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누구든 작은 새벽을 건드리면...
전찬휘 경감은 저걸 건드린 미친년놈들을 향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진짜, ‘몰라서 겁이 없다’는 말이 정확했다. 나름 베테랑인 자신조차 경계할 정도인데 저걸 건드려? 그가 그렇게 짜증을 느낄 동안, 갇혀있는 생도가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정확히, 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생글생글 웃는 생도.
그 섬뜩한 모습에 전찬휘 경감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옆에 선 지도 교사에게 질문했다.
“여전히 안에서 밖의 모습을 못 보는 것이 맞죠?”
“알면서 왜 물어보냐?”
“...그냥 한 번 그래봤습니다. 그럼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심호흡을 하며 전찬휘 경감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녹음을 켜고 지도 교사가 안내에 따라서 자숙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해자를 향해 전찬휘 경감은 담담한 표정과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새벽 생도.”
“예.”
“우리 구면이군. 며칠 전에 편입반 전투 수업 시간에 봤었지. 전찬휘 경감이다. 자네가 벌인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경위를 듣기 위해 심문하러 왔지. 질문을 할 테니, 성실히 대답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경쾌하게 대답하는 가해자. 탁자의 반대편 의자를 끌어내 앉은 뒤, 전찬휘 경감은 조사를 진행하는 감찰관으로서 상대의 기를 제압하기 위해-무엇보다 상대가 너무 긴장하지 않는 게 보이기에 마력이 담긴 살짝 강압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눈을 떠라. 그리고, 뭐가 그렇게 웃기지. 지금 여기가 장난처럼 보이나?”
“흐음, 원하신다면 두 눈은 떠드릴 수 있어요.”
살짝 난처하단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두 눈을 뜨는 소년, 드러낸 소년의 눈동자는 사진처럼 보석처럼 맑은 자줏빛이었다. 하지만, 동공 자체는 초점이 잡히질 않아서 꼭 박제된 동물의 유리 눈알을 보는 듯했다.
그 묘한 괴리감이 섬뜩함 자아내는 가운데, 소년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이 웃음은 어쩔 수가 없답니다. 제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거든요. 사고로 인해 얻은 마력 돌연변이 후유증이라서.”
“···좋다, 그럼 심문을 시작하지.”
강압적인 음성이 전혀 먹히지 않는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전찬휘 경감은 질문을 시작했다. 오기 전에 봤었던 조사 내용을 대질하며 이전에 했던 진술과 차이점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 위험해 보이는 소년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도 간간히 끼워 넣었다.
“···제가 그 애들에게 시비를 건 게 아니랍니다. 놈들이 제게 시비를 건 거죠. CCTV로 확인해보시면 알 거랍니다.”
“그럼 왜 그렇게 과격하게 나와야 했지? 평범하게 선생에게 말하면 해결됐을 텐데?”
“선생에게 말하면 해결된다고요? 하하하!”
취조 당한다는 긴장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 소리 높여 웃는 그 모습에 전찬휘 경감이 미미하게 미간을 찡그리는 가운데, 소년은 이내 웃음을 그치곤 경감을 향해 고갤 절레절레 젓는다.
“아뇨, 그렇게 했으면 해결은 ‘전혀’ 되지 않았을 거에요. 선생에게 말해봤자, 놈들을 말로 몇 번 타이르고 끝이겠죠. 편입반이라서 다른 반에 가지도 않을 테고. 제게 있어서 그건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그럼, 이번에 벌인 짓이 해결책이었다는 건가?”
“예, 직접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라는 걸.”
“흠.”
그가 꽤 호전적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소년은 그런 전찬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맑은 홍채와는 반대로 초점이 잡히지 않은 탁한 눈빛, 박제된 듯한 눈으로 소년은 차분하게 말을 건다.
“제가 미친놈처럼 보이시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소년은 고갤 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아니에요. 이것도 마력 돌연변이 후유증 중 하나에요. 절 처음 보는 사람은 절 [꺼림칙한 존재]로 인식합니다. 자연스럽게 ‘반감’, ‘꺼림칙함’, ‘미약한 혐오’, ‘미약한 두려움’··· 이런 형태로 느끼는 것 같다고 정한솔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정한솔 선생님? 혹시, 미르 병원의 정신과에 계시는 분을 말하는 건가?”
“예, 제 담당 의사이기도 합니다. 돌연변이 치료 때 절 담당하셨거든요.”
