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선도부 할 거야 안 할 거야!
6
통제되지 않는 무력은 위험하다.
모든 국가 정부가 동의하는 진리 중 하나다. 그러한 이유로 국가는 그들의 무력 집단-군인과 경찰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한편 동시에 ‘상명하복’을 중요한 미덕으로 가르친다. 이는 전투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은 미르 생도들 또한 마찬가지다.
선도부에 들어가서 타의 모범을 보이고, 무력으로 다른 생도들의 일탈을 제지하면서 힘쓰는 방법도 익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상명하복’을 익히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부조리한 명령’이라도 말이다. 겉으로는 부조리 같은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론 다르다. 신고를 당한 생도는 가벼운 징계를 받는 선에서 끝나고, 부조리를 신고한 생도는 오히려 따돌림 당한다. 그리고, 직원들이 은연중에 그런 일을 부추긴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생도들은 퇴출된다.
1~3학년의 저학년이라면 몰라도 4학년 이상 되는 시점에서 퇴출 조치는 여유 없는 생도에게 있어서 사실상 사형선고다. 그 동안 받았던 장학금과 품위 유지비를 토해내야 하는 것도 막막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동안 열심히 배운 것들이 쓸모없어진다.’는 사실이다.
직업 군인과 비슷하게 전투 진로를 택한 이들이 배우는 것은 사회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들, 그걸 필요로 하는 집단은 대한민국에서 경찰과 군인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전투 장학생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공무원은 불가능하다.
그럼 생도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그 동안 배운 것들에 미련을 버리고 다른 과목을 처음부터 익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투 능력의 소요가 많은 다른 나라로 가서 취직하는 거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번째는 힘들고, 두 번째는 목숨까지 위험하다.
그렇기에 선도부 부장 황우진은 ‘내키지 않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쳤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태연하게 품 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물곤 연기를 뻐끔거리며 피우는 한새벽. 그 모습에 너무 강하게 때렸나 걱정했던 황우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담배를 펴? 그것도 훈련장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그의 말에-.
“예, 전 미쳤어요.”
한새벽은 명랑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150cm가량 될까? 이제 갓 들어온 12~13살 남자 생도보다 가녀린 몸의 전(前) 동료, 일어선 한새벽의 몰골을 본 황우진은-.
“...”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사고로 병신이 된 후배를 더 때리기는 싫었지만, 신입생들 앞에서 선도부의 치부를 곱게 떠들게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썼었다. 돌진하는 동시에 오른손에 쥔 3단 진압봉을 한새벽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는데-,
움직이고 나서야 ‘너무 강하게 진압봉을 휘두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반쯤 반사적인 행동이었기에 평소 말 안 듣는 후배를 두들겨 팰 때의 강도로 휘둘렀는데, 저 가녀린 몸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손에서 올라오는 뼈가 박살나는 느낌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고.
태연하게 누워서 담배를 피는 걸보니 괜한 걱정이구나 생각했건만 웬걸?
정면에서 얼굴을 보니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왼쪽 광대뼈가 완전히 함몰되면서 그 여파로 눈은 찌그러져 안액이 줄줄 흐르고 코와 입에선 피가 쏟아진다. 그래, 얼굴 한쪽이 사실상 완전히 박살났다. 그런데도 한새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에서 전자 담배를 떼곤 보란 듯이 그걸 까닥이며 웃는다.
“그래서 이걸 피는 거예요. 대마초 오일! 이건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든요. 무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랍... 아, 말실수를 했네요. 지금 피는 건 대마초 오일이 아니네요. 하도 대마초 오일만 펴서... 으음, 카악 퉷! 으, 이빨이 도대체 뭔 개가 부러진 건지. 원...”
말을 하던 도중, 왼손을 입에 대고 침을 뱉는 한새벽. 그 왼손바닥에 우수수 나온 이빨 조각들을 보곤 살짝 얼굴을 구기며 투덜대더니 이내 그것들을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확인한 황우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은 진짜 미쳤다.
영체(靈體)라는 개념이 있는 마력 사용자인 만큼, 일반인에 비해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만 그래도 그 고통은 고스란히 느낀다.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선도 부원이라도 저런 상처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설령, 이를 악물고 버티더라도 얼굴에 표정이 드러난다.
