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43화 (43/350)

11화. 깝치지마. 독마법(연금술)은 신이고 나는...

“나로선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가 힘드네. 나도 일단은 미르 쪽에 고용된 입장이라서 말이지. 교장님이랑 아는 사이긴 해서 도움을 요청해 볼 건데... 정 뭣하면 그냥 1억은 나중에 천천히 갚겠다고 해. 지금 네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저번에 말했잖습니까. 저 은행에서 돈 더 빌리는 거 못한다고. 게다가 그거 말고 갚아야 할 돈만 5억이 넘어요.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는 게 맞죠.”

“둘이서 뭔 소리야? 5억은 또 뭐고.”

사정을 알고 있는 정한솔 선생과는 달리 싸장님은 내 채무에 대해 모른다. 그에 난 간단하게 설명했다. 내가 사실 북쪽 출신이고 기억을 잃기 전에 거기 고아원 친구들의 처지 개선하는데 5억을 끌어다 썼다고. 덕분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그에 싸장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어찌되었든 싸장님에겐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제가 괜히 마법으로 난동 부려서...”

“죄송하긴, 좀 과격하긴 했지만 잘했어.”

내 사과에 고갤 저으며 전자 담배를 다시 무는 싸장님. 그 뒤, 싸장님은 이빨로 전자 담배를 문 채 연기를 뱉어내며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해. 발악해야지. 널 죽이려는 새끼한테 곱게 당해주면 안 돼. 뭔 짓을 해서라도 물어뜯고 지랄해서 역으로 조져버려야지.”

이어지는 싸장님의 대답이 무척 사납다. 문득, 정한솔 선생에게 지나가듯 들었던 우리 싸장님 과거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아인데다가 자기 몫의 재산을 가로채고 해외로 팔아넘기려는 사촌들과 싸웠다고 했지? 그걸 생각하니 저런 태도도 이해가 가네.

어찌됐든 내가 고갤 꾸벅이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고, 그걸로 내 머리통을 가볍게 ‘탁!’치면서 말한다.

“진짜, 넌 느낌은 좆 같은 새끼지만 하는 짓은 내 마음에 쏙 들어. 그래, 좋아. 내가 한번 나서주지.”

“...네?”

크게 연기를 내뱉은 뒤, 싸장님은 곧바로 옆의 정한솔 선생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한솔아, 지금 아주 좆같겠다? 아무리 잘못이 없다고 해도 니가 괜찮다고 풀어준 아이가 사태를 벌였으니 너도 타격이 좀 갈 거 아니야.”

“...좀 골치 아프긴 하지. 어찌되었든 난 미르 소속이니까. 새벽이 말을 들어보면 선도부에서 억지로 두들겨 패는 걸 정당방위를 한 건데, 내가 정신 케어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추궁하더라.”

“그럼 내가 나서도 되냐?”

씨익 웃으며 말하는 싸장님, 그에 정한솔 선생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어떻게 하려고?”

“넌 그냥 장학금 반환하고 끝내라고 했지만 그래선 절대 안 끝나. 미르 내부에서만 일어난 사건이라면 몰라도 이능력 수사대 쪽에서도 알았어. 미르 내부에서 끝낼 수 있는 단계는 한참 지났다는 거지.”

쥐고 있던 전자 담배의 전원을 끄고 가운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싸장님은 고갤 절래절래 젓는다. 그리곤 가볍게 입술을 핥으며 나와 정한솔 선생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삭였다.

“미르 쪽, 그러니까 이번 일을 꾸민 실무자 쪽도 난감할 거야. 장학금 반환-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일을 벌였는데 일이 엉뚱하게 거하게 터졌으니까. 사건의 전말이 다 밝혀지면 녀석도 난감해지겠지. 어떻게든 생도의 마법 오남용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할 거야. 어찌되었든 간에 선도 부원들이 마법으로 약간이나마 피해를 입었으니까.”

“...”

“그리고, 그 일을 벌인 건 네가 담당한 환자니까 당연히 네 커리어도 좀 흠집이 갈 테지. 요 녀석은 이능력자용 소년원도 없으니 감빵에 갈 확률이 농후하고.”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하는 싸장님, 정한솔 선생도 이해한 듯 표정이 딱딱하게 변한다. 아니, 그나저나 내가 깜빵이라니? 이세카이까지 와서 죄수 되긴 싫은데 말이지... 나와 선생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싸장님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미 이건 어떻게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어. 이번 일을 꾸민 미르 담당자, 혹은 미르와 다이 다이를 떠야 할 시간이란 거야.”

“하... 망할, 어떻게 하려고?”

한숨을 내뱉으며 묻는 정한솔 선생, 그에 우리 싸장님은 양 팔을 벌리며 활짝 웃는다.

“우리도 좆같이 일을 벌여줘야지. 그놈들이 선도부 인맥으로 선동과 날조를 하니, 나도 한 번 마련해본 인맥 좀 써볼까 하고.”

