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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간. 아가씨는 곱창을 먹는다.-<유료 연재 시작> >
1.
마법사 인증 시험은 크게 2단계였다.
1단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살상 마법을 마법사와 군인 평가관에게 보여주면서 그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었고, 2단계는 장애물과 적이 배치된 미로를 돌파하는 거다. 그냥 대충 봐도 상관없지만 난 좋은 전투 등급을 받기 위해 각 잡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2단계 미로에 진입하자마자 <관찰자의 눈>의 시점을 위로 올려 미로 전체를 조망해봤다.
그리고, 이건 미궁의 환경 중 하나인 ‘석조 건물 테마’를 모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뒤, 마법서의 역사-수많은 독술사들이 그 환경에서 보여줬던 전투 기교들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했다. 내 생각보다 마법과 <관찰자의 눈>의 시너지는 엄청났거든. 벽을 뚫고 보면서 무조건 선공(先攻)을 가질 수 있었는데, 돌죽의 아셴자리 신앙-맵핵 마법사를 플레이하는 느낌이었어.
어찌됐든 마법서와 싸장님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로의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마지막 통로를 지키고 있는 작은 2층 주택만한 크기의 거대 골렘, 그 커다란 위용에 곧바로 기권할까 생각했지만 이왕 마지막까지 온 거 도전해보기로 했다. 싸장님이 준 도핑 물약을 빨고, 전투 모드로 들어가는 것과 함께 돌진했다. 타이밍을 뺏으면서 <독숨결 구체>로 시야를 가리고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통로로 도망쳤다.
그렇게 나온 전투력 등급은 2등급
3급을 목표로 했는데 솔직히 너무 높게 나와서 좀 당황스럽긴 했다. 전투 지향하는 마법사들이 죽어라 노력해도 못 받는 2등급인데? 자격증 받고 잘못 나온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더라. 전화로 싸장님에게 말했더니 싸장님은 별로 놀라지 않고 수긍했다. 아, 기념으로 소고기를 사주신다고 했는데 오늘은 피곤하니 담에 사달라고 했다.
사실, 오늘 저녁에 먼저 ‘선약’이 있으니까.
“흐음~♬”
화장실 세면대 앞, 흥겹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난 손에 든 조그만 헤어스프레이를 내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에 골고루 뿌렸다. 언 듯 보면 그냥 평범한 스프레이, 하지만 이건 무려 마력 가공 과정이 추가된 ‘최첨단 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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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염색 스프레이
일시적으로 모발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용액이 든 스프레이, 스프레이를 뿌린 이후 세트로 같이 판매되는 활성제를 묻히면 염색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염색 물질은 불완전한 성질을 가졌기에 20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분해되기 시작한다.
이 용액으로 바꿀 수 있는 색깔은 ‘검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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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가공 약품이 일부 들어간 염색약, 기존 염색약이 ‘탈색 후 염색’인 것에 비해 이 염색약은 탈색 과정이 필요 없다. 머리카락 속에서부터 색을 바꿔버리고 덕분에 머리카락의 윤기가 살아남아 자연스럽지. 흠이 있다면 하루가 지나면 효과를 잃고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과...
마력 가공이 들어간 물품답게 오질 나게 비싸다는 것, 이 손바닥 크기의 쬐끄만 게 20만원이다.
“완벽해요.”
활성제를 뿌린 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가볍게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살인적인 가격이 흠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머리칼이 아주 자연스런 검은색으로 바꿔있으니까. 난 워낙 눈에 띄는 백발인지라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는데 이렇게 깜장색으로 바꾸면 시선도 줄어들지.
마지막으로 입고 있는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옅은 핑크색 렌즈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2.
