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돈이 없어
3.
병원에서 나온 후, 난 선생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량이 멈춘 곳은 송파구 도심, 높은 건물과 마천루들이 늘어선 곳 한켠에 생뚱맞게 있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그 모양부터가 많이 특이했다. 1층까진 붉은 벽돌과 목재로 지어졌고 2층부터 유리가 섞인다. 3층부터는 완전히 유리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특이한데, 그 유리 부분의 형태가...
“플라스크?”
살짝 기울어진 둥근 플라스크였다.
유리 부분 안쪽은 온실인 듯 형형색색의 식물들이 가득했고, 그 기울어진 플라스크 주둥이 부분에서는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건물 옆에 있는 연못에 떨어지는데, 조명 덕분에 형광색으로 빛나서 꼭 특별한 용액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디자인도 예쁘고 주위의 관리 또한 잘 되어 있어서 되게 신기했다.
그런 내 반응에 차에서 내린 선생은 가볍게 어깰 으쓱였다.
“걔가 직접 디자인 했거든.”
“...디자인요?”
“응, 걔 건물이니까.”
건물주, 그것도 이런 멋진 건물의 소유자라니... 내 표정에서 부러움과 경악이 드러났는지 선생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송파구 땅은 13년 전까지만 해도 완전 껌값이었어. 걔는 그 빈 땅을 사놨다가 대박 터진 거지. 남는 땅을 팔고 저 건물 세운 거야. 자, 들어가자.”
건물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한솔 선생, 입구 위에 ‘강수영의 물약 상점’라는 나무 현판을 한 번 보고 나도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오...”
운치 있는 빈티지 커피숍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부드러운 황색 조명에 곳곳에 관상용 허브가 있었고 가판대에는 커피숍처럼 꾸며졌는데 음료나 케이크 대신에 약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멋진 모습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동안, 선생은 가판대 앞에서 호출벨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안쪽에서 한 인영이 나온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흰색가운을 입은 여자애. 하지만, 어려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그 얼굴은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고 눈가엔 어울리지 않게 다크 서클이 있다. 머리칼이 되게 풍성했는데, 굵은 동아줄만한 크기의 매듭을 머리 가득히 땋았다. 10개는 넘는다.
“오랜만.”
그 여자애를 보며 웃으며 인사하는 선생, 하지만 웃는 선생과는 달리 그 애는 얼굴을 팍 찡그리며 나와 선생을 응시한다.
“뭐야, 왜 왔냐?”
“알바생을 배달하러 왔지.”
내 어깨를 두드리는 선생,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서 살짝 벙쪄있다가 난 선생을 향해 질문했다.
“선생님, 저 애는...?”
“야! 너 미르 생도인 것 같은데, 내가 너보다 최소 15살은 더 많거든?”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버럭 소리치는 여자아이, 그 말에 난 멍청히 굳었고 선생은 사악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진짜란다. 나랑 동갑이지. 미르 출신 선배, 그리고 네 고용주가 되실 몸이다. 자, 인사해. 여긴 한새벽, 그리고 얘는 ‘강수영’이야. 어려보이는 건, 돌연변이 때문이야. 마법 오염이 중첩되더니 저렇게 쪼그라들었어.”
“시발, 그런 건 설명하지 마라.”
뻗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여자애. ...아무래도 첫인상을 조진 것 같네. 근데, 변명하자면 진짜 저 강수영이란 여자 모습은 동안으로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어린애 모습이었다. 선생에게 반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어린애한테 인사하는 것도 그래서 망설였는데 이렇게 꼬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녀는 날 위아래로 훑더니 미간을 찡그린다.
“백발? 그리고 선글라스는 또 뭐냐? 벗어봐.”
드러내긴 싫지만 지엄한 예비 고용주의 명령에 난 곱게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의 미간이 다시 찡그려진다.
“...자색 눈동자? 밖에선 없는 색이네? 너 미궁 출신이냐?”
“아니, 얘도 너처럼 <마력 돌연변이> 피해자야.”
“돌연변이 피해?”
“그래, 너보다 심각하지. 기억상실에 미약한 광증, 심각한 수준의 시력 저하와 머리카락 탈색, 눈동자 색 변화, 체력과 체격 저하, 기괴한 분위기... 아주 종합적으로 피해를 입었거든.”
상세하게 내 상태를 말해주는 의사 선생, 그러자 안 그래도 찌푸려진 강수영의 미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빠드득 이를 간다.
“아니, 쓸 만한 생도 있으면 좀 꼬셔달라고 했더니 짐덩이를 주네?”
“얘! 창창한 생도들이 너 같은 개인 자영업자 연수에 가려고 하겠니? 다들 기업 연수에 가려고 하지! 얘 구한 것도 행운이야. 이년아.”
“썅년.”
