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선도부 할 거야 안 할 거야!
2.
선도부 탈퇴를 결정하고 난 뒤, 난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미르 선도부 탈퇴 방법’을 검색했다.
다행히 정보의 바다-인터넷엔 나와 같은 이가 있었고 탈퇴 방법에 대해 자세히 써 놨다. 탈퇴 과정은 간단했다. 미르 선도부 건물의 접수처에서 탈퇴한다고 하면, 전문 상담사가 나와 탈퇴 이유에 대한 약간의 문답이 이뤄지고 행정처에서 허가가 떨어지면 끝이었다.
그런 이유로 난 오후 수업이 끝난 뒤, ‘미르 선도부’로 향했다.
추가로 미르의 ‘선도부’에 대해서도 웹서핑해봤다. 어차피 곧 탈퇴할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궁금해 졌거든. 솔직히, 그 이전부터 좀 평범하진 않다고 느끼긴 했다.
마주치는 선도 부원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살벌함’
그냥 외모로도 미르의 보통 생도와 선도 부원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히 고등학교 선도부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지. 그뿐이랴? 방학 때, ‘학교 폭력’에 저항하면서 한 번 끌려가면서 본 선도부 건물만 봐도 이상하다.
서로 연결된 4층짜리 작은 쌍둥이 건물
그 2개를 통째로 선도부가 쓰고 있다. 그 안에는 민간인 사무원도 일하고 있었고, 지하엔 정신병원에서 쓸법한 구속구나 삼엄한 감옥까지 있었다. 중고등학교 선도부치고는 너무 살벌했다. 그렇게 인터넷을 좀 뒤져본 결과, 선도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미르의 선도부는 일종의 ‘준 사법 집행 기관’이었다.
경찰청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미르의 교사 자격으로 머물고 있으며, 그 밑에 배치되는 선도 부원은 경찰처럼 ‘사회의 일반적인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작용’의 위해 헌신한다. ‘합법적으로’ 무력 집행과 검문을 사용할 수 있었고, 사건이 터질 시 수사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그냥, 준 경찰이다.
그리고, 그런 선도부 애들은 100% ‘국가 전투 공무원’을 진로로 잡고 있는 아이들로만 뽑히고. 그에 대한 썰도 많이 검색됐는데, 거의 대부분 생도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버렸다는 살벌한 이야기들이고 그 때문인지 무섭다는 내용이 많았다.
“흐음.”
어찌되었든, 난 그런 선도부에 도착했다.
따로 외장을 하지 않은 직육면체 철근 콘크리트 건물, 지어진지 얼마 안 되는 미르의 건물답게 세련되어 보였지만 건물의 유리창 숫자가 별로 없어서 꼭 감옥을 연상케 했다. ...어쩌면 그냥 내 소감일지도 모르겠네.
나 말고도 다른 선도부 애들(건장한 체격에 빡빡머리 or 스포츠머리라서 분간이 쉬웠다.) 몇몇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기에 나도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미르 선도부입니다. 학원 폭력 신고 때문에 오셨나요?”
정문 안내 데스크로 향해 앞에 서자 30대로 보이는 민간인 여성 안내원이 친절하게 입을 연다. 역시, 내가 선도부원이라고는 생각 안하네. 하긴, 지금 내 분위기는 선도 부원과 거리가 머니까. 그에 난 고갤 저으며 준비해뒀던 말을 꺼냈다.
“음, 아뇨. 선도부 탈퇴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만.”
“선도부... 탈퇴 신청이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안내원, 그에 난 씁쓸하게 웃으며 내 학생증 ID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준 카드로 신원 조회를 마친 듯, 잠시 뒤에 안내원은 경악하며 날 바라본다. 반응을 보아하니 구면인 사이였던 듯하네.
“...맙소사, 한새벽 생도였나요?”
“예, 돌연변이 피해로 인해 이런 꼴이 되었답니다.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보시는 것이 편할 거예요. 아예 과거의 기억이 없거든요. 외형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고,”
“그, 그렇군요. 사고에 관한 소식은 들었죠.”
천천히 고갤 끄덕이는 민간인 안내원을 향해 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안타깝게도 전 선도부를 할 만큼 건강하지 못합니다. 보다시피 신체적으로도 말이 안 될 정도로 허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미숙해졌죠. 실제로도 방학 중에 일을 벌여서 한 번 잡혀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탈퇴 신청을 하러 온 겁니다.”
