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7화 (7/350)

2화. 미르 생도 ‘한새벽’

4.

김가트가 우릴 인도한 곳은 건물의 맨 위층, 4층에 있는 실내 운동장이었다.

농구장 10개는 거뜬히 들어갈 만한 커다란 규모, 위쪽은 아예 유리천장이라 자연광이 그대로 비추는 실내 운동장이었다. 유리돔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좋은 공간에 운동 기구들이 널려있다. 그래, 한 마디로 일반인에겐 고문실, 헬창들에겐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자세 수업을 받은 후, 우린 체력측정에 들어갔다.

평범한 중고등학교 체력측정과는 달리 측정과목은 특이하게도 스쿼트,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라는 3대 운동과 달리기였다. 이곳에 상주하는 걸로 보이는 트레이너 2명이 김가트와 함께 생도들의 체력 측정을 했기에 꽤 빨리 끝났다. 그리고, 내 체력 측정 결과는...

“헤엑. 헤엑. 헤엑...”

마지막 운동장 20 바퀴를 돌고 난 뒤, 난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달뜬 숨을 내뱉었다. 모든 종목에서 32명 중 32위, 이게 내 체력 측정 결과였다. 여자애들보다 더 약했다. 젠장...

“야, 쟤는 원래 생도라던데 왜 저러냐?”

“낸들 아나.”

체력적으로 힘든 터라 <관찰자의 눈>을 쓰지 않는 상태지만 곳곳에서 날 비웃거나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과 소근거림이 느껴졌다. 주목하고 있는 4인 중 하나였는데 워낙 덜 떨어져서 그렇겠지. 짜증나긴 하지만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고딩 아새끼들인데 어쩌겠냐.

이런 나완 반대로 나머지 3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반대다.

대부분 생도들의 측정 결과는 평범했다. 딱 그 나이대의 중고등학생 정도의 체력수준. 그런데, 3인은 달랐다. 도도한 아가씨-남궁 진아나 금발 양아치-박혁은 체대 입시생인 것 마냥 또래들을 아득히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도 흑인 누나-서예린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었다.

“...와, 시발 저게 말이 되냐?”

“역시, 미궁 출신은 다른 건가?”

두 사람은 그래도 이해가 될 법한 무게였다. 하지만, 서예린은 차원이 달랐다. ‘로니 콜X’이 운동할 때 쓸 법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덤벨이나 무게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여자치곤 근육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모습, 김가트를 제외한 모두가 넋이 나갔다.

사람은 한 손으로 본인 몸무게보다 몇 십 킬로 더 무거운 덩어리를 들어 올리지 못한다.

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짓을 하려는 순간, 무게 균형이 무너지며 자세가 흐트러진다. 설령 어찌어찌 해낸다 해도 힘이 집중되는 부위의 작은 뼈와 인대가 버틸 수 있을까? 인대와 힘줄이 박살나면서 후유증이 남는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멀쩡해보였다.

그렇게 서예린을 보며 수군거리는 편입생들의 모습에 김가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서예린이 이상하게 보이나?”

“...”

“역시, 너희들은 아직 마력을 다룬다는 의미에 대해 잘 모르는군. 좋아, 설명을 해주지. 다들 한 번쯤은 다크 노바의 동영상은 봤겠지?”

다크 노바(Dark Nova)

이곳 사람들이 소설 르피너스의 장난감 ‘주인공’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한국에서는 어둑서니라고 불렸는데, 미국에 나타난 재앙들을 직접 죽이는 게 방송타면서 다크 노바(검은 신성)라고 불렸고 현재는 거의 반 공식명칭이 됐다.

거대한 망치로 ‘재앙의 염소’와 그 염소가 토해낸 ‘백사자’ 무리를 육탄전으로 때려죽이는 동영상은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기 유튜브 화제 동영상이더라.

당연히, 나도 봤다. 자그만 스마트폰 액정임에도 생생히 느껴지는 무지막지한 박력, 보정은 하나도 안 들어가고 시점도 거칠었지만 내가 있던 세계의 히어로 영화 다 X까라 할 정도로 무지막지했지. 그것 외에도 주인공이 대놓고 벌인 여타 잔혹하고 미친 짓도 영상으로 남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좋다고 빨아댄다.

