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56화 (56/350)

< 막간. 아가씨는 곱창을 먹는다. >

...친분을 쌓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먹어야 할까?

한새벽, 처음에는 사고로 병신이 된 이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가면 갈수록 그 진가가 드러났다. 그 동안 자신이 숨기고 있던 것(태블릿pc의 내용)을 가장 먼저 파악했고, 나중엔 눈으로 보지 않고 주위를 파악하는 기교를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연금술>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수영

대중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최상급 마력 물품’에 들어가는 재료 공정에는 반드시 그녀가 연관되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금술사, ‘마력 가공’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수작업 형태인지라 사업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영향력만으로는 이미 대기업 수준의 장인이다.

그런 그녀가 수제자 취급하는 이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한새벽이다.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던 한새벽이 미르와 충돌을 일으켜 구속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수십 억짜리 선물을 고위 공무원들에게 뿌리고 경찰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조금 조사만 해봐도 나왔다. 게다가 나중에 듣게 된 <연금술> 관련 수업에선 교수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나중에 거물이 될 것이 확실한 생도

그에 반해 사람들의 관심은 적었다. 인맥으로 어떤 걸 할 수 있는 지, 너무나도 잘 아는 남궁진아는 반드시 친분을 쌓아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접근했다. 처음에 자신이 매몰차게 거절한 주제에 다시 접촉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다행히, 이 남자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받아들였다.

가끔씩 식사나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혹시 친분을 쌓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괴롭히려는 목적일까? 자기도 같이 먹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만, 만약 그렇다면 이런 고생은 다 헛된 일인데...

어찌됐든 힘겹게 구역질을 참으며 목구녕 안으로 삼키자-.

“자, 좀 찝찝하면 소주로 씻어 내리면 된답니다.”

곧바로 소주를 따라주는 한새벽, 그에 그녀는 소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소주를 털어넣었다. 그 씁쓸함에 얼굴을 구기며 그녀는 ‘탁!’ 소리 나게 소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뒤, 생글생글 웃으며 자기 몫의 소주잔을 채우고 있는 한새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꼭 이런 곳에 와야 했나요?”

“왜요?”

“어차피 제가 사주기로 했는데 ‘좀 비싼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라는 거죠. 저번에 고깃집도 그렇고 너무 싼 곳에 가는 거 아닌가요? 이런 곳은 혼자서도 쉽게 다닐 수 있잖아요?”

이런 곳에 오기 싫다는 소심한 대답, 그에 한새벽은 가득 찬 소주잔을 쥔 채 웃음을 흘렸다.

“하하, 너무 비싼 곳만 가면 제가 부담스럽거든요. 그리고, 곱창은 나름 고급 음식이랍니다?”

“이게... 고급 음식이라고요?”

“예, 전 이것 정도로 충분히 만족해요. 크으.”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곤 짜릿하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몸을 부르르 떠는 한새벽, 이내 빈 소주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제가 은행에서 빌린 돈의 1년 순수 이자가 1400만원이에요. 근데, 알바 월급은 고작 200만원이죠. 달마다 뜯기는 걸 생각하면 대충 한 달에 80만원으로 생활해야 해요. 80만 원정도면 생도로서 생활하기 불편함 없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랍니다.”

“...”

“미르에서 식사도 돈 내고 먹어야 하고, 제가 머무르고 원룸형 기숙사도 공짜가 아니에요. 월세 30만원씩 내야하죠. 세탁비, 교재비, 스마트폰 통신비... 자잘하게 숙숙 빠져나가면 피가 말려요. 이렇게 외식으로 뱃속에 기름칠하는 건 굉장히 힘들죠. 그리고 무엇보다!”

잠깐 말을 끊고 남궁진아를 향해 그는 활짝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렇게 같이 고깃집에 같이 갈 사람은 거의 없어요. 술까지 사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

“...후우.”

“상사가 부하직원 끌고 술 마시러 가자고 끌고 가는 거랑 비슷해요! 그래, 이것도 일종의 갑질이네요? 재벌 3세에게 하는 갑질... 이건 정말 귀한 거네요. 하하핳!”

