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돈이 없어
1.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에 저항한 결과는 빨리 찾아왔다.
그 저항이 아무도 안 보는데서 조용히 이뤄졌으면 모르는데, 멍청한 놈의 실수 덕분에 미르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덕분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고, 의무실에서 가서 치료를 받다가 난 들이닥친 선도부 지도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취조실 비스무리한 곳으로 가서 심문을 받았다.
이 사건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 고등학교 조사 수준이 아닌 수사 기관에서 할 법한 상세한 조사가 이뤄졌다. 심지어는 구속복까지 입어야 했지. 중간에 내가 두들겨 팬 애새끼들의 부모도 찾아왔었는데, ‘북한 고아 새끼가 감히 우리 아들을 때려?!’라는 훌륭한 패드립을 날려주시며 내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셨다.
어찌됐든 간에 난 준비한대로 침착하게 대처했다.
학생끼리의 폭력 사건, 내가 감추고자 해도 애새끼들이 까발리면 밝혀진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도 충분히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다. 당연히 준비를 해뒀지. 중간에 내가 폭주해서 ‘좀 과한 폭력’을 행하긴 했지만. <메모장>을 띄워놓고, 난 미리 준비해뒀던 진술과 싸움이 일어나기 전 상황을 이야기 하며 최대한 나 자신을 변호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별 다른 처벌 없이 지나갔다!
손가락을 꺾고, 코뼈와 앞 이빨을 부러트리고, 바늘로 허벅지를 수차례 찔렀음에도, 고작 교내 봉사활동 정도를 받은 게 끝이었다! 최악의 경우 소년원에 갈 각오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이틀 만에 감옥 비스무리한 곳에서 풀려나면서 그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빡친 정한솔 선생이 내 머리통에 꿀밤을 강타하면서 일의 내막을 설명해줬다.
한 마디로 이 기적은 전부 ‘정한솔 선생’이 힘을 쓴 결과였다. 날 심문하러 왔었던 전찬휘 경감, 사냥개를 연상케 하는 그 깐깐한 이미지의 남자와 정한솔 선생은 놀랍게도 아는 사이였다. 그 정한솔 선생이 직접 그에게 전화해서 날 좀 봐달라고 청탁을 넣었단다. 그것 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다행히, 그게 통했단다.
폭력 사건이 발생한 학교가 평판을 생각해서 쉬쉬 묻으려고 하는 것처럼 미르도 사건을 묻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고, 게다가 광분하던 피해자 부모들도 ‘사실은 애들이 먼저 건드렸고 재수 없으면 같이 처벌 받고 범죄 이력이 남을 수 있다.’고 하자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실제로 마력 사용자는 그런 억울한 사례가 많아서 통했고.
치료비?
마력과 함께 등장한 ‘포션’으로 인해 내가 입힌 상처는 고작 하루 만에 치료가 가능했다. 물론, 이능력이라는 자원이 들어가는 만큼 꽤나 고액이지만 미르 부속 병원은 생도에게 치료가 무료다. 정신 치료? 정한솔 선생이 직접 케어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전부 정한솔 선생이 다 수습한 거였다.
그 설명에 난 넙죽 고개를 처박았다. 그런 날 향해 정한솔 선생은 ‘널 무리해서 밖으로 보낸 날 좀 생각해서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는 잔소리를 쏟아냈지. 솔직히, 잔소리 할 만 하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 정한솔 선생님 충성충성충성!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난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소문이 쫙 퍼졌는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대하는 것에 조심스러워졌단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하나 더, 날 앞장서서 괴롭히던 애새끼1-대환이는 무리에서 왕따 당해 나처럼 외톨이가 되었다.
사실상, 나보다 더 낮은 계급의 찐따가 됐지.
뭐, 그래봤자 내가 왕따인 건 여전하지만.
은근한 따돌림을 뒤로 한 채, 난 수업에서 내주는 과제를 착실히 수행하고 또 복습했다. 성인으로서의 인내심과 에 포함된 메모장 기능(컨닝) 덕분에 몸 쓰는 것과 관련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 난 최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순조롭게 이세계 정착은 잘 된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신이시여.”
