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60화 (60/350)

< 14화. 들키지만 않으면... >

4.

마빡 아가씨의 ‘아싸단’ 입단 환영회는 평범했다.

그래, 애들처럼 노는 게 전부였지. 코인 노래방(다행히 내가 아는 노래도 있었다. 부르니까 뭔 틀딱 노래 부르냐고 놀렸지만)도 가고, 보드 게임 카페(처음 가봤다)에서 게임하고, 저녁엔 고등학생과는 어울리지 않게 각종 복어 요리와 술(복어 지느러미 술이란 것도 있더라)도 쬐끔 먹고, 만화 카페가서 만화책도 보고...

너무 좋더라.

여기 떨어져서 처음으로 제대로 놀았다. 게다가 싸장님도 땡땡이를 용서해주셨다. 아예 연락도 안하고 빠지긴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놀기 전에 기숙사에 들러서 지난주 ‘토요일에 마법사 인증 시험에서 좀 무리했는지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전화했더니 오늘은 푹 쉬라고 하시더라고.

따흐흑...! 싸장님!

사실, 거짓말하고 땡땡이 친 날라리 알바생은 속으로 나마 웁니다. 아, 별개로 복어는 맛있게 먹었읍니다. 익혀도 부스러지지 않고 탱글탱글한 것이 맛있더라고. 확실히, 다른 생선에선 보지 못한 맛이었다.

“~♫”

다음날, 난 숙취해소 드링크를 마시며 상쾌하게 등교했다.

술 한 컵 마셨다고 숙취가 약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 24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수업-일-공부’가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루틴 속이었는데 오랜만에 거하게 놀았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오전 수업을 다 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점심을 먹으러 일어섰는데...

“...?”

놀랍게도 서예린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우리 찐따반의 ‘쿨 뷰티’를 맡고 있으신 분이지만 근래의 점심시간에서 만큼은 다르다. 편입반 방학 보충 수업 기간에는 늦게 가도 식당가가 한적하니 혼자 느릿느릿 하게 움직이셨는데, 개학하고 애들이 돌아오면서 식당가가 붐비고 몇 번 허탕을 치시자 바뀌셨다.

먹성 좋은 평범한 고딩 남자애들 마냥, 종 치자마자 전력질주로 움직인다.

가방을 멘 채로 미리 열어놓은 창문으로 ‘휙!’하고 넘어가는데, 부드럽고 소리 없이 움직이기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애들은 그녀가 마법처럼 사라진 줄 안다. 그런 그녀가 자리에 점심시간인데도 계속 앉아 있었다.

그것도 놀라운데 무려 ‘책’을 붙잡고 계신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지? 조심스럽게 시야를 이동시켜보니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뜬 채로 책을 읽고 계신다. 게다가 ‘흑드’라는 거대 비숑을 끼적이기 여념이 없던 공책에는 오늘 수업의 내용이 쬐끔 적혀 있었고. 도중에 졸았던 듯, 그 얼마 없는 글씨도 붓글씨처럼 곳곳에 흘려졌지만 말이다.

아, 꾸벅꾸벅 졸다가 침까지 흘리시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몇몇 애들이 수군거리고 있지만 그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비몽사몽으로 있다. 으음, 딱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어제 혼혈 애들이 슬슬 중간고사라고 했었지? 중간고사 준비하는 거구나. 흠, 의외구만.

솔직히, 나로선 그녀가 뭘 하던 간에 별 상관없다만...

-야톡!

꾸벅꾸벅 졸다가 난데없는 메신저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는 서예린, 그리곤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갤 돌려 날 본다.

그래, 내가 보낸 톡이다.

저번에 서예린네 집에 갔을 때, 번호를 교환해 뒀거든. 아마 우리 반에서 서예린의 스마트폰 번호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일어나세요. 용사여]

[점심시간입니다 선생님 밥 드시러 가셔야죠]

[그나저나 웬일로 책을 보시다니... 중간고사

준비하는 거?]

서예린

[ㅇ]

단답으로 짧게 답장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책가방을 정리하는 서예린. <관찰자의 눈> 시점을 옮겨 그녀의 책가방 안을 확인했는데, 거기에 들어가 있는 건 대학교 전공에서나 쓸법한 두꺼운 책-그것도 철학, 교육 심리학, 논리학등의 것이었다.

···왜 저런 걸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중간고사 성적은 확실히 조지실 것 같은데?

그 두꺼운 책 사이를 뚫고 보니 한 글자도 쓰이지 않은 새 책이다. 아예 공부 안한 티가 보인다 보여. 막판에 점수 좀 받겠다고 깔짝이는 것 같은데, 족보나 강의 필기 노트 없이 오직 교과서 공부로 점수를 받는다는 건 대학교 수업 수준에선 불가능하지.