한새벽의 표정은 고통을 인내하는 모습이 아니다.
굳이 묘사하자면... 약에 취한 마약 중독자처럼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에 황우진은 물론이고 다른 선도 부원들조차 섬뜩함을 느끼며 경계하는 가운데, 한새벽은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곤 명랑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간다.
“아무튼, 그 말 자체는 인정할 게요. 좆같은 현실인 만큼,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는 것.”
“...”
“근데, 전 이미 당신은 상상하지도 못할 개떡 같은 일을 겪고 있답니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렇게 두들겨 맞고 설교까지 들어야 하다니... 더럽게 짜증나요.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죽여선 안 되죠. 그럼 내가 지는 거니까. 아, 정말 좆같은 인생이에요.”
한숨을 푹 내뱉는 한새벽, 그에 황우진은 정신을 차리곤 삼단봉을 움켜쥐었다.
미친놈의 말을 더 들을 필욘 없다. 그나저나 놈의 상처가 커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면 양산형 포션으론 힘들 수도 있다. 혹여 치료를 위해 억대 단위의 수제 포션이라도 사용해야 한다면... 자신의 평가가 떨어지겠지. 그러니 제압해서 의료실에 던져놔야 한다.
“할 말은 그게 끝인가?”
“아뇨, 좀 많이 남았는데요?”
“쯧.”
태연하게 대꾸하는 한새벽, 그에 가볍게 혀를 찬 뒤 황우진은 한새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나저나 위쪽에서의 요구대로라면 저 미친놈을 그래도 몇 달 동안은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매우 피곤할 것 같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황우진은 한새벽을 살짝 스쳐 지나치며 그 뒷덜미를 향해 삼단봉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폭발적인 속도’로 튀어 오르며 한새벽이 오른손에 쥔 전자 담배를 그의 목을 향해 뻗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격, 기절시키기 위해 목덜미를 노리면서 자연스럽게 오른손에 쥔 삼단봉을 왼편으로 뻗었고 그 여파로 오른쪽 반신이 무방비로 드러났다.
“!!”
기묘한 궤도를 그리며 인체의 급소 중 하나인 목젖을 찌르는 전자 담배 막대, 그 과정에서 전자 담배가 바스러졌지만 타격은 확실하게 들어갔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통증에 황우진은 그대로 꼴사납게 모래사장을 나뒹구는 가운데, 황우진을 지나쳐 도약했던 한새벽은 부드럽게 착지한다.
“...”
“...”
그 모습을 다른 선도부 아이들이 경악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한새벽은 태연하게 피가 철철 흐르는 코와 입을 양 손으로 감싸곤, 몸을 돌려 목 부분을 붙잡고 쓰러진 황우진을 향해 주절주절 말을 이어나갔다.
“사고를 겪으면서, 전 특이한 능력을 깨우쳤답니다. 그 덕분에 마법의 한 부류를 깨우쳤죠.”
말이 안 되는 개소리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고작 7개월가량, ‘마법’은 그런 짧은 시간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영감이 합쳐져야 간신히 입문이 가능한 기술, 설령 입문하더라도 주문 하나를 그 짧은 기간에 깨우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한새벽 또한 양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반 쯤 미친 사람처럼 설명을 주절거린다.
“딱히 살상 능력은 크지 않은 마법이에요. <연금술>이거든요. 물질을 조작해서 바꾸는 것, 하지만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르죠!”
“...”
“마력은 물질에 영향을 끼쳐요. 가장 쉬운 예로 미르 생도들의 외형을 들 수 있죠. 본인의 욕망대로 스스로의 외형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가니까요. 한 마디로 ‘술자의 마력’에 가장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은 ‘술자의 신체’라는 거예요.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
“당연히, 물질을 조작하는 <연금술>에서도 술자의 육체는 ‘최고의 변환 효율’을 가진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싸장님이 괜히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땋아서 기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위급할 때, 뜯어서 쓰기 쉽게 하려고 관리한 거겠죠. 후후.”
