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6화 (16/350)

4화. 누구든 작은 새벽을 건드리면...

손에 쥔 대침을 우리 대환이의 허벅지에 찔렀다.

허벅지 쪽에서 올라오는 짜릿한 통증에 움찔하는 녀석, 얼굴을 감싼 팔이 살짝 내려가며 녀석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드러난다. 내가 보란 듯이 허벅지에서 피 묻은 대침을 뽑아 들어 올리자 진짜 안 그래도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히! 히이이익!”

“엄살은 왜 이렇게 심해요? 침 몇 번 찔렸다고 사람 안 죽어요! 칼이라면 모를까! 재미없게 웅크리지 마요! 이럴 각오 하고 날 건드린 거잖아요? 자, 일어나서 싸워요! 빨리!”

엄살 부리는 녀석의 허벅지를 연이어 ‘푹! 푹!’ 찔러줬다. 다리를 허우적대며 발악하는 대환이, 하지만 가속된 인지능력 덕분에 능숙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환이에게 ‘사랑의 침’을 서너 번 더 찌른 뒤-,

“바닥에 얌전히 붙어있어. 아니면 너도 이 꼴 날줄 알아.”

고갤 돌려 뒤에서 서서히 일어서려는 애새끼 2를 향해 피 묻은 대바늘을 겨누며 ‘의식해서’ 반말을 꺼냈다.

정신병동에서 조심스럽게 생활하면 입에 붙은 존댓말

그 덕분에 반말을 할 때의 갭(Gap)이 꽤나 컸다. 내가 들어도 섬뜩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일어나려던 애새끼 2가 움찔하다가 다시 넘어지고 내게 달려들지 않은 남자애 두 놈도 기가 꺾인 것인지 굳은 가운데, 난 여유롭게 다시 고갤 돌려 애새끼 1을 응시했다.

“날 봐요.”

“···”

“더 찔려봐야 말을 들을 겁니까? 응? 응? 응?”

“아아악! 보.. 볼게! 볼게!”

공벌레처럼 쭈그리고만 있을 뿐, 말을 듣지 않기에 다시 대침으로 허벅지를 푹푹 찔러줬다.

그제서야 비명과 함께 얼굴을 감싼 양 손을 푸는 우리의 대환이, 공포에 질린 그 얼굴엔 아까의 기세등등한 눈깔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겁에 질린 눈물만이 그렁그렁하다.

그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친다.

두 눈을 감은 채, 평소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띈 얼굴. 이전까진 나도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아주 마음에 든다. 보는 순간, 활짝 웃고 싶을 정도로.

“후우, 안 되죠. 안 돼.”

이유 없이 끓어오르는 가학심. 하지만, 안 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지금 이것도 예정보다 훨씬 강한 강도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벌어졌다. 그렇게 솟구치는 충동을 억누르면서 그렇게 날 올려다보는 녀석을 향해 ‘어른으로서의 설교’를 하려는 찰나-.

“이봐! 너희들 뭐하는 거야!”

꽤나 강직한 인상의 남성이 소리치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펼쳐진 ‘참교육’의 현장에 어느새 주위의 사람들이 웅성대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날 막은 거다. 이래서 공개된 장소에서 일을 벌이기 싫었는데 말이지.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쉴 동안, 이쪽으로 다가온 남자는 날 보며 다짜고짜 미간을 찌푸린다.

“거기 너, 그걸로 친구를 찌른 거냐?”

“아뇨.”

“뭐!? 니가 그걸로 찌르는 걸···”

“이 애새끼들은 제 친구가 아니거든요.”

내게 반 윽박지르려는 남성의 말을 끊으며 난 차분하게 반박했다.

이런 17살··· 아니, 17살도 아니라 초딩 수준의 몸에 들어갔지만 내 정신은 30대 남성이다. 화내는 어른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내심 저렇게 간섭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길가다가 애들이 싸우면 개입하고 싶었을 것 같거든.

하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면 다르지.

당당하게 자기의 말을 끊고 반박하는 내 말에 남자의 두 눈이 건방지다는 듯 쌍심지가 켜지는 가운데, 난 빙긋 웃으며 이 정의감이 넘치는 남자를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최소한 제 기준에선 이 애새끼들은 친구가 아니에요. 잘못도 없는데 없는 부모욕에 출신지 비아냥을 하고, 쉬는 시간에 툭툭 건드리며 때리려고 하는 놈들이 친구입니까? 당신의 기준에선 그래도 친구라면··· 솔직히, 이상한 가치관을 지니신 겁니다.”

차분하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설교를 쏟아내려다가 멈칫하는 남성, 그에 난 부드럽게 웃으며 애새끼들 쪽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진실을 말했다.

“이해합니다. 애들끼리 싸우면 어른은 일단 말리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당사자는 아니랍니다. 남자애들 체격을 보세요. 다들 저보다 2배 이상 크죠? 제가 약해보이니까, 같은 반이 된 이놈들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려고 한 겁니다. 제가 곱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래, 억울한 건 알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안 된다. 일단은 어른에게...”

