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당사자는 모르는)과거의 인연들
6.
“하, 진짜 머리가 돌은...”
권종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난 가볍게 몸을 구부렸다가 하체 근육을 그대로 튕기며 달렸다.
목표는 가장 가까운 똘마니 1
내 움직임에 똘마니 1이 반응한다. 녀석이 움직이기도 전에 뇌에서 척추 신경을 지나 전기 신호가 팔과 다리에 흘러간다. 그리고 난, 놀랍게도 그걸 보면서 ‘생각’할 수 있었다.
3개월 전, 날 건드리는 애새끼들을 처리할 때 이후로 처음 쓰는 인지 가속.
그 때보다 그 인지력의 속도가 더 올라갔다. 그 덕분에 정보를 받아들여 냉정하게 분석하기 충분했고, 녀석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보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풀스윙
궤도와 타이밍을 파악한 순간, 내 근육 주위의 마력이 연동하며 움직임을 돕는다. 서예린이 보여줬던 신체 통제력을 흉내 내며 발을 움직이자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앞으로 쓰러지듯 구른다. 동시에 똘마니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흉흉한 소리를 내며 빈 공간을 가른다.
절묘한 타이밍
구르는게 조금 더 빨랐으면 놈은 쇠파이프의 궤도를 수정했을 터였고, 역으로 조금 더 느렸으면 그대로 쇠파이프에 내 머리통이 깨졌을 거다. 그렇게 달리던 속도를 살려 한 바퀴 앞으로 구른 뒤, 난 똘마니의 빈 가슴팍을 향해 허벅지를 튕기며 튀어올라 양손으로 식칼을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
정확하게 갈비뼈 사이를 가르고 이어서 흉강을 뚫고 왼쪽 폐를 찌른 식칼. 칼에 찔린 똘마니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로 일그러지고, 난 식칼의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과 그 밑동을 붙잡은 왼손을 강하게 밀어 ‘고기를 썰어내듯이’ 갈비뼈 사이를 베어냈다.
이어서 옆의 다음 타겟을 덮쳤다.
“이...”
돌발 상황에 다급하게 내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다음 타겟인 똘마니 2. 하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휘둘러서 반응이 늦다. 쇠파이프에서 느껴지는 질량, 타겟의 근육이 품어내는 힘의 흐름을 보며 난 휘둘러지던 쇠파이프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턱!
그렇게 내 왼손이 내리꽂히는 쇠파이프를 잡아챘다.
제대로 내리꽂히는 쇠파이프였다면 손목이 작살났겠지만 속도가 완전히 붙기 전에, 그리고 손잡이 아래쪽을 낚아채서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왼손으로 파이프를 잡은 순간, 잡아 당김과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그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가슴에 박아 넣었다.
똘마니 1에게 했던 것처럼 갈비뼈 사이로 정확히.
“...!”
찌른 식칼을 한 차례 비틀자 녀석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지고 이어서 몸을 움직이는 신경 신호가 한 순간 멈춘다. 이어서 난 오른손에 쥔 식칼 손잡이를 완전히 놓고 왼손아귀에 쥔 쇠파이프를 양 손으로 꽉 붙잡았다.
“흐.”
크게 손을 비틀어서 쇠파이프를 빼앗는 것과 함께, 난 온몸의 근육을 튕겨서 내 등 뒤에서 회칼을 들고 접근하던 똘마니 3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으적!
정확하게 턱에 클린 히트, 턱뼈가 부서지고 이빨이 박살나며 두개골 안에 있던 뇌가 바닥에 떨어진 두부처럼 두개골 안쪽과 부딪친다. 그에 똘마니 3의 뇌에서 척추로 가던 의식적인 신경 신호가 순간 끊기는 게 보인다. 들고 있던 회칼도 떨어트린다.
템포를 끊어선 안 된다.
휘둘러지고 있던 쇠파이프를 쥔 손아귀의 힘을 그대로 풀었다. 똘마니 3의 턱을 박살내면서 기세가 살짝 죽었지만 여전히 빠른 쇠파이프는 그대로 내 손을 벗어나 접근 중이던 똘마니 4를 향해 날아간다.
접근하던 똘마니 4가 기겁하며 날아온 쇠파이프를 피하는 동안 나는 몸을 돌렸다.
식칼을 가슴팍에 꽂은 똘마니 2, 칼에 찔렸다는 충격과 공포에 무릎을 꿇은 녀석을 향해 난 식칼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오른발로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근육에 단단히 붙잡혀 있던 식칼이 쑥 빠지고 똘마니 2는 가슴팍을 붙잡고 바람 빠지는 조용한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간다.
