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인생 날먹, 쉽지 않죠.
1.
고아원에서 일요일 동안 푹 잔 뒤, 난 월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송파구로 귀환했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북쪽의 보육원이 대충 ‘폭력 조직’처럼 움직이고 한새벽이 거기의 두목이라는 것, 나도 그 두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까지. 흠, 나 한 몸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이지. 그냥 포기하기엔 그러니 도움 줄 건 줘야겠지. 결코, 5억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님. 아무튼 아님.
어찌되었든 3월의 첫 번째 월요일 아침 해가 밝았다.
“...대단하네요.”
오전 9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찌뿌둥한 어깨를 주무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르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 행정처, 그 앞에 있는 ‘대 운동장’. 고대 그리스 신전 양식과 현대적 디자인의 조화된 그 곳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운동장에는 생도들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객석에는 있는 각계각층의 높으신 분들과 방송국 카메라가 널렸다.
전부 미르의 개학을 촬영하기 위해, 혹은 축하하기 위해 온 인파다.
중고등학교의 개학치곤 스케일이 엄청나지만 이 세상의 한국에서 미르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마력은 앞으로 국민들을 먹여 살릴 산업이고 미르의 생도들은 그 분야를 이끌어나갈 엘리트들이니까. 나도 그 중 하나고. 30대 아저씨에서 미래 엘리트가 됐으니 어떻게 보면 신분상승이긴 하다.
물론, 이전으로 되돌아가 갈 수 있다면 무조건 되돌아가겠다만.
“음, 멋져요.”
주위를 둘러보며 난 고갤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까 전부터 느끼는 건데, 정말 선남선녀들 밖에 없다. 욕망에 따라 조금씩 외형이 변하는 마력 사용자답다고 해야 하나? 강당에 모인 생도들 모두 파란 짹짹이나 인스타등 SNS의 인플루언서 같이 외모가 훈훈해. 실물이라는 점에서 더 대단하다.
“와, 다들 잘생겼다.”
“얘, 쟤 한상준 아니야? 미르 재학 중인 연예인?”
아, 우리 편입반 쩌리들과 막 입학한 1학년 애들은 제외. 지난 3개월 간 어느 정도 환골탈태했지만 아직은 부족함이 많지. 덕분에 같은 생도복을 입었음에도 편입반 애들은 백조 무리에 낀 오리 새끼들처럼 확 눈에 띈다.
예외라면 흑인 누나, 부잣집 아가씨, 금발 양아치, 그리고 나정도?
자랑은 아닌데, 이 몸은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이지? 그래, 남자인데 예쁘단 말은 좀 그렇지. 내 취향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야. 어찌됐든 그렇게 주위 생도들을 보며 딴 생각하고 있을 때, 난 날 흘겨보는 이들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옆에 있는 애들을 툭툭 치곤 날 가리키며 수근 거리는 생도들
말은 들리지 않아도 보아하니 그닥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뭐,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내 처지에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단상 한쪽에 있던 진행자가 중앙의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제 16회 미르 개학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입학식이 시작됐다.
별 다를 건 없었다. 높으신 분이 나와서 뻔한 축사와 진행, 좀 다른 거라면 군대 연설처럼 애국심을 강조하는 말이 좀 더 많이 포함됐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면서 멍하니 서있으니 순식간에 개학식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신입생 대표인 김지혜 생도와 학생회 대표 지종훈 생도의 생도 선언문이 있겠습니다.
단정한 차림으로 단상 위로 올라가는 꼬꼬마와 덩치 좀 있는 생도, ‘우리 미르의 생도들은 정신적 함양과 어쩌구저쩌구...’의 후렴구를 대충 따라하니...
-그럼 이번 입학식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생도들은 각자 교실로 가주...
