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당사자는 모르는)과거의 인연들
내 옆에 있는 도시아가 그 소름끼치는 침묵을 깬다.
주눅 든 아이들과는 달리 가슴을 쫙 편 당당한 태도, 하지만 식칼을 쥔 그녀의 손은 핏기가 없을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그런 도시아의 말에 근돼 녀석은 이쪽으로 고갤 돌리고, 도시아는 희번덕거리는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주인이 잠시 없는 동안은 여길 차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주인이 온 뒤에 감당할 수 있겠냐고.”
주인? 여기에 주인이 있었나? 보육원에 대해 소개받을 땐 듣지 못했는데 말이지. 내가 살짝 의아함을 느끼는 사이, 권종진이라고 불린 근돼 녀석은 한 번 피식 거리며 웃곤 이쪽을 향해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주인이 있을 때 왔지 않나?”
권종진이 다가오자 앞을 있던 보육원 아이들이 주춤주춤 옆으로 물러서고 놈은 나와 도시아 앞에 섰다. 그리곤 날 내려다보며 비죽 웃는다.
“반갑다. 새벽아.”
“...네?”
“아, 기억상실이라고 했디? 선균이가 다~아 말해주었디. 내일 서울로 돌아간다고도 말해줬고. 우리 딱친구(단짝친구)인데, 가기 전에 한번 얼굴은 봐야지 안 갔서?”
오른손을 뻗어 시비 털듯 내 뺨을 툭툭 건드리는 근돼 녀석, 아직 철수가 토해낸 토사물이 손에 묻어있어서 내 뺨에도 그대로 묻는다.
...이거, 일부러 날 긁는 거네.
진짜 한새벽과 이 근돼 녀석 간의 정확한 관계는 모르겠다만 그리 좋지 않은 건 확실해 보인다. 하긴, 진짜 한새벽이 놈을 쫓아냈다는데 사이가 좋을 리가 없지. 그렇게 내 뺨을 툭툭 건드리던 놈은 옆에 있는 도시아를 향해 비릿하게 웃었다.
“우리 새벽이가 이렇게 됐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갔서? 정을 봐서라도 고아원을 좀 봐줘야디. 새벽아, 너무 걱정말라. 내가 다~아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끄고 남쪽에서 잘 지내라.”
근돼의 말에 침묵하는 도시아, 상황을 보아하니 이 보육원의 주인은 한새벽인 것 같다. 그리고, 도시아는 그런 ‘진짜 한새벽’이 건재한 척 해서 이 근돼를 쫒아내려고 했던 것 같고. 하긴, 5억이나 꼴아 박았으면 주인취급 받을 만하지.
...근데, 배신자가 있단 걸 생각하면 그런 허세는 통하지 않을 게 뻔한데 왜 한 건지 모르겠네?
그런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걸까? 그렇게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 근돼는 내 뺨에서 손을 떼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도시아를 향해 손을 뻗는다.
“기리니 이건 필요 읍지. 안 그러나 이쁜이.”
철수와는 달리 저항도 하지 못하는 도시아, 근돼는 아주 간단하게 도시아가 들고 있던 손을 비틀어 식칼을 빼앗아 바닥에 떨어트린다. 뭔가 트라우마가 있는 듯 덜덜 떨고 있는 도시아의 몸을 한 번 눈으로 훑고, 녀석은 보란 듯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모두 너무 겁먹을 필요 없다! 그 선배가 후배를 도우려고 하는 것뿐이라우. 응?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리고, 시아야. 넌 좀 있다가 방으로 와라. 히야, 그나저나 여기 진짜 많이 좋아졌구나 야! 삐까뻔쩍해! 이전이랑 완전히 다르구나! 이전의 선생님실이 어디냐?”
“아, 거긴...”
어느새 다가온 이선균의 안내를 받아 느긋하게 보육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근돼.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난 방금 전부터 느껴지던 이 ‘이상한 위화감’의 원인을 그제서야 눈치 챘다.
...두렵지가 않다.
각종 영화에서 희화화 혹은 만만하게 나오는 조폭, 하지만 현실에서 만난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다면? 전혀 웃기지 않다. 무섭고 두려워야 정상이다. 그래, 날것의 폭력은 무서워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두렵지가 않다.
허세가 아니다. 진짜다. 비유하자면... PC게임에서 나오는 ‘그래픽 쪼가리 잡몹’이 내 캐릭터를 위협하는 것처럼 같잖게 느껴진다. 그래, 아무리 모니터 안에서 떠들어봐야 그게 진짜 자신의 안위에 연결되지 않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대체 왜 이러지...?
저들이 위협이 안 돼서? 아니, 그건 아니다. 김철수만 하더라도 지금 편입반 미르 애들 못지않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런 철수를 가볍게 두들겨 팬 저 씨름선수 같은 녀석은? 저놈 하나만으로도 곱게 쭈그리고 있어야 하는데 데려온 똘마니들까지 합하면 가망이 없다.
내가 대범해서?
