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누구든 작은 새벽을 건드리면...
3.
난 서예린에게 도움을 청했다.
2주 전, 전투 수업 때 날 두들겨 패서 입원시킨 일로 서예린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수업이 끝난 뒤, 난 그녀와 함께 하교했다. 예상대로 날 만져주려는 ‘불량 청소년들’이 건물 정문 쪽에서 먼저 대기타고 있었지만...
“훗.”
내 옆에 같이 있는 서예린을 보고 움찔한다.
그래, 다른 애라면 몰라도 김가트와 박빙을 이루던 서예린인 만큼 감히 건들지는 못하겠지. 그렇게 움찔하는 애새끼와 그 패거리가 꼴 받도록 피식 한 번 웃어준 뒤, 우린 전투 체육장으로 향했다. 생도의 개인적인 용무로는 사용할 수 없는 곳이지만 서예린의 조교 신분을 사용하면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
“뭣 때문에 여기까지 와달라고 했나? 나 바쁨.”
그렇게 텅 빈 체육장의 모래사장에 들어가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서예린, 그에 난 천천히 대답했다.
“아, 별건 아니고. 몸을 쓰는 걸 좀 보여주셨으면 해서요.”
“...몸?”
의아하단 듯이 되묻는 그녀를 향해 난 고갤 끄덕였다.
“예, 김가트 선생과 싸울 때처럼요.”
“그걸 왜?”
“오늘 교실에서 있었던 일 아시죠? 그 애새끼들이 제게 시비 거는 거.”
내가 언급하자마자 인상을 팍 구기는 서예린. 오우야, 뭔진 몰라도 더럽게 짜증이 났나보다. 어찌됐든 간에 알고 있는 눈치기에 난 복싱 자세를 취하며 허공에 주먹질을 몇 번하곤 빙긋 웃었다.
“그 놈을 제 손으로 좀 두들겨 패고 싶어서요.”
첫 전투 수업 당시, 내가 얼굴에서 피를 쏟으며 발작한 이후로 김가트는 내게 굳이 전투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덕분에 난 전투 수업이 있을 때, 그 태권도 품새 연습 같은 쑈를 하지 않고 따로 빠져서 헬스장으로 간다. 그리고 혼자 운동하며 기초 체력을 쌓지.
나도 만족하는 조치였다.
현실 패치가 된 판타지의 실상-‘결국, 세상은 자본주의’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 칼질 같은 거 배울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칼질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 내 설명에 서예린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고갤 젓는다.
“불가능, 너 솔직히 몸을 쓰는 거 못한다.”
“아뇨, 마력을 쓴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
“됐고 한 번 보여줘 봐요. 잊었어요? 저, 당신을 위협할만한 칼을 휘둘렀답니다?”
내가 괜히 직접 참교육을 하려고 결심한 것이 아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가 한 진술에는 내가 ‘흉내 낸 칼질’이 위협적이라고 했으니까. 이전처럼 그녀를 보고 따라하면... 중고딩 애새끼들에게 먹힐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대충 맨손으로 쓸 만한 기술들로 보여주세요.”
이어지는 내 요구에 서예린은 한숨을 푹 내뱉고는 하기 싫다는 아우라를 팍팍 뿜어내며 모래사장 중앙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도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내 눈’을 쪼갰다.
시야가 먼지처럼 부스러지고 흩어진다.
주위의 형상이 흩어지고 색이 사라진다.
그렇게 먼지처럼 흩어진 시야들은 서예린이 서 있는 공간 자체를 가득 채운다. 몸 외부는 물론이고 그 안쪽까지 모두. 그 흐릿한 자극들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억으로 곱한 숫자가 되어 내 머릿속을 뒤흔들고, 사소하지만 셀 수 없이 수가 많은 정보가 서로 합쳐지고 덧씌워져서 이내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흐.”
시각을 뛰어넘는 그 형상을 보며 난 씨익 웃었다. 머리에 막대한 부담이 가해지면서 벌써부터 피눈물이 흐르려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버틸만 하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며 난 서예린의 모든 것을 주시했다.
...그나저나 이 기술에 이름을 안 붙였네?
<관찰자의 눈>의 응용이긴 하다만 그냥 이대로 부르기엔 너무 대단한데 말이지? 잠깐 고민하다가 난 이내 내 마음이 속삭이는 명칭을 내뱉었다.