“...너 인맥 같은 거 없잖아? 맨날 연구실에 처박혀서 물약이나 만들고 있고.”

“야, 너 나 무시 하냐?”

선생의 말에 싸장님은 기분 나쁘다는 듯 대꾸하더니, 스스로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팡!’하고 내리친다.

“난 내 분야에서 ‘슈퍼 을’이야! 내가 납품하는 물품들을 기다리는 대기업이 몇 갠데? 게다가 보유 자산 수천억 원 대 부자기도 하지! 이러면 인맥이 안 생길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동안 소소하게 명절 포션 선물 보내면서 잘 관리해 왔지!”

“...그랬냐? 몰랐네.”

“이게 사업가 마인드라는 거다, 이년아.”

‘너 잘났다.’는 듯이 말하는 정한솔 선생을 향해 ‘그럼 몰랐냐?’라는 듯이 대꾸하는 싸장님, 그녀는 나와 정한솔 선생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아무튼 그래서 난, 내 친구와 내 직원... 아니, ‘예비 연금술 노예’를 위해 발 벗고 나서줄 수 있다고.”

“뎃?!”

예비 연금술 노예? 아니, 난 찬성한 적 없는데요?? 그런 내 시선에 ‘깜빵에 간 뒤에 범죄자 낙인찍힐래? 아니면 몇 년 간 내 노예가 될래?’라고 되묻는 싸장님. 당연히, 노예죠. 헤헤. 내가 비굴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가운데, 정한솔 선생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으음, 괜히 미르 쪽이랑 크게 척지게 될 것 같은데...”

“그럼 다른 좋은 방법 있냐?”

말문이 막힌 정한솔 선생을 보며 싸장님은 내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쩍!’ 소리와 함께 내가 고통에 몸을 비트는 가운데, 싸장님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새끼 덕분에 나도 이번 사건에 연관되게 됐어. 요놈에게 단순한 마력 투사-조작 정도가 아니라 <연금술>에 가까운 기교와 마법 몇 가지를 가르치긴 했으니까. 독을 흩뿌린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해도 정황상 의심받을 수밖에 없지. 날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인맥을 쓸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할 거면서 왜 물어보니?”

“네가 협조하면 더 원활하게 할 수 있으니까.”

싸장님의 말에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갤 끄덕이는 정한솔 선생, 그에 싸장님은 가볍게 손가락을 뚝뚝 소리를 내게 꺾으며 날 바라보았다.

“일단, 네가 썼던 마법은 내가 가르쳐준 걸로 하자. 호신용으로 말이야. 실제로 난 비슷한 걸 쓸 수 있으니까.”

“아, 넵.”

“그리고 나중에 마법 사용자 등록해라. 그 마법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 귀찮더라도 숨기지 말고. 대충 ‘살상용 물질 변환 마법 사용자’ 자격으로 하면 되겠지.”

싸장님의 엄포에 난 고갤 끄덕였다. 득실득실한 제약 때문에 등록하지 않고 몰래 뻐팅기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어찌되었든 내가 고갤 끄덕이자, 싸장님은 품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며 메모장을 켠다.

“좋아. 일단, 니가 생각해둔 언플 내용부터 말해봐라. 자료도 있으면 내놓고.”

3.

날이 밝자마자 강수영은 당당하게 미르를 방문했다.

“교장님은 현재 만나실 수 없는...”

“비켜, 새끼야.”

그녀가 향한 곳은 중앙 행정처에 위치한 미르 교장실, 대한민국의 유일의 마력 사용자 양성기관의 교장은 미리 연락하지 않는다면, 설령 연락을 한다고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나름 거물이었지만 그녀는 교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제지하려는 교직원들을 쳐내며 그녀는 당당하게 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이네요, 원용 아저씨.”

“음? 수영이냐?”

교장실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보고 있는 30대 중반의 양복 차림의 남성,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실제론 40대 후반의 장년의 나이인 정원용이었다. 난처한 표정으로 동동 구르는 민간인 교직원을 뒤로 한 채, 강수영은 교장실 문을 닫았다.

“웬일이냐? 전화도 하지 않고 방문하다니? 게다가 이렇게 일찍?”

“전화 하려고 했는데, 밤중이라서 전화하긴 그렇더군요. 그리고, 해야 할 다른 일도 있어서 전화할 틈도 없었고.”

뚜벅뚜벅 걸어가 소파에 앉는 털썩 앉는 강수영, 무례하게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교장이나 강수영 모두 개의치 않았다. 교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따라 그녀 앞 탁자에 놓았고, 강수영은 들고 온 서류 가방을 옆에 내려놓은 뒤 나른하게 하품하며 교장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렇게 보면 세상 참 좋아졌어요. 미르... 아니, 우리가 있을 땐 미르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어리바리 한 중사 교관 아저씨는 교장이 됐고 훈련생이었던 난 사장님이 됐네?”

“훗, 그렇게 됐네.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어설펐지.”