그럴 리가. 난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지 대범한 인간이 아니다. 불의를 싫어하긴 하지만 자신에게 손해와 위협이 가해질 것 같은 경우에는 기꺼이 외면할 수 있는 소시민. 그러니 이 상황에선 외면하는 것이 처신에 맞다. 그래, 그래야 하건만...
“하하, 너무 과한 친절인 것 같은데요?”
안쪽으로 사라지려는 녀석의 패거리를 향해 난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 아주 패시브가 된 밝은 음성으로.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글거리는 음성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리고, 우뚝 멈춰선 근돼-권종진은 천천히 고갤 돌려 날 바라본다.
“...뭐라?”
“정확한 상황은 듣지 못했지만 대충 들어보니 여기의 주인이 나라는 건 알겠어요. 이전까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나름 관리가 잘 되는 것 같던데...”
녀석이 내 뺨에 묻힌 토사물을 닦아내며 난 빙긋 웃었다.
“굳이 그쪽이 참견할 이유는 없을 것 같거든요.”
어처구니없다는 듯 굳어있는 근돼를 향해 난 충동적으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 와중에도 마음속 한 켠으론 엿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꼭 내가 2명으로 나뉜 기분이다. ‘이성적인 나’와 ‘감정적인 나’로. 일을 벌였지만 동시에 이후 수습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내 말에 장내에 다시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하, 하하하하. 이거 미치겠구만 기래.”
서있던 근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기 시작한다. 그래, 녀석 입장에선 좀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겠다. 진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반항하니까. 그렇게 잠시 처 웃던 놈은 이내 정색하고 날 다시 바라본다.
“새벽아, 아직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특히, 우리 같은 고아들은 보호해줄 사람 그러니까 ‘뒷배’가 필요하디.”
“뒷배라... 제가 그쪽보단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전 나름 출세가 보장된 미르 생도라서.”
“흐, 흐흐. 그래. 우리 새벽이는 고귀하신 미르 생도지. 난 보잘 것 없는 깡패 새끼고. 그래, 인정하디. 인정해. 기란디, 여기서는 그런 것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
고갤 주억거리곤 옆에 있는 똘마니에게 쇠파이프를 넘겨받는 녀석. 설마, 저걸로 날 때리려고 하는 건가? 살짝 긴장하며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하려는데, 놈은 고작 한 발자국 움직이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뻐-억!
내가 아닌 근처에 있는 보육원 아이를 향해.
녀석이 데려온 똘마니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긴 했었지만 그래도 진짜 죽을 정도로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래, 어느 정도 ‘선’이 있었다.
하지만, 놈은 달랐다.
진짜 가차 없이 전력으로 휘두른 쇠파이프, 대충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보육원 아이는 난데없이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목이 꺾인 채 옆으로 나뒹굴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녀석은 쓰러진 아이에게 다가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정말 집요하게 머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쇠파이프. 관자놀이를 맞았음에도 기절하진 않았던 듯, 쓰러진 아이가 허우적거리며 반사적으로 맞은 부위를 감싸지만 그 손은 연이어 내리꽂히는 쇠파이프를 막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했다.
퍼-억!
퍼-억!
퍼-억!
손뼈가 박살나고, 머리통이 움푹 파이며, 이어서 안와에서 안구가 떨어져 나온다. 똘마니들도, 그리고 보육원 아이들도 그 압도적인 폭력에 공포에 질렸다. 그렇게 4~5번 쇠파이프를 더 휘두른 후, 녀석은 들고 있는 쇠파이프를 옆에 던지고 넥타이를 풀며 웃었다.
“휴우, 이렇게 기강잡긴 싫었는데 말이디. 어쩔 수 없구만 기래.”
그 앞에 쓰러져 경련하는 하고 있는 아이, 아무리 봐도 저건... 죽었다. 머리통이 저렇게 오목하게 파이고 터진 채로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사람 하나를, 그것도 어린애를 이유 없이 패 죽여 놓고 녀석은 날 바라보며 웃는다.
“뒷배도 좋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이라우. 응? 머리가 깨끗하게 변한 우리의 도련님은 잊어버린 것 같지만.”
“...”
“자, 그럼 우리 위대한 새벽이는 이런 걸 막을 수 있는 기래? 아, 생긴 게 기집애처럼 변했는데 엉덩이 한 번 대주면... 내 생각해볼 수도 있갔어?”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웃는 녀석, 놈을 따라온 똘마니들과 이선균도 분위기에 맞춰 함께 웃는다.
그에 난 반박하지 않고 침묵했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 그것도 바로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아서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원래 세계에서도 이런 걸 경험해본 적은 없을 거다.
사람의 죽음
게임이나 만화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나오고, 보는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직접 보고 피부로 와 닿는 사람의 죽음은... 그 무게부터 달랐다. 그 눈동자에 서린 생명의 불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안에 서린 강렬한 삶의 욕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이 꺼질 때의 공포와 절망도.
“흐.”
그렇게 사람이 죽는 걸 보고나서야 좀 실감이 나고, 녀석이 두려워... 지진 않았다.