16년 전, 미궁의 출현은 전 세계 경제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강남구 또한 그 여파를 피해갈 순 없었다. 심지어 위치상 지하로 사라진 송파구의 바로 옆, 어떻게 외면해보려고 했지만 미궁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뒤엔 뉴욕의 미궁 입구 쪽에서 세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3개의 재앙-룬 수호자가 튀어나와 미국의 절반을 쓸어버리면서 공포는 더더욱 커졌다.
언제든 재앙이 튀어나올 수 있는 곳
이종족과의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지식이 갖춰진 지금에선 그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지식은 없었다. 덕분에 강남구는 그 발달된 인프라가 깔리고도 집값이 완전히 나락이 되어버렸고, 수많은 이들이 파산-연이어서 은행 또한 도미노처럼 도산했다.
가장 높이 있었기에 가장 아프게 바닥에 처박힌 곳...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가씨.”
“아, 벌써 왔나요?”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진아는 운전석에 있는 비서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앞머리를 쫙 올리는 푸른 머리띠를 벗었다. 자연스럽게 이마로 흘러내리는 염색된 노란색 머리칼,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짝 불퉁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가볍게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빠지직!
그와 함께 손가락 사이에서 미약한 정전기가 튀기고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서로 달라붙으며 완전히 떡져 보인다. 불량하게 보이는 샛노란색으로 바꿨음에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깐깐하고 깔끔하단 이미지가 좀 사라졌다.
그제야 마음에 든 듯, 남궁진아는 고갤 끄덕이며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곤 비서가 끌고 온 낡은 세단의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혹시 필요하면 전화로 부를게요. 그때까지 근처에 대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비서에게 살짝 고개를 까닥인 후, 남궁진아는 차문을 닫고 옅은 핑크색의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리고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궁 발생 16년이 지난 현재, 강남구 또한 많이 바뀌었다.
미궁에서 나온 지하 이종족과의 과감한 거래, 그리고 그렇게 얻게 된 마력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송파구가 다시 떠오르면서 강남구 또한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 망했지만 그 발달된 인프라는 그대로 깔려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번 쇠락한 여파를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어둡고 쇠락한 분위기.
그 모순적인 분위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남궁진아는 강남역이 위치한 장소에서 좀 떨어진 낡은 5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느글거리는 기름 찌든 냄새, 속이 메슥거리는 것과는 달리 바글바글하게 모인 인파. 1층 가게의 간판 ‘황소 곱창 구이’를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아, 여기랍니다!”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는 가게 안, 태연하게 드럼통 불판 앞에 앉아 곱창을 굽고 있는 한 사람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후드티 차림에 눈가를 가리는 커다란 분홍색 선글라스, 앳된 티가 남아있지만 좀 작은 키의 성인 여자로 우기면 못 넘어갈 정도는 아니다.
뚜벅뚜벅 다가간 그녀는 그-한새벽의 맞은편의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런 곳이라니 참...”
“왜요? 좋잖아요? 다른 손님도 많아서 눈에 잘 안 띄고. 나름 정취도 있고~”
“...”
“그나저나 원판이 좋으니 그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도 꽤 잘 어울리네요.”
한새벽의 칭찬에 남궁진아는 미간을 찡그리며 손으로 깜장색 츄리닝의 소매를 매만졌다.
평소 입던 명품이 아닌 그냥 시장에서 사온 싸구려 츄리닝, 자신과 이 남자가 같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면 괜한 소문이 날게 분명하니 준비한 복장이었다. 이렇게 직접 입어보니 왜 비싼 게 좋은 건지 알 것 같았다. 사소한 마감 같은 세심한 부분이 부족했다.
그런 그녀의 짜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새벽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나저나 소주 좀 시켜주세요. 제가 곱창은 시킬 수 있었는데, 소주는 이번에도 미성년자 같다고 안 되네요. 지금 진아씨는 좀 어른 같아 보이니까 통할 거예요.”
“...”
“빨리빨리!”
“...후, 아줌마! 여기 소주요!”
“두꺼비 빨뚜로 달라고 하세요. 3병.”
