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마법사 한새벽
4.
대한민국에서 ‘마력’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은 ‘송파구’에서 해결된다.
당연히, 마법사 시험 또한 송파구에서 치러진다. 고지된 시험 장소는 송파구의 지하-‘뉴 송파구’의 어느 구역, 응시표 뒷장에 있는 설명대로 미르 내부의 게이트를 지나 특수 엘리베이터 앞에서 출입 카드를 대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타자마자 엘리베이터는 알아서 내려갔다.
무려, 6km 지하까지.
10여분 간 내려가서도 도착한 곳은 학교의 반 교실 크기의 공터, 콘크리트 구조에 천장이 높아서 싸장님한테 마법 강의를 들었던 곳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이미 10명 정도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나 빼고 전부 아는 사이인지 서로 인사하고 웃고 떠들기 바빠 보였다.
...좀 소외감 드네.
하긴, 마력 사용자가 죄다 미르 출신인 걸 생각하면 다리 건너로 알고 있겠지. 이거, 특정 집단이 다 해쳐먹는 적폐 아니냐?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미르 출신만 다 헤쳐먹는 불공정한 세...
아, 나도 미르 출신이지?
저 친목질 꼬라지가 너무 눈꼴시어서 깜빡했네. 그냥, 관대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그래도 아는 척하면서 얼굴을 들이밀기엔 좀 부끄러웠기에 찐따답게 스마트폰을 하려 켰는데 권외 지역이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대기실 안에서 시간을 떼우고 있던 도중에...
“...어?”
“으음?”
공사장 패턴으로 검은색과 노란색이 번갈아 칠해진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새롭게 들어오는 한 사람. 그 모습을 본 나도 깜짝 놀라고, 날 본 그쪽도 깜짝 놀란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푸른색 머리띠와 이마를 훤히 드러낸 올백 스타일의 단발, 우리의 ‘재벌가’ 마빡 아가씨가 거기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솔직히, 서로 좀 불편했지만 서로 ‘친구’ 먹기로 했기에 난 가볍게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고, 마빡 아가씨도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내 앞에 서서 팔짱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한새벽씨.”
“하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긴, 진아씨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런 곳에서 만난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흐음, 전 딱히 미르에서 마법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요?”
날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는 마빡 아가씨.
확실히, <관찰자의 눈>이기에 눈치 챈 거지 아니었다면 나도 아가씨가 마법사인 걸 몰랐을 거다. 아가씨가 가진 태블릿 PC를 켤 때, 미묘한 마력의 유동과 손끝에서 정전기가 흘러나오는 걸 봤고 당연히 플레이버 텍스트가 떠오르며 어떤 마법인지 분석해줬거든.
하지만, 마법을 보지 않았어도 난 아가씨가 마법사란 걸 알아차렸을 거다. <과거시>와 플레이버 텍스트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저 머리띠는...
“···뭐, 어쩌다보니 알게 됐죠.”
“어쩌다보니라... 당신은 참 알면 알수록 신기해요. 눈을 감고 다니는데도 뭔가를 보고,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것도 파악하고, 짧은 시간에 <연금술> 계열 마법을 터득하고.”
“하하.”
“곤란하신 것 같으니 더 이상 그것에 관해 말은 안 할게요.”
내가 난처하게 웃자 가볍게 어깰 으쓱이며 대답하는 마빡 아가씨, 거 참 사람 놀리는데 보람을 느끼는 부류신가? 그래도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빡 아가씨는 재차 내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어제는 아예 미르에 안 나온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컨디션 조절 좀 했죠. 오늘 ‘살상 마법 인증’ 시험인데, 전투 수업하면 다음날 힘들 테니까요.”
“컨디션 조절? 전투력 측정까지 진지하게 하시려는 건가요?”
“네.”
‘살상 마법 인증 시험’은 그냥 시험관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마법을 보여주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실전과 비슷한 환경에서 마법을 쓰는 것까지 한다. 시험을 이미 겪어본 사람이 올린 썰에 의하면 일종의 서바이벌과 비슷하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법사가 가진 ‘전투력’ 또한 같이 측정하지.
전투력을 측정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진짜 그렇다.
자격증에 무려 ‘전투력 급수’도 나온다. 탈락이란 것이 없는 시험인지라 그냥 습득한 마법만 보여주고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 엿 같은 시험의 얼마 안 되는 좋은 점-‘전투력이 높게 측정되면 용병 업계에서 가산점이 있다.’-이 있기에 재응시 하는 이들도 몇몇 있다고.
나도 처음엔 그냥 마법만 보여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싸장님이 그래선 안 된다고 퇴짜 놨다.
너무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안 좋지만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싸장님의 의견. 어차피 등록할 거면 좋은 전투 등급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 진지하게 준비했다. 실제로 잘 볼 자신도 있고.
그런 내 대답이 의외인지 마빡 아가씨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가운데-
-철컹.