몇 잔 안 마셨는데 벌써 취한 건지, 소리 높여 웃는 한새벽의 얼굴은 어느새 발그랗게 변해 있었다. 그 웃음에 남궁진아는 나중에 자기가 회사를 경영하면 회식 2차를 없애버릴 거라고 다짐하며 한숨과 함께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였다.

술이 들어간 한새벽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드럼통 테이블에 왼손을 대고 턱을 괸 채 빙긋 웃는다.

“참 재미있어요.”

“...뭐가 재밌죠?”

“철두철미한 성격, 하지만 어딘가 서툴러요. 어린애가 어른을 흉내 내는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거 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태연하게 익어가는 곱창에 젓가락을 뻗어 입에 넣어 씹는 한새벽, 하지만 남궁진아는 얼굴만 구길 뿐 반박하지 못했다. 질긴 곱창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한새벽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연다.

“하긴, 진아씨는 나이로만 보면 어린애죠.”

“그쪽도 똑같은 나이입니다만?”

“흠,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나저나 궁금해서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팍팍하게 사는 거예요? 애들의 뒷조사를 일일이 다 하고 뭘 주면 좋아할 지 파악하고 있다니... 재벌 3세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않나요?”

민감한 주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한새벽, 그에 남궁진아는 애꿎은 반찬만 뒤적이던 젓가락을 내려놓곤 살짝 불쾌하단 듯이 한새벽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걸 제가 말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렇긴 하죠. 근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랍니다. 술이란 게 취하면 원래 이렇거든요. 취해서 말을 막 하는 거죠. 하핳! 이 몸 되게 빨리 취하네요? 고작 빈속에 소주 2잔 먹었다고 취기가 확 올라요. 오히려 좋군요! 아주 좋아요!”

“...”

“뭘 그렇게 조심해요? 우리 둘 다 상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 건 아는 사이인데? 당신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알고 있고, 저도 당신에 대해 알고 있죠. 당신도 질러보세요.”

살짝 기분 나쁘다는 시그널을 보냈건만 아랑곳 하지 않고 반응하는 한새벽, 그 맛이 간 듯한 대답에 남궁진아는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이게 뭔 개짓거린지... 하지만 소주의 효과일까? 아니면 분위기의 효과일까?

다시 좋다고 빈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는 한새벽을 향해 남궁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3.

“재벌가라고 딱히 특별한 줄 아시나 봐요? 다 똑같은 인간이랍니다.”

“똑같은 인간이요? 흐음,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갤 갸웃하는 한새벽의 반응에 남궁진아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착각하는 애들도 있긴 하죠. 제 사촌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본질은 같아요. 단지, 그 본질을 숨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기에 다른 사람관 달리 막나가는 거죠.”

“하긴, 돈 많으면 굳이 참지 않아도 되긴 할 것 같아요.”

“아뇨, 어리석은 놈들이죠. 돈이 많은 만큼, 평범한 사람보다 더 여유롭고 인성 있어 보이기도 쉬운데 그걸 포기하다니?! 아, 저도 한 잔 주세요.”

“예. 아, 벌써 우리 3잔씩이네요. 너무 빠르니 천천히 먹죠. 어흐, 고작 반병인데도 머리가 핑핑 도네요.”

소주를 달라는 요구에 헤실헤실 웃으며 그녀의 빈 소주잔을 다시 따라주는 한새벽. 따라준 그 씁쓸한 액체를 살짝 한 모금 마신 뒤, 그녀는 좋다고 곱창을 먹고 있는 한새벽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재벌가에서 경영하시는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조심하죠. 우리 할아버지는 ‘인간은 그저 납탄 하나에 평등하다.’고 손자손녀들에게 말해줄 정도예요.”

“흐음, 그렇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이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요. 단순히 힘으로, 그리고 금력으로 찍어 누르는 우두머리는 오래가지 못한 답니다. 전 그걸 알게 되었고 영리하게 변한 것뿐이죠.”

대답을 하면서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남궁진아, 뭔가 과거의 일이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한새벽은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여기 떨어지고 난 뒤에 처음으로 먹는 소주와 곱창에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눈치 채지도 못했다. 대충 고갤 끄덕이는 한새벽을 향해 남궁진아는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오늘 인증 시험은 어땠어요? 전투력 측정까지 한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요? 생각보다 잘 나왔어요.”

