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7화 (17/350)

4화. 누구든 작은 새벽을 건드리면...

6.

월요일, 등교한 서예린은 평소보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괴물에게 ‘건드리는 애새끼들을 두들겨 패겠다.’라는 선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괴물이 애새끼들을 죽이건 말건 자신에게 피해가 없다면 별 상관이 안 하겠지만··· 문제는 자신이 그 괴물에게 ‘아주 약간의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었다.

도움이라고 말할 것도 아니었기에 그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까다로운 바깥 인간들의 기준이라면 다를지도 몰랐다.

혹여, 괴물이 사고를 치면 자신도 직장이 날아갈 위험이 있었다. 옷과 미용, 그리고 음식에 커다란 관심이 있는 그녀로선 ‘달달한 조교 월급’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괴물이 사고치는 걸 막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점심시간

괴물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햄버거도 중요하기에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애새끼들은 기어코 흰 머리카락의 괴물을 건드렸고-.

지금은 대낮 미르 한복판에서 아주 신명나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햄버거를 들고 돌아가는 중에 그 광경을 봤을 땐 ‘조졌다.’라는 생각에 씹고 있던 햄버거를 떨어트릴 정도였지만, 다행히 괴물의 폭력 수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다. 딱히, 애새끼들을 죽이려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햄버거를 다시 주워 씹으며 느긋하게 관전할 수 있었다.

“으으음, 이해할 수 없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서예린은 살짝 고갤 갸웃 거렸다. 괴물의 전술은 간단했다. 손가락 관절을 꺾어서 넘어트린 다음,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두들겨 패는 패턴. 여기까진 이해한다. 근데, 거기에 대응하는 애새끼들의 반응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두 놈이 맞아서 너부러져있는데 나머지는 겁에 질린 채로 가만히 있다.

미궁에서 만났던 그 어떤 머저리 같은 생물도 하지 않을 짓, 불리하다면 그 사이에 도망을 치던가 혹은 함께 달려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다니?? 체격이나 근력, 숫자론 훨씬 유리한데? 그녀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불쾌함.”

애새끼를 짓밟는 괴물의 움직임에 서예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한 사람을 짓밟는다는 행위가 불쾌한 건 아니었다. 미궁에서 살아온 그녀의 시선에선 저건 아주 당연한 거니까. 불쾌한 건, 괴물의 움직임 자체였다. 괴물이 보여주는 주먹질, 그리고 발길질에는 그녀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다지 불쾌함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드러나는 그 흔적이 굉장히··· 비인간적이다.

같은 무술을 펼친다고 다 똑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신체조건이 다르고 그에 따라 몸을 쓰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하지만, 괴물이 보여주는 주먹질은 아니다. 맞지 않은 옷에 몸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것처럼 스스로의 특징과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동작’을 억지로 따라했다.

그에게 불필요한 부분까지 모두.

사람이 어설프게 인간과 비슷한 형체에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는 것처럼, 괴물이 보여주는 그 괴기한 모방이 그녀에게는 굉장히 불쾌하게 다가왔다. 그러한 생리적인 불쾌함을 제외하더라도 저건 꽤나 섬뜩한 일이었다. 고작 1~2분 정도 보여준 것만으로도 자신의 신체 기술과 패턴을 완전히 읽었다는 뜻이니까.

저렇게 빠르게 따라할 수 있는 만큼, 놈은 그 약점 또한 빠르게 파악할 것이다.

역시, 저건 괴물이다. 나약한 지금 어떻게 죽여서 없애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애새끼들의 처벌은 대단히 온순했다. 고작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코뼈 내리앉히고, 평범한 침으로 허벅지를 쿡쿡 찌르는 정도에서 끝내다니? 저런 게 밖에서 살아가는 방법인가?

그렇게 그녀가 생각에 빠져있을 동안, 괴물은 서예린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온다.

의도하지는 않았던 듯, 햄버거를 씹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살짝 놀라는 괴물. 하지만 이내 반갑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굳이 아는척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는 척하며 다가오기에 그녀 또한 받아주기로 했다.

“아,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혹시 봤나요?”

“어떤?”

“애새끼들 두들겨 패는 거. 예린 양이 도와준 덕분에 저 새끼들을 다 두들겨 팰 수 있었어요.”

환하게 웃는 흰 머리칼의 괴물, 그 표정 아래엔 더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서려있었다. 참아내고 있는 건가? 괴물 치곤 대단한 인내심이다. 그런 괴물의 모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손톱이 뽑혀 피가 흐르는 약지를 보곤 입을 연다.