“<무한의 눈>.”
“뭔 솔?”
“아, 혼잣말이에요.”
좀 중2병스러운 작명이긴 한데 알게 뭔가? 어차피 여기가 소설 속인데. 게다가 객관적으로도 무한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대단하니까. 정 뭣하면 나중에 이름 바꾸면 되지 뭐. 그렇게 간단하게 기술의 이름을 정한 후, 난 그녀에게 보여 달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런 내 요구에 서예린은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움직인 듯, 어마어마한 속도. 주먹과 발이 뻗어나갈 때마다 공기가 ‘팡! 팡!’거리며 터져나간다. 그냥 육안으론 그냥 팔다리가 서너 개 늘어난 것으로만 보이겠지만 난 그 모든 것을 그대로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1~2분이 지났을까?
“...너!?”
“아, 괜찮아요.”
심각할 정도로 줄줄 흐르는 피눈물과 코피, 그런 내 모습에 서예린은 기겁하며 움직임을 멈췄고 난 괜찮다는 듯이 손을 들곤 <무한의 눈>을 해제했다. 그리곤 소매로 피를 닦고 심호흡을 하면서 내가 본 것들을 떠올렸다.
인간의 인지영역을 넘어선 ‘독특함과 이질성’이 가미된 기억
아주 인상적인 것을 보면 기억이 오래 남는 것처럼, <무한의 눈>을 통해 본 형상은 마치 달군 인두로 지진 낙인처럼 머릿속에 강렬히 남았다. 방금 전에 본 것은 물론이고 2주 전에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까지 생생히 떠오른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형상이라서 그런지 떠올릴수록 두통이 더 심해진다.
“정말 괜찮음? 너 이상 생기면 나 짤림.”
두통과 함께 더 쏟아지는 피, 그런 내 모습에 잔뜩 굳은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서예린. 자기 따름엔 나름 심각하게 말한 거긴 하겠지만 난 유쾌함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그래, 직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
“...하하, 괜찮아요. 짤릴 일은 없을 겁니다.”
“진짜임?”
“예, 아무튼 고마워요. 이 정도면 됩니다. 먼저 가도 좋아요. 전 잠시 숨을 좀 고르고 갈게요.”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은 채, 난 의사양반이 준 CBD오일을 입술 사이에 몇 방울 떨어트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 동안, 서예린은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수건을 하나 들고 와서 건네줬다. 그녀가 준 수건으로 쏟아지는 얼굴의 피를 닦으며 난 30분 동안 내 머리통 진정시켰다.
그렇게 어느 정도 머리가 식은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예린에게 고갤 까닥였다.
“후우, 고마워요. 안 기다려줘도 되는데.”
“...니가 나가야 체육관 문 닫음.”
“하하, 이거 민폐를 끼쳤네요. 근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끼칠게요.”
서예린의 뚱한 표정이 찌그러지는 가운데, 난 숨을 들이켜고 다시 <무한의 눈>을 사용했다. 타겟은 바로 내 몸. 내 육신으로만 한정했다. 그와 함께 내 몸의 형상이 머릿속에 구현된다. 또 다시 뇌가 과부화되면서 피눈물과 코피가 쏟아져 옷을 적시지만 상관없다.
그렇게 내 몸을 관조하며 난 그녀가 보여줬던 움직임- 그 전체적인 그 신체 활동을 모방했다.
그녀가 보여준 방식으로 신경 신호를 보내고, 근육을 수축 이완시키며, 혈액을 펌핑하고, 호르몬을 분비하며, 마지막으로 마력을 돌려 움직임을 보조한다. 마력을 움직이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3개월 간 정신 병동에 갇혀서 이것만 죽어라 연습했기에 어찌 가능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따라했다.
“하아.”
그 뒤에 <무한의 눈>을 종료하고 난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다시 피를 쏟아내자 ‘ㅈ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읽혀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서예린, 그런 그녀의 주위에 떠도는 먼지가 보인다.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부유하는 그 먼지들을 보면서 난 입꼬리를 올렸다.
고요하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너무나도 조용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관찰자의 눈>이 아닌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시야는 터널 속에서 입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좁아졌다.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빨리 고갤 돌려 시계 방향을 바라보았다.
“시인기하네요오...”