욕설과 함께 품에서 전자 담배 꺼내 무는 강수영. 버튼을 눌러 불을 붙인 뒤, 그녀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날 힐끗 보곤 연기와 한숨을 내뱉으며 정한솔 선생을 향해 이죽였다.
“아니, 그래도 최소한 기본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기억상실? 그리고 광증?”
“좀 봐줘라. 얘, 보육원 출신에다가 이번에 돌연변이 증상으로 전투 진로 장학금이 끊겼어. 지금껏 받았던 장학금도 다시 뱉어내야 하고. 상황이 안 좋아. 그리고 광증 부분도 많이 나아져서 꽤 온순해.”
“...내가 자선 봉사하는 것 같냐?”
“걱정마, 나도 염치가 있어.”
옆에 다가온 선생은 보란 듯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한새벽은 미르 3학년까지 끝냈어. 연금술에 대한 기초 과정은 배웠지. 요즘 기억이 돌아오는 현상까지 관찰됐다구? 약간만 가르치면 기억할지 몰라. 최소한 니가 원하는 재료 손질은 가능할 걸? 온실 관리하는데도 마력 능력자가 필요하잖아?”
이어서 의사 양반은 ‘잘못하면 고용 안 해도 돼.’라고 덧붙인다. 에잇... 싯팔! 이런 판타지 소설 속에서 고용불안이라니? 내가 이 엿 같은 소설에 한탄할 동안, 합법 로리 양반은 짜증났다는 티를 팍팍 내며 전자 담배를 뻐끔대다가 이내 전원을 끄곤 고갤 끄덕였다.
“좋아, 테스트를 하지. 따라와.”
4.
강수영의 안내에 따라 나와 의사 선생은 가판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반겨주는 건, 대형 냉동고 문짝 같이 생긴 커다란 금속문. 안에 들어가자 반도체 공장에서나 사용할 법한 오염 제거 절차가 시작됐다. 위에서 쏟아지는 에어 샤워, 입자 제거용 흡착 발판, 분무 소독...
“되게 본격적이네요.”
“여기는 동네 건강원이나 한약방이 아니란다. 여기는 상점이야. 그것도 마력과 관련된 약물을 만드는 약물 상점. 물약에는 절대로 수용액이랑 재료 외의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건 기본, 판매하는 제품은 모두 균일한 성능을 가져야 하지.”
내 소감에 합법 로리 양반은 의기양양하게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기 위해선 똑같은 재료뿐만 아니라 균일한 환경도 중요해. 실내의 압력, 습도, 온도, 기류의 분포와 속도, 오염 물질 제거... 야, 마력을 끌어올려.”
“네?”
“끌어올리라면 끌어올려 임마.”
설명하지 않고 이죽거리는 합법 로리... 아니, 약사 양반. 의사 선생도 별 말 안하기에 난 미간을 찡그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있던 세상에는 없었던 힘 마력, 하지만 이젠 나도 사용할 줄 안다. 4개월간의 재활과 편입생 수업 시간에 필수적으로 들어간 항목이었으니까.
호흡을 가다듬고 명상하듯이 내면에 힘을 끌어올린다고 상상했다.
그와 함께 불쾌한 감각이 머리 안쪽에서부터 올라온다.
사람마다 마력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굉장히 불쾌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자동차 부동액이 머릿속에 가득 찬 것 같은 감각, 콧속은 독한 석유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메스꺼움을 참으며 난 그 힘이 신경을 따라 몸에 퍼진다고 생각했다.
내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안쪽의 한 레버를 당겼고, 동시에 천장과 벽의 노즐에서 ‘치익!’ 소리와 함께 증기가 나온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증기가 마력과 반응해서 몸에 달라붙는다. 겉보기엔 별 이상 없지만 피부에서 느껴지는 건...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야. 끈적끈적하고 차가운 것이 전신에 달라붙는 듯한 감각, 내가 미간을 구기자 약사 양반이 이죽거리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르녹을 섞은 마력 기름을 이용한 차폐막, 생명체의 마력에 반응해 굳어져서 표면에 코팅되지. 옷과 머리카락, 피부의 오염물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줘. 방호복 대용으로 쓰인단다. 여기서 만드는 물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
“...괜찮은 겁니까?”
“그래, 인체엔 무해하고 옷에도 별 피해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6시간 뒤엔 전부 기화하니까. 자, 이제 마스크하고 고글 쓰고 들어가자.”
방 한 쪽에 마련된 방진 마스크와 안전 고글까지 착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반대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전히 커피숍 같은 디자인의 내부, 하지만 연구실에서만 볼법한 장비들이 깔려서 좀 위화감이 든다. 그래, 랩(Lab)과 커피숍의 기괴한 혼종이다.
내가 기괴함을 느끼건 말건 약사 양반은 당당하게 앞장서며 자랑하듯 입을 열었다.