묻지도 않은 말을 즐겁다는 듯이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한새벽, 그 동안 예상치 못한 타격에 쓰러졌던 황우진은 한손으로 목을 붙잡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전과 똑같은 무덤덤한 표정
하지만, 거기에 서린 ‘살벌함’은 남달랐다. 실제로도 황우진는 매우 화가 나있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이렇게 당하다니? 게다가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니 더더욱 빡친다. 마음 같아선 진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싶지만...
그랬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 참아야 한다.
적당히 몸을 두드려 박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다시 삼단봉을 꽉 쥐는 가운데, 한새벽은 코와 입을 가렸던 양손을 조심스럽게 뗀다. 그 양 손 안엔 피가 가득 고여 있었는데-.
“...?!”
그 손안에 고인 피가 빠르게 변하기 시작한다.
붉은 색이 아닌 유별나게 강조되는 ‘독살스런 자줏빛’으로. 그 예상치 못한 변화에 황우진이 살짝 멈칫한 가운데-
“그리고, 이렇게 제가 쓸데없이 주절주절 거렸던 이유는··· <연금술>을 쓰는데 부족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답니다.”
백발의 소년은 활짝 웃으며 지금까지 감고 있었던 두 눈을 떴다.
왼쪽 광대뼈가 무너져 내리면서 왼쪽 눈은 찌그러져 안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오른쪽 눈은 멀쩡했다. 번들거리는 흰자위, 그 중심에서 타오르는 자줏빛 홍채. 그 기괴한 눈빛을 보는 순간 황우진은-
심장이 옥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흔히들 ‘안광(眼光)’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눈에서 빛이 나올 리가 없다. 안광이란 것은 전부 반사광이다. 그냥 ‘눈을 좀 크게 부릅떠서 희번덕 해 보이는 것’ 뿐, 그런 반사광을 보고 광기니 뭐니 하면서 공포를 느끼는 이들을 보며 그는 내심 멍청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맹세컨대 저건 반사광 따위가 아니다.
“시아아아악!”
도마뱀이 날름거리는 듯한 기괴한 쇳소리를 내뱉는 한새벽, 그 기괴한 안광에 압도당했던 황우진도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전력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진심을 담아서 삼단봉을 휘둘렀다.
광대가 무너져 내린 것을 생각하면 능히 머리통을 터트려버릴 만한 위력, 그에 맞춰서 한새벽도 양 손에 맺힌 자흑색의 액체를 허공에 흩뿌린다. 그리고-
-펑!
뭔가 터지는 소음과 함께 자색의 연무가 주위를 뒤덮었다.
7.
고체-액체-기체
자연 상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질의 세 가지 상(相, Phase). 압력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 물질이 다른 상의 형태로 이동하기 위해선 ‘열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궁에서 흘러나와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된 ‘마력’이라는 에너지는 그 열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다.
알바를 하면서 배운 연금술적 지식을 이용해 난 손에 쥔 액체를 기체로 바꿨다.
액체에서 기체로, 순식간에 부피가 2천배 가량 늘어나면서 그 액체는 폭탄이 터진 것 마냥 굉음(轟音)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농도가 확 낮아졌음에도 선명하게 ‘불쾌한 자주색’을 띤 기체가 순식간에 지하 체육장을 뒤덮었고...
“우웁... 우웨에에엑!”
푹 썩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냄새를 수십 수백 배 증폭시킨 듯한 지린내와 악취가 무방비의 생도들을 강타했다.
독 계열 3위계 마법 <악취 구름>
독마법이 천대받는 돌죽에서 유일하게 사랑받는 독마법, 초급 마법이면서 범위 혼란을 걸 수 있다는 이점을 지녔기에 마법사뿐만 아니라 전사/암살자들도 웬만하면 배우는 꿀 마법이다.
그만큼, 효과는 사기적이다.
강력하지만 독 저항이 없는 몹들이 나타나면 이걸로 다 정리 가능하지. <악취 구름> 날리고 근접 계열은 독저항템 끼고 달려가서 칼질, 법사는 원거리에서 다른 마법으로 요격해서 처리. 이 돌죽과 비슷한 소설 속 현실에서도 그 효과는 비슷하다.