여러 2차 상품들, 히어로 카드겜에선 ‘황금 전설’ 혹은 ‘SSR+ 카드’로 나오고 심지어는 옆 나라 미연시 게임의 공략 캐릭터로까지 나올 정도면 말 다했지. 특히, 미연시는 TTS(Text to Speech)로 목소리까지 똑같이 나오는데, 여기 기술이 좋아서 그런지 신음 소리 같은 것도 전혀 위화감이 전혀 없더라. 흠흠.

아니, 솔직히 궁금하자너.

인터넷에 주인공 검색해보니 저런 게 뜨길래 다운로드 받아서 쬐끔 해봤지.

근데, 지금 생각 보니 이상하네? 상남자스러운 주인공 성격상 그런 걸 그냥 나오게 뒀을 리가 없는데? 그런 게 나온 순간, 그 미연시 만든 새끼들을 찾아가서 비유가 아니라 진짜 대가리를 ‘물리적으로’ 뽑았을 텐데 말이야?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간 걸 보면 아직도 미궁 돌파중인 건가?

내가 그렇게 잠깐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생도들은 당연하단 듯이 고갤 끄덕였고 김가트는 말을 이어나갔다.

“촬영된 전투 영상들과 남겨진 흔적들을 토대로 추론한 결과, 다크 노바가 손에 쥐고 휘두르던 망치의 무게는 대략 19.5톤에 달한다. 그걸 인간이 한손으로 들어 올리는 건 가능한가?”

“...”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 설령 들어 올린다고 해도 그 무게 때문에 발이 땅에 파묻힐 거야. 하지만, 그녀는 그 무지막지한 무게를 드는 것을 넘어서 휘두르기까지 한다. 중량에 땅에 발이 파묻히지도 않은 채! 균형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질문과 함께 김가트는 생도가 측정용으로 썼던 바벨 중간을 오른손으로 잡곤 팔을 곧게 뻗은 채로 가슴께까지 들어올렸다. 대략 50kg 되는 쇳덩이, 상식적으론 무게 균형이 무너져야 하지만 그는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마력은 단순히 마법을 발현시키는 것에 쓰이는 게 아니다. 그 의지에 따라서 현실의 물리 법칙을 어느 정도 일그러트릴 수도 있기에 그런 일도 가능한 거지. 물론,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거야.”

들어 올린 바벨을 내려놓는 그는 생도들의 면면을 응시했다.

“이렇듯 마력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연하게도 마력을 품은 그 대상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르 생도들의 외모와 체형이다.”

“...외모요?”

“그래, 외모.”

뜬금없는 외모 이야기에 생도들의 표정에서 궁금증이 퍼져나가고 그는 보란 듯이 반소매를 걷어 자신의 근육질 팔뚝을 보였다.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 그 힘은 무의식적으로 당사자의 외모 또한 바꾼다.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

“미르의 생도들이 하나 같이 모델처럼 잘생긴 건 다른 이유가 아니야. 코가 좀 더 높았으면, 피부가 좀 더 하얗다면, 눈이 좀 더 컸으면, 키가 좀 더 자랐으면, 좀 더 젊었으면... 이러한 순간순간의 욕망들이 모여 신체에 자극을 주고 외형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생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도 마찬가지. SNS를 하는 미르의 생도들은 하나 같이 연예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미남미녀밖에 없어서 뭔가 싶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 모두 숨을 죽이고 집중하자 김가트는 걷어붙인 소매를 내리며 웃는다.

“물론, 마력에도 한계가 있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힘들어. 하지만, 납득이 가는 변화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 특히, 신체가 성장하는 성장기엔 훨씬 더 쉽고! 괜히, 너희들의 첫 수업이 체력 측정과 마력이 신체에 미치는 개략적인 이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수월하게 너희들의 몸을 이상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김가트가 보란 듯이 양손을 활짝 펼친다.

“이 체력 단련장은 앞으로 2달 동안 너희들 전용으로 24시간 열려있을 예정이다. 전문 트레이너 또한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대기 중이지. 매일 2시간 씩 방문해서 운동해라! 너의 바뀐 모습을 상상하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운동 루틴, 그리고 너희가 품은 마력은 너희 몸을 놀랄 만큼 바꿔줄 거다! 더 강하고 아름답게! 내가 보장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생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운동기구를 본다. 으음, 좀 전까지는 고문 기구를 보는 듯한 눈이 였는데 말이지? 하긴, 꿈꾸던 외형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긴 하다. 한창 급식 먹을 나이대의 애들이라면 더더욱.

