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돈이 없어
“흐, 흐히히. 하하핳!”
처음 <무한의 눈>을 사용했을 때처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르피너스, 그 광기의 존재가 흘렸던 것과 너무나도 비슷한 유쾌한 웃음이. 하지만, 흘러나오는 웃음과는 상관없이 난 계속 그 모든 걸 보고 있었다.
룬 문자가 맥동한다.
그녀의 의지를 받아들인 룬문자는 바람에 흩뿌려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쪼개져 스스로의 조각을 각 영역에 퍼트렸다. 이어서 그 조각들이 각 공간에 있는 ‘의지 없는 마력’과 공명해 우아한 물결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여기서는 쪼그라들고 저기서는 부풀며, 빛과 같은 속도로 나아간다. 그렇게 모든 영역에 걸쳐진 조각들이 뿜어내는 메아리가 서로 중첩해 영향을 끼치고-.
이내 ‘현실의 장막’이 찢어지며 우리가 있는 현실로 튕겨져 나온다.
강수영의 손바닥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메아리가 원통의 손잡이로 올라간다. 이어서 외부의 조작 버튼을 누르자 안쪽의 용액이 소용돌이치며 그 메아리와 섞인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푸른색으로 변하는 기름
동시에 마력이 현실의 물질 사이에 간섭해 ‘다른 차원의 법칙’을 가진 메아리가 안착하도록 만들면서, 만들어진 용액은 일반적인 물리법칙과는 다른 법칙이 작용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세상의 법칙’이.
“재미있네요. 하하핳!”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날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쳐보는 의사 선생, 제정신인 상태라면 이 웃음을 멈추려고 했겠지만 지금 난 멈추지 못했다.
<무한의 눈>으로 본 마법의 실체는 경이로움과 섬뜩함 그 자체였다.
의지에 따라 현실을 찢어발기고 다른 차원의 법칙을 가져온 뒤, 마력을 이용해 현실에 강제로 각인시키는 것. 별 것 아닌 마법일 텐데도 이렇다니... 이건 백날 옆에서 봐도 원리를 모른다면 절대 따라하지 못하는 종류의 기술이다.
하지만, 난 따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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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The World!]
뜯겨져 나간 당신의 자아와 영혼의 조각이 특정 조건에서 주문 습득이나 기술 습득을 용이하게 하도록 돕습니다.
마법 계통 습득- •주문 시전술 •부여술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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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용액 제조 (Create Magi Menstruum)
레벨 0 부여술/연금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200
지속시간 : 50+2d(SP) day
최소 소모 마력 : 1
설명 : 액체에 마력에 반응하는 성질을 부여하는 마법, 이 처리를 거친 용액은 마력적인 요소가 첨가된 용질들을 효과적으로 녹인다. 스펠 파워(SP)에 따라 증가하는 것은 지속시간 뿐이며 용액의 성능 자체는 언제나 동일하다. 밀폐용기에 보관을 하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지만 공기에 접촉하면 변질이 시작되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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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관찰하는 순간부터 내 눈의 홍채가 자줏빛 광채를 뿜어내고, 르피너스에 의해 조각나고 제멋대로 조립된 내 영혼의 일부분이 발광한다. 동시에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직감과 영감이 솟구치며 내가 본 일련의 과정을 파악하고 그 지식을 억지로 내 영혼에 새긴다.
내 안에서 날뛰는 광기에 웃음을 흘리며 난 반사적으로 반대쪽 기름통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내가 본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따라했다. 내가 만들어낸 룬 문자가 맥동하고 다른 공간축으로까지 퍼져나간다. 그리고 내 의지에 따라 현실의 장막을 찢고 그 법칙을 강제로 원통 안의 기름에 새겨 넣는다. 마력이 도중에 바닥나서 약간 미흡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해냈다.
그 모든 과정을 의사 선생과 약사 양반은 전부 봤다.
입을 쩍 벌리며 날 바라보는 약사 양반, 이어서 그녀는 근처에 놓인 비커 하나를 들고 내가 손을 댄 기름통 아래의 벨브를 돌렸다. 비커 안으로 졸졸 쏟아지는 푸른 광택의 기름. 다시 벨브를 잠근 후, 그녀는 기름을 보며 몇 가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와, 씨발. 이걸 어떻게 했냐?”
“하하! 그냥, 보여주신 대로 따라했습니다만.”
