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1화 (11/350)

3화.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4.

모래사장으로 다시 내려온 후, 우리는 김가트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선반대에서 연습용 장검을 하나씩 쥐었다.

날이 안 서 있는 가검, 가까이서 보니 진짜 날이 서 있는 것은 위쪽에 있고 아래쪽은 전부 가짜였다. 그렇게 각자 체격에 맞춰서 검을 쥔 뒤, 모래사장 중앙의 김가트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섰다. 그 뒤, 김가트는 전찬휘 경감이 넘기고 간 리모컨을 조작했다.

-팟!

그러자 모래사장 위에 붙은 대형 원통형 스크린 중앙에서 빛이 중앙의 김가트를 향해 쏟아진다. 그리고, 김가트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강습을 시작했다.

“너희들은 무의식적으로 마력을 이용해 조금이나마 물리법칙을 일그러트릴 수 있다. 그렇기에 막 휘둘러도 강하지. 지금은 일반인과 별 차이 없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질 거다. 하지만,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면 더 강하고 효율적으로 휘두를 수 있다.”

김가트가 검을 휘둘렀다. 커다랗고 경쾌한 움직임, 그와 함께 대형 스크린 위쪽에서 쏟아지는 홀로그램 영상(진짜 3D 영상 홀로그램이었다)이 김가트의 몸 위를 비추며 안쪽의 근육 해부도와 그 힘의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를 위에 덧씌운다.

“지금 너희들에게 보여주는 정형식(正形式)이 그런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해 만든 무기술이다! 속임수나 여타 기교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강하고 빠르게 휘두르는 것에 목적을 둔 반쪽짜리 무기술! 하지만, 근육과 몸을 쓰는 것을 익히는데는 아주 좋다!”

다시 한 번 김가트가 정면 내려치기를 하고, 홀로그램이 등과 허리, 다리에서 근육을 써서 날리는 참격이란 걸 보여준다. 이어서 김가트가 ‘따라해봐라!’는 외침에 모래사장 위에 넓게 퍼진 생도들은 일제히 가검을 휘둘렀다.

내가 보기엔 똑같아 보이건만 김가트는 미간을 찡그리며 호통을 친다.

“생각 없이 휘두르지 마라! 자세를 움직일 때마다 지금 내 몸 위에 있는 홀로그램이 보여주는 특정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려고 노력해라!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그 근육에 마력이 스며들어서 더 강하게 수축-이완을 일으킨다고 상상해라! 운동과 똑같아!”

태권도 품새를 보여주는 것처럼 연속해서 칼을 휘두르는 김가트, 이전에 취했던 동작에서부터 부드럽게 연결되어 허공에 강맹하게 참격을 날린다. 그리고, 생도들도 그 모습을 보며 엉거주춤 따라한다. 그렇게 연속해서 움직인 김가트는 칼을 회수하고 입을 열었다.

“이 정형식은 원리만 알면 다른 무기로도 충분히 응용가능하다. 총 5품새까지 있는데, 여기까지가 1품새다.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가르쳐주지. 오늘은 이것만 숙달시킨다. 자! 이번엔 뒤로 서서 다른 쪽의 근육 움직임을 보여주마! 이 동작은 상대가...”

다른 방향으로 서서 설명과 함께 품새를 시작하는 김가트, 그리고 생도들은 그걸 보며 열심히 따라한다. 그리고, 그런 생도들 사이를 서예린이 돌아다니며 어색하게 들리는 한국어로 짧게 조언하고 시범을 보여준다.

“서예린, 쟤 좀 봐줘라.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군.”

나도 대충대충 동작을 따라하고 있을 때, 김가트가 갑자기 날 지목하며 말했다. 그 말에 조용히 미간을 구기는 서예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녀는 이내 ‘돈값.’이라 작게 중얼거리곤 내 앞에 다가와서 자세를 잡아주기 시작했다.

“팔로 움직이지 말고, 등큰육으로 당긴다고 생각. 다린 좀 더 벌림미다.”

하기 싫더라도 바로 앞에 강사가 있는데 건성으로 할 순 없다. 그렇게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내 동작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시범을 보여주는 서예린. 나중에 가선 직접 마네킹 움직이듯 내 자세를 잡아준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연계된 동작을 보곤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짚는다.

“속, 속을 생각하며 움직임니다.”

염병, 이전에도 지금도 운동과 거리가 멀다보니 도대체 뭔 말 하는지 모르겠네. 겉보기엔 똑같은데 말이지? 저렇게 강조하는 ‘속’을 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관찰자의 눈>은 몸 안쪽은 못 본다.

정확히 말하면 빈 공간이 있는 내장 쪽은 보이긴 하는데, 팔다리를 보면 시뻘건 피와 근육의 벽만 보인다.