그나저나 저 김가트라는 양반, 산적같이 생겨선 이빨을 되게 잘 까네.

좀 험악한 인상과는 다르게 애들을 말로만 쥐었다 폈다 한다. 그렇게 내가 김가트를 보며 시답잖은 생각하고 있을 때, 돌연 우리의 불만이 많은 금발 양아치가 삐딱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그거 진짜입니까?”

“그래, 진짜다.”

“하지만, 저기 저 친구를 보니 좀 믿을 수 없는데요.”

날 가리키며 당당히 말하는 양아치 녀석. 아니, 왜 가만히 있는 날 가지고 지랄이냐... 난데없는 지목에 내가 당혹감을 느낄 동안 녀석은 날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원래 미르 생도였다면서요? 근데, 저런 볼품없는 체형이라고요? 아, 혹시 게이인가?”

아까 강의실에서도 그랬지만 참 반항심이 넘치는 분이시다. 게다가 게이라니... 전 쭉쭉빵빵한 여성분이 좋습니다만. 또 다시 집중된 생도들의 시선에 난처함을 느끼고 있을 때, 김가트는 표정을 굳히며 지금까지의 격양된 목소리가 아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력은 인간의 상상력과 의지에 의해 통제된다. 이 힘이 신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건, 여러 연구 결과로 명백히 증명된 사실이지. 그렇다면, 신체를 긍정적 방향이 아닌 부정적인 형태로도 변화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

“...부정적으로요?”

“그래, 부정적으로. 키는 더 작게 만들고 근육은 더 쪼그라드는 방향으로.”

묘하게 섬뜩하게 들리는 설명에 날 보며 술렁이던 생도들이 숨을 죽이고, 김가트는 금발 양아치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아직 배우지 않은 개념인 ‘영체(靈體)’, 그 영체에 들러붙은 ‘떨쳐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저주와도 같은 질척하고 강력한 마력’. 그런 걸 통틀어 <마력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마력 돌연변이...”

“그래, 그렇게 부르지. 이 지독한 마력은 이능력자가 품은 마력이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변화를 신체에 일으킬 수 있다. 가령, 머리에서 뿔이 난다거나, 피부에 비늘이 돋아나거나, 눈이 늘어나는 등의.”

“그럼 쟤는...”

양아치를 포함한 반 애들의 시선에 내게 쏟아지는 가운데, 김가트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 한새벽 생도는 돌연변이에 당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깔끔한 편이야. 이러한 돌연변이는 마법을 사용하면서 나오는 ‘마법 오염’과 ‘부정적 마력’이 함유 된 식품의 섭취나 접촉등에 의해 유발된다.”

“...”

“이런 돌연변이도 무조건 부정적인 결과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너희들이 주의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지. 나중에 자세히 배우게 될 거야.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어야.”

교관의 설명이 끝나자 살짝 동정 어린 시선이 내게 쏟아진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 꺼림칙하단 느낌 또한 섞여 있었다. 그래, 중고딩 애새끼들이 장애인을 보는 듯한 눈. 불쌍하단 시선과 혐오감이 뒤섞인 시선이다.

하하, 시발.

슬픈 기분에 난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려 눈에 맺힌 물기를 닦았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도 어제부터 미르에 입학할 생각에 애들처럼 설레였다. 비록 강제 입학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누구나 선망하는 곳이고, 무엇보다 거의 중-고등학교니 만큼...

연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기대했다.

내 기억이 여러 군데 불완전하지만 원래 세상에서 ‘남중남고공대군대’ 트리를 탔던 건 기억한다. 그리고 연애를... 한적 있나? 그래, 있을 거다. 기억이 불완전해서 생각 안 나는 것뿐이겠지. 분명히 그럴 거야!

어쨌든 난 그 때문인지 중고딩 때 연애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래, 조건 같은 거 보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서로 좋아해서 알콩달콩하는 거. 염치가 없다는 거 잘 알지만, 관계 파탄 돌연변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아니, 그래도 꿈은 꿀 수 있는 거잖아!

근데, 초장부터 이런 분위기인 걸 보니 아무래도 내 두 번째 학창시절은 아싸가 될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진짜 인맥관리 쩌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겠다만 난 평범한 노말 퍼슨이라 도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네.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아싸냐, 아니면 누구나 괴롭히는 왕따냐가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일 거다.