엄살이 좀 심하네.
똘마니 2가 느끼는 고통의 신경 신호는 지금 <무한의 눈>으로 과부화 되면서 발광하는 내 신경 신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참 나약하기 그지없다. 아니, 내가 비정상적인 것이겠지. 원래대로 라면 나도 저렇게 반응해야겠지만 난 뭔가 망가진 병신이니까.
쓰게 웃으며 난 다시 몸을 돌렸다.
동시에 빠르게 허릴 숙여 똘마니 3이 떨어트린 회칼을 왼손으로 줍고, 곧바로 내가 던진 쇠파이프를 피하느라 주춤거린 똘마니 4를 향해 질주했다.
달리면서 회칼을 쥔 왼손을 살짝 돌려봤다.
눈으로 읽었던 정보 그대로 식칼과 길이는 비슷하지만 폭이 얇아서 훨씬 가볍다. 아까 휘둘러지는 쇠파이프를 도중에 잡았던 것 때문에 손목 인대가 늘어나서 통증 신호가 올라오지만 움직임 자체는 별 차이가 없다.
단단히 대비하고 있는 똘마니 4
이전까지 똘마니들은 내 기습적인 공격에 허무하게 당했지만 이젠 다르다. 불과 4~5초 사이에 내 손에 3명이 쓰러진 것을 본 똘마니 4는 찔리더라도 어떻게 자기가 든 회칼로 내 몸에 칼을 꽂아 넣으려고 한다. 녀석의 근육과 신경이 그리 말해주고 있다.
그래, 똑똑히 보인다.
똘마니 4의 신체 신경망에서 전류가 튀는 것이, 그리고 그에 따라 근육이 수축-이완하며, 이어서 그 근육이 그려낼 움직임과 대략적인 힘까지 모두. 모든 각도에서, 모든 공간에서 보건데, 두터운 근육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힘은 명백히 나보다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나처럼 침착하고 정교하진 못해.
내 얼굴을 향해 찔러오는 똘마니의 회칼, 내가 쥔 회칼은 그런 똘마니의 회칼이 쥔 오른손을 노린다. 서로 합을 맞춘 것처럼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아래에서부터 위로 찔러오는 회칼이 똘마니 4의 손목을 뚫고 나오고 그 장면을 본 똘마니 4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흡!”
손목을 꿰뚫은 회칼 손잡이를 당기며 그 반동으로 품에 안기듯이 파고들어 오른손을 전력으로 뻗었다. 다시 갈비뼈 사이로 박히는 식칼, 한손으로 찌른 거지만 반동을 이용해서 그런지 이전처럼 깊게 박혔다. 추가로 달리던 운동량을 살려 고간에 니킥까지 꽂았다.
“쓰읍, 하아.”
식칼을 쥔 오른손을 놓고 녀석의 가슴을 밀치며 무력화 된 똘마니 4의 손목에 박힌 회칼을 뽑았다. 이어서 떨어진 놈의 회칼을 주웠다. 놈의 가슴에 박힌 식칼보단 회칼이 가벼워서 맘에 들거든.
이제 남은 적은 3명
좀 멀리 있기도 하고 신경 신호를 보니 곧바로 달려들 기미도 없기에 잠시 숨을 골랐다. 불과 6~7초 남짓한 짧은 격투, 이 짧은 순간만 본다면 나쁘지 않았다.
침착하고 날카롭게 곤두선 정신은 슬로우 모션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육체는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줬다.
3개월간 죽어라 헬스하며 근육을 움직인 게 도움이 많이 됐어. 꼭 리듬게임 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물론, 손가락만 움직이는 리듬 게임보단 훨씬 복잡하고 난해했지만.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면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뇌가 불타버리는 것 같은 감각, <무한의 눈>을 통해 억지로 쑤셔 넣어진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걸 복합적으로 판단하고 상황에 따라 계속 내 몸을 움직이기까지 하자 걸리는 부하가 엄청났다. 단순히 보는 것보다 7~8배 더 빨리 피로해졌다.
...이 상태로 내가 남은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까?
힘들다. 몇 번이고 아예 잠을 안 자보려고 몇 번 발악해본 덕분에 잘 안다. 난 이미 내가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의 80%를 이 짧은 순간의 움직임에 투자했다. 남은 20%로 3명을 제압한다고? 가능성 1% 미만이라고 본다. 이건 내가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삽질을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저 건방진 놈을 엿 먹일 수 있을까?
“...너.”
