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간. 아가씨는 곱창을 먹는다. >
“와, 그럼 거기서 총 쏜 거야?”
“예, 걸렸다면 깜빵이겠지만 북쪽은 흔한 일이라서 그냥 넘어간다고 하네요. 거기 경찰들도 이미 포섭됐고.”
“으으,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하네. 남한 쪽과 가까운 개성도 그런데, 더 북쪽은 어떨 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렇게 술이 계속 들어가고 이야기가 이어지자 두 사람의 말투는 어느 순간부터 부드러워져 있었다.
존댓말이 습관이 된 한새벽은 계속 존대를 이어갔지만 남궁진아는 반 존대를 그만두고 평범하게 말하기 시작할 정도. 미르에선 보여주지 않는 살짝 허술한 모습에 한새벽이 웃으며 술잔을 비우는 가운데-
-오늘, 중국과의 국경선에서 육군과 중국군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3년 전, 미국에서 대량학살을 벌였던 닥터 크림슨의 움직임에 대응하면서 벌어진 일인데요. 다행히, 큰 충돌은 아니었지만 그 틈을 타서 닥터 크림슨이 중국 국경 너머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에 중국 정부는 한국군이 자국 영토 쪽으로 범죄자를 몰아넣었다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단독 보도 합니다.
타이밍 좋게 음식점 한편에 걸려있는 Tv에서 북한의 소식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시선이 Tv뉴스로 향하고, 그 뉴스 내용을 보면서 남궁진아는 고갤 절래절래 저었다.
“진짜, 막장이네. 막장이야. 러시아, 중국, 남한에서 넘어오는 범죄자들에 북한의 실직 군인들까지...”
“하하, 살기 좀 팍팍하죠. 하지만, 북쪽 사람이 불행하다고 떠들 처지는 아니랍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을 걸 감사해야 해요. 남한이 지원해준 식량이 아니었으면 죄다 굶어죽었을 테니까 말이죠.”
“넌 북한 출신인데 꽤나 냉정하네.”
도토리묵을 집어먹으며 말하는 남궁진아에 한새벽은 피식 웃었다. 북쪽? 한 동포? 엿 까라지. 어차피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본질은 남쪽 사람이었다. 곱창을 입에 털어 넣으며 한새벽은 술기운을 빌려 말을 이어나갔다.
“말 그대로 냉정하게 한 평가죠. 하지만, 언제까지 저렇게 막장으로 방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나도 동의해.”
“흐음, 그러고 보니... 진아씨는 나중을 위해 인맥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죠? 자기 사업도 나중에 할 거라고 했고. 북한이란 주제가 나와서 말인데, 진아씨와 꽤 비슷한 사람을 본적 있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야망의 크기가 말이죠?”
“비슷한 사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네요... 뭐, 괜찮을 것 같아요. 그쪽도 유능한 인맥을 원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술에 취해서 나불나불 거리고 싶거든요. 저에 대해 뒷조사를 하셨다면 제가 어떤 동아리에 있는 지 아시겠죠?”
천천히 고갤 끄덕이며 긍정하는 남궁진아, 그에 한새벽은 얼마 전에 방문한 동아리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종족 교류 동아리의 실체인 ‘이너 서클-아싸단’, 하프들을 모은 ‘양우영의 계획과 포부’, 그리고 그가 이종족에 받은 ‘지원’까지. 어느 순간부터 남궁진아는 취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살짝 두서없는 한새벽의 이야기가 다 끝난 뒤, 남궁진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그런 걸 혼자 계획했단 말이야?”
“예. 참 대단한 사람이죠? 고작 고2 나이... 아니, 2년 전이니까 중 3 나이에 그 ‘이너 서클’을 만들었으니 말다했죠. 당신이 듣기엔 어떤가요? 정부나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엔 꽤나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
한새벽의 질문에 남궁진아는 진지하게 북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이종족들의 지상 진출 의지, 정부의 영토 확장 의지, 기업들의 사업 가능성... 전문적인 사업가들에 비해선 어설프지만 그래도 나름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그녀의 판단으론-.