...그럼 그냥 미르에서 처박혀서 수능 준비하듯 공부만 해야 하는 건가? 예전의 나처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소모하며?

이를 악물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난데없이 이 꼴이 됐는데 잘 살아야지!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다른 소설 빙의물 주인공 새끼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왜 안 되겠냐! 그래,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할 수 있다! 진짜 반드시 여친 사귀고 만다!!

“...새벽. 한새벽!”

“아, 네넵?”

앞에서 들려오는 성난 추궁에 난 화들짝 놀라 대답하며 눈을 떴다. 어느새 내 앞에 서 있는 김가트, 어느새 흩어져서 각자 운동하고 있는 생도들과 그 주위를 돌아다니며 봐주는 트레이너들이 보인다.

“뭔 생각을 하길래 운동하라고 해도 계속 가만히 있나?”

이어지는 김가트의 추궁, 그리고 곳곳에서 날 힐끗 거리는 시선들. 내가 딴 생각할 동안 각자 운동을 하라고 한 듯하다. 눈을 감고 딴생각 하고 있어서 눈치 채는 게 늦었다.

아, 결심하자마자 왜 또 이렇게 꼬이냐.

내가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자 김가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마냥 혀를 차더니 몸을 움직여 덤벨 한 쌍을 가져왔다. 그래, 여자애들이나 쓸법할 핑크색 덤벨을.

“넌 내가 직접 봐주도록 하지.”

덤벨을 쥐지 않은 손으론 내 손목을 낚아채곤 헬스장 한 쪽의 거울벽을 향해 끌고 가는 김가트,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난 곱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5.

지옥의 헬스 트레이닝은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트레이너들은 헬스장 기구를 쓰는 방법을 가르치고 애들의 운동 자세를 교정했다. 그리고, 나는 김가트에게 집중마크를 당했다. 1:1 코치처럼 옆에 달라붙어 운동을 시키는 김가트, 내가 아는 운동 상식을 무시하는 고강도 운동(그래봤자 핑크덤벨이지만)의 연속에 항의해봤지만 그는 괜찮다고 일축하며 계속 날 굴렸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을 땐, 난 완전히 넝마가 되어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 이후는 자유 시간이었다. 편입생끼리 서로 친분들 다지라는 짧은 말과 함께 김가트와 트레이너들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벌써 친해진 듯이 끼리끼리 뭉쳐서 탈의실 옆 샤워장에서 씻고 미르의 중앙지역에 있는 식당가로 향했다.

난 거기에 끼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순간부터 완전히 탈진해서 지금까지도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거든. 그래도 누군가가 같이 가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전부 아주 깔끔하게 무시하고 자기네들끼리 가더라. 벌써부터 아싸각이 날카롭다. 젠장.

“음?”

그렇게 헬스장에 혼자 남아 바닥에 드러누운 채 투덜거리고 있을 때, 샤워장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관찰의 눈>을 활성화시켜보니 힙한 옷차림의 예쁜 흑인 누나가 혼자 샤워장에서 나온다.

서예린

수업 때도 뭔가 겉돌던 것 같은데, 한참 늦게 샤워실에 나온 걸 보면 쟤도 나처럼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남았나보다. 다른 점이라면... 난 한심한 꼴을 보이는 비자발적 아싸인데, 쟤는 스스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아싸라는 거겠지.

내가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을 때, 서예린이 나가다 말고 슬쩍 고갤 돌려 날 바라본다.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지금 난 머리에 달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니까. 누워있는 날 빤히 응시하는 서예린,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지만 한심하단 표정은 아니었고... 뭐라 해야 하나, 대충 경계심과 의아함이 반반 뒤섞인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같은 아싸끼리 잘 지내보자고 하는 건가?

살짝 희망에 차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하며 쌩하니 밖으로 나간다. 아무리 봐도 친해지고 싶단 기색이 없는 냉담한 표정으로.

“에휴.”

딱 봐도 내가 바라보려고 하자 시선을 피한 모습. ...그래, 이게 당연한 거겠지. 한숨을 내쉬며 난 그대로 다시 엎어졌다. 진짜 엿 같네. 슬픈 아싸의 예감도, 고작 몇 번 움직였다고 전신 근육통에 달달 떨리는 몸도 모두.

그렇게 한참을 바닥에 누워 있다가 난 남자 샤워장을 향해 네 발로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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