“처음부터 보시지 않았으면 모르시겠지만 전 이 놈들에게 둘러싸여 끌려갈 뻔 했어요. 제가 얌전히 끌려갔다면 전 당신이 개입할 수도 없는 곳에서 두들겨 맞았겠죠.”

“...”

“아니, 솔직히 그건 아니겠네요! 잘났다는 듯이 날뛰는 주제에 워낙 멍청하고 덜떨어져서 말이죠! 하하!”

내 조롱에도 달려들지 못하는 아이들, 하긴 사람들이 어느새 이렇게 보고 있는데 달려들기엔 그렇겠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연약한 몸을 가진 내게 달려들 용기마저 없거나! 그런 애새끼들에게 비릿하게 웃어준 후, 난 다시 남자에게 고갤 돌려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일에 개입할거면 최소한 전후사정을 알고 개입하세요. 그리고 전, 지금 당신이 뭐던 간에 전 이 덜떨어진 애새끼들을 좀 교육을 시켜줘야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을 넘었다. 어떻게 사람의 손가락을-.”

“아, 이거요?”

-우드득!

오른손으로 내 왼손의 약지를 붙잡고 꺾었다.

뼈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중간 마디가 꺾여서 ㄱ자가 되는 약지, 여기에 떨어지기 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을 자해다. 하지만, 자취 초기. 잠을 안 자보려고 별 지랄을 다해보면서 이제 이런 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물론, 아픈 건 아픈 거지만.

나도 이런 거 하기 싫다. 그래, 고통을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해야 된다고 마음먹을 때는 할 수 있게 된 것 뿐이지. 보란 듯이 꺾인 내 약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여주자 남자가 말을 못하는 가운데, 난 왠지 남자를 좀 더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번엔 대침을 들어올렸다.

“얌전히 있었을 때, 제가 당했을 수도 있었던 지속적인 괴롭힘에 비하면 이런 고통은 별거 아니죠. 아, 대침! 이건 허벅지를 찌르는 것보단 이게 더 아파요.”

꺾인 왼손 약지의 손톱 사이에 보란 듯이 대침을 찔렀다. <관찰자의 눈>의 3인칭 시야로 확인해서 박았기에 아주 정확하게 손톱과 살 사이에 박혔네. 그리고, 그 바늘을 살살 옆으로 긁어내서-.

“손톱 사이로 박는 것, 달군 대침으로 박으면 더 짜릿하죠! 그리고, 이렇게 살살 긁어내면 이렇게 쉽게 손톱도 뽑아낼 수 있답니다!”

왼손 약지 손톱을 즉석에서 뜯어냈다. 아프긴 하지만 그래봤자 <무한의 눈>이 가하는 뇌가 튀겨지는 듯한 고통에 비하면 양반이지! 그렇게 뜯어낸 손톱을 개입한 남자를 향해 가볍게 튕겨냈다.

남자가 자기 발치에 떨어지는 손톱을 보며 기겁하며 한 발짝 물러난 가운데, 난 굳어버린 그를 향해 ㄱ자로 꺾인 채 피 흘리는 약지를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전, 이 정돈 각오하고 왔어요. 날 계속 건드렸으면 저 애새끼들도 최소한 이런 각오는 해야죠. 아닌가요?”

“...”

“아, 개입하는 쪽도 이런 각오를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네요?”

살짝 장난삼아 말하자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던 그 남자는 한 발자국 더 물러나 이젠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갑자기 좀 갑자기 현타가 드네.

도대체 내가 뭔 중2병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그래, 뭔가 뒤틀린 것 같다. 어른으로서 미숙한 행동이야. 하지만, 이렇게 된 거 할 건 다 해야지.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난 진지하게 남자에게 충고했다.

“이 애새끼들은 말로 하면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계속 그만하라고 말하는데도 안 들으면 자기가 좆 될 수도 있다는 걸, 굳이 몸으로 고통스럽게 가르쳐줘야죠.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저의 일을 해결해 줄 능력도 없으면서 참견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뗀 후, 난 다시 애새끼들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의 시선도 이젠 남자와 비슷하다. 추가하자면 공포가 더 짙다. 이건 마음에 좀 드네. 꺾인 약지를 다시 편 후, 난 이번 일의 원흉-아직도 쓰러져 있는 애새끼 1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면상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정말 짜증나요. 이래서 사람들 앞에서 일을 벌이기 싫었는데··· 굳이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네요?”

“...”

“정말 입도 제대로 못 틀어막는 병신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코까지 막는 게 어디 있어요? 하긴, 그럴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면 이렇게 쓸데없이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

“그리고, 고작 손가락 세 개 꺾인 것 가지고. 이빨 하나 부러진 거 가지고, 몇 대 맞은 것 가지고, 허벅지에 침 몇 번 찔린 것 가지고 엄살떨지 마요. 그런 각오도 없이, 자기가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남에게 지랄한 겁니까?”

우리 건방진 대환이의 눈앞에 바늘을 내밀었다. 이젠 실신할 것처럼 눈을 반쯤 까뒤집는 녀석에게 난 어른으로서의 교훈을 전했다.

“잘 들어요. 사람은 이유가 없다면 함부로 건들면 안돼요.”

“...”