“궁금한 게 있다.”

“음? 뭐가요?”

“왜 자기에게 상처 입힘?”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자 괴물은 피 흘리는 약지를 들어 올리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빙긋 웃는다.

“아, 기선 제압이에요.”

“나쁜 버릇. 아프고, 몸에도 안 좋음.”

“후후,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이런 고통 따윈 제게 별 것 아니랍니다.”

정말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 괴물, 그에 서예린은 살짝 감탄했다. 나쁜 버릇인 것은 둘째치고 저렇게 스스로 손가락을 부러트리는 건 웬만한 결심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저렇게 할 수 있다니. 그나저나 저런게 별 것 아니라면···

“그럼 별건 뭔가?”

“으음, 글쎄요? 바로 떠오르는 건··· 자는 거?”

“···자는 거? 그, 쿨쿨하는?”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농담이라는 말과 함께 투명하게 웃는 그것, 하지만 민감한 그녀는 보고 느꼈다. 자는 것이라는 언급을 할 때, 보여주던 괴물의 순간적인 체취의 변화를, 근육의 떨림을, 감은 눈꺼풀 위로 드러난 흔들림을.

그것이 말해주는 감정은 분명 ‘공포’였다.

진짜로 ‘저것’은 자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왜 자는 걸 두려워하지? 생명체로서 필수적인 일인데? 그렇게 그녀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동안, 괴물은 ‘전 의무실에 가봐야 해서.’라는 말을 남기곤 지나쳐 지나간다.

“···으흠, 내 알바는 아님.”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갤 저었다. 잠을 자는 걸 두려워한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지금 당장 싸울 것도 아닌데. 지금 중요한 건, 괴물이 큰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못 먹었던 후식을 먹는 거다.

“아이스크림··· 치약 초코.”

땅기는 아이스크림을 생각에 입을 다시며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식당가로 향했다.

7.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 마력 사용자의 폭력 사용에 대한 처우는 매우 가혹하다.

상대가 먼저 때렸다고 해서 반격했다간 쇠고랑 찬다. 단순히, 쌍방 폭행 정도가 아니라 먼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일반인은 감옥에 안가고, 딱 한 대-그것도 살짝 때린 마력 사용자만 감옥을 가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 가혹한 처벌에 대해 역차별이라며 성토하는 마력 사용자들이 많지만-.

‘마력 사용자는 흉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기에 처벌 강도가 강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이 법을 제정한 이들의 견해다. 이러한 ‘강력한 처벌 잣대’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청소년이라는 방패 덕분에 기존 마력 사용자보다는 덜하지만, 분명 기존 청소년보다는 강도가 세다. 그렇기에 이번에 일어난 대낮의 폭력 사태도 꽤나 심각하게 다뤄졌다.

일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미르 선도부 측에서 대응팀이 파견됐고, 이어서 선도부의 연락을 받고 송파구에 주둔 중인 이능력 전담 경찰팀까지 출동했다.

“이게 조사 결과 입니까? 선생님?”

미르 내의 선도부 건물, 생도의 ‘폭력 사건’으로 인해 파견 나온 전찬휘 경감은 손에 들린 얇은 보고서를 보며 질문했다. 그에 선도부의 지도 교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피해자들의 증언과 목격자들의 진술이다.”

“벌써 보고서 양식이 완성된 걸 보니 조사가 빠르게 됐나 보군요.”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미르 내의 인원이 별로 없어서 목격자들이 적었지. 덕분에 목격자 진술 내용이 많이 줄었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선도부 지도 교사, 평범한 학교의 선도부와는 달리 미르의 선도부는 일종의 ‘준 사법 기관’으로 생도들을 대상으로 무력행사, 그리고 조사까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사회화가 덜된 ‘초인’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에 만들어진 안전장치였다.

그 대답에 전찬휘 경감은 고갤 끄덕였다.

“동영상이 찍혔을 수도 있는데, 외부로 퍼져나갔습니까?”

“아직까지 SNS나 소셜 미디어에 영상이 올라가지도 않았어. CCTV로 확인한 결과, 영상을 찍는 이들의 모습도 없었다. 혹시 모르기에 목격자들에게도 강력히 경고해뒀지.”

“다행이군요.”

“너희도 그렇냐?”

“저도 미르 출신입니다. 동시에 마력 사용자죠. 둘에 대한 이미지가 깎이는 건 싫죠.”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대답하며 전찬휘 경감은 빠르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 하지만 조사는 벌써 대부분 이뤄진 듯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사용된 폭력의 강도, 그리고 폭력 사용의 이유까지.