미궁이 튀어나오고 마력 사용자가 등장한 지 고작 16년, 그 초창기 마력을 각성한 이들은 누가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마력에 관한 조사 및 교육 자체는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친 다기 보다는 이종족에게 마력 운용에 관한 정보를 받고 함께 배우는 사이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

과거를 떠올리며 웃던 교장은 이내 고갤 젓고 강수영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나저나 웬일로 온 거냐?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던데.”

“일이 있어서 이렇게 짬내서 왔죠. 혹시 들었어요? 어제 선도부 관련 이야기.”

교장이 타준 커피잔을 기울이며 말하는 강수영, 그에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한 교장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어제 바로 연락 받았고 오늘 아침에 특이사항 업무 보고서로 봤다. 전 선도부원이 출처 미상의 마법을 사용해서 훈련 중이던 선도 부원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도주, 결국 체포 됐다고 하던데.”

“하, 싯팔. 보고서가 아주 가관이네요. 아, 담배 좀 피워도 됩니까?”

피워도 되냐고 물으면서 담배를 꺼내는 강수영, 그에 교장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갤 끄덕였다.

“괜찮긴 한데... 너도 이제 좀 끊어라, 아무리 마력 사용자라고 해도 몸에 안 좋지 않니?”

“씨이팔, 그래서 전자 담배 피지 않습니까. 그리고, 커피 마시면서 담배 안 피면 뭔 재미로 삽니까? 게다가 좆같은 일이 더해지면 더 못 참죠.”

살짝 다크 서클이 진 눈을 찡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곧바로 전자 담배를 피우는 강수영. 교장이 말 해보라는 듯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그녀는 전자 담배를 꼬나 쥔 채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 아이, 알아요?”

“안다. 한새벽, 지난해 8월에 사고로 편입반에 들어가게 된 애였지. 북쪽 보육원 출신이었지?”

“예, 지금은 제 조수기도 합니다. 아주 유능한 똘마니죠.”

“그렇냐? 몰랐던 사실이군.”

“그 사고가 뭔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적인 능력은 대단히 올라갔거든요. 사실상, 제 후계자로 보면 되요. 진짜 잘합니다. 걔가 쓴 마법도 제가 가르쳐준 겁니다. 호신용으로. 몸이 병신이니까.”

그 말에 한숨을 푹 내뱉는 교장, 그녀가 대충 뭘 요구할지 짐작한 그는 고갤 절래절래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청탁을 하려는 거라면 난 들어줄 수가 없구나. 그 애가 저지른 것은 범죄야. 단순한 상해도 아니고 마법을 사용했지. 그걸 어떻게 내가 조치한다는 것은 내 권한을 넘어설뿐더러 형평성에도...”

“보고서만 보고 판단하면 그렇겠죠.”

“...”

“진실을 말해드립니까?”

그녀의 의미심장한 말에 정원용 교장이 결국 고갤 끄덕이자 강수영은 나지막이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제 조수 사고로 병신이 된 거 아시죠? 체격이 계집애처럼 변했잖습니까.”

“당연히 알지, 사진을 봤으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투 장학생 탈락했답니다. 그리고, 미르에선 그동안 받은 전투 장학금 지원을 모두 토해내라고 했고요. 그걸 가지고 항의하니까 다시 전투 장학생으로 붙였답니다.”

그 말만 듣고 뭔 일이 있었는지 직감한 정원용 교장이 골치 아파드는 듯이 이마를 짚는 가운데, 강수영은 따지듯이 몰아붙였다.

“거기에 그 아이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선도부하고 교관들 쪽에서 총무부에게서 ‘자격 미달로 짜르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하네요? 증인도 있고요.”

“...”

“한 마디로 애새끼에게 돈 다시 토해내게 하려고 선도부 동원해서 지랄했다 이겁니다. 멀쩡한 애를 지하로 끌고 와서 한쪽 눈을 터트릴 정도로 두들겨 팬 거고, 걔는 살기 위해 제가 가르쳐준 마법을 써서 탈출한 거죠.”

그 말을 끝으로 커피잔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는 강수영. 손에 튄 커피를 턴 후, 그녀는 연기를 뱉어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이 없는 교장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돌연변이 치료, 그건 이해해요. 씨발, 그건 100억을 때려 박아도 될까 안 될까 한 거니까? 저도 200억 때려 박고 제게 붙은 이 좆같은 돌연변이 치료를 포기했으니까. 근데, 1억 토해내게 하려고 애를 협박? 그리고, 괜히 선도부 끌고 가서 폭력?”

“...”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경찰의 이능력 조사관들이 전 선도 부원이었던 것을 이용해서 증언 짜 맞추기까지 하네요? 그 애가 사용한 건 최루탄 용도의 연금술인데, 폭력을 휘둘러 부상까지 입혔다고?! 선도부들끼리 훈련으로 치고 박다가 부상 입은 걸!? 그리고, 조사관들은 선도부 애들 말을 고대로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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