그래, 전혀 아니다.
‘두려움’은 정말로 단 한 톨도 없었다. 오히려 깨달았다. 저렇게 쇠파이프에 맞아서 손가락 부러지는 것보다, 광대뼈가 함몰 되는 것보다, 두 눈이 실명되는 것보다, 심지언 그대로 맞아 죽는 것보다...
그런 ‘하찮은 것들’보다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것-르피너스와 다시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두렵고 무섭다.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아니면 르피너스가 만들어놓은 가짜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삶
아니라고 되뇌여도, 잠을 자면서 ‘그것’을 목도한 무의식과 영혼은 다시 잠을 자려고 할 때마다 공포와 두려움에 발광한다. 차라리 자살하고 싶었지만 시도하는 순간, 눈알을 스스로 뽑아내려 할 때처럼 ‘내 안의 무언가’가 그 행위를 멈춰버렸다.
이어서 ‘직감에 가까운 공포’가 올라왔다.
그랬다간 정말 ‘영원히 그것과 함께 있을 것’이란 영혼을 부숴버릴 듯한 공포가. 그런 것들만 없다면 난 정말 행복하게 자살했을 것이다. 그것이 내 영혼에 새긴 공포와 절망의 흔적에 비하면 내 앞에 있는 근돼 녀석이 하는 신체적 위협은 하찮기 그지없다.
저들은 알까?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도, 각성제를 거의 치사량 직전까지 삼켜도, 스스로 손톱을 뽑아도, 달군 바늘로 손톱과 이빨 사이의 신경을 후벼 파도, 결국엔 서서히 눈이 감길 수밖에 없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체념할 수밖에 없는 그 절망과 공포를?
이 삶 같지도 않은 삶을?
“흐, 흐흐히힣. 아하하하핳!”
웃음이 나왔다. 가끔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나오던 그 비정상적으로 유쾌한 웃음이. 불구가 되는 것? 맞아서 병신이 되는 것? 죽는 것? 내가 매일매일 저항하다가 결국엔 패배하여 마주해야 하는 그 기묘한 공포와 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너무나도 하찮고 별 것 아니다.
“이야, 너무 심했나? 괜찮다. 네겐 안 그럴 테니까. 그래도 우리 친구니까.”
그렇게 내가 웃는 모습에 착각을 한 듯, 권종진이 썩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본다. 그 의기양양한 모습에 문득 질투가 솟구친다. 나는 너희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공포와 절망에 발버둥 치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고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우쭐 대고 있구나.
나 처지에 비하면 너희들은 천국에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
“하하핳! 당신, 참 재미있네요?”
경쾌하게 웃으며 난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근처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거 메이커라서 비싸게 주고 산 건데 깨지면 안 되니까. 돈 아껴야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나는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질투심에 비롯된 살의를 억눌렀다.
“휴우, 진정하죠. 진정해. 사람을 죽이면 안 됩니다.”
“하하, 외모가 기집애처럼 변하더니 진짜 기집애라도 된 기래? 여기는 사람 몇 명 죽어도...”
“당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에요. 스스로 하는 말이죠.”
허릴 숙여 도시아가 바닥에 떨어트린 식칼을 쥐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여기에 떨어진 후로 배운 것들 중 싸움에서 쓸 만한 건 별로 없다. 마법 쪽은 <연금 용액 제조> 밖에 없고, 전투 시간에 배운 건 태권도 품새와 서예린이 가르쳐준 주먹질 정도. 아, 동영상에서 본 손가락 서브미션도 있긴 하지. 가진 무기는 고작 식칼이니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 신체는 겉보기엔 가녀리지만 일반적인 성인 남자 정도의 근력을 지녔고, 형용하기 힘든 공포에 의해 무뎌질 대로 무뎌진 마음은 지금 조금의 긴장조차 없는 비정상적인 평정 상태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무한의 눈>이 있다.
<무한의 눈>을 펼치자 차가운 송곳이 뇌리에 박히는 듯한 통증이 미간을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기괴한 공포와 절망을 마주해야 하는 이에게 이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곤함을 날려버리며 정신과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운다.
이어서 몸을 각성시켰다.
서예린, 그녀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전체적인 그 신체 활동을 모방한다. 그녀가 보여준 방식으로 신경 신호를 보내고, 근육을 수축 이완시키며, 혈액을 펌핑하고, 호르몬을 분비하며, 마력을 돌려 움직임을 보조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따라했다.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어쩌겠어. 사람은 감정이 있는 짐승인데? 항상 이성적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지. 저 녀석이 같잖게 굴면서 내가 보고 싶지 않던 엿 같은 진실-난 반쯤 미친 병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만들었고, 그렇게 내 기분을 잡친 놈이 의기양양한 걸 보는 게 존나 꼴 받는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순식간에 끝나고 난 식칼을 쥔 채 내 앞에 있는 덩어리를 향해 웃었다.
“제가 사람을 죽이게 되면 진짜 괴물이 될 것 같거든요.”
“···”
“걱정 마세요. 죽이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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