정한솔,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은인이다. 그는 물론이고 이능력자 대응 전담팀 대부분이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직업적으로 충격적인 일을 많이 조우하는 이상, 정신과 의사에게 신세를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전찬휘 경감의 얼굴에 의외라는 감정이 깃드는 가운데, 소년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어찌되었든 미르의 선생에게 말해봤자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설령, 놈들이 날 건드리는 짓을 멈춘다고 해도 악의적인 소문을 낼 게 뻔했고요. 거기에 꺼림칙한 감정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조합 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전교생들에게 경멸을 받게 될 거란 것이 제 추측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이런 짓을 벌였다?”
“아뇨, 어차피 똑같이 왕따 당할 겁니다. 이 마력 돌연변이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박제된 것 같은 눈동자가 그를 향하고, 이어서 소년은 인형처럼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어차피 왕따를 당할 거면 혐오와 경멸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두려움이 낫다고 생각해서 벌인 일이죠.”
“···”
“그리고, 놈들에게 개인적으로도 감정도 있었고.”
“감정적으로 애들을 팼다고?”
“예, 숨기지 않겠습니다. 제 출신에 대해 놀리고, 부모 없다고 놀리고, 병신이라고 놀리는데, 어떻게 감정이 없을까요? 저도 사람입니다. 감정이 있어요.”
억울하다는 듯이, 하지만 연극조로 들리는 말. 그 모습에 전찬휘 경감은 잠시 동안 소년을 빤히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감정 표현을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넌 반성의 기미가 없군.”
“반성이요? 제가 반성해야 하나요?”
당연히 해야 한다. 괜히, 범죄자들이 잡히고 나서 반성한다고 질질 짜며 나불거리는 것이 아니다. 설령, 입에 발린 말이라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줄이기 위해서 그런 척은 해야 한다. 하지만, 소년은 치기인지 당당히 입을 열었다.
“만약, 똑같은 일이 제게 닥친다면 전 똑같은 일을 할 겁니다. 전 이렇게라도 절 보호해야 하니까요. 누가 절 좋아할까요? 북쪽 출신, 그리고 고아 새끼인데? 미르의 교직원들이나 선생들도 절 싫어할 걸요? 수업 중에 한 번 쓰러져서 돌아오니까 알리지도 않은 제 출신과 고아라는 게 퍼진 걸 보면 말이죠.”
“···”
“이건 제가 살기 위해서 벌인 자구책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최소한 제 분위기에 대한 걸 집어 치우고 사실만 따진다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 대답에 경감은 말없이 팔짱을 끼며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감정을 떠나서 생각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법적으론 아닐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선 나름 공감이 간다. 저 비정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하지만-.
“그럼 좀 적당히 하지 왜 그렇게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대침으로 찔러야 했나?”
“제가 어떻게 평범하게 저 애들을 제압하겠습니까? 신체 조건을 생각해보세요. 힘이나 체격으로 전혀 상대가 안 됩니다. 게다가 숫자도 4명이나 되었고요. 아, 여자애까지 합하면 6명이구나.”
“흠.”
“어쨌든 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한 번에 고통으로 무력화 시키는 것뿐이었죠. 이것처럼.”
보란 듯이 왼손을 향해 시선을 향하는 소년, 소매가 긴 구속복은 손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지만 부러진 소년의 손가락을 맞추기 위해 깁스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왼손은 드러나 있었다. 덕분에 전찬휘 경감은 소년의 ‘다른 손가락’들도 볼 수 있었다.
“...?”
불에 지진 듯한, 뜯겨진 듯한, 눌린 듯한 피멍이 든 다른 손톱들을. 보고서에는 왼손 약지에만 자해 했다고 했는데, 검지-중지-엄지에도 상해의 흔적이 있었다.
“나머지 손톱은 왜 그렇지? 보고서엔 약지에만 자해했다고 하던데.”
“아, 이거요?”
나머지 손가락의 상처들을 보여주며 살짝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빙긋 웃으며 답한다.
“자해한 거랍니다.”
“무슨 이유로?”
“이번 일과는 관련 없는 이유로요. 걱정 마세요. 더 이상 안하니까, 부질없는 발악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하하하···”
손가락 상처들을 보며 소년은 나지막이 웃음을 흘린다.
전찬휘 경감은 그런 소년의 웃음에서 ‘좌절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특출 나게 잘 읽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것보단 저 소년의 웃음에선 누구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짙고 복잡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렇게 심문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온 전찬휘 경감은-.
“돌아버리겠군.”