말 그대로 ‘지독한 악취’, 기체에 섞인 마력은 육신의 감각 기관이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자극을 뇌에 전달한다.
살짝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위가 미친 듯이 경련하며 그 안의 내용물을 입 밖으로 쏟아내고 눈과 코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콧물을 짜낸다. 평형감각 또한 맛이 가서 바닥에 쓰러지기 일쑤, 생리적으로 버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마법서로 본 ‘과거의 환상’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이거에 당했거든.
“우웨에에엑! 웨에에엑! 으으윽! 살려! 우웨에엑!”
“어디! 웨엑! 웨에에엑!”
얼굴에 그 액체 원액을 뒤집어쓴 덩치는 그대로 지면에 처박힌 채 쉴 새 없이 속의 내용물을 게워낸다. 옅은 기체에 휩쓸린 애들도 정상은 아니다. 토를 쏟아내는 녀석, 벽과 부딪치는 녀석, 바닥에 엎어진 채로 달리기를 하고 있는 녀석...
“...”
그렇게 펼쳐진 혼란의 도가니 중심에서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액체가 기체가 되는 과정에서 그 부피 증가의 충격파에 휘말려 쓰러졌지만, 터지기 전에 숨을 참고 있었고 육안(肉眼) 또한 꼬옥 감고 있었기에 별 다른 피해는 없-.
“우웁...”
지 않았다.
내 가슴속에 있는 르피너스의 선물이 발광한다.
감히, 자신이 선물한 능력을 딴데다 썼냐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심장이 미친 것처럼 펄떡거리면서 누군가 내 가슴팍을 연이어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온다. 이어서 실패한 마법의 반동-‘마법 오염’의 끈적끈적한 느낌이 내 몸을 뒤덮는다.
“웩!”
그 충격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검붉은 피를 한 번 토해낸 후, 살짝 이를 악물었다.
이 소설 속 현실에서 <악취 구름> 마법은 돌죽과 똑같이 3위계 마법. 현실과 게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들, 고작 1레벨의 마법사가 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 절대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쓴 건 ‘온전한 마법’이 아니다.
뜯겨져 나간 내 영혼의 파편들이 발광하면서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냈을 때, 난 그 과정에서 남아있는 인간을 초월한 영감으로 어떻게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때, 내가 내린 해답은 <악취 구름>를 쓰는 것. 연이어서 영감이 날뛰며 <악취 구름>을 어떻게 내가 사용하게 만들 수 있을지 분석했다. 공기 중의 질소를 변환시키는 것이 아닌 술자의 피를 사용해서 변이를 용이하게 하고, 만드는 독의 효과를 제한함으로서 댓가를 줄였다.
그렇게 폭발적인 영감을 이용해 만든 누더기가 이 체육관을 뒤덮은 것의 정체였다.
새로운 마법이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거지로 되는 수준의 것은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르피너스의 선물은 그것을 추궁하고 있는 거고.
참 웃기는 새끼다.
쓸데없이 살인을 저질러서 날 범죄자로 만들려고 하다니? 그게 재미있냐? 난 저런 애새끼에게 화풀이 할 정도로 썩은 어른은 아니다. 쟤도 위에서 시킨 대로 해야 하는 고작해야 불쌍한 꼭두각시야. 박살내봤자 엉뚱한 화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좆되기 싫거든.
힘겹게 무릎을 짚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관찰자의 눈>에 의지해 나뒹구는 애들을 뚫고 구름이 퍼지지 않은 체육관 밖으로 황급히 나왔다. 혹시나 뒤따라 나와서 날 두들겨 패버릴 수도 있으니 문은 꼬옥 닫아줘야지.
“끄으으음...”
그 뒤,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에너지 드링크를 수십 캔을 들이킨 것처럼 펄떡이는 가슴팍, 귓가에 심장 소리가 또렷하고 코와 귀에서 피가 질질 흘러나온다. 왼손으로 벽을 짚은 채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난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잠깐의 전화 연결음이 끝나고...
“...살려주세요. 선생님.”
살려줘요, 한솔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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