뭐, 몸속에 눈알이 박혀있는 꼴인데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 싶은데... 생각해보면 빛이 없는데 보이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네. 어찌되었건 내가 제대로 해낼 때까지 붙잡고 있을 기세에 난 살짝 무리해서라도 잘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시야를 ‘쪼갰다’.

지난 넉 달 간, 정신병동에 갇혀 지내면서 가진 능력들에 대해 탐구한 결과 알아낸 것들 중 하나. <관찰자의 눈>은 시야를 쪼개는 것이 가능하다. 그 대신, 하나하나의 성능은 쪼갠 만큼 떨어지지만 말이다. 그렇게 8개로 쪼갠 시야를 나와 서예린을 감싸듯이 주위에 배치했다.

“끄응”

“...힘듬?”

“아뇨. 계속하죠.”

머리를 짚으며 신음소리를 내자 힘드냐고 묻는 서예린, 난 고갤 저으며 다시 그녀를 보았다. 주위 360도, 모든 각도에서의 그녀가 보인다. 천천히 돌아가는 3D 모형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런 조잡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눈으로만 보다가 두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을 때, 시야가 확장되고 각 눈으로 본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서 원근감(遠近感)이 표현되는 것처럼 머릿속에선 8개의 시점으로 본 영상들을 조합해 ‘입체적인 형상’을 그려낸다.

그래, 평면적인 정보가 아니라 입체적인 정보다.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상상할 수 있지만, 결코 한 눈에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을 대단한 광경, 하지만 내 기분은 그닥 좋지 않았다.

사람의 눈이 2개에 정면에 달린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익숙하지 않은 시야 처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게다가 몸으로 느끼는 다른 감각들-평행감각이나 소리, 감촉 등과의 괴리가 일어나서 멀미가 난다. 분명, 유용하지만 항상 쓰기엔 부담이 크기에 평상시엔 <관찰자의 눈>을 내 육안(肉眼) 바로 앞 2개로 쪼개놓고 지낸다.

아무튼,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들로 내 동작을 수정했다.

꽤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각도에서 보니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보였다. 틀린 그림 찾기처럼 난 서예린이 보여주는 동작을 최대한 따라해 내 동작을 수정했고 서예린은 이제야 속이 좀 풀린다는 표정으로 다시 내 앞에서 시범을 보인다.

그렇게 서예린을 보고 기계적으로 따라하다가 문득 의문이 든다.

시야를 쪼개 여러 방향에서 봄으로서 난 대상의 외형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 이 방법을 발견했을 땐 익숙지 않은 시야에 골치도 아프고 해서 딱 여기까지만 파악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지금 이 방법으로 쓰다 보니 이걸 ‘응용’하면 대상의 내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해볼까?

5.

어차피 시도해 봐도 손해는 없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한 발 더 나아갔다. 단순히 쪼개는 게 아니라 시야가 먼지처럼 부스러지고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는 시도,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됐다!

시야가 흐트러지고 색이 사라진다.

그렇게 먼지처럼 흩어진 시야들은 서예린과 내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가득 채운다. 몸 외부는 물론이고 그 안쪽까지 모두.

쪼개진 눈 하나하나의 시야는 아주 형편없다.

머리카락 두께의 앞도 볼 수 없고 명암을 구분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 그 눈 하나하나가 파악하는 이미지는 새하얀 백지 위에 떨어진 잉크 얼룩과도 비슷하다. 시야라기 보단 미약한 하나의 자극으로 분류할 만한 것, 형상 따윈 전혀 보이지 않아.

그런 자극이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지는 것 같은 두통. 그 흐릿한 자극들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억으로 곱한 숫자가 되어 내 머릿속을 뒤흔든다. 사소하지만 셀 수 없이 수가 많은 정보가 서로 합쳐지고 덧씌워져서 이내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눈이 퍼진 범위 밖으로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눈이 퍼진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시각의 영역을 넘어서, 그 질감이나, 맛, 냄새, 질량 같은 것들까지 아주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아주 공감각적이다.

그녀가 보인다.

단련된 인간의 육체가 고도의 집중력으로 통제되는 모습, 그건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활성화된 시냅스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춤을 추고, 그 섬광에 근섬유 하나하나가 자로 잰 듯이 정밀하게 수축-이완한다. 이어서 관절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움직임을 만든다.

그렇게 신체의 모든 부위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며 동작을 완벽히 소화한다.

“흐, 흐하핳. 하하하핧. 아름다워요! 정말로!”

왜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르피너스, 그 광기의 존재가 흘렸던 것과 너무나도 비슷한 유쾌한 웃음이. 그렇게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녀의 몸이 보여주는 탁월한 기능미에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고 중얼거렸다.

그에 비하면 내 몸은 어떤가?