“가진 게 없어서 더 과격하게 나올 수도 있답니다. 예를 들면 여기서 이걸로 당신 눈깔을 찔러서 죽여 버리고, 어차피 인생 망한 거 겸사겸사 당신 가족들도 죽이러 가는 거죠. 애새끼 교육을 ㅈ같이 시켜서 날 폭발하게 만들었으니까.”

“...”

“내가 못할 것 같아요?”

질문과 함께 바늘을 찌를 듯이 움직였다. 3인칭 시선을 활용해서 눈의 동공에 살짝 닿을 정도로. 그에 자기 눈알에 바늘이 박히는 줄 알았던 듯, 대환이의 바지 고간 쪽이 축축해진다. 지린내는 덤이고.

하하, 재미있네.

고작 이런 걸로 오줌을 지리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상태창의 설명대로 내가 미쳐버린 것이겠지. 좀 씁쓸하구만.

···그래, 이미 미쳤다고 더 막나갈 필요는 없다.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그냥 저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머릿속을 더 잠식하기 전에 크게 숨을 내뱉으며 대환이의 눈앞에서 바늘을 보란 듯이 쥐고 부러트렸다. 그리고, 부러트린 대침을 대충 바닥에 내던진 뒤에 빙긋 웃었다.

“네, 전 못해요. 아주 이성적이니까. 그래요. 이성적이에요. 덜 되먹은 애새끼가 지랄 좀 했다고 사람을 죽이진 않죠. 뭐, 이렇게 적당히 만져주는 건 하겠지만.”

“···”

“난 이성적입니다. 이성적이에요. 그래, 사람 죽이는 건 안 되죠. 난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네,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요. 그렇고말고요. 그럼그럼.”

들끓어 오르는 비정상적인 감정, 바늘을 부러트리길 잘했다. 정말 잘했어. 진짜 바늘의 쥐고 있었으면 이 유혹을 참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왠지 아쉬움에 검지로 애쌔끼 1의 눈구덩이 주위를 살살 문지르며 마저 말을 끝냈다.

“아무튼, 함부로 깝치지 마세요. 뭔가 당신이 강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당신은 그냥 되먹지 못한 애새끼에 불과해요. 그러니 주제를 알고 처신하라고요. 알겠나요? 김대환씨?”

“···”

“대답해.”

“네! 네네!”

의식적으로 반말을 하자 황급히 고갤 끄덕이는 우리 대환이, 그에 난 ‘새 선글라스를 사놔라.’고 타이른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갤 돌려 뒤에 있는 애새끼들을 바라보았다. 애새끼 2는 바닥에 누워있지만 나머지 남자애 2명과 여자애 2명은 멀쩡하다.

굳어있는 그 애새끼들을 향해 난 빙긋 웃었다.

“아, 당신들도 한 번 싸우실래요? 어때요? 그래봤자 당신들의 체격의 반도 안 되는데? 바늘도 이젠 없답니다? 제 왼손 약지도 꺾였고요.”

“···”

“쫄았어요? 그렇게 놀리던 고아 애새끼가 두려워서 피하는 겁니까?”

한 발자국 앞으로 걷자 앞의 남자애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솔직히, 쟤들 다 달려들면 난 위험한데 계속 도발이 입으로 나온다. 그래, 가학적 충동심이 든다! 내가 두들겨 맞아서 몇 군데 부러지건 말 건, 쟤들을 짓밟고 망가트리고 싶다...!

하지만, 이런 도발에도 애새끼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겁 많은 애새끼답게 위험한 상황에서 움직일 깜냥은 없는 건가. 좀 아쉽다. 고작 손가락 몇 개 꺾고, 바늘 몇 번 찌른 걸로 끝나다니?

···좀 꼴받네?

아니, 솔직히 억울하다. 내가 이런 짓하려고 손가락 꺾는 것 같은 하찮은 고통보다 훨씬 더 아픈 <무한의 눈>을 세 번이나 견뎠는데!? 최소한 이 애새끼들에게 내가 겪은 고통의 크기만큼이라도 선사해줘야 하지 않나? 대충 휘발유를 저 년놈들에게 붓고 불 질러 버리면···

“아, 진정 해야죠. 진정. 아 진짜.”

빠드득 이를 악물며 엉뚱한 충동을 내뱉는 내 머리통을 ‘탁! 탁!’ 두드렸다. 진짜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미친 짓을 떠올리네. 그런 짓 했다간 사회에서 매장 당한다. 평생 깜빵일 걸? 하면 안 돼. 그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때에···

도 안 되지. 내가 진짜 돌았나 보다. 어서 빨리, 이 마음을 진정시켜야한다.

“병신 새끼들.”

애새끼들을 스치면서 싸늘하게 비아냥댔다. 이래도 애새끼들은 달려들지 않는다. 아쉽다. 아니, 내가 왜 시비를 걸고 있지? 뭔 짓이야? 왜 아쉽다고 느끼지? 죽이진 못해도 사회 통념적으로 허락하는 수준까지 만져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참는 수밖에. 이성적으로 말이야. 아깝다.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게 패배한 애새끼들을 뒤로한 채, 난 기괴한 충동을 억누르며 의무실 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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