끝났다. 시작한 지 30분 정도 됐나? 방송국 카메라가 온 것 치곤 볼 것도 없고 참 시시하다. 뭐, 다들 잘 생겼으니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건가? 가볍게 입을 다시곤 애들 무리에 휩쓸려 편입반 교실로 가려고 할 때, 다른 반 생도가 이쪽으로 정확히 말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유달리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생도
굵은 골격과 190센티의 큰 키, 피부는 창백했고 양 볼은 푹 꺼져 있었다. 그 때문에 튀어나온 광대뼈가 얼굴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눈썹은 날카롭게 쭉 뻗어있고 푹 꺼진 눈꺼풀 아래로 먹물처럼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잘 생기고 화사한 애들이 넘쳐나는 미르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외모
얼굴에서 풍기는 저 삭막함은 그 첫 전투 수업 때 왔던 경찰 양반과 비슷하다. 가슴팍 명찰 옆엔 반짝이는 선도부 뱃지가... 그래, 왠지 낯익다 싶었는데 선도부 뱃지와 명찰을 보니 생각나네. 얘도 한새벽이 남긴 인연이다.
“메신저 목록에서 봤는데... 남진우 선배 맞으시죠?”
스마트폰에 있는 연락처 목록을 통해 알아낸 이름을 대며 먼저 아는 척을 하자, 내 앞에 선 그는 작게 고갤 끄덕이곤 내 가슴팍의 명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넌... 새벽이가 아닌 것 같군.”
“그런 말 많이 들었답니다.”
내 대답에 묘한 표정을 짓는 남진우, 주위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 대한 얘긴 대충 들었다. 잠시 나와 얘기 좀 하지.”
“지금요?”
“길게 얘기할 건 아니다. 교실로 가면서 잠깐 대화할 정도면 된다.”
“그 정도면 괜찮죠.”
고갤 끄덕이자 앞장서서 걷는 남진우, 내가 그 옆에 따라붙자 그는 본론을 꺼냈다.
“새학기 선도부 명단에서 네가 빠졌더군.”
“...제가 선도부였나요?”
선도부? 거긴 싫은데, 그런 내 대꾸에 그는 고갤 끄덕였다.
“전투 계열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은 생도는 무조건 선도부에 포함되어야 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만큼, 함부로 힘을 쓰지 않도록 높은 도덕성과 상명하복의 규율을 익혀야 하니까.”
납득이 가는 조치다. 마력의 영향으로 엘리트 체육인 피지컬을 가질 애들에게 무술을 가르쳐줬는데, 그걸로 아무나 줘 패고 다니면 안 되니까. 그나저나 선도부라니, 내가 갇혔던 그 건물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오네.
내 반응에 의아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난 고갤 저었다.
“저, 잘렸답니다.”
“잘려?”
“이 몸으로 어떻게 전투 국가 공무원 진로를 갈 수 있겠어요? 올해 잘렸다고 편지가 오더라고요.”
“...그도 그렇군.”
3달 동안 본래 체중의 거의 1/2(15kg)을 더 늘린 극한의 벌크업을 했지만 아직도 계집애들이랑 비슷한 내 깡마른 몸을 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남진우, 이내 그는 표정을 고치곤 정면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연다.
“힘든 점은 없나?”
“흠, 솔직히 많죠. 그 중에서 가장 심한 게 돈 문제에요.”
“돈?”
“전투 계열 장학생에 잘리면서 돈줄도 끊겼고 지금까지 받은 장학금과 품위 유지비를 다 뱉어내라고 하더라고요.”
내 말에 남진우의 표정이 굳어진다.
“...부당하군. 단순 변심 혹은 인성 부적합 문제로 그만두는 게 아닌 생도로서 교육을 받다가 벌어진 사고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건데 장학금을 반환하라니.”
“안 그래도 이의신청 넣었답니다.”
처음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얼마 안가 생각이 바뀌었다. ‘미르에서 사고로 이 꼴이 된 건데 봐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의신청 넣었지. 좀 약은 거 안다.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난 편입반 애새끼를 두들겨 팬 일종의 소동까지 일으켰으니까.
