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51화 (51/350)

13화. 마법사 한새벽

1.

인맥 만들기 프로젝트는 계속됐다.

그렇게 3월이 지나 4월이 됐을 때, 난 진짜 한새벽의 인맥을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었다. 슬프게도 나를 직접 본 미르 생도들은 대부분 연락을 끊었는데, 직접 만날 수 없고 전화만 할 수 있는 이들-북쪽의 경찰 서장이나 다른 요상한 이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거다.

...좀 현타가 오는 부분이었지.

한 마디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친분 사이는 하나도 없고 좀 ‘비즈니스적인 사이’는 전부 유지하게 됐다는 뜻이니까. 씁쓸하긴 하지만 어쩌겠냐? 이게 현실인 걸. 미르에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걸 받아들여야지.

아,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내가 열심히 만든 인맥이 전부 ‘진짜 한새벽’의 것은 아니었다.

‘재벌 3세’-마빡 아가씨와 친분, 이건 내 오리지널이다. 학기 초, 선도부로 강제로 전환되면서 수업 시간이 바뀌고 아가씨와 거의 같은 수업에 들어가게 됐을 때. 아가씨는 그걸 자기에게 달라붙으려는 수작인 줄 알고 날 쳐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가씨의 인신공격성 발언에 나도 발끈해서 대응했고.

<관찰자의 눈>으로 훔쳐봤던 태블릿PC에 대한 내용에 대해 읊자 식겁하셨지. 그 이후로 마빡 아가씨는 ‘뭔가가 있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역으로 내게 달라붙어 왔다. 실제로 내가 눈-육안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 채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 친구 먹기로 했다.

...좀 배알 꼴리지 않냐고? 진짜 이런 상황 돼봐라. 재벌 3세가 나에게 호의를 표하며 접근한다고?! 우효옷!! ‘재벌을 죽여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강성 노조 간부도 이건 못 참을 걸? 아무리 그 호의가 계산적인 것에 가깝다고 해도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게 호감을 사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재벌답게 돈을 이용해 날 공략하려고 했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내 공략법을 말해줬어. 돈으로 공략하라고 말이야. 서로 원하는 걸 채워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게 불법이 아니라면 딱히 나쁜 게 아니잖아? 고작 ‘친분’인데 뭐.

그래그래, 바로 그런 거지.

-딸랑~♫

어찌되었든 난 오늘도 알바를 뛰기 위해 미르 수업이 끝나자마자 ‘물약 상점’에 도착했다. 상점 1층, 안으로 들어서자 운치 있는 빈티지 커피숍을 연상케 하는 손님 접대용 매장에서 싸장님이 탁자에 앉아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태연하게 전자담배를 피고 있었다.

“어? 싸장님 웬일로 밖에 나와 있네요? 오늘 물량 없는 건가요?”

평소엔 지하의 약물 제조실에서 씨발씨발 거리며 약을 만들고 있던 양반이 오늘은 밖에 있네? 혹시, 오늘 물량은 별로 없는 건가? 그런 내 희망 섞인 질문에 싸장님의 얼굴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다.

“그럴 리가, 오늘도 존나게 쌓여있단다. 싯팔, 때려치우고 싶어도 함부로 못하니 원.”

“쩝, 그럼 빨리 가서 일하죠.”

“그러고 싶은데, 오늘은 안 할 거야.”

“왜요?

“뭐긴 뭐야. 니놈 새끼 때문이지요.”

짜증난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날 바라보는 싸장님. 아니, 왜 나 때문에 일을 안 하신다는 겁니까? 전 언제나 할 준비가 된 노예인뎁쇼. 도비는 주 5일, 하루 6시간!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면서 누렁이처럼 일할 준비가 됐어요!

그런 내 노예 근성이 느껴졌는지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빨아들이곤 입을 열었다.

“저번에 선도부 사건 때, 내가 빽 써준 거 기억하지?”

“당연하죠. 덕분에 전 집요정... 아니, 알바요정 도비가 되어버렸지만요.”

“그래, 도비야. 그리고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었지?”

뭔 소리지?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멀뚱하게 서 있자 싸장님은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나중에 ‘살상 마법 사용자’로 등록하라고 했다. 그게 널 유치장에서 빼내면서 경찰 윗선과 거래한 항목 중 하나라고.”