또 누군가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나온 응시자들과는 달리 안 쪽에 있는 철문에 나온 남자, 딱 봐도 ‘나 공무원이요.’라는 깐깐한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는데 그가 쓰고 있는 커다란 안경 너머에 있는 눈 밑은 짙은 다크서클로 그늘져 있었다.
“자, 다들 주목 해주세요.”
어딘가 지쳐 보이는 공무원의 목소리에 대기실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쏠리자, 공무원은 들고 있는 파일철과 응시생을 번갈아보면서 얼굴을 체크하고 이내 고갤 끄덕였다. 그 뒤, 안경을 들어 올려 축 처진 눈가를 비비곤 다시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20XX년 제 1차 시험, 총원 13명 다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살상 마법 사용 능력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시청각 자료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마법은...”
탁한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하는 공무원, 세세한 법조항과 최근 판례까지 말해주는데 대충 요약하면 ‘마법은 치명적인 살인 기술이기에 함부로 써선 안 된다. 마법사 등록하면 폭력 사태에 연관될 시, 집중 조사&가중 처벌 된다.’ 정도였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첫 말을 꺼낸 지 15분가량 지났는데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연설,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도 안 시켜주는 주제에 동의하냐고 묻는 통신사 약관처럼 전혀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에 사람들의 얼굴에 짜증이 서린다. 하지만, 설명을 하는 공무원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 듯 그의 얼굴에도 피곤과 짜증이 역력했다.
그렇게 멍하니 한 귀로 설명을 흘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난 옆에 있는 아가씨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 저녁 어때요?”
“···오늘요?”
“네, 선약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저번에 만났던 게 2주 전이잖아요? 슬슬 또 한 번 갈 때가 됐죠. 그리고 저번에 못 했던 것도 준비해서 이번에 도전해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묻는 아가씨,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내 말을 듣고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던 아가씨는 이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흠, 오늘은 딱히 약속이 없군요. 좋아요, 잘 변장하고 나오세요. 장소는?”
“제가 한 번 알아보고 톡 드리겠습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미르 근처에선 안 돼요. 당신이랑...”
“예, 예! 저랑 얽히면 또래 집단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하고 급이 떨어진다고! 걱정 마세요. 다른 곳에서 준비할 테니.”
아가씨의 수락에 난 환하게 웃었다.
그래, 이거지! 오늘 저녁을 생각하니 군침이 싹 도네. 생활 루틴을 위해 오늘 밤에 또 약 먹고 자야할 걸 생각하니 꿀꿀했는데, 이걸로 좀 기분 전환이 된다. 생글생글 웃으며 어딜 가야할지 고민하려고 할 때-.
“그럼 한 분씩 안쪽으로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응시 번호 1번, 남궁진아!”
“네.”
마침내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공무원이 응시자를 호명한다. 대답하며 공무원 쪽을 향해 나아가는 아가씨. 먼저 가보겠다는 듯이 눈짓하는 그녀를 향해 파이팅의 의미로 따봉을 들어 올린 뒤, 난 조용히 품 안에서 전자 담배를 전원을 켜고 입에 물었다.
5.
외국인들이 보기엔 대한민국은 ‘병적일 정도’로 치안에 신경 쓰는 국가다.
도처에 깔린 CCTV 및 차량 블랙박스는 발생한 범죄를 놓치지 않으며, CCTV가 깔리지 않은 으슥한 곳은 경찰이 시도 때도 없이 순찰을 돌거나 아예 군 주둔지가 인접해 있다. 수준 높은 경찰력은 발생하는 범죄 자체를 막진 못해도 발생한 강력 사건의 범인을 99% 검거한다.
총기 같은 위험물의 규제 또한 살벌하다.
총기는 수렵용 총기를 사는 것만 허락되고, 그렇게 산 총기마저도 경찰서에 보관해야 하며, 수렵 기간에만 만질 수 있다. 범죄로 사용될 만한 위험한 물건이나 무기에 대한 규제가 너무나도 엄격해서 총포나 도검은 커녕 염산도 일반인이 허가 없이 소지하면 불법인 나라, ‘철두철미한 폭력의 독점’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치안력도 세상이 바뀌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미궁이 올라오고 세계의 질서는 한 번 뒤집어졌다. 전 세계 경제는 다 함께 박살났고, 송파구의 지하에서는 괴물들이 올라오며, 미사일 위협을 하던 북한은 망해버리고 반쯤 억지로 2500만 난민을 떠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남한’ 만큼은 이를 악물고 치안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흡수 통일한 북한의 군대는 무기를 폐기한 뒤에 최소한의 식량 지원만하며 육로와 해로를 단절시켜버렸고, 지하에서 올라오려는 괴물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갈아버렸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세상이 한 번 뒤집어졌음에도 대한민국의 ‘남쪽’은 여전히 치안이 좋았다.