그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길게 늘어트리는 듯한 목소리, 평소처럼 움직이는데도 몸이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는 내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시계의 초침 또한 1초마다 움직이는 게 아니라 3~4초 뒤에 움직이는 것 같다.
인지의 가속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그 신기한 경험에 난 크게 숨을 내뱉었다. 이런 게 그녀가 느끼는 감각이었나? 아주 일부분-거의 대부분 뇌의 신경 작용만 따라 했는데도 이런 정도라니... 게다가 머리가 좀 지끈 거리긴 하지만 <무한의 눈>이 주는 피로감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어차피 이런 두통도 이틀 동안 푹 자면 사라질 거고.
좋아, 이것만으로도 그 불량 청소년들을 참교육 시킬 가능성이 보인다.
“뭔지 모르지만 더는 안 된다.”
내게 다가와 다시 피 묻은 수건을 내미는 서예린, 그에 나도 고갤 끄덕이며 수건을 건네받고 피눈물을 닦았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됐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연습해야겠네. 대충 쓱쓱 닦아낸 후, 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서예린을 향해 빙긋 웃었다.
“예, 이제 나가죠.”
“...”
“아, 근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런데 좀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움직이려고 했는데 힘이 안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런 내 요청에 서예린은 얼굴을 구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4.
서예린에게 강의를 받은 뒤, 난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고 약 먹은 뒤 곧바로 잠들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죽은 듯이 잔 뒤에 월요일 새벽에 일어났다. 말똥말똥한 두 눈, 그리고 쌩쌩한 정신. 아주 상쾌했다. 잠드는 것 자체는 너무나도 싫고 두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일어나는 건 좋았다. 잠 안자고 일주일을 버틴다고 생각해봐라. 좀 적응됐기에 망정이지 진짜 죽을 맛이야.
“흐응~♪ 흐으응~♬”
청명한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난 화장실에서 수건 하나를 가져왔다. 그 뒤, 조용히 원룸 중앙에 서서 천천히 서예린이 보여줬던 그 아름다운 움직임을 떠올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이어서 <무한의 눈>을 사용해 내 몸을 관조하고 동시에 그녀의 움직임을 최대한 모방하며 천천히 움직여 봤다.
그렇게 5분가량 움직였을까?
“으으으음..!”
갑자기 내 몸이 좀 더 가볍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내 눈앞에 조그만 빈 텍스트가 떠올랐다. 이어서 머릿속이-내 영혼이라 불릴 만한 것이 지끈거리는 것과 함께 ‘누군가 타이핑하는 것 마냥’ 빈창에 글자가 하나씩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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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The World!]
뜯겨져 나간 당신의 자아와 영혼의 조각이 특정 조건에서 주문 습득이나 기술 습득을 용이하게 하도록 돕습니다.
전투 계통 습득- •전투기술 0 → 1레벨 •맨손격투술 0 → 1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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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어느새 상태창이 떠 있고 [기술표] 항목에 두 가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0이었던 것이 레벨이 올랐다. 어느 정도 숙련되어서 레벨이 오른 것인가? 괴물 죽여서 렙업하는 돌죽과는 좀 다르네. 그 텍스트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무한의 눈>이 풀렸다.
“후, 후후. 좋아요.”
준비해둔 수건으로 눈과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곧바로 <관찰자의 눈> 상태로 전환했다. 그리고, 상태에서 그녀가 보여줬던 1~2분 남짓한 움직임을 따라해 봤다. 충분히 빠른 움직임, 좀 뻣뻣하긴 하지만 가속된 인지력을 생각하면 애새끼가 뭔 짓을 하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좀 부족한데요?”
부족함을 느꼈다. 움직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 몸이다. 꽤나 날렵하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워낙 빈약한 체구인지라 주먹으로 때려도 웬만한 급소가 아닌 이상 별 타격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칼 같은 무기를 들 수도 없고··· 뭐, 좋은 방법이 없나?
“...이럴 땐 구글 선생님에게 물어봐야죠.”
팔짱을 끼고 턱을 쓰다듬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괜히 나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서도 검색하면 뭐든 가르쳐주는 구글 선생님이 있으니까, 빙긋 웃으며 스마트폰을 켜고 ‘호신술’을 검색했고 주르륵 나오는 검색결과들을 하나씩 체크하다가 찾아냈다.
내가 써먹을 만한 기술을.
덤으로 아주 자세한 동영상 교본까지.
좋아, 이제 참교육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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