영혼의 욱씬거림과 아직도 반사적으로 나오는 광기어린 웃음, 그리고 마력을 다 소모해서 나오는 허탈함의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하자 그녀는 의사 선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얘 천재냐?”
“모르겠네. 전투 진로로 가다가 돌연변이 일로 탈락한 얘야. 그래도 가르치면 1인분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데려왔거든.”
“...아니, 시발!? 이거 말이 안 되는데?”
비커에 따른 푸른 광택의 마력 기름을 보며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을 이어나갔다.
“자랑하는 것 같아서 말 안 했는데, 이 바닥에서 나보다 잘하는 놈은 몇몇 미궁 출신 빼면 없어. 나름 업계 탑클래스라고! 근데, 이 녀석은 생도 주제에 나랑 실력이 비슷하네? 이 마력 기름, 약간 농도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 걸고 팔 수 있을 정도야.”
“...그런 걸 생도에게 시켰냐?”
“아니, 다루기 쉽게 먼저 기 좀 죽이려했지.”
“썅년.”
순순히 가스라이팅을 고백하는 합법 로리 약사에게 가볍게 욕설을 내뱉는 의사 선생, 이내 의사 선생은 날 바라보더니 고갤 갸웃한다.
“혹시, 돌연변이로 인해 얻은 능력인가?”
“돌연변이라고?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약사 양반의 반응에도 의사 선생은 고갤 끄덕였다.
“넌 못 본 것 같은데, 얘 감고 있던 두 눈을 떴어. 근데, 홍채가 자줏빛으로 타오르고 있더라. 추가로 정신병동에 있었을 때처럼 갑자기 경쾌하게 웃어대고.”
“싯팔, 진짜라면 좀 꼴 받네. 누군 존나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의사 선생의 말에 날 향해 고갤 돌린 약사 양반, 날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시비를 걸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선글라스 벗고 안전 고글 썼을 때부터 계속 눈 감고 있네?”
“변색된 홍채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요. 트라우마거든요.”
“눈 감고도 앞이 보여?”
“지금도 살짝 눈을 뜨고 있는 상탭니다. 그리고, 사건을 겪은 뒤에 다른 감각들이 민감해져서 이런 상태로도 별 문제 없더군요. 물론, 오랫동안은 못하지만.”
“하! 지금 보니까 너 꼭 만화 속 실눈캐 같네. 평소엔 생글생글 웃는데다가 두 눈을 뜨면 본색을 드러내고 실력 발휘하는??”
영혼이 욱신거리는 고통과 짜증에 대충대충 답했지만 약사 양반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는다. 그렇게 웃던 그녀는 이내 숨을 고른 후 고갤 끄덕였다.
“첫인상은 좀 건방져 보여서 별로였는데 지금 보니 납득 할만 해. 어찌됐든 실력으로 증명했으니까.”
“그럼?”
“합격.”
5.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한 뒤, 로리 약사... 아니, 싸장님은 환영 인사라고 고기를 사줬다.
송파구 특구라서 분위기가 좀 이질적(음식점 곳곳에서 오크나 엘프들이 모여 고기 굽고 술 마시고 있었다)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당 10만원은 나오는 고-오급 한우 전문점에서 밥을 먹었다.
근데, 이곳에 떨어지면서 먹은 거라곤 학식이나 병원식 밖에 없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더라.
싸장님이 고기 구워주면서도 ‘작작 좀 처먹어’라고 쿠사리 줬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난 불만 없다. 소고기를 사줬으니까! 욕먹어도 먹은 값 만큼 호감도가 +50이야. 처음에는 좀 괴팍한 인간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우리 싸장님이다. 우리 싸장님도 충성충성충성!
“네가 그런 능력도 있을 줄은 몰랐네. 덕분에 편하게 됐어.”
그렇게 행복한 저녁 식사가 끝나고 정한솔 선생의 차를 얻어 타서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 빨간불에 차가 멈춰 서자 의사 선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 모습에 난 쓰게 웃었다.
“저도 처음 알았어요. 제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아무튼, 다행이죠. 이것 없었으면 진짜 생계를 걱정했어야 했을 테니까요.
진짜다. <무한의 눈>으로 어떻게 흉내내보려고만 했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기술을 습득할 줄은 몰랐거든. 그런 내 대답에 의사선생은 고갤 주억였다.
