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4화 (34/350)

8화. 송파구의 지하에는...

5.

흑대남 아저씨의 식사 대접은 일종의 바비큐였다.

가로세로 2m는 될 법한 커다란 불판을 정원에 놓은 뒤, 부엌에서 통 쇠고기를 가져와 서걱서걱 썰어서 그 위에 올리고 화끈하게 굽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기 냄새가 퍼지자 먼저 올라갔던 서예린도,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던 거대 비숑도 다가와서 같이 식사했다.

“신기하네요.”

“그렇지? 하지만, 맛은 평범할 거야. 내가 그리 잘하는 게 아니라서. 사실, 마법 요리 중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지.”

팔을 걷어붙인 채, 고기를 구우며 쾌활하게 웃는 서강. 그런 아저씨가 썰어준 주사위 모양 소고기를 난 멍하니 바라보았다. 접시 위에 놓인 초록빛 불꽃에 휩싸인 채 타오르는 소고기, 하지만 그리 뜨겁지는 않았다. 손바닥을 대보니 약간 따뜻한 정도. 손으로 만져도 된다.

마법 요리

20세기 말, 인류가 단순히 재료를 굽고 끓이고 삶고 튀기는 것을 넘어서 물리, 화학적 분석을 통해 ‘분자 요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이 소설 속 세상의 요리는 미궁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힘-마력을 이용해 ‘마법 요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한 마디로 마법으로 장난쳐서 만드는 요리다.

마력 사용자 자체가 굉장한 고급 인력인데다가 정교한 마법 능력과 화학에 대한 지식까지 필요하기에 극소수만 할 수 있다. 덕분에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르의 생도들 중에서도 이 분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어서 나도 알게 됐지만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걸 이렇게 먹게 되네.

포크로 고기를 찍은 후, 소금을 묻히고 곧바로 입에 넣고 씹었다. 몇 번 씹자 고기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며 짭짤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입을 가득 채운다. 음, 스테이크 맛 크림을 먹는 것 같은 느낌. 특이하긴 한데, 솔직히 맛 자체는 평범하다. 수백 만 원 주고 먹기엔 별로, 하지만...

“재미있네요.”

“그렇지? 이건 재미로 먹는 거야. 자주 먹을 건 아니지, 아주 미약하지만 마법 오염 잔류가 있거든. 많이 먹으면 부정적인 <마력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어.”

숨을 내뱉자 입에서 초록색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확실히, 평범한 요리에선 볼 수 없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겨울에 호~ 하면서 입김을 내뱉는 것과 비슷한, 하지만 훨씬 강한 중독성이 있다.

“하하하!”

옆에서 들려오는 서예린의 웃음소리, 바비큐로 또 소 반 마리를 쳐묵쳐묵 한 거대 비숑은 자기가 용인 것처럼 코와 입에서 양 초록색 불꽃을 ‘푸화하학!’ 뿜어내며 서예린과 장난치고 있다. 다행히 잔디에 붙이 붙긴 하지만 타거나 하진 않네.

그렇게 나름 즐겁게 ‘마법 요리’라는 초~고오급 사치품을 먹은 뒤, 아저씨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까지 대접해줬다.

서예린은 따라오지 않았다. 커피를 싫어한다나 뭐라나. 개인적으로 날 껄끄러워 하는 것도 있었고. 솔직히, 나도 저런 부담스런 근육 덩어리 아저씨와 얼굴을 맞대야 하다니 따라오긴 싫었다.

근데, 어쩌겠냐.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기엔 좀 분위기가 그랬다. 그렇게 난 부엌 탁자에 흑대남 아저씨와 마주보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아니, 반 취조를 당했지.

“호오, 그 강수영의 물약상점에서 일한다고?”

“예.”

“대단하군. 강수영 연금술사는 제약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말이야. 귀쟁이 녀석들의 기술에도 밀리지 않거든. 많이 유능한가보군.”

“아뇨, 운이 좋았죠. 지인 추천이라서 들어간 겁니다.”

“운이 좋다기엔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아닌 것 같은데.”

부드럽게 웃으며 커피를 홀짝이는 흑대남 아저씨. 아, 진짜 부담스럽기 그지없네. 언제쯤 끝나려나? 어색하게 웃으며 나도 커피를 홀짝이자 아저씨는 결심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드디어 끝나는 건가?

“좋아, 아까 전에 무례한 짓도 했으니 그냥 식사 정도로 퉁쳐선 안 되겠지. 선물을 하나 주겠네.”

“선물이요?”

“그래, 선물. 싫은가?”

“음, 저야 좋죠.”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나? 다 좋아하지.

하지만, 나이 먹어보면 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공짜로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전부 목적이 있다. 미끼 상품이거나 혹은 함정이라는 걸. 특히, 이 ‘인간관계 돌연변이’를 얻고 나선 더더욱 의심이 든다.