“두꺼비 빨뚜로 3병!”
한새벽의 재촉에 남궁진아가 한손을 들고 크게 외치고, 얼마 자니자 않아 매장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알바생 중 하나가 곧바로 소주병과 잔을 테이블에 놓고 사라진다. 그 모습에 남궁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소주 시키려고 비서를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하, 드디어 먹어보네요.”
즐겁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흘리며 소주병을 붙잡는 한새벽, 능숙하게 뚜껑을 딴 그는 소주잔을 남궁진아와 자신의 테이블 앞에 놓고 소주를 채워 넣었다. 딱 봐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솜씨, 그 뒤 한새벽은 자기 몫의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자, 우리 같이 빈속에 짠! 하죠.”
“...”
“어서요. 설마, 재벌 3세라고 위스키나 와인 아니면 못 먹는 건가요?”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 말에 남궁진아는 발끈하며 보란 듯이 자기 몫의 소주잔을 쥐고 입에 털어 넣었다. 풍미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순수한 화학 약품’ 같은 쓴 맛,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별로 내색하지 않으며 소매로 입을 닦았다.
“그냥 이렇게 본격적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당황한 겁니다.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다니··· 생각보다 불량하네요. 새벽씨?”
“하하, 생각보다 쎈님이시네요. 진아씨?”
대답과 함께 생글생글 웃으며 소주잔을 입어 털어 넣는 한새벽, 그리곤 꿀꺽 삼키며 빈 잔을 쥔 채 몸을 부르르 떤다.
“크으~ 곱창에 소주... 이게 섹스죠.”
“...뭐라고요?”
전혀 뜬금없는 상스런 말에 남궁진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가운데, 한새벽은 살짝 찔끔하더니 이내 방실방실 웃었다.
“아, 그냥 감탄사에요. 감탄사. 유행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유행어는...”
“북한! 북쪽 유행어!”
뭔가 변명하듯이 말하는 것 같지만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떨떠름하게 고갤 끄덕였다. 이어서 한새벽은 능숙하게 안주로 나온 생간과 천엽을 집어먹었다. 스스로 인정하진 않지만 재벌 3세로 꽤나 곱게 자라난 남궁진아로선 보기만 해도 미슥 거리는 광경이었다.
“그... 맛..있어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핏덩어리와 이 걸레조각 같은 이상한 걸 먹어? 멀쩡한 고기도 있는데, 굳이 저런 걸먹어야 하나? 그러나 가게에서 그녀만 그렇게 생각하는 듯, 음식점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핏덩이와 걸레조각 같은 것을 집어먹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항상 생글거리고 있는 한새벽의 웃음이 짙어지며...
“자, 자. 먹어봐요. 츄라이츄라이.”
“...”
그 핏덩이와 걸레조각 같은 걸 젓가락으로 집어 앞으로 내민다. 저런 걸, 그것도 자기 침 묻은 젓가락을 내밀다니... 그 무례함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지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한새벽의 도발이 날아왔다.
“날것이라서 좀 걸리나요? 근데, 생선회도 날로 먹잖아요? 회는 되면서 왜 이런 건 안 되죠?”
“...”
“고정관념이에요. 고.정.관.념. 생선회는 고급스런 거니 괜찮고 이건...”
“제가 알아서 먹을 테니 그만 하세요.”
입 앞에 내민 한새벽의 젓가락을 치우며 남궁진아는 스스로 젓가락을 뻗어 핏덩이 같은 간을 집어 먹었다. 객관적으로 그닥 나쁘지 않은 맛이었지만... 이미 못 먹을 거라고 가정한 그녀에겐 끔찍하게 느껴졌다. 물컹거리는 괴상한 식감, 씹자마자 입안에서 터지는 피냄새, 위가 경련하며 자연스럽게 입으로 위액이 올라온다.
그렇게 핏덩이를 씹으면서 그녀는 강한 회의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