“가능성이 있어.”
“그렇나요?”
“응, 슬슬 남쪽 경제를 회복했으니 정부는 북쪽으로 통제력을 확장하고 싶을 거야. 기업 또한 안정적으로 북한으로 진출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아. 압도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그것 하나만으로도 갈만하니까. 러시아, 중국과의 철도 연결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매력적이지. 지금까진 마약과 갱단이 난립하고 있는 불안전한 환경이 막고 있었지만...”
목이 타는지 같이 나온 오이냉국의 사발을 들어 마시는 남궁진아, 사발을 비운 뒤에 그녀는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씨익 웃는다.
“지상 진출을 하고 싶은 이종족들을 동원하여 들어가는 비용과 사후 지출을 최소한으로 절감한다면... 그림이 너무 괜찮은데?”
“그럼 그쪽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지나가는 말투로 무심하게 말하는 한새벽, 그에 남궁진아는 앞에 앉아 있는-발그레하고 홍조를 띈 채 불쾌할 정도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소년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인간을 배신한 걸로 볼 거야. 결국, 이종족을 끌어들여서 북한에 있는 골칫거리들을 없애겠다는 거니까. 요즘 정치인들, 그런 걸로 공격 많이하잖아? 이종족들 고용하지 말라고 시민단체에서 시위도 하고.”
“하지만, 역사에서 말해주는 승자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적응한 사람의 것이었죠.”
낡은 형광등과 매캐한 연기 덕분에 안 그래도 살짝 어두운 실내, 뒤쪽의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조명이 가려지고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한새벽의 모습은 잠깐 동안 그늘이 졌다.
그늘이 진 파르스름한 연기 뒤에서 생글 거리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이 꼭 악행을 종용하는 악마처럼 보였다. 순간, 섬찟함을 느꼈지만 이내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맞아요. 적응한 사람의 것이었죠. 거부할 수 없는 흐름, 거기에 맞서다간 도태되어 사라질 뿐이죠.”
“옳으신 말씀.”
그녀의 입에서 다시 나오는 존댓말, 분위기와 술에 의해 잠시 무뎌졌던 경계심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한새벽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 일단 양우영과 접촉을 해봐야겠기에 남궁진아는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한 번 찾아가봐야겠어요. 그런데, 거기 가서 그냥 당신의 이름 대면되나요?”
“아마 그럴 걸요? 양우영씨도 환영할 거예요. 무려 재벌 3세시니까.”
“으흠.”
한새벽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남궁진아는 천천히 밑반찬으로 나온 부추를 집어먹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이 들었다. 보지도 않은 자신의 태블릿PC의 내용을 파악한 것과 전투 시간에 보지도 않고 위에서 쏟아지는 공을 피하는 걸 보며 ‘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전문적인 흥신소에서 거액을 주고 한새벽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그렇게 조사한 ‘사고 이전의 한새벽’과 지금 ‘눈앞의 한새벽’은 너무너무 다르다.
단순히, 기억을 잃었다고 보기엔 힘들 정도로. 너무 이상해서 정신과 전문의의 자문까지 구했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냐고. 답변은 No, 의식은 기억하지 못해도 사고의 방향이 되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에는 기억이 남아있기에 결국 비슷한 성격과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의 답변이었다.
마력이란 힘이 그에게 뭔가 이상을 일으킨 걸까?
혹시 누군가가 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 지, 한새벽은 다시 좋다고 소주잔을 비우고 불판의 곱창을 향해 젓가락을 뻗다가 이내 그 위의 ‘이상함’을 뒤늦게 눈치 채곤 미간을 찡그렸다.