“지하층은 대용량 용액 제조실, 1층은 제약실, 2층은 재료실, 3층부터는 희귀한 미궁 식물들을 키우는 온실이지.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야. 마력을 이용한 재료 가공, 그거 하나만 잘... 해선 부족하고 여타 마력 재료 관리와 온실 관리. 기구 청소...”
“수영아,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냐?”
“알바생이란 게 그런 거잖아? 자질구레한 잡일처리.”
그렇게 앞서가던 그녀는 한 쪽 벽면에 나열된 기구 앞에서 멈춰섰다. 거의 내 키만 한 크기의 커다란 유리 원통들, 그 중 하나의 앞에 서서 그녀는 날 올려다보았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궁에서 나온 마력이 포함된 재료들을 관리하고 정제하는 거야.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 자, 그럼 기초적인 걸 해보자. 마력 기름 알지?”
“마력 기름이요?”
“그래, 재료에서 마력에 반응하는 물질을 녹이는데 쓰이는 대중적인 베이스지. 여기에 있는 마력 부여 손잡이를 붙잡고 안에 있는 기름에 한 번 마력을 투사해봐. 어떤 방식이냐면...”
갑자기 약사 양반의 오른손 검지가 빛나더니, 허공에 푸른 궤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걸로 뭔가 복잡한 화학식과 전문 용어를 허공에 적어대며 떠들어대는 약사 양반. 근데, 하나도 모르겠다. 편입반에서 마력 가공술-속칭 연금술이란 과목을 들었는데도 말이지. 내 필기 노트(게임 시스템의 <메모장>-연금술 파트)를 훑었는데도 저런 내용은 없다.
“수영아. 니가 말하는 마력 운용 방법들, 연금술 듣는 미르 졸업반 애들도 모르는 심화 과정 같은데? 게다가 마법어도 들어가네? 그 정도면 웬만한 기사(Engineer) 수준은 뛰어넘는...”
“그래? 하지만, 관심이 있다면 배웠겠지.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 같은 걸 뒤져서라도.”
“...”
“불만 있어? 난 이거 생도 때부터 알고 있었어. 기술이 퍼진 요즘은 더 접근하기 쉬울 걸?”
의사 선생을 보며 떠드는 약사 양반, 이대로라면 나가리겠지만... 난 비장의 수가 있다.
“한 번 직접 보여주시면 안 됩니까?”
“...뭐?”
“생각이 잘 안 나서요. 옆에서 보여주면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하, 이런 마력 가공을 한 번 본다고 해서 따라할 수 있는 걸로 보이냐? 겉으론 손잡이 잡는 것 밖에 안 보여!”
“그래도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에 약사 양반은 ‘그래, 그렇다면야.’라고 코웃음치곤 원통 한 쪽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난 약사 양반 바로 옆에 서서 관찰하는 척하며 곧바로 심화기술 <무한의 눈>을 사용했다.
“으음.”
내가 인지하고 있던 평범한 세계가 부서져 내리고, 이어서 고차원적인 형상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관자놀이에 얼음송곳이 박힌 것처럼 지끈거리지만 대신에 모든 것이 보인다. 약사 양반과 그녀가 붙잡고 있는 원통의 내용물, 심지어는 마력의 작용까지도.
그녀의 손 안에서 마력이 요동친다.
열 손가락을 따라 여러 갈래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이내 서로 엮이며 기묘한 형태로 뒤틀린다. 이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아직 배우지는 못했지만 위키 검색을 통해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마법 문자, 혹은 룬 문자
물체나 환경을 술자의 의지대로 변화하게 만드는 마력, 그런 마력에 ‘더 강렬한 의지’를 투사할 수 있게 해주는 형상.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미궁 원주민들이 발견한 것이며 3차원적 형태가 아닌 훨씬 더 고차원으로 이루어진 형상이라고 한다. 인간의 인지력으론 정확한 형체를 알 수 없기에 수학적으로 분할해 계산하는 등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다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관찰자의 눈>, 르피너스조차도 인정한 힘. 무한하게 쪼개진 내 눈은 내가 원하기 시작하자 현실의 3차원 공간을 넘어 마력이 영향을 끼치는 ‘다른 공간축의 영역들’로까지 뻗어나갔다. 그리고, 내 두뇌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들을 조합해 하나의 형상을 그려낸다.
종래의 물리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격자형 공간들
마주보는 거울 사이에 놓인 것처럼 무한하게 펼쳐진, 그 불가해의 영역에 뻗어나간 마력으로 만들어진 룬 문자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했고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각 따로따로 움직이며 아주 가끔씩은 다른 공간에는 없는 그 공간만의 무언가에 접촉했다.
인간의 인지력으론 허락되지 않는 영역
숫자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그것을 날 것으로 보기 시작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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