하지만, ‘이런 몸이 된 것도’ 그리고 ‘정신이 불안정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부 미르탓 아닌가?
장학금에서 짤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인 ‘신체와 정신 문제’는 전부 <마력 돌연변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몸에 발생하게 된 그 돌연변이는 내가 듣기로 미르의 실습 과정에서 일어났지. 그러니까 100% 내 잘못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미르의 잘못도 있다는 거지.
...나도 안다, 좀 억지라는 거.
근데, 돈에 관련된 일을 해봐라. 그것도 책임져야 하는 돈의 단위가 억이면 진짜 절박하게 변한다. 찔러봐서 되면 1억이 그냥 사라지는 거고, 아니면 그만인데 한 번 시도하는 게 옳지. 안 그래?! 어찌됐든 총무과에 민원을 넣으니 검토한다고 했는데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대답에 남진우는 작게 미간을 구긴다.
“가능할 것 같나? 웬만해선 돈을 안 주려고 할 텐데.”
“정 안 되면 언론 플레이를 좀 하려고요.”
“언론 플레이?”
“불쌍한 천애고아, 미르 측의 부주의로 벌어진 사고,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에게 지금까지 준 장학금을 반환하라는 미르... 방송국에서 꽤 좋아하는 주제 아닐까요? 될지 안 될 진 모르겠다만. 하하.”
언론 플레이, 내가 있었던 세상의 대한민국에선 아주 잘 통하는 수단이었지. 죄 없는 멀쩡한 사람 하나 쓰레기로 만들어 죽게 만들 정도로. 하지만, 시궁창이 된 이 세상 한국은... 솔직히, 잘 모르겠네. 지금의 한국은 원래 있던 세상의 멕시코 수준의 살벌함이 있어서 말이지.
그런 내 답변에 남진우는 발걸음을 멈추곤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거기까진 하지마라. 윗선에 찍히면 좋지 않아. 특히나 우리 같이 북쪽 출신은 더더욱.”
“좋지 않단 건 알죠. 하지만, 마냥 포기하기엔 1억이란 숫자가 너무 큰걸요.”
우리 같이 북쪽 출신이라, 얘도 북한에서 넘어온 얘였구나. 어쩐지 좀 삭막하게 생겼거니... 아니, 이거 북쪽 출신 차별인가? 어쨌든 발걸음을 멈추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남진우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너... 정말 한새벽이 맞나?”
“글쎄요. 절 한새벽이라고 부릅니다만 저도 모르겠네요.”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지금의 넌... 내가 알던 한새벽이랑은 너무 다르군. 너무 무모해.”
“그런가요?”
“그래, 내가 알던 한새벽은... 아니, 아니지.”
한숨을 내뱉으며 그는 등이 보이도록 몸을 돌렸다.
“나도 힘 써 보겠다.”
그 말을 끝으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남진우, 그 뒷모습을 보며 난 팔짱을 낀 채 턱을 쓰다듬었다. 이제 20살도 안 됐을 애인데 되게 어른스럽네. 어찌되었든 간에 도움을 준다니 나로선 감사할 따름이다.
“잘 풀리면 케이크라도 사가지고 찾아가야겠네요.”
습관처럼 나오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난 조용히 인파에 섞여 교실을 향해 움직였다.
2.
미르의 커리큘럼은 크게 저학년, 고학년일 때로 나뉜다.
3학년까지는 평범한 중고등학교처럼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가 4학년 때부터는 대학교처럼 과목을 선택해서 듣는다. 몇몇 필수과목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과목 선택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대학교로 치자면 사실상 학과를 결정하는 거나 다름없고, 뭘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취업 방향이 정해진다.