나약한 근육, 뻣뻣한 관절, 빈약한 근신경망, 따로 노는 동작... 그녀와 비교하니 너무 볼품없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은 머리, 뇌 시냅스 부분에서 스파크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 이 능력 때문에 머리가 혹사해서 저렇게 보이는 거겠지. 실제로 실핏줄이 터져 눈에선 피눈물이, 코에선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머리가 까무러칠 정도로 아픈데... 신기하게도 감당할 수 있다.

고통을 받으면 집중이 깨지는 것이 당연하건만, 이상하게도 고통이 심해질수록 정신은 투명해지고 날카롭게 곤두선다. 내 모습을 보곤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는 서예린. 눈과 코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고 흘러나오는 웃음도 억지로 참으며 난 괜찮다는 의미로 한 손을 들었다. 음, 계속 웃고 있는 얼굴로 이러니 내가 봐도 기괴하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는 걸.

다시 검을 움켜 쥔 후, 난 괜찮다는 의미로 방금 전 그녀가 보여줬던 동작을 따라하려고 했다. 근육 사이의 신경망도, 그 명령을 수행할 근육과 관절도 말할 것도 없이 빈약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보내는 신경자극을 비교해 최대한 그녀가 보내는 시냅스 자극이랑 비슷하게 따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이 날 덮쳤다.

6.

-쩌엉!

쇠끼리 맞부딪치는 소음, 연습용 철검이 허공을 날다가 외곽에 떨어진다. 난데없는 금속성에 생도들의 시선이 쏠리고, 그곳에서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백발의 소년과 그 앞에서 철검을 든 채 얼굴을 굳힌 서예린이 있었다.

그 순간, 김가트가 움직였다.

먹잇감을 덮치는 사자처럼 흉포하게 서예린을 향해 달려드는 김가트, 서예린은 그에 맞부딪치는 대신 땅을 박차며 멀찍이 물러났다. 서예린이 물러난 자리에 착지한 뒤, 김가트는 쓰러진 소년 앞에 선 채 멀찍이 물러난 서예린을 향해 검을 겨누고 살기를 뿜어냈다.

“너 뭐한 거냐. 미쳤어?”

또 다시 흉흉해지는 공기, 그런 김가트를 보며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연습용 철검을 쥔 손을 그대로 놓았다. 그 뒤, 그녀는 싸울 뜻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빈 양손바닥을 보이곤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 대신 미궁에서 쓰던 언어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데?!”

“난 위협에 반응했을 뿐이야.”

“...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김가트, 하지만 서예린의 입장에선 진짜였다. 느껴지던 위험성과는 반대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약하던 녀석, 하지만 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며 웃더니 자신을 향해 ‘아름다워.’라고 말하곤 이내 검격을 날렸다.

그 동안 보여줬던 허술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자신에게도 닿을 만한 날카로운 검격을.

그건 기습과도 같았다. 게다가 그 기습을 날린 이가 보통 대상인가?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미궁, 그곳에서 수없이 자신을 구해줬던 육감(六感)이 소름끼치는 경고를 내뱉던 괴물이다.

그 순간, 서예린의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손에 쥔 연습용 철검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기습을 옆으로 쳐냈고, 검을 쳐낸 반동으로 이어서 휘청거리는 괴물의 목을 향해 찔러가다가... 도중에 정신을 차리곤 간신히 힘을 빼며 궤도를 바꿨다. 그렇게 괴물은 철검을 놓친 뒤, 가슴팍을 맞곤 기절했다.

얼굴을 구기고 있는 김가트를 향해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변호했다.

“그 녀석이 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며 웃더니 내게 검을 휘둘렀어. 지금까지 보여줬던 형편없는 칼질이 아니라, 방심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내게 닿을 만한 검격을. 거기에 난 정당방위를 한 거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서예린, 그 당당하고 진솔한 태도에 김가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저 태도를 보니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상황을 직접 봤으면 판단을 내렸겠다만 마침 뒤쪽으로 서있었기에 보지 못했다.

“혹시, 방금 전 한새벽이 어땠는지 본 사람 있나?”

혹시나 해서 주위의 생도들을 둘러보며 한국어로 김가트가 질문하고, 이내 근처에서 굳어있던 생도들 중 하나가 쭈뼛대며 자신들이 봤던 상황을 말한다. 한새벽이 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며 웃더니 연습용 가검을 휘둘렀고 그것에 서예린이 움직였다고.

그 진술에 상황을 보지 못했던 생도들이 서로 수근 거리는 가운데, 김가트는 한숨을 푹 내쉬곤 칼을 내리고 한손으로 한새벽을 들어올렸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서예린, 사정청취 해야 하니까 넌 날 따라와라.”

말을 끝내곤 밖을 향해 달려가는 김가트, 그런 그의 뒤를 서예린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뱉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털래 털래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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