차분하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전찬휘 경감은 이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이 사실은 가해자인 것 같은데요?”

“그래, 피해자들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가 갑자기 길 위에서 공격했다고 했지만 CCTV 확인 결과 정반대였지. 놈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가해자를 덮쳤고 어딘가로 끌려가려고 했어. 그리고 편입반 생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소에 가해자를 상대로 괴롭힘이 있었다고 하고.”

“꽤 복잡한 경우네요.”

“추가로, 보고서 뒤에 추가된 피해자들의 미르 편입 이전 학교의 생활 기록부를 보면··· 그리 행실이 좋지 않은 애들이었다.”

보고서에 붙어있는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대충 훑어본 후, 전찬휘 경감은 마지막장에 있는 가해자의 인적사항 부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정면에 박혀 있는 가해자의 사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백발에 자줏빛 눈의 소년.

“한새벽.”

“음? 너도 알고 있는 아이냐?”

“며칠 전에, 편입반 수업에서 한 번 봤습니다.”

수업 시간에 딱 한 번 본 게 전부였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외모도 눈에 띄었지만 그것보다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했었으니까. 그래, 뭔가 ‘꺼림칙’했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전찬휘 경감은 나머지 인적사항도 읽어 내려갔다.

“17세. 북한 개성 덕암동, 한마음 보육원 출신. 8월에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고 편입반 입학 결정... 근데, 이 아이 선도부였군요?”

“그래, 나랑 꽤 친했지. 기억을 잃은 지금은 전혀 모르는 듯하지만.”

나름 친분이 있었던 듯, 씁쓸하게 웃는 지도 교사. 전찬휘 경감은 한새벽의 배경 부분을 읽고 그가 선도부였던 이유를 쉽게 납득했다.

“기억을 잃기 전에는 어땠습니까?

“대단한 아이였지. 밝고 활기차면서 모범이 되는... 네 생도시절보다 더 뛰어났다. 넌, 다 좋은데 너무 딱딱했어.”

전찬휘 경감 또한 미르 재학 시절 선도부 출신이었다. 덕분에 지도 교사와 친분이 있어서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런 지도 교사의 핀잔에 전찬휘 경감은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나저나 행사한 폭력의 강도가 생도끼리의 단순 폭행 사건치곤 꽤 강렬하군요. 보고서로는 부족하니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만.”

그 요청에 선도부의 지도 선생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와라. 지금 선도부 ‘자숙실’에 있으니까.”

“구속 상태라니? 단순 폭력 치고는 꽤나 의외로군요.”

“일단, 선도부 소속의 인원이 난동을 부렸으니까 강하게 처벌해야지. 게다가 피해자들이 부모에게 전화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어댔는지, 피해자 부모들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거든. 나중엔 직접 와서 떠들기도 했고. 보호차원에서 가뒀다. 솔직히, 좀 꼴불견이었어. 자기네들이 시비 걸어놓고 징징 짜는 꼴이라니.”

“어쩌겠습니까. 덩치만 크지 아직 아이들인데.”

선도부 지도 선생의 안내에 따라 전찬휘 경감은 뒤따라 걸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군대의 영창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지하의 ‘자숙실’, 다른 점이라곤 쇠창살 대신에 밖에서만 안을 볼 수 있는 매직 미러로 이뤄져 있었다. 전찬휘 경감은 그 한 쪽에 갇혀있는 이번 사건의 가해자를 볼 수 있었다.

양팔을 구속하는 구속복을 입고 탁자에 앉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백발의 소년.

미궁이 올라오고 마력 사용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5년, 한국의 범죄자들 중에서도 마력 사용자는 종종 나타났고 전찬휘 경감은 그들을 상대했다. 그가 나서는 사건은 대부분 ‘월등한 신체 능력’을 이용한 충격적인 살인 현장이 대부분이었고, 이제 5년 차에 들어서는 전찬휘 경감은 웬만한 범죄자들을 봐도 그냥 덤덤했다.

하지만 지금, 전찬휘 경감은 섬뜩함을 느꼈다.

코드 108의 꼭두각시, 한 시골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토막 내 살해한 뒤 인신공양을 올리던 범죄자와 조우했을 때처럼 목덜미가 찌르르 울렸다. 제대로 미친놈에게서 느낄법한 꺼림칙함, ‘차분한 광기’라고 표현할 법한 것이 저 가녀린 소년에게서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진짜 애새끼들이 뭘 건드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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