하지만, 고난은 계속 찾아온다. 1월, 새해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숙소로 날아온 은행과 기타 고지서. 그래, 여기까진 별 거 아니다. 사회인으로서 당연한 거니까. 저번 달에 카드를 쓴 내가 요번 달의 나를 꼴 받게 하는 건, 직장인이라면 항상 겪는 일이니까.
근데, 그 고지서에 적힌 숫자가 9자리 단위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흐릿한 육안으로도, <관찰자의 눈>으로도, 그리고 첫 전투 수업 시간에 깨달은 <관찰자의 눈> 응용 기술인 <무한의 눈>-중2병스러운 작명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나은 이름이 없다-으로도 은행 고지서에 적힌 501,208,020이란 끔찍한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아, 내가 아는 돈의 가치와는 다른 건가?
하긴, 내가 있던 곳이랑 15년 차이인데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조금씩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그러니 본격적인 가치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푼돈...
“...그럴 리가 없잖아요.”
벽에 머리를 박으며 난 행복회로에서 벗어났다. 미르 내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을 간간히 들렸기 때문에 안다. 내가 왔던 곳이랑 이곳의 돈의 가치는 비슷했다. 당장 스마트폰 뱅킹으로 내 명의의 잔고와 그 내역을 확인해봤다. 그 결과는...
“아아.”
내 체크카드와 연동된 통장의 40만원, 그것 빼곤 죄다 마이너스(-) 통장이다.
지출내역을 확인해보니 6000만원은 학자금 대출, 이 엿 같은 나라는 미르 입학이 군대처럼 거의 반강제인 주제에 공짜가 아니거든. 게다가 연 2000만원으로 더럽게 비싸다. 그래도 미르 학자금 대출은 ‘10년 만기일시상환’으로 연 1% 수준으로 대출해주니 참지. 그래, 여기까지는 납득할 범위다.
그리고, 나머지 4억 4000만원을 보통 대출로 땡겼다.
...은행이 대출 해준 것 까진 이해한다. 어차피 나중에 억대 연봉자가 될 마력 능력자니 쉽게 일반 대출을 해줬겠지. 근데, 이제 고딩 올라가는 16살 애새끼는 뭔 깡으로 은행에서 4억 4000만원을 빚으로 땡겼냐? 사회인이었던 나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일반 대출 10년 만기 일시상환, 연 3%, 1년 이자 1320만원. 미르 학자금 대출 연 1%, 1년 이자 60만원.”
3%라니? 이자 자체는 싸다. 직딩으로선 믿을 수 없는, 사실상 혜택이나 다름없는 저렴한 이자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그 저렴한 이자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거다. 숨만 쉬어도 1년에 대충 1400만원씩 빠져나가?!
“으으음, 이럴 때가 아니죠.”
그 사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돈을 어디에 썼는지 추적에 들어갔다. 은행에 전화도 걸어보고 인터넷 신용조회도 하면서 확인해본 결과, 한새벽은 돈을 쓰지 않았다. 은행에서 빌린 5억을 전부 보육원 계좌로 보냈다.
이것만으로도 환장하겠는데, 안타깝게도 이건 ‘은행’에서 온 고지서만 따진 거다.
“전투 장학금 취소 통지서, 끄응...”
전투 계열 국가 공무원 진로로 갈 경우에 국가에서 주는 혜택, ‘미르 장학금’과 ‘품위 유지비’의 취소 통지였다. 진짜 한새벽은 이쪽 진로로 갔던 모양이다. 내용을 보니 ‘몸 병신+이번 일’이 되면서 자격 요건이 미달된 것 같네. 하긴, 나 같아도 나 같은 사람을 전투원으로 뽑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뿐이라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통지서는 이전까지 받았던 모든 장학금까지 뱉으라고 한다.
품위 유지비 월 130만원, 총 36개월 간 받아서 4680만원에 추가로 면제해준 미르 3년 학비 6000만원까지 합하면 1억 680만원. 그나마 이자는 청구하지 않아서 다행인가? 은행과 미르 합쳐서 대충 총 6억 1000만원이다.
이세카이로 왔는데 갚아야할 빚이 6억?! 자살 마렵네.
“한새벽씨, 도대체 뭔 생각으로 보육원에 돈을 쓴 겁니까...”