특유의 덤덤한 표정을 깨곤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일 자체는 평범했다. 고작해야 애새끼들이 두들겨 맞은 폭력 사건이니까. 그 폭력 수위가 좀 세더라도 그가 전담했던 다른 사건에 비하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이곳에 올 때도 그냥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해자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대충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자신의 육감이 경고하는 소년, 인신공양을 하던 그 ‘괴물’을 봤을 때보단 미약하지만 비슷한 감각이다. 마음 같아선 허락하는 한 최대 형량을 때려버리고 싶다. 아니, 최대 형량을 때려도 부족하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굉장히 나쁘지만, 그래도 저 소름끼치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
-♬♪♩
타이밍 좋게 울리는 휴대전화의 전화벨 소리, 전찬휘 경감은 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액정에 떠 있는 ‘정한솔 선생’이라는 글자,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화장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한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나온다.
-어, 그래. 찬휘야, 너 폭력 사건 때문에 선도부 갔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가해자의 취조 끝났습니다.”
-그, 이번 사건 가해자가 내가 담당하던 환자거든? 갑자기 선도부에서 와서 환자에 대한 자료를 달라고 하더라고! 듣기론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던데, 말을 안 해줘서 개인적으로 알아보다가 니가 조사관으로 갔다고 해서 전화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명백한 사건 개입, 원칙적으론 말해줘선 안 되지만 전찬휘 경감은 차분하게 사건 개요를 설명했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그였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개인적으로 친한 누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한솔 선생은 PTSD를 겪기 쉬운 전투 직종 종사자들에겐 은인이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와 동료동기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었을 터. 그런 이의 부탁은 거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5분가량의 설명이 이어지고 난 뒤-.
-아오, 간신히 밖에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안정화 시켜놨는데 애새끼들이 건드려서 이 꼴을 내놓네.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정한솔 선생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전찬휘 경감이 대꾸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가운데, 그녀는 이어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아니, 어떻게 좀 여파를 줄일 수 없냐?
“아직까지 외부에 알려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람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요.”
-그래? 그럼 덮기도 쉽겠네?
“...누님.”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말에 그가 한숨을 내뱉었다. 왠지 이럴 것 같다는 생각에 받을까 말까 고민했건만··· 그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정한솔 선생이 말한다.
-그 애, 꺼림칙하지? 심상치 않아 보이고.
“잘 아시는군요.”
-당연하지. 8월 때부터 12월까지, 내가 걔를 5개월 동안 관찰했는데! 그 애의 분위기가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 지 당연히 알고 있어. 그거, 일종의 <마력 돌연변이>야. 직접 실물로 걔를 보는 것과, 동영상 촬영된 화면으로 보는 것의 차이점이 크거든.
“...”
-냉정하게 생각해.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서 생각하지 마.
정한솔 선생의 조언에 전찬휘 경감은 작게 신음했다. 분위기를 보지 말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실물을 믿지 말고 영상을 믿으라니? 하지만 그것보다···
“이 생도가 그렇게 신경 쓸 사람입니까? 누님이 편의를 봐줄 정도로?”
-아니, 그냥 평범하게, 이성적으로 대하자는 거야. 분위기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그저 그 애가 벌인 일만 생각하자고. 분위기 때문에 가중 처벌 받는다는 건, 불공정하잖아. 안 그래? 못 생겼다고 형량 더 받는 거랑 뭐가 달라?
“···”
-추가로 내 사심을 말하자면··· 걔 치료한 게 나다. 외부 활동 허가를 한 것도 나고. 난, 그 애가 잘못돼서 내 커리어에 흠집 내기 싫어. 그래도 걔가 잘못했으면 어쩔 수 없는데, 분위기 때문에 범죄자로 몰리면 억울하다고!
“하, 진짜 사심이 그득그득하네요.”
정한솔 선생의 말에 전찬휘 경감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 소리에 정한솔 선생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설득해 볼 테니까, 아무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그렇게 전화를 끝마친 후, 전찬휘 경감은 잠시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하.”
자신이 아무리 이번 일을 크게 키운다고 해도, 고작 이런 일로 생도를 완전하게 구금-사회에서 격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한솔 선생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라는 조언, 확실히 지금 자신은 ‘직감’이라는 감정에 너무 많이 치우쳐져 있었다.
일단, 선생의 요구대로 하자.
미르의 선생들도 굳이 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괜히, 자신이 모나게 움직였다가 충돌하게 되면 껄끄럽게 변한다. 이의제기라도 들어오면 자신의 커리어에도 흠집이 가고. 타협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요주인물로 분류해 놔야겠군.”
소심한 반항을 생각하며 경감은 화장실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