날 바라보는 흑대남 아저씨를 향해 난 어색하게 웃으며 질문했다.

“근데, 왜 이렇게 잘 해주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런가?”

“예, 방문한 것 치곤 좀 과하게 환대받는 느낌이라서요. 제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가진 이 분위기 때문에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좀... 의심부터 가거든요.”

내 대답에 흑대남 아저씨는 피식 웃으면서 오른손을 뻗어 식탁 옆에 기대어뒀던 마법봉를 들어올린다. 흉악한 물리 마법봉을 든 그 모습에 주마등과 함께 내가 ‘괜히 말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 흑대남 아저씨는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 그러한 <마력 돌연변이>를 가졌다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하지만, 내게 그 정도 꺼림칙함은 별거 아니라네. 내가 사역하는 것들에 비하면 말일세. 한 번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마력의 감각과 함께 마법봉에 달린 흑요석 덩어리에서 불길한 핏빛 광채가 번뜩인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내가 재빠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살짝 뒤로 물러난 가운데, 흑대남 아저씨가 부엌의 한 구석을 가리킨다. 그리고, 가리킨 궤적의 허공에서 까만 점이 하나 생기더니 풍선이 팽창하듯 커진다.

“어어어?!”

왠지 불길한 느낌에 내가 당황하는 동안, 빠르게 커진 검은 점은 이내 직경 1.5m는 될 법한 커다란 검은 구체가 되었고. 이어서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그 검은 구체의 영역이 사라지며 그 안에는 어느새 어떤 것이 있었다.

작고 추악한 존재

인간형 몸체, 130cm 정도 될법한 신장에 등에는 붉은 날개가 달려 있다. 송곳니가 난 아가리엔 악의에 찬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비늘로 덮인 정수리에 돋아난 커다란 외뿔은 꼿꼿한 남성기처럼 외설스럽게 돋아 있다. 염소의 눈처럼 가로로 찢어진 동공은 잔학하게 번뜩인다.

동시에 관자놀이가 살짝 지끈거리는 것과 함께 빈 텍스트창이 떠오르며 글자가 하나씩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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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 소환 (Call Imp)

레벨 2 소환/악마

시전 소음 : 2

주문 소음 : 0

최대 SP : 100

최소 소모 마력 : 1

설명 : 지옥의 구덩이에서 하급 악마를 불러내는 주문, 소환자의 정신력으로 소환물의 정신을 속박하는 기능이 있기에 소환된 악마는 소환자의 명령에 따른다. 이 주문으로 악마 여러 마리를 동시에 사역할 수 있지만, 시전자의 정신력을 더 빠르게 소모하기에 주의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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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옆에 떠오른 텍스트창을 다 읽기도 전에 동굴 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낮은 음의 소음을 뱉어내는 서강 아저씨, 그 음성과 함께 흑요석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광채가 아저씨의 빈 왼손에 빨려 들어가 뭉쳐져 붉은 사슬이 되고 그 추악한 존재에게 날아간다.

-끼. 끼에에엑!

괴물이 움직이기 전에 붉은 사슬이 그 작고 추악한 것의 머리 위에 씌워지고 속박한다. 잠시 동안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던 그 악귀가 뒤늦게 머리의 쓰인 사슬을 붙잡고 발악하지만 소용이 없다. 이내, 그 추악한 괴물은 반항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얌전히 섰다.

뒤늦게 텍스트창을 다 읽은 뒤, 나는 고갤 돌려 서강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저.. 저걸?”

“밖의 사람들이 임프라고 이름 붙여진 악마일세. 가장 비천한 계급의 악마들 중 하나지. 종류를 보니 붉은 임프군.”

내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하자 서강은 빙긋 웃으며 설명한다.

텍스트를 읽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참 묘했다. 설마, 내가 악마라는 걸 보게 될 줄은... 어찌됐든 소환된 악마는 확실히 거부감이드는 존재였다. 외형만 봐도 잔악해 보일뿐더러,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보는 것 같은 꺼림칙함 또한 겸비했다.

“악마... 입니까.”

“그래, 악마. 지옥의 기운이 물리적인 실체를 얻어 형상화 된 존재들. 이것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 지니고 있다네. ‘지성체의 고통과 파멸’, 그 수단만 다를 뿐 어떤 악마도 그 궁극적인 목표는 똑같지. 아주 사악해.”

설명이 끝나고 흑대남 아저씨는 붉은 쇠사슬을 쏘아냈던 왼손을 쥐어짜듯 움켜쥔다. 그와 함께 악마의 머리통에 쓰인 쇠사슬이 꽈악 조여든다. 이어서 머리통을 중심으로 악마의 몸에 금이 ‘쩌적쩌적!’ 가더니 이내 그것은-.

-끼이이익!