다른 사람이라면 남의 일이니 혀를 쯧쯧 차고 넘어가겠지만-.

[선택 수업은 모르겠다만 필수 수업은]

[똑같으니 수업 필기 빌려드림?]

저 아가씨에겐 그럴 수 없다.

물론, 서예린이 날 껄끄러워 한다는 건 알지만 서강 아저씨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마력 독사 가죽 주머니’라는 좀 잡동사니 같지만 무지 비싼 물품에 ‘몽환의 물약’이라는 창조 계열 물약, 몰래 얻은 마법서 ‘부정한 생명의 탐구’까지. 이렇게 받아먹었는데 외면할 순 없지.

그런 내 야톡 내용을 본 서예린의 미간이 깊어지더니···

서예린

[대가 무엇?]

톡을 보내오셨다. 그래도 내 도움을 받으시겠다니 어서 빨리 답장해드려야지.

[없으니까 걱정ㄴ 옥상에 있을 테니]

[아, 정정함. 밥 사주셈]

[요즘 돈 없어서 점심 편의점 빵으로 때움]

[생각 있음 공책 가지고 오셈]

서예린

[ㅇ]

5.

답장을 받은 뒤, 난 곧바로 옥상으로 이동했다.

그 뒤, 적당한 벤치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끼적였다. 원래대로라면 빵과 우유를 함께 먹겠지만 오늘 점심이 해결된 이상 빵은 내일 양식으로 쓸 예정이다. 우유는 상온에 오래 있었으니 그냥 마셔야지.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웹서핑을 하고 있을 때-.

“아, 어서와요.”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려왔다. 예상대로 책가방을 멘 서예린, 내 인사에 그녀는 작게 고갤 끄덕이곤 내가 앉은 곳까지 다가온다. 그렇게 다가온 그녀는 곧 내 옆에 열어둔 책가방 속을 보더니 미간을 찡그린다.

“...공책 없음?”

우유를 꺼내느라 열린 내 책가방은 편의점 빵 하나를 제외하면 텅 비었다. 당연히, 저런 질문도 할 만하지. 그에 난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거든요.”

난 책이나 공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임 시스템>의 하위 항목 <메모장>의 기능이 굉장히 뛰어나거든. 이 <메모장>은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은 물론이고 본 것을 사진처럼 찍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 생각대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컴퓨터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능가한다.

그렇기에 난 책가방은 그냥 구색 삼아서 들고 다니고, 책과 공책은 <메모장>에 분류해서 저장해두고 쓴다. 그런 내 대답을 곡해했는지 서예린의 얼굴이 굳어지기에 재빨리 손을 들어 해명했다.

“오해 마세요. 필기는 줄 수 있으니까. 그 공책 좀 주시겠어요?”

이어진 답변에 살짝 미심쩍은 표정으로 책가방에서 자기의 공책을 꺼내주는 서예린, 남은 우유를 입에 한 번에 털어 넣어 삼킨 뒤, 한 번 가볍게 공책을 훑어봤다. 역시나, 앞의 두 장이 조금 끼적인 거 빼면 거의 새 공책. 부끄러운지 서예린은 살짝 내게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오히려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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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화된 마력(Materialized Arcane Power)

레벨 0 부여술/연금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20

지속시간 : 50+2d(SP)sec

최소 소모 마력 : 1

효과 : 물질화된 마력을 만드는 기초적인 마법, 몸에서 마력을 분사하는 형식이기에 술자가 의도하는 신체 부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물질의 성질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응용을 할 수 있지만, 이 주문 자체가 가볍기에 성질의 부여에는 한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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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흫!”

내가 싸장님 작업장에 첫날 방문했을 때, 싸장님이 검지로 허공에 글자를 썼을 때 보여줬던 마법.

당연히, 싸장님에게 졸라서 나도 익혔다. 내 오른손바닥이 르피너스를 연상케 하는 자줏빛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그 불길한 색채(色彩)를 본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경쾌한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괴상하게 쳐다보는 서예린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난 가볍게 빛나기 시작하는 오른손바닥으로 공책의 빈 장을 쓸어내렸다.

“머.. 머임?”

공책 빈 칸에 적힌 자줏빛 글씨들, 이 <메모장>에 있는 내용들은 내 머릿속에 완벽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마력의 형상을 조작해서 ‘찍어내듯이’ 공책을 채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이대로는 부족하다.

이 주문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은 불안정해서 얼마 안가 사라지거든. 그러니 빨리 추가조치를 해야지. 서예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난 이어서 품 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쓰읍... 하아!”

전자 담배를 크게 빨아들이면서 <연금술>을 사용했다.