“3급?”

남궁진아의 말에 한새벽은 대답대신 보란 듯이 지갑에서 마법사 면허를 꺼내 보여줬다. 일련번호와 사용 마법종류,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전투력 급수는...

“2..2급!?”

“하하, 예.”

“아니, 그래도! 2급은!! 미궁 출신의 전투 마법사들이나 받는 등급인데!”

“사실, 저도 좀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시험 때 사용한 마법은 1위계 마법 2종류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너무 높은 등급을 줬어요. 막판의 거대 골렘도 싸운 게 아니라 챙겨간 신체 능력 증폭 물약으로 도핑해서 도망쳤는데... 왜 이렇게 높은 등급을 준 걸까요오?”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곤 자신의 면허증을 다시 지갑에 넣는 한새벽, 그 대답에 남궁진아는 더 기겁했다. 1위계, 오직 ‘하나의 룬 문자’를 주로 사용해서 만드는 마법. 동시에 하나의 문자만 사용하기에 쉽지만, 공명할 수 있는 주위의 마력의 총량 또한 작기에 위력이 약하다.

그 미로를... 고작 1위계 마법들만 써서 통과했다고?

직접 경험해봤기에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네킹 골렘들, 그것들 결코 쉬운 적이 아니었다. 생명체로 가정하기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면 침묵하지만 미로의 중반쯤에 가선 2위계 마법을 맞아도 움직였다. 그 골렘들을 피해서 갈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구간도 있었다. 그걸 1위계 마법으로 쓰러트린다고?

게다가 불완전했지만 4위계 마법을 맞고도 멀쩡했던 그 거대 골렘을 제껴?

그녀가 보기에 1위계 마법만 써서 통과했다는 말은 게임의 썩은 물이 ‘이거 너무 쉽지 않음?’이라고 말하면서 기본 무기가지고 붕쯔붕쯔거리며 최종 보스를 잡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하지만, 살짝 꽐라가 된 한새벽은 그런 그녀의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고 빙긋 웃으며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는 어떻게 나왔나요? 전투 I 수업도 듣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전투력 테스트도 꽤 진지하게 했을 텐데?”

“머.. 머뭐! 저야 교양으로 듣는 거니까! 3급 받았어요. 너무 높은 급수를 받으면 알게 모르게 불..불이익이 있잖아요? 어차피 사업할 건데, 굳이 높은 등급을 따서 경계를 받을 필욘 없죠. 네. 그렇고말고요.”

살짝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듯이 말하는 남궁진아. 하지만, 술에 반쯤 취한 한새벽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속설에 따르면 2급 이상은 어디로 움직이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감시된다고 하니까요. 끄응... 생각해보니 제 <마력 돌연변이> 때문이 고평가 받은 것 같아요. 제 뒷조사해서 알겠지만 이 돌연변이가 사람의 경계심을 좀 올리거든요.”

“하, 그럴 수도 있겠죠. 하.하.하.”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를 내며 고갤 끄덕이는 남궁진아, 다시 좋다고 소주를 마시는 한새벽을 보며 그녀는 살짝 속입술을 깨물었다. 마력을 각성한지 어느덧 2년, 그 시간 동안 가문에서 초대한 미궁 출신 마법사들에게 마법을 배웠다.

그들은 자신을 천재라고 했고 실제 객관적으로도 천재였다.

기존 미르생도들과 비교해도 독보적, 그래서 마법사 시험도 자신 있었다. 이번 전투력 결과도 나름 만족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자기보다도 쬐끄만 저 한새벽에게 지다니?!

아무리 두각을 드러내는, 자신이 인맥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앞날이 창창한 거물이라고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심기일전해서 나중에 2급을 따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위해 빠르게 머릴 굴린 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뭘 했기에 한 달에 120만원씩 이자가 나가요?”

“아, 저도 모르는 일인데 사고 전의 제가 북한의 고아원을...”

어깰 으쓱이며 한새벽은 진짜가 벌였던 일들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술이 들어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근래 북쪽의 고아원을 방문했을 때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당사자에게서 듣는 북한 썰, 그 상상도 못할 막장성에 그녀는 어느새 말을 돌리려던 본래 목적을 잊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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