“곱창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았죠?! 슬슬 밥 볶아 먹어야 하는데요!? 아니, 지금 보니까 곱창은 나 혼자 먹고 염통하고 감자만 드셨네요?! 왜 안 먹어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한새벽의 말, 그에 남궁진아는 속으로 하고 있던 고민과 생각을 떨쳐버리고 살짝 고민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핏덩이나 걸레 쪼가리 같은 건 그래도 먹겠지만 그건 좀 그래요. 사실, 그거 곱창 옆에 있는 염통도 딱히 먹을 게 없어서 억지로 먹은 거랍니다.”
“왜요? 이거 맛있다구요?”
“그... 곱창이란 게 내장이잖아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곱이란 건 사실상... 소똥이잖아요. 소화가 덜된 소똥.”
“흐, 흐히히하하핳!”
보기만 해도 역겹다는 듯이 불판 위의 곱창을 바라보는 남궁진아, 그 대답에 한새벽은 빵 터지며 잠시 실성한 듯이 웃다가 이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불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곱창에 있는 건 똥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이 곱이란 게 소화가 덜 된 똥이라면 맛이 있을 수가 없죠. 소똥 냄새도 엄청 나고 사료를 뭘 먹이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질 테니까요. 자, 냄새를 맡아보세요. 고소하지 않나요오?”
한새벽의 말에 남궁진아는 살짝 코를 킁킁 거려봤다. 확실히, 고소하면 고소했지 소똥 같은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살짝 의아하다는 듯이 곱창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한새벽은 말을 이어나갔다.
“십이지장 아시죠? 거기서 대장에서 분비할 소화액이 나오잖아요? 곱은 그런 소의 소화액이랍니다. 지방과 단백질이 뒤섞인 진득한 액체죠. 소가 먹은 소화가 덜 된 똥이 아니라. 진아씨 피를 굳힌 선지는 먹죠? 대충, 선지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거예요.”
“...”
“그러니 츄라이츄라이.”
먹어보라는 듯이 손짓하는 한새벽, 그 모습에 망설이다가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망설여선 안 된다. 자신은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전투 I 시간엔 오물 위에서 뒹굴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걸 자신이 망설여선 되겠는가? 게다가 똥도 아니라는데?
술기운의 힘을 빌려 그녀는 젓가락으로 곱창을 집어 든 뒤에 두 눈 질끈 감고 입에 넣고 씹었다.
“...”
“맛있죠?”
...놀랍게도 맛있었다. 곱창 자체의 살짝 질기면서 부드러운 맛, 그 안쪽 곱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 그리고 살짝 짭짤한 간까지. 많이 먹었던 구운 고기와는 전혀 다른-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미식(美食)이었다. 다 씹은 곱창을 삼킨 뒤,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불판을 응시했다.
불판에 오래 올려져있어서 숨이 죽은 곱창도 이런데, 제때 먹는 곱창의 맛은 어땠을까?
그 순간, 남궁진아는 피식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역겹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제때 못 먹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다. 다시 젓가락을 뻗어 곱창을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면서 그녀는 한새벽을 향해 빙긋 웃었다.
“괜찮네요. 고기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맛이에요.”
“그렇죠? 아, 근데. 곱창이 사실 소화가 덜 된 소똥이 지나다니는 길은 맞아요.”
동영상의 정지 화면처럼 웃는 표정 그대로 덜컥 굳는 남궁진아, 하지만 벌써 소주를 한 병 반을 마시고 취한 한새벽은 전혀 그런 걸 눈치 채지 못한 채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 내용물을 쫙 씻어낸 소장을 놔두면 나중에 육벽에 스며들어 있던 소화액이 흘러나와서 곱이 되는 거죠. 아, 근데 가끔 손질이 잘 안된 곱창엔 소똥이 섞여있기도 하답...”
“이 시발련아!”
욱하고 터져 나오는 빡침, 술에 의해 낮아진 인내심의 허들을 간단히 넘어버린 그 물결에 그녀는 자제력을 잃고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한새벽의 뺨따구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