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화 (15/350)

4화. 누구든 작은 새벽을 건드리면...

5.

준비를 끝마친 후, 난 상쾌한 마음으로 등교했다.

그리고, 오늘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지겨운 수업의 연속. 아, 약간 달라진 것이 있긴 하다. 쉬는 시간마다 와서 시빌 거는 애새끼-대환이가 평소와는 달리 시빌 걸지 않았다는 것. 그 대신, 녀석은 뒤쪽에서 죽일 것처럼 날 노려봤다.

...설마, 서예린과 친분이 있는 것을 보고 괴롭히는 걸 포기한 걸까?

그건 좀 실망스러운데... 내가 고통을 감내하며 준비 했던 것들이 모두 헛된 것이 되다니 좀 억울하거든. 그렇다고 내가 저 애새끼에게 직접 가서 시비를 걸 수도 없다. 이미 끝난 일을 감정 때문에 건드리는 건, 쓸데없는 리스크를 지는 어리석은 짓이니까. 좀 억울하긴 해도 끝났으면 넘어가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이러한 내 걱정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야, 새벽아. 오랜만이다?”

점심시간, 식당가로 향하던 도중에 나한테 먹혔던 애새끼-대환이라는 애가 내 멱살을 붙잡고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간다. 이어서 그 패거리 3명이 감싼다. 그 커다란 덩치의 금발 태닝 양아치는 없네. 그렇게 날 감싼 남자애들 뒤에선 양아치들과 노는 편입반 여자애 2명이 보인다.

대환이에게 거칠게 멱살을 잡힌 순간, 충격으로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바닥에 떨어졌고-.

-와그작!

내 멱살을 틀어쥔 애새끼는 보란 듯이 그 선글라스를 밟아서 부숴버린다. 아, 저거 비싼 건데... 정한솔 선생에게 선물 받은 것, 인터넷 최저가 무려 10만원이나 되는 고급품이다. 그렇게 멱살이 붙잡힌 채 생각하고 있는 사이, 잔뜩 뿔이 난 애새끼는 내게 속삭인다.

“이 북한 거지새끼가 진짜 쳐돌았나. 어제 점심시간에 뒤쪽으로 나오라고 했지? 그리고, 학교 끝나곤 서예린이랑 가더라? 게다가 쳐웃어? 너, 걔가 계속 널 보호해줄 줄 알았냐? 그냥 좆도 아닌...”

“아뇨, 그건 아니죠. 그냥 당신 꼴 받으라고 한 거예요.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난 빙긋 웃었다. 꽤 구석진 곳, 방학기간이라 사람도 뜸하긴 하다만 그래도 생도로 보이는 이들과 연구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둘러싸서 내가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좀 노는 것 같은 애들이 모여 있으니 가면서 힐끗힐끗 보고 있다.

이런 곳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니지.

“여긴 사람이 있으니 좀 그런데, 제대로 할 거면 좀 사람 없는 곳 가는 게 어때요? 어차피 방학이라서 빈 곳도 많을 텐데.”

“하, 시발. 또 뭔 개짓거리를 하는···”

“지랄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이 애새끼야. 니 친구들도 원하면 같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존댓말을 억누르며 난 놈에게 속삭였다. 내 대답에 얼굴이 붉게 변하는 대환이, 흥미로운-동시에 살짝 가학적인 눈으로 나와 애새끼를 보고 있던 주위를 둘러싼 불량 청소년들도 눈빛이 변한다. 화가 난 것이겠지. 이제 어떻게 반응할까? 주먹을 날릴 건가?

“야, 대환아. 여기 사람이 너무 많다. 옥상으로 가자. 오늘도 거기 문 열려있더라. 담배피기도 좋아.”

“···그래.”

한 애새끼의 제안에 내 멱살을 끌고 질질 움직이는 녀석, 워낙 가벼워서 질질 끌려갔다. 그런 내 모습을 주위의 애새끼들이 둘러싸서 밖에선 안 보이도록 한다. 게다가 도중에 내가 소리라도 지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입도 막네? 소리 지를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아니, 입을 막는 건 좋은데 코까지 막아버린다. 그렇게 숨을 막아버리면-

“아아악!”

입을 벌려 입을 틀어막은 애새끼의 손을 있는 힘껏 씹는 것과 함께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싸 쥐면서 오른쪽 팔꿈치로 명치를 내리찍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날 놓는 애새끼, 그렇게 자유롭게 풀려 난 뒤에 나는 애새끼들 무리와 거리를 벌리며 가볍게 숨을 골랐다.

안타깝게도 애새끼가 지른 비명에 주위 얼마 없는 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원래대로라면 조용한 곳에 가야 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내가 코와 입이 막힌 채로 있다간 손을 써보기도 전에 질식해서 끝날 거다. 아쉬워도 이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내게 깨물리고 명치를 강타당한 애새끼는 고통에 비틀거리다가 이내 날 바라보고, 난 활짝 웃었다.