한숨을 뱉으며 통지서를 구겼다. 돈줄이 끊긴다는 것만으로도 막막한데, 지금까지 준 돈까지 내놓으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진짜 사관학교도 퇴교당할 때 받았던 품위 유지비를 반납하는 것 같진 않은 것 같던데 말이지. 뭐, 어찌되었든 간에 이건 확실하다.
돈이 필요하다.
빚을 갚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생활비를 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알바를 뛰든, 혹은 또 빌리든 간에. 그리고, 진짜 한새벽에 돈을 꼬라박은 보육원에도 한 번 찾아가 가봐야지. 그 돈을 받아내... 는 건 힘들겠지만 왜 5억이란 돈을 썼는지 좀 알아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에휴.”
통지서를 치운 후, 난 돈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컴퓨터에 앉아 웹서핑에 들어갔다.
2.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뒤, 난 이틀 동안 돈을 구할 방법을 뒤졌다.
가장 처음 알아본 것은 은행 대출, 미래가 창창한 미르 생도니 더 대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담 결과는 ‘학자금 대출을 제외한 다른 것은 대출 불가’였다. 3곳 정도 알아봤는데 이전 대출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2, 3 금융권을 알아보는 건, 너무 빚이 많이 쌓일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신체능력은 평균 이하니 몸 쓰는 건 보류, 내가 가진 장점에 대해 생각하니 가장 먼저 <관찰자의 눈>을 이용한 투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능력을 사용하면 카드게임이나 긁는 복권은 100% 이길 수 있다. 도박은 상대방의 패를 보면서 하는 거였고 복권은 당첨이라 적힌 것만 뽑으면 되니까.
문제는 한 두 번이면 몰라도 계속 그렇게 돈을 벌다간 결국 꼬리가 밟힐 거라는 것
꼬리가 밟힌 뒤, 내가 미르 생도라는 것이 밝혀지고 어떠한 이능력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이 밝혀질 거다. 아니라고 부인해도 정황상 그렇게 몰아갈 거고. 그렇다고 투시능력이 있다고 말하기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을 까발리는 꼴이라서 좀 찝찝했다. 결국, 투시 능력도 쓰기 애매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초능력으로 돈 버는 법은 죄다 개소리뿐
그렇게 이틀 간 혼자 고민하다가 도저히 답이 안 보여서 난-.
“그래서, 돈 벌 방법이 없냐고?”
“예.”
사건 이후로 매주 한 번씩에서 두 번씩 만나게 된 정한솔 선생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 신세 지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인맥 중에서 이 고민을 말해볼 만한 사람이었다.
도저히 답이 안 보이기에 답답한 마음에 털어놓은 건데,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수긍이 간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고갤 주억였다.
“확실히 네 입장에선 막막하겠네. 갚아야 할 돈이 6억, 몸으로 때울 수도 없고... 뭐, 그래도 돈 벌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진짜요?”
“송파구 소재의 기업 연구소에서 마력 관련 연구를 보조하기 위한 생도들을 많이 구해. 한 마디로 빌려 쓰는 대학원생이지.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의 마력 조작-가공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하긴 하지만.”
“그렇군요.”
“근데, 지금 이 시기에는 없을 거야. 있다 해도 방학 시작하는 7월쯤? 그리고, 설령 자리가 생기더라도 미르 임직원의 추천이 없는 이상 구하는 건 힘들 걸? 그것도 나름 취업 스펙이라서 말이지.”
“끄응.”
결국, 지금 당장 돈 벌 방법은 없단 이야기다. 40만원으로 몇 달을 버텨야 하나? 어떻게 버티지? 이 엿 같은 미르는 점심도 사 먹어야 하는데... 하루에 한 끼, 뷔페 같은 곳에서 왕창 먹고 버텨야 하나?
그렇게 내가 고민하자 그녀는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번듯한 기업은 아니지만 내가 한 곳 소개해 줄까? 자영업자인데, 적어도 알바비 정도는 챙겨줄 거야.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건 아니고 마력 관련 일인데... 음, 기억상실인 네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저야 소개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죠.”
찬물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당장 생계가 달려있으니까. 다급하게 고갤 끄덕이자 그녀는 진료 차트를 접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퇴근 시간이니 바로 가자. 따라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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