“그... 죄송한데, 선도부 탈퇴는 제가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거든요? 선도부 활동은 ‘전투 장학생’과 연동되는 것이라서 더 윗선의 허가가 있어야 한 답니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안내원은 내 시선을 받아내며 계속 답변했다.
“먼저, 한 시간 가량의 질의문답을 해야 해요. 그 뒤에 그 자료를 토대로 선도부 탈퇴 허가가 떨어지죠. 지금 상담가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셔서, 더 많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럼 내일 다시 올테니 신청만 넣어주세요.”
내 대답에 고갤 끄덕이며 알겠다는 안내원. 그래,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탈퇴 신청을 하고 곧바로 나가려고 하는데-.
“한새벽?”
건물 안쪽으로 향하던 이들 중 하나가 날 보곤 멈칫하더니 이름을 부른다. 체육복 차림 남자애, 딱 봐도 ‘나 선도부요.’라고 말하는 두발과 외모를 지녔다. 내가 바라보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내 위아래를 훑어본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실물을 보니... 정말 많이 바뀌었군.”
“하하, 예.”
“빨리 지하 연무장으로 가라. 아무래도 넌 기초 훈련부터 받아야 할 거니까.”
자기가 할 말만 한 뒤, 쌩 사라지는 누군지도 모를 녀석. ...아오,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만 쌩 하고 사라지네. 그냥 나도 쌩까고 돌아갈까?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하지만, 그러자니 좀 걸린다.
어찌되었든 간에 난 좋든 싫든 한새벽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녀석이 남긴 인연들을 계속 외면할 수도 없다. 고아원에서처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그냥 쌩까고 도망치는 건, 평판에 좋지 않지. 수습도 안 되고.
“하아, 어쩔 수 없네요.”
그래, 아는 사람들에게... 아니, 한새벽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만 하고 가자. 한숨을 내쉬며 난 남자애가 사라졌던 옆쪽 쌍둥이 건물 통로를 향해 움직였다.
3.
한국 남자로서 태어났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군대’
이 소설 속 세상으로 떨어지기 전, 난 오래 전에 군대를 다녀왔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훈련소에 갔다가 재수 없게 ‘전경’으로 차출되어 끌려갔지. 지금 내 기억 속 사람들의 얼굴이 죄다 먹칠이 되어 있어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충 2000년대 중후반이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내가 갔을 당시에 전경은 내무 부조리가 판치는 곳이었다.
미싱, 매미, 가스, 삥뜯기, 잠깨스, 구타, 사제음식 금지, 샤셋(샤워셋팅), 인간침대, 기수열외... 한 여름, 아스팔트 복사열로 지글지글 끊어대는 도로 위에서 데모하는 아저씨들이랑 실랑이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옥 같은 내무생활보다는 나았지.
어우, 소설 속세계로 떨어진 지금 생각만 해도 토 나오네.
생각만으로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버텼는지 정말 장하다. 장해. 아무튼, 그 ‘좆같은 경험’들 덕분에 반대편 쌍둥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온 순간 ‘이곳은 좆같은 곳이다.’라는 것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
앞쪽 건물이 감옥과 기타 업무를 위한 곳인 것 같았다면 뒤쪽인 여기는 생활공간.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 ‘선도부는 선도부만의 기숙사가 따로 있고 거기서 생활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 설비 자체는 깔끔했지만 삭막한 이 분위기, 꼭 출동 나가고 텅 빈 막사 같다.
거기에 복도 쪽에서 뭔가 두들기는 소음과 함께 쩌렁쩌렁 성난 고함소리가 들리는데-.
“끄으응...”
‘너희들이 지원해서 왔는데 이런 거 못 버텨?’, ‘부모님 얼굴 어떻게 볼래?’, ‘울어? 찌를 테면 찌르던가. 찌른 놈이 병신이니.’, ‘남자새끼 아니냐? 이것도 못해?’정도. ...아니, 싯팔? 사운드까지 전경 분위기를 내냐? 욕설+구타 사운드라니. 이거 진짜 PTSD오네.
현기증에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짚고 숨을 골랐다.
나중엔 선임이 돼서 지랄하는 쪽이 되었지만, 진짜 잊고 싶은 기억이다. 이런 거나 잊을 것이지 왜 이런 쪽은 선명하냐. 한숨을 내쉬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참 짜증나게도 나보고 가라고 한 장소-지하 연무장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당장, 런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왕 들어온 거 끝을 봐야지. 그렇게 결심을 다잡고 소리가 들려오는 지하 쪽으로 향하자-.