마력이 있는 현대 판타지 세상에서도 취업 걱정하는 게 그렇긴 하다만 어찌되었든 간에 그래... 어쨌든 1년 동안 들을 수업인 만큼 신중하게 골라야 하고 그렇기에 미르에서는 대학교 수강신청처럼 수업을 한 번 ‘찍먹’ 해보라고 일주일간의 여유 시간을 준다. 일종의 수강신청 변경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난 일찌감치 내 진로를 ‘약물 제조’ 쪽으로 정했다.
의 효과로 그쪽 마법 계통을 뚫었고 덕분에 우리 싸장님에게 ‘이 시발 놈, 완전 날로 먹네?’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그럼 당연히 날먹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지. 싸장님의 가이드를 받아 난 ‘마력 화학 I’, ‘마력 약리학 I’, ‘미궁 식물학 I’ 수업을 신청해뒀다. 그래, 이렇게 들으면 깔끔하게 끝나는 거였다.
하지만, 인생은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더라.
“그래서 엿 됐다고?”
“예...”
“하하! 꼬시다! 그래! 인생 날먹이 쉬울 줄 알았냐 새꺄!”
미르 수업이 끝나고 온 알바, 싸장님이 던져준 약재를 손질하면서 오늘 겪은 부조리에 대해 푸념했는데 우리 싸장님은 위로는커녕 내 사정을 듣곤 즐겁다는 듯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에잇, 싯팔!
전투 장학생 취소 통지, 그리고 지금까지 지급된 장학금과 품위 유지비의 반환 요청.
여기에 대한 내 대처는 간단했다. ‘내 자의로 전투 계열 장학생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미르 측의 사고로 인한 여파로 어쩔 수 없이 부득의하게 나가는 건데, 왜 장학금 반환을 해야 하느냐?’라고 항의해서 깔끔하게 돈 안내는 거. 그래, 그게 끝이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건지 ‘전투 계열 장학생’으로 복귀가 되어버렸다.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 남진우가 힘을 쓴 게 꼬인 것 같다. 아니, 신체도 폐급에 정신도 훼까닥 하는 애를 써먹겠다고?! 더 짜증나는 건, 그 소식을 난 선택 과목 변경이 끝난 금요일 밤에서 스마트폰 문자로 통보 받았다는 거다! 진짜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지!
‘전투 계열 장학생’은 국가 공무원이 되는 만큼 아예 따로 커리큘럼이 있다.
한 마디로 들어야 하는 ‘필수 수업’이 더 생긴다. 당연히 내가 신청한 선택 수업과 시간이 겹쳤고, 그렇게 겹친 선택 수업은 필수 커리큘럼이 우선되어 자동으로 취소됐다. 그래도 수강신청 변경이 가능한 첫째 주 중이었다면 대처했을 텐데, 끝난 뒤에 온지라 즉각 대처를 못했다.
뒤늦게 알고 어떻게 고쳐보려고 해봤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자를 확인하고 총무과에 가서 항의를 했지만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왜 불만이냐.’라는 식의 답변 밖에 받지 못했고, 난 피눈물을 흘리며 겹치는 수업 담당 교관들을 만나 빈 시간대의 같은 강의를 듣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 결과는 뭐... 인간관계 파탄 돌연변이가 얼마나 엿 같은지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저를 향한 공격이에요. 변경 사항 메일이 온 시간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취소도 못하게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 끝난 뒤에 왔다구요!? 으으...”
“원래 세상이 그렇단다. 돈이 걸리면 행동이 많이 비열해지지. 특히, 아무런 힘도 빽도 없는 사람에겐 더더욱. 다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해라. 그래서 추가로 듣게 된 수업이 뭐냐?”
이어지는 질문에 난 오늘 확인한 시간표를 떠올리며 답했다.
“미궁 고고학 I, 이종족 언어학 I, 물품 감정 I, 미궁 환경 I, 전투 I, 윤리학 I 이요.”
“와, 하나 같이 놀랍도록 쓸모가 없는 것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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