순식간에 4명이 더 쓰러지자 주춤거리는 나머지 불청객들, 놈들의 뇌 안에서 어떤 화학적인 신호가 퍼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방금 전까지 보육원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보였던 것과 똑같은 현상, 아마도 저건...
당혹과 두려움이겠지.
그에 반해 보육원 아이들의 변화는 정 반대다. 두려움으로 보이는 화학적 신호는 거의 사라졌다. 하긴, 겉으로 보기에 나는 상처하나 없이 순식간에 정면으로 과반수를 쓰러트렸으니까. 속은 죽을 맛이지만. 그렇게 상황을 놓고 궁리하다가 난 근돼의 품 안에 있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낫겠다.
“왜요. 내가 칼을 휘두를 줄은 몰랐나요?”
작게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능글맞은 존댓말, 내가 들어도 재수 없는 음성이다. 그렇게 내가 말을 걸자 근돼 녀석은 살짝 흠칫하더니 곧 빠드득 이를 갈며 살벌한 표정을 짓는다.
“미친 새끼... 곱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일을 벌려? 그리고, 마력 사용자가 사람을 죽여? 이게 알려지면 닌 끝인 기라!”
“그럼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이 쳐들어왔는데 대응을 안 합니까? 그리고, 안 죽였어요.”
식칼에 찔린 부위를 틀어막은 채로 ‘...식-쉬익’ 거리는 숨소리를 토하는 쓰러진 똘마니 4의 가슴을 발로 살포시 즈려밟아 주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심장과 간을 찌른 게 아니라 갈비뼈 사이로 폐와 흉강을 찢었죠. 그래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은 거고. 숨을 잘 못 쉬어서 헐떡거리고 있지만 병원에 가면 충분히 치료 가능해요. 물론, 이대로 계속 놔두면 호흡 곤란으로 죽겠지만.”
진짜다. 일부러 그걸 의도해서 찔렀고. 손에 쥔 회칼을 가볍게 돌리며 ‘자기 몸이나 걱정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지적해주자 녀석은 굳은 표정으로 양복상의 안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숨겨뒀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내가 그냥 연장만 가져온 줄 아나?”
품 안에서 나온 것은 낡은 권총, 총신 옆에는 촌스럽게 ‘백두산’이라고 적혀있고 탄창 안의 총알은 12개가 있다.
딱 꼬라지를 보니 북한 군부대가 해체될 때 시중에 흘러나온 총기다. 통일 당시, 정부가 최선을 다해 북한군의 무기를 회수했다고 하지만 선군정치를 표방했던 곳인 만큼 워낙 무기가 많아서 다 회수 하지 못하고 북쪽에 많은 총기가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어찌되었든 녀석이 보란 듯이 권총을 쥔 손을 흔들자 애들의 사기가 다시 가라앉고 다시 두려움의 감정이 피어난다. 그에 난 순순히 고갤 끄덕여 긍정했다.
“좋은 수단이네요. 마력 사용자도 총 맞으면 끝이죠.”
마력이라는 신비한 에너지원이 나타났지만 총은 여전히 최고의 개인화기다. 위키로 검색해본 바로는 세상에 있는 99%의 마력 사용자는 대부분 엘리트 체육인 정도의 피지컬 정도고, 총알 한 발 잘 못 맞으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녀석을 향해 난 빙긋 웃으며 미리 생각해뒀던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최소한 내가 죽으면 미르에선 복수는 해줄 것 같아요. 당신의 말대로 난 고귀한 미르 생도고 당신은 그저 북쪽의 볼품없는 깡패 새끼니까. 아닌가요?”
“하, 복수? 보옥~수? 이 새끼, 남쪽에서 지내더니 다 잊어먹었구만! 미르? 미르 생도? 여기서 죽으면 끝인 기라! 여긴 누가 죽어도 신경도 안 쓰는...”
“여기 증인이 이렇게 많은데요? 아, 설마 여기 있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나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
녀석의 말을 끊고 말하자 주위는 이전과는 좀 다른 침묵이 감돈다. 흠, 내가 이전에도 이렇게 혓바닥을 잘 놀렸나? 뭐, 상관없지. 그 실없는 생각에 실실 웃으며 난 <무한의 눈>의 범위를 줄였다.
광범위한 정보 파악은 포기하고 오직 녀석과 나, 그리고 사이만 보이도록.
확실히, 범위를 줄이니 부담이 훨씬 덜하다. 그렇게 남은 준비를 끝마치고 난 녀석을 보며 도발적으로 웃었다.
“뭐, 잡소리는 그만하죠.”
“...”
“한 번 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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