“...뎃?!”

그 말을 들으니 기억난다. 유치장에서 나왔을 때, 싸장님이 차타고 기숙사까지 데려다주면서 말했었지. 그렇게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는 날 보며 싸장님은 미간을 좁히며 추궁을 이어나간다.

“‘살상 마법 사용자 인증 시험’, 이번 주까지 서류 신청 기간이다. 다음 주 토요일이 시험이고. 이번에 놓치면 다음 시험 기간은 6월이야.”

“...”

“마법의 출처와 용도 증명서류는 내가 준비해 놨다. 어찌됐든 간에 내가 ‘마법 전수자’가 되었으니까. 나머지 준비해야 할 것들, 준비하고 있지? 개인 사진, 병력 신고 및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 신체검사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견서...”

이미 알고 있지만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해지는 준비물들, 더 큰 문제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내 어깨가 쪼그라들자 싸장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쉐끼... 설마해서 물어봤는데 역시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네. 준비해서 이번 주까지 등록해라.”

“넵...”

“그리고, 너 밤에 뭔 일 할 거 있냐?”

“아뇨, 수업 복습하는 것 빼면 딱히 없는데요.”

싸장님도 내가 평일 날에 잠을 안 잔다는 걸 안다. 오후 5시에 여기 와서 밤 11시까지 노예처럼 일하는데, 자연스럽게 너무 늦게까지 일하는 거 아니냐고 싸장님이 좀 걱정하더라. 그래서 그냥 말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내가 멀쩡하니 이젠 싸장님도 그러려니 한다.

그 대답에 싸장님은 고갤 끄덕인다.

“좋아, 그럼 새벽에 여기서 밀린 작업들 처리해라. 지금껏 해왔던 작업들이니 너 혼자 할 수 있을 거야. 둘이서 일을 분담하는 것에 비하면 효율을 떨어지겠지만.”

“...앵? 잔업 해야 합니까?”

“그래, 다음 주 실기 시험까지 넌 내게서 마법 강의를 들어야 하니까. 난 너완 달리 잠을 자야 해요. 그냥 수업료 낸다고 생각해라.”

마법 강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싸장님은 미간을 찡그리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너 마법 모르잖아? 아무리 니가 물약 제조 공정을 단숨에 따라 해도, 진짜 마법은 전혀 이야기가 달라. 서류상에 내가 ‘마법 전수자’가 되었으니까 그래도 마법 좀 가르쳐줘야지.”

거 참. 나 이미 살상 마법 할 줄 아는데 말이지. 하지만,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내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있자 싸장님은 다가와서 내 어깨를 탁 치곤-.

“따라와라.”

앞장서서 지금까진 가지 않았던 장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2.

싸장님의 가게-‘강수영의 물약 상점’은 거대한 플라스크 모양의 5층 건물이다.

카페 형태로 꾸며진 1층 매장의 매대 안쪽에 들어가면 작업실과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곳은 그 안쪽 작업실이었지. 근데, 이번에 싸장님이 안내한 곳은 1층 매장의 구석진 곳 바닥에 붙어있는 가로세로 1m 정도의 검정색 철문이었다.

평소에 보고도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가던 장소, 대충 전기설비가 있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싸장님이 열쇠를 꽂고 그 새카만 철문을 여니...

“벙커였습니까?”

3m 정도 파인 바닥, 그 한 쪽 벽면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지하 벙커에서 볼 법한 비주얼, 4개월간 여기에서 근무하면서 가볼 곳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좀 놀라웠다. 그런 내 질문에 능숙하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던 싸장님은 고갤 젓는다.

“벙커 아니다.”

“그럼요?”

“내 집.”

“...집이요?”

“그래, 지하 1층까지는 근무 공간이고, 지하 2층부터 내 집이야.”

바닥에 착지한 싸장님이 내려오라는 제스쳐에 나도 곧바로 따라서 내려갔다. 이어서 승강기를 누르자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승강기 안으로 들어서자 싸장님은 곧바로 맨 마지막 지하 5층 버튼을 누르곤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나저나 여기 지하에서 사실 줄은 몰랐어요.”

“살만해.”

“흠, 그래도 불편하지 않아요? 아무리 설비가 갖춰진다고 해도 지하니까 환풍 문제에 습기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고.”

