의 또 다른 분화(分化) 가지. 마력이란 힘이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유전법칙과는 다른 결과를 일으키지만, 저들은 분명 ‘인간’이랍니다. 흑인, 백인, 동양인처럼 좀 다르게 생긴 것뿐. 심지어 미국은 최근에 몇몇 이종족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연방법원 판결을 내렸다구요?”

이어지는 선생의 말에 난 지금까지 황당하단 수준을 넘어서 쇼크를 받았다.

인간...? 그래, 이종족이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치자. 그들도 어떻게 보면 노동력이고 돈이 되니까. 부자 외국인이 투자 목적으로 온 걸로 생각하면 되지. 거기까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시발 이종족을 인간으로 받아들인다고?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색-종교 가지고 서로 열심히 차별하고 죽이던 인간들이? 미국의 KKK단과 혐오 정치인들은 다 뒤져버렸나? 아니, PC(정치적 올바름)의 본고장답게 이런 미친 결정을 내린 건가? 인간이 아닌 것의 권리도 존중해주는 한 단계 더 진화한 PC로? 어이 털리네.

“...그거 엄청 논란이 많을 것 같은데요.”

“많죠, 지금도 내외부적으로 갈등과 잡음이 엄청나요. 하지만, 법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특정 이종족.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아종’으로 판명된 종족들을 인간으로 취급한답니다. 그런 종족들에 한하여 지상으로 이주하는 조건도 꽤나 관대하고요. 그것도 14년 전 ‘룬 수호자’들로 인해 미국 동북부가 초토화 되고 빈 땅이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가능한 결정이긴 하지만.”

“...맙소사.”

“그 때문에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종족들이 많아요. 선진국의 비자 기준은 매우 까다로운데, 미국만은 그 기준이 매우 느슨하니까. 마이애미 모래 해변에 누워 햇볕을 쬐며 모히또를 마시는 것, 모든 지하 이종족들의 로망이죠. 이 정책으로 유능한 이종족 인재들이 몰리면서 미국은 마력 연구와 제품에 관해 첫 손에 꼽힌답니다.”

계속된 선생의 설명에 난 그저 입을 벌리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상상을 초월하네. 정말 내가 아는 세계와는 너무 많이 다르다. 하도 쇼킹한 대답에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헛웃음만 흘리자 선생은 빙그레 웃는다.

“물론, 마냥 이종족들을 좋게 볼 수 없는 법이죠. 그들도 인간처럼 탐욕스러우니까요. 인간에게 위험한 부류도 분명 존재하고. 그러니 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벽군 같은 미르의 생도들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알겠나요?”

“아... 넵. 그래야죠.”

“어서 가죠. 아직 둘러볼 곳이 많으니까요.”

다시 앞장서서 걷는 선생, 나도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 그 뒤를 따랐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의사 선생과 함께 송파구를 둘러봤다.

그렇게 4개월 만의 바깥세상 나들이가 끝났을 때, 난 스마트폰과 기숙사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 퇴원이다.

이능력 특구인 송파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정신병동에서의 탈출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정상인 코스프레 하느라 과한 반응은 참았지만...

“하... 하하핳!”

미르 외곽에 위치한 오피스텔 형태의 1인실 기숙사, 현관문을 닫자마자 난 기쁨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 해방감이란!

지난 4개월간 카메라로 24시간 감시되는 정신병동에 갇혀서 얼마나 고통 받았던가? 흠을 안 잡히기 위해 얼마나 조신하게 있었던지 생각하니 눈물만 나온다. 뭔 말을 해도 반사적으로 공손한 존댓말로 자동으로 나오게 되는 거지같은 습관이 붙을 정도면 말 다했지.

“좋아요~ 아주 좋아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내게 될 기숙사를 둘러봤다. 고급 원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꾸며진 방, 가구나 가전제품들도 하나 같이 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나라의 핵심 인재들이니 이정도 투자는 당연한 것이겠지.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다가 난 책상 위에 있는 갈색 골판지 상자를 발견했다.

“...흐음.”

그러고 보니 날 담당한 정신과 선생은 이전 기숙사에 있는 짐들을 옮겨서 보내주겠다고 했지? 곧바로 다가가서 상자를 뜯었다. 공책과 필기도구, 괴상한 전공책,... 상자 안의 것들을 하나씩 책상 위로 꺼내가다 난 한 사진이 담긴 액자에서 손을 멈췄다.

약간 나이차이가 나는 어린애들끼리 찍은 사진

그 중 한 얼굴이 많이 익숙했다.

사진에 있는 애들의 큰형 격으로 보이는 소년, 살짝 가무잡잡한 피부에 쾌활하게 웃고 있는 잘생긴 얼굴, 그리고 운동을 즐기는 듯한 탄탄한 체형에 한 손에 든 축구공까지. 사진으로만 봐도 매우 강력한 인싸력이 물씬 풍겨 나온다. 나 같은 아싸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모르게 압도 될 정도로.

진짜 한새벽의 사진

그 사진을 난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정신 병동에 있을 때, 날 담당한 의사 중 한 명은 있지도 않은 내 기억을 되찾게 도와준답시고 진짜 한새벽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진짜는 ‘내츄럴 인싸’였다.

미르에선 생도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고 이전에 지내던 보육원에선 슈퍼스타. 정신 병동에 감금되어있던 중에 보육원 애들이 보냈다는 초콜릿과 안부편지를 받고 어버버 했던 적도 있었지. 나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렇게 사진 속 쾌활하게 웃고 있는 진짜를 응시하다가 난 결국 한숨을 내뱉었다.

몸뚱이는 한새벽이지만 그 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 나는 한새벽이 남긴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깔끔하게 무시해야 할까? 하지만, 마음이 걸렸다. 르피너스의 조각상을 만졌다가 내게 몸을 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녀석, 녀석도 피해자였다.

해답이 없는 질문

결국 난 생각을 그만두고 액자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 형용하기 힘든 좆같음이란... 지난 4개월간 정신병동에서 강제로 ‘예절’을 주입당하지 않았다면 나도 치밀어 오르는 빡침에 주인공처럼 욕하고 주위 물건 부쉈겠지.

“...어떻게든 되겠죠.”

그렇게 진짜의 흔적을 책상 위에 내버려 둔 채, 난 몸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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