“하긴, <마력 돌연변이>란 게 너무 종잡을 수 없지. 정확히 뭐가 나왔다 파악하는 것도 힘들고. 이번에 그 능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증명 실험을 준비할 테니, 테스트도 몇 번 받도록 하고.”
“음, 예.”
“그리고, 고용에 관한 건... 솔직히 네가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됐을 거야.”
신호등이 푸른 불로 바뀌자 다시 엑셀을 밟으며 말하는 정한솔 선생. 흠, 처음 날 봤을 때, 돌연변이 때문에 그런지 우리 싸장님이 날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눈치였는데 말이지? 그런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정한솔 선생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수영이의 태도를 생각하면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리겠지. 확실히, 걘 입이 험하고 태도가 공격적이야. 하지만, 그건 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야. 자신을 보호하는 가시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가시 말인가요?”
“그래. 어린애의 외모에 성격까지 고만고만하면 누구나 만만하게 보지 않겠니?”
반박할 수 없다. 나도 처음엔 어른으로 대하기보다는 어린애로 대했으니까. 그래서 약간 실례를 했고. 내 침묵에 의사 선생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황금의 악마, 너도 알지?”
“당연히 알죠.”
유명한 이야기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굵직하게 다뤄지고 ‘르피너스의 장난감’ 소설에서도 나온 내용이니까.
황금의 악마, 소설 속 내용에 따르면 이름은 ‘루세트 레몬 고개르’.
‘어떤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이름을 가진 그 악마 군주는 주인공과 친분 있는 데몬 스폰 아이들을 추적해 왔고, 주인공이 애들의 행적을 말하는 걸 거부하고 엿을 날리자 싸웠다. 그 과정에서 인간을 현혹시켜 군대를 움직였고 여의도를 초토화시켰다.
내가 고갤 끄덕이자 의사 선생은 담담히 말을 계속 했다.
“그 때, 수영이는 가족을 모두 잃었어. 부모님이 나름 부자여서 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지. 너도 알겠지만 세상은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란다. 지켜줄 사람이 없는 고아의 재산을 노리는 몹쓸 인간은 많지. 그때 같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
“수영이를 어떻게 이용하려는 녀석들이 넘쳐났어. 사고로 어린 외모가 되면서 그 시도는 더 심해졌고. 걔 사촌들이 미르까지 와서 지랄했다니까? ‘여기는 믿을 수 없으니 이제 자신들이 돌봐주겠다’고. 그것뿐이라면 말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영이를 미르에서 빼낸 뒤, 외국 제약회사한테 실험체로 팔아먹으려고 했더라고.”
“...와, 정말인가요?”
“그래, 어린애가 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젊어졌으니까. 얼마나 경이로운 현상이야? 엄청 화제였지. 연수 빌미로 반 납치될 뻔한 걸, 당시 미르의 생도들과 교직원들이 막아냈어. 그 씨발년놈들.”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듯, 의사 양반-정한솔은 섬뜩한 얼굴로 이빨을 빠드득 간다.
와, 지옥은 다른 곳이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더니... 찬찬히 선생이 푸는 옛날 학창시절 썰을 들어보니 천애고아인 한새벽이나, 뜬금없이 이 세상에 떨어져서 고통 받는 나와 비교할 만한 씹창 인생이었을 거다. 물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은 아니겠지만.
말하면서도 어지간히 빡이 돌은 듯, 난폭하게 차를 운전하던 선생은 이내 날 바라보았다.
“...어찌됐든 간에 그런 새끼들에게 계속 시달리다보니 성격이 더러워지고 욕이 입에 붙을 수밖에. 안 그러니?”
“예, 차라리 연고 없는 고아가 나았을 것 같네요.”
“그래, 맞아. 최소한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건 안 달렸으니 말이야. 진짜 나 같으면 뭐라 하건 간에 그 년놈들을 죽이러... 아니, 아니지. 진정하자.”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하는 의사 양반. 그 뒤, 거칠어졌던 목소리가 아닌 이전의 목소리로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돌연변이 피해를 입기 전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어. 얼마나 착했는데? 아니, 사실 태도만 그럴 뿐 지금도 되게 착해. 고아원... 아니, 보육원에 매년 거액을 정기 후원을 하고 있으니까.”
“와,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러니 알바를 성실하게 하렴. 알겠니?”
당연하지. 주 5일 3시간 파트타임 일하는 미성년자에게 월 200만원씩이나 주는 소중한 고용주신데. 의사선생의 당부에 난 크게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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