“...너 모르냐?”

날 올려다보며 입에 물고 잇는 전자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어내는 싸장님, 도대체 뭘 모르냐고 말하는 건 지 내가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앞에 펼쳐진 건-

“...!?”

삭막해 보이는 콘크리트 공터, 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천장은 10m-아파트 4층가량으로 엄청 높았고 공터 자체도 거의 동네 축구장만한 했다. 무엇보다 공기가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았다. 신기하게도 조명은 보이지 않는데, 은은한 빛이 주위에 감돌고 있었다.

그래, 서예린과 함께 ‘뉴송파구’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와 쾌적함에 내가 반쯤 압도되어 있는 동안, 싸장님은 태연하게 앞장서서 걸으며 입을 열었다.

“송파구의 지반은 매우 특별해. 지하 7km까지 개미굴처럼 난잡하게 파진 지하 공간은 건축공학적으로 불가능하지. 그럼에도 멀쩡해. 통상적인 물리법칙을 초월하게 하는 마력의 작용이 있다는 거야.”

“그럼 여기도...?”

“그래, 같은 송파구 지하잖아? 당연히 적용되지. 하중을 고려하지 않고 괴상하게 파도 잘 무너지지 않고, 추가로 안에서 신선한 공기와 미약한 빛이 나와서 쾌적하지. 심지어, 지하의 구조물로 인식되면 스스로 수복까지 해.”

“오.”

“덕분에 지하의 건물은 유지보수가 별로 필요 없어. 충격에 콘크리트가 금이 가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메꿔지거든.”

사장님을 뒤를 따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둥 하나 없는 거대한 공터, 내 빈약한 상식으로도 지하에 지어질법한 공간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렇게 그 커다란 공터의 중앙까지 걸어간 뒤, 싸장님은 자리에서 멈춰 서곤 날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이제 수업을 시작하지.”

“넵!”

“첫째로 넌 마법이 뭐라고 생각하냐?”

싸장님의 질문에 난 내가 습득했던 마법서의 내용과 <무한의 눈>으로 파악한 룬 문자가 일으키던 기적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룬 문자를 이용해 다른 차원과 주위에 퍼져있는 마력을 공명시켜서 개인이 가진 마력 용량만으론 불가능한 대단위의 이상 현상을...”

“시잇~팔! 이 쉐끼, 교과서를 고대로 읊고 있네.”

나름 진지하게 고찰하고 말하는 건데, 싸장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말을 도중에 끊는다. 그리곤 의사 가운 안쪽에서 새로운 전자 담배 카트리지를 꺼내 교환하곤 뒤로 가 있으라는 듯 내 배를 밀친다.

“그런 고리타분한 교과서 설명 말고 내가 ‘진짜 마법’을 보여주지. 좀 멀리 떨어져 있어. 한 10m 정도? 그리고, 귀 막아.”

싸장님의 나지막한 음성, 그렇게 내가 곱게 뒤로 가서 귀를 막고 서 있자 싸장님은 카트리지를 간 전자 담배를 한 번 크게 빨아들였다. 그 뒤, 잠깐 두 눈을 감고 있다가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면서-.

“GAR-LO-JAR!”

JAR이라는 마지막 강렬한 외침이 싸장님의 입에서 내뱉어진 순간, 난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튕겨져 쓰러졌다. 귀를 막고 있었음에도 귀를 ‘빠아아아-!’ 울리는 이명(耳鳴), 자주포라도 쏜 것처럼 이 커다란 지하실 전체가 들썩이며 먼지가 흩날렸다.

몸은 뒤로 튕겨졌지만 <관찰자의 눈>은 계속 사용하고 있었기에 뭐가 벌어졌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싸장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소리 대포’라고 해도 좋을 강렬한 충격파, 30m 앞의 콘크리트 바닥은 그 물리력을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그 반파된 바닥에 튕겨져 되돌아온 충격파에 자신은 나뒹군 것이었고. 하지만, 이 강렬한 위력은 그저 ‘부차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녹색의 기체

싸장님의 입에서 충격파와 함께 나온 숨결은 진녹색을 띄고 있었다. 벽을 녹이거나 하는 효과는 없었지만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마력의 흔적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 순간, 관자놀이가 지끈 거리며 빈 텍스트창이 떠오르고 순식간에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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