칠판을 긁는 듯한 기성을 내지르며 터진다. 쏟아지는 악마의 체액과 살점들 아저씨가 손을 쓴 듯, 내게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부엌이 완전히 엉망이 됐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 냄새가 풍기는 끈적끈적한 붉은 오물과 살점이 사방에 튀었다.

...청소는 가능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몇 초, 흩어진 그 살점과 오물들이 기화되는 것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냄새는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무런 일 없었다는 것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는 부엌, 불과 몇 초 만에 생긴 그 괴리감에 내가 두 눈을 끔뻑이자 서강 아저씨는 빙긋 웃는다.

“악마는 물리적 실체가 없네. 이렇게 현실에 나오는 것들은 마력으로 이뤄진 가짜 육신이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죽으면 시체나 흔적 따윈 남기지 않아.”

“그... 그렇군요.”

“난 소환술과 강령술 쪽에 조예가 깊네. 한 마디로 말하면... 밖에선 쉽게 보이기 힘든 마법들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지. 밖의 사람들은 대충 내 마법을 보곤 악마술사(Demonologist)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하더군.”

거대한 마법봉(둔기)를 내리며 말하는 흑대남 아저씨, 내가 침을 꿀꺽 삼키자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갤 저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딱히 해를 입힐 생각은 없으니까.”

“...”

“자네를 대하는 게 이상하다고 해서 보여준 거네. 악마, 그리고 언데드들에 비하면 자네의 분위기 정도는... 솔직히, 그래도 자네가 꺼림칙하긴 해. 하지만, 내가 모르는 종류의 악마라고 생각하면 대충 넘길 정도는 되는군.”

“하, 악마에서 안 벗어난 건가요?”

“내 딸내미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방금 소환한 저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지옥의 고위 악마를 보는 것 같다고. 그것들은 정말 무섭지.”

...맙소사, 다른 사람이 날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내가 방금 전의 임프라는 악마를 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란 건가? 아니, 고위 악마라면 한술 더 뜨겠지? 좀 씁쓸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런 꺼림칙함을 풍긴다면 다른 사람이 내게 보내는 혐오가 좀 이해가 된다.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구기자, 서강 아저씨는 빙긋 웃는다.

“자네를 그렇게 느끼는 이들은 극히 소수일 걸세. 자네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숨겨진 듯한 것’이거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알 수 없는 꺼림칙함 정도만 느끼겠지.”

“그렇군요...”

“그래도 리브라소의 희생과 비슷하지 않은 걸 감사하게 여기게나. ‘씻을 수 없는 죄악’ 수준이었으면 정말 자네를 죽였어야 했으니까.”

말을 하면서 그 ‘씻을 수 없는 죄악’에 대해 생각하는 듯, 마법봉(둔기)를 꽈악 쥐는 흑대남 아저씨. 어느새 얼굴은 불교의 인왕상처럼 일그러져있었고 그 이마에는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나있다. 진짜 인왕... 아니, 한마 바X의 등장인물 같네. 쓰읍, 절로 공손해지는 외모다.

근데, 그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도대체 뭐 길래 저런 반응이지?

“근데, 그 씻을 수 없는 죄악이란 게 뭡니까?”

“말 그대로 씻을 수 없는 죄악일세.”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 길래요?”

“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하지. 나중에 보게 되면 알게 될 걸세. 보면 알게 될 걸세. 그 어떤 악마보다도, 그 어떤 죄악보다도 끔찍한 것이니까.”

“그렇군요.”

더 물어보다간 큰일 날 것 같기에 적당히 끊었다. 대충, 모든 NPC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돌죽의 <사랑 희생>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지. 어찌되었든 흑대남 아저씨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은 후, 다시 마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짓는다.

“어찌되었든 그렇다네.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잘해주는 이유? 단 한 가지 이유일세. 밖에서 우리 예린이를 잘 좀 봐달라는 거야.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이런 건 별것 아니지.”

“...제가 말입니까? 예린이는 굉장히 잘나가는 애인데요.”

이해할 수 없는 부탁, 서예린은 좀 고독하게 놀긴 하지만 나 같은 왕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서강 아저씨는 아니라는 듯이 고갤 젓는다.

“아니, 예린이는 밖에 적응이 잘 안됐네. 지식으로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아직 미숙하지. 간신히 외출을 허락받은 정도야. 그러니 부탁하는 걸세. 아마 친구 하나도 없을 걸? 아닌가?”

“에, 뭐 그렇긴 하죠.”

“자네가 친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 걔가 거부하면 힘들겠지만. 그 아이가 워낙 야성적이라.”

사실, 저도 친구 하나 없는 찐따입니다만... 그것도 서예린과 비교가 불가능한 개찐따. 물론,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그냥 어색하게 웃을 뿐. 흑대남 아저씨는 웃으며 몸을 돌린다.

“따라오게, 내 창고를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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