“조용한 곳에 갈 때까지 그쪽은 때릴 생각이 없었는데, 입을 막는 손이 워낙 엿 같아서요. 사람은 코와 입을 다 막으면 숨을 못 쉰답니다. 상식이 부족한 것 같은데, 알아두세요.”

“이 씨발 새끼가!”

제대로 빡쳤는지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오는 애새끼, 체격만은 어른 못지않다. 곧바로 서예린의 뇌 활동을 따라하며 존(Zone)에 돌입했다.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지는 세계

주먹 대신 따귀를 후려갈기려는 듯 활짝 펼쳐지며 뒤로 뻗는 오른손이 보인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덕분에 초보인 나도 그 궤도를 모조리 읽을 수 있었다.

좋다.

주먹이 아니라 따귀라니. 맞으면 더 모욕적이겠지만 준비한 것을 펼치기엔 너무나도 절호의 기회다. 온 몸의 무게를 담은 따귀가 내 얼굴에 작렬하기 전에 난 차분하게 한 발자국 뒤로 빼며 침착하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목표를 낚아챌 수 있었다.

애새끼의 새끼손가락을.

낚아채는 순간, 그 작디작은 손가락 하나에 내 2배나 될 법한 체격의 녀석이 멈춘다. 참 놀라운 기적이다. 고작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혔을 뿐인데 말이지. 하지만, 충분히 이해된다. 꽤나 아플 테니까.

그렇게 내게 따귀를 날린 애새끼의 새끼손가락을 오른손에 쥔 채 난 빙긋 웃었다.

“뭐라고요?”

내가 웃으며 묻자 발끈하며 새끼손가락이 잡힌 오른손을 당기며 왼손을 뻗는 애새끼, 텔레폰 펀치라고 하던가? 어떤 궤도가 될 지 예상 가능하다. 평범한 속도라면 봐도 대처 못해 당하겠지만 가속된 인지력은 어떻게 움직일 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 대처까지 가능하게 해준다.

놈의 살짝 핏발선 두 눈엔 분노가 깃들었다.

아마 이대로 붙잡히면 난 존나 두들겨 맞겠지.

어쩔 수 없네. 놈이 내 몸에 손을 뻗기 전에 쥔 놈의 새끼손가락 관절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손가락의 통증에 자세 흐트러지는 애새끼, 이어서 동영상에서 본 그대로 정확하게 움직였다. 새끼손가락을 꺾으면서 녀석의 뒷다리를 걸었고 있는 힘껏 균형을 무너트렸다.

“아! 아아아..”

내 손에 새끼손가락을 붙잡힌 채, 애새끼가 새된 비명을 흘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다 큰 어른이 아이에게 휘둘리는 듯한, 언 듯 보면 짜고 치는 것 같은 광경. 준비한 것이 제대로 먹히는 모습을 보며 난 만족스럽게 웃었다.

관절기-서브미션

그 중에서도 손가락을 꺾는 관절기다. 동영상의 설명에 의하면 주짓수 기술 중 하나지만 스포츠를 지향하는 대회에서는 금지 기술이라고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힘이 약하지만 정확하고 재빠른 사람에겐 이만한 것도 없다.

“흡!”

동영상에선 이 뒤에 초크나 다른 관절기를 걸어서 무력화 하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불가능한 이야기다. 초크를 걸어도 풀릴 지 모를 뿐더러, 옆에 있는 애새끼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붙잡고 떼어내거나 하면 힘 자체가 약한 난 속수무책이거든.

그러니 좀 더 확실하게 갈 수 밖에.

연계기에 걸려서 넘어진 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애새끼의 새끼손가락 위에 재빨리 내 발을 올렸다. 그리고-.

-우드득!

“으아아아아악!”

있는 힘껏 내리 밟았다. 새끼손가락 관절은 35kg의 무게가 실리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꺾어진다. 오늘 워커를 신고 와서 아주 제대로구만. 오직 분노만이 감돌았던 애새끼의 눈에 처음으로 다른 감정-공포와 고통이 피어나는 가운데, 난 기세를 몰아 계속 움직였다.

“조용히 하세요!”

비명을 지르는 애쌔기의 안면에 싸커킥, 입을 때렸다간 이빨 부러져서 임플란트 값 물어줄 수도 있으니 코를 향했다. 아, 너무 잔인하다!

근데, 왠지 모르게 즐겁다!

원래의 난 이런 성격이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이 몸에 들어가면서 르피너스의 장난감 주인공처럼 성격이 뒤틀렸나?! 근데, 솔직히 알게 뭐람? 이렇게라도 안하면···

학교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걸!

“후. 후흐흐! 흐히히힣! 하핳! 아하하하핳!”

왼발로는 망가진 오른손을 밟은 채로, 그리고 오른발로는 애새끼의 얼굴을 포함한 곳곳을 후려차고 짓밟았다. 어떻게 왼손으로 내 발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궤도가 모두 읽힌다. 읽혀. 어느새 내 입에선 르피너스를 연상케 하는 쾌활한 웃음소리가 나온다.