하지만, 결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미궁이 출현한 뒤에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나타나는 현상인 ‘마력 각성’이 문제였다. 마력 사용자가 되면 그 신체의 기능은 엘리트 체육인에 버금갈 정도로 좋아진다. 그것뿐이라면 별 이상이 없겠다만, 그들은 단련과 훈련을 통해서 그보다 더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총을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며
맨손으로 대인 화기를 능가하는 화력 또한 뿜어낼 수 있다.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는 이는 극소수지만 몇몇은 말 그대로 ‘초인’이 된다. 물론, 총의 위력은 여전히 대단하고 국가의 폭력 독점 또한 이뤄지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마력 사용자들이 많아지면 명백히 치안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 실제로 기존 경찰력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마력 사용자에 의한 범죄가 적지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는 마력 사용자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법적으로 마력 사용자를 강하게 처벌할 법률을 마련했으며, 특히나 기존 마력 사용자보다 위험한 ‘마법 사용자’는 자격증 형식이지만 반강제적으로 습득한 마법의 종류를 파악하고 사용자의 전투력까지 측정했다. 물론, 마법 사용자들은 반발했지만-.
한국에서 매년 배출되는 마법 사용자는 1년에 30명 내외
그들은 ‘극소수’였고, 민주주의에서 그런 극소수의 의견은 뭉개기 쉬웠다. 그렇게 적은 숫자 덕분에 아직까지 정부는 마법 사용자들에 대한 수준 높은 전투력 측정과 인원 관리가 가능했다.
“지루하군.”
지하 6km, 뉴 송파구에 위치한 ‘전투 시험장’의 통제실. 시험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유리벽 앞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지겹다는 듯 중얼거렸다.
반팔 차림에 터질듯한 근육질, 팔뚝과 얼굴 곳곳에 드러난 흉터, 순수 한국인으로 보기엔 좀 이질적인 용모···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미궁 출신의 ‘평가관’이었다. 그런 노인의 중얼거림에 옆에 서서 같이 아래를 내려다보던 군인은 나지막이 대꾸했다.
“항상 그래왔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근데,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인데, 이런 시설에서, 이런 이들이 모여서 저런 별 볼일 없는 놈들을 테스트해야 하나? 명백히 자원 낭비인 것 같네만.”
월드컵 축구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초거대 규모의 시험장
고전적인 미로 형태로 꾸며진 그 곳곳에는 마네킹 같은 형상의 금속 로봇-공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마법을 통해 메꾼 골렘이 움직이며 응시자를 기다리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굉장한 노력과 자본이 투자되어 만들어진 시험장이었다.
하지만, 정작 응시생들의 수준은 그런 노력과 투자를 배신할 정도로 허접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저들 대부분은 직업으로서 마법을 일부분 익혔을 뿐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대부분 버벅거리다가 마네킹 골렘 하나도 제대로 못 잡고 끝난다. 전투 테스트 자체가 무의미한 정도, 이번 시험에 동원된 평가관들과 ‘전투 시험장’의 골렘들을 가동 시키는 미궁 출신 마법사들의 숫자가 30여명이 넘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명백한 낭비였다.
그러나, 그런 노인과는 달리 군인 출신의 평가관은 고갤 저었다.
“아뇨,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가치가 있다고?”
“예, 마법이란 것은 무기니까요. 총기와도 비견되는 무기. 아무리 허접한 마법이라도 일단 무기를 쥔 자를 알아둬야 합니다. 실제로 첫 번째 응시자는 좀 다르지 않았습니까?”
군인의 대답에 노인은 첫 번째 응시생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는 응시생의 비루한 마법이 아닌 ‘진짜 마법’을 휘두르던 응시생,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이 보였지만 사용하는 마법 자체는 흠잡을 수 없을 만큼 깔끔했다.
“흠, 그 아이는 좀 다르긴 했지.”
“그 한 명 만으로도 이번 시험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마법사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테스트도 불가능하겠지만요.”
제대로 공격하지도, 그렇다고 도망치도 못한 채 마네킹 골렘에게 접근을 허용한 응시생. 결국, 응시생은 입구 쪽에 배치된 비무장 남성 수준의 최하급 마네킹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시험 종료, 응시생은 인형의 안내에 따라서 퇴장해주시길 바랍니다.
탈락 처리가 되었다. 탈락 판정이 전투 시험장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응시생은 마네킹 골렘의 안내에 따라서 구석 바닥의 출구용 철문을 통해 시험장 밖으로 나갔다. 통제실에선 방금 전 탈락한 응시생의 영상을 저장하고 평가관에 의해 종합적인 전투력 판정이 이뤄졌다.
“응시생이 마법을 쓰는 걸 못 봤는데 뭐였지?”
“프로필에 의하면 마법 요리를 위한 환영 마법입니다. 약간의 물질 조작이 가해진...”
“고민할 필요도 없겠군.”
노인의 말에 전부 동의한다는 듯이 끄덕이는 평가관들, 응시생에게 매겨진 전투력은 5급 ‘최하’였다. 그렇게 응시생에 대한 평가가 끝나자-.
-응시 번호 13번, 시험 준비.
시험장 입구의 철문이 열리며 마지막 응시생이 나타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