“후려쳐! 막아! 후려쳐! 막아! 막고 후려쳐!”
미르 전투 체육장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지하 공간이 나타난다. 그 규모만 실내 농구장 4개가 붙어있는 수준, 그 체육장에 50여명 정도 되는 애들이 체육복을 입은 채 빼곡하게 짝을 지어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기존 선도 부원과 이번에 들어온 1학년 신입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 이렇게 2명이 한 조로 1:1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아아아악!”
그 살벌함이 전투 I 수업 못지않았... 아니, 훨씬 더 했다. 신입과 기존인원이 쇠파이프 같은 3단봉으로 대련하는데, 당연히 중1 나이의 신입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었다. 근데, 그 구타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뻐억! 뻐억! 뻐억!
“흐으으윽...”
대부분 피부엔 피멍이 들어 있었고, 어떤 애는 주저앉아서 부러진 팔을 붙잡고 질질 짜고 있는 애도 있었다. 이빨이 부러져서 입에 피가 질질 흘리는 애도 있네.
“울어? 힘들면 지금이라도 그만 둬라! 북쪽 거지새끼로 그냥 살아!”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의 살벌함에 내가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동안, 한 선도 부원이 부러진 팔을 잡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신입생에게 신랄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그 독설에 신입생은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훌쩍임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다시 선임에게 복날의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찾은 썰엔 미르 선도부에 북쪽 애들이 유별나게 많다고 했지?
이해는 간다. 은행에서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다한들 연 2000만원의 수업비가 부담되는 이들은 많을 테니까. 그런 애들에게 전투 장학생은 매력적이겠지. 그리고, 그런 애들은 대부분 가난한 북쪽-전(前) 북한에서 온 애들일 테고. 쟤들은 진짜 죽기 살기로 버티는 걸 거다.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 보니 미르 선도부가 전경 같다는 말은 최소다.
내무생활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훈련만 봐도 이건 전경보다 더하다. 전투 관련 수업에서 선도부 애들이 항상 압도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이유를 알겠네. 신입생 때부터 이런 짓을 반복하니 살벌하고 칙칙해지지. 온순한 성격의 나로선 진저리가 나는 광경이다.
런하자.
저렇게 교육에 바빠 보이는데, 작별인사가 가능할 리가 있나? 나중에 평판이 좀 안 좋게 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게 맞을 것 같아. 아니, 솔직히 저런 걸 보고 있기가 싫어. 더 이상 있는 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그렇게 애들이 눈치 채기 전에 재빨리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지만-.
“거기 너! 신입생 같은데 왜 이렇게 늦었어! 이 새끼야!”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던 최선임으로 보이는 덩치가 문 밖에 있던 날 보곤 사납게 소리친다. ...망할, 여기 온 걸 들킨 이상 이대로 도망치면 좀 그렇겠지.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난 다시 몸을 돌려 체육장 입구까지 걸어갔다.
체육장 위쪽의 강렬한 할로겐 불빛에 내 모습이 드러나고 날 향해 소리친 덩치의 미간이 찡그려진다.
“백발? 너, 이번 신입 선도 부원 명단엔 없는 것 같은데 누구냐?”
“한새벽이라고 합니다.”
“한..새벽?”
“예, 기억을 잃어서 모르겠지만 예전에 선도 부원이라고 해서 여기에 와본 겁니다. 그... 인사를 하러 왔는데, 너무 바빠 보여서 그냥 가려고 했죠.”
내 대답에 뚜벅뚜벅 걸어와서 날 내려다보는 덩치. ...몇 주 전에 북한에서 봤던 깡패 두목을 연상케 하는 근돼 체형인데 그놈보다 더 업그레이드 됐다. 사각턱과 굵직한 승모근, 체격이 2m는 넘어 보인다. 와, 그냥 곰이다. 곰. 절로 겸손해지네.
그렇게 내 앞에 온 덩치는 잠시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들어와라.”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자기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걷는 덩치. 이거 무시하고 그냥 도망치기엔 좀 그렇고... 어쩔 수 없네.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난 살벌한 욕설과 구타음이 울려 퍼지는 체육장을 가로질러 덩치의 뒤를 따라 걸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