“미친! 야! 막아! 막···”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내 등 뒤 쪽에 있는 애새끼가 다가와 날 껴안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했을 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걸 대비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눈깔은 정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새끼의 동료가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관찰자의 눈>을 쪼개서 다른 방향에도 배치해뒀다. 덕분에 그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느려진 시간 감각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당신도 꺾여볼래요?”

우리 애새끼 1-대환이를 두들기다가 잽싸게 움직여서 날 감싸려는 손아귀를 피하는 동시에 놈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낚아챘다. 그 순간, 내가 뭘 할 지 직감하곤 얼굴이 창백해지는 애새끼 2. 순식간에 얼굴에서 피가 빠진다는 게 신기하다.

곧바로 날 떼어내려고 발차기를 날리려고 하지만-.

“아아아아!”

늦었다. 거칠게 밀면서 곧바로 애새끼 1에게 했던 기술, 연계기로 들어갔다. 이를 악물고 빈약한 몸을 움직여 발을 걸고, 이어서 새끼손가락을 반대방향으로 눌러서 쓰러트렸다. 그 뒤에 재빨리 무릎으로 무게를 실어 새끼손가락을 눌렀다.

-우드득!

“아아아악!”

또 다시 ‘우드득!’ 소리와 손가락 관절이 꺾어지고 이어서 애새끼 2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른다. 거참 시끄럽네! 곧바로 안면 싸커킥···은 무릎을 꿇고 있으니 못한다. 그럼, 주먹도 한 번 뻗어봐야지!

“당신도! 조용히! 하세요!”

서예린이 가르쳐줬던 주먹질을 떠올리며 난 그대로 애새끼 2의 면상에 연이어 내리꽂았다. 이런 연약한 주먹질도 제대로 꽂으니 코 연골이 꺾이며 피가 팍 터져 나온다.

하지만, 부족해!

손가락으로 눈깔을 내리찍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너무 심하니 어쩔 수 없지! 날 떼어 내려고 발악하는 애새끼 2의 손아귀를 피하며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발로 전환했다.

“케핵! 켁! 그.. 그만!”

“싫어요.”

왼발로 꺾인 손가락을 밟으며 오른발로 얼굴을 연이어 내리찍었다. 아! 너무 짜릿하다! 이 세계로 떨어지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즐거움! 이런 게 폭력의 즐거움이구나! 어른인 나도 이런데 애새끼들이 환장할 만하다. 더! 더! 더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 대환이를 잊어선 안 되죠.”

내가 애새끼 2에 잠깐 집중하고 있을 사이, 우리의 애새끼 1-대환이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코피를 줄줄 흘리고, 오른쪽 새끼손가락은 꺾인 채, 눈에는 고통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우리의 대환이. 그래, 이전의 멋모르는 분노는 온데간데없다.

대답과 함께 난 튕기듯이 몸을 돌려 우리 대환이를 향해-.

“컥!”

얼굴에 니킥을 먹였다.

나랑 신장 차이가 30cm가량 되지만 이제 막 두 다리로 엉거주춤 일어나서 높이가 맞았다. 3인칭 시야에 인지력이 가속되면서 상황 판단이 빠르게 되니 이런 것도 가능하네? 그대로 나가떨어진 대환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여 오른손 약지를 붙잡고 다시 내 발 아래에 끼워 넣었다.

“그..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해!”

대환이가 뒤늦게 내가 뭘 하려는 지 파악하고 몸을 뒤틀며 발악하려 하지만-.

-우드드득!

“아아악! 엄마! 엄마! 살려줘! 아아아악!”

약지의 둘째 마디부터 접혀버린다. 아, 이러면 너무 다치는 것 아닌가? 처음 계획과 벗어나는 건데··· 알게 뭐람! 이렇게 즐거운데! 그리고, 고아 앞에서 엄마 찾네?! 이거 패드립 아니냐! 성인으로서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렬히 느낀다!

“허?! 저 부모 없는 새끼라고 조롱하는 건가요?! 나름 근성 있네요!”

입을 워커 앞굽으로 후려 차니 앞이빨이 우수수 부러져 튀어나온다. 아! 실수! 너무 얼굴만 때리면 위험하니 몸통을 밟아야지! 고간에 한 번, 갈비뼈에 한 번, 멀쩡한 왼손으로 저항하려고 하기에 그 손을 붙잡고 다시 새끼손가락을 꺾었다. 결국, 대환이는 저항하는 것도 포기하고 몸을 새우처럼 만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몰라서 준비한 게 있었다.

칼 같은 흉기는 아니지만 꽤나 위험한 물건이지. 바지 뒷호주머니에 손수건으로 감싸뒀던 물건을 꺼냈다. 10cm 정도 되는 크기의 대침. 내가 신세졌던 물건이다. 자취하는 초반에 안 자보려고 새빨갛게 달궈서 손톱 밑에 후려 박았던 거거든. 결국, 안자는 건 무리란 걸 깨닫고 자기 시작했지만.

어찌됐든 이게 호신용으로 칼을 들지 못한 내 타협점이다.

“자, 따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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