<독숨결 구체> 마법을 응용해 폐포 속에서 조작한 혈액 성분과 대마초 오일을 뒤섞은 후, 그대로 그 숨결을 자줏빛으로 빛나는 글자가 적힌 장에 내뱉었다. 타르 같은 새카만 숨결이 공책을 뒤덮고, 연기가 흩어진 뒤에 드러난 글자들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한 순간에 빼곡하게 들어찬 면을 보여주며 난 빙긋 웃었다.

“짠, 어때요? 흐흐흫!”

“...그거 진짜 필기임?”

“네! 내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정리한 거니까요! 제 머릿속에는 백지같은 빈 공간이 있어서 이렇게 적어두는 게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스캐너처럼 난 <메모장>에 적힌 필수 과목들의 필기를 공책에 찍어냈다. 그렇게 공책 2개의 가득 필기를 채우고 난 뒤, 난 광채를 목격한 부작용인 웃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계속 대마초 오일이 들어간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공책을 넘기고 있는 서예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공부엔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꽤나 열심히 준비하시네요? 하핳!”

“...놀림?”

“아뇨, 전혀요. 흫!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요. 마법을 쓰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흐흐흐!”

과민 반응하는 흑누나를 향해 고갤 저으며 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공부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충분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었어요. 우리 반에도 몇 명 있잖아요? 그런 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당신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죠. 이미 미르의 교관급 실력인데 공부할 필요가 있나요?”

선택된 ‘마력 사용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한 나이대의 청소년, 당연히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한다. 미르 측에서 스파르타식으로 공부시키고는 있지만, 우리반의 절반 정도는 반쯤 느긋하게 놀고 있다. 그냥 평범하게 대학교 준비하는 애들도 있고.

그런 내 대답에 서예린은 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갤 젓는다.

“그러니 필요함.”

“필요하다뇨?”

“교사하려면 필요함.”

“...교사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내가 살짝 벙쪄 있는 동안, 서예린은 노트를 책가방에 넣으며 진지하게 고갤 끄덕였다.

“밖에서 생활하려면 일해서 돈 벌어야 함.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것 칼질. 그 칼질로 돈 벌려면 선생님, 전투 공무원, 용병 셋 중 하나에 들어가야 하는데, 교사가 제일 나음. 전투 공무원, 너무 짜증남.”

질색이라는 듯이 부르르 떠는 서예린, 선도부에서 봤듯이 전투 공무원은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다. 철저하게 규율을 따지고 상명하복이 일상이 되어 있는 곳, 꽤나 자유분방한 걸로 보이는 그녀로선 좀 짜증날 만도 하겠네.

“그리고 용병은 위험하고 여기서 고용해줄 곳이 별로 없음. 결국, 남은 곳은 교사. 교육 공무원이 안전하고 좋음. 근데, 아빠에게 물어보니 교사하기 힘들다... 논리학?! 어째서? 철학!? 왜에? 왜에에에에!? 교육 심리학!? 쟝 피아제의 스키마 개념? 인식론? 아이에에에엑!”

“흐음.”

생각만으로도 괴로운 듯,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마지막에 가선 양손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붙잡고 ‘뭉크의 절규’처럼 찌그러트리는 서예린. 으음, 과제 리얼리티 쇼크(Assignment Reality Shock)에 걸린 대학원생을 보는 것 같은 그 모습에 난 탄식했다.

책가방에 웬 교육 심리학이나 논리학 같은 책이 있나 싶었는데, 교사가 되려고 하는구나.

그나저나 식탐에 관한 일을 제외하면 항상 차분하고 쿨-뷰티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가 경계하는 내 앞에서 저런 기괴한 반응을 보이다니... 그렇게나 괴로운 건가? 나야 지하에서 흑드라는 거대 비숑과 노는 모습을 봤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다른 애들이 봤으면 경악했을 거다.

...근데, 굳이 그녀가 교사를 할 필요가 있나?

서예린은 정말 웬만한 모델을 뺨칠 정도로 예쁘다. 지금은 ARS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가있지만 과묵은 그 모습은 카리스마까지 느껴지지. 말 그대로 와일드한 강한 눈나의 표본, 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의 모델로 쓰면 대박일 걸? 걍 모델만 해도 될 것 같은데?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신 적 없나요? 그 모...”

“안댐. 난 공무원 할 거임. 안전한 게 최고. 공무원 연금, 20년만 하면 평생 불로소득 만세.”

“...뭐, 그렇게 교사가 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죠. 파이팅.”

반쯤 발작을 일으키다가 다른 직업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타협할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대답하는 서예린, 굳이 교사를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만. 쯧쯧, 그럼 고생 좀 하시겠네. 안타깝구만. 만약, 나였다면 그냥 <관찰자의 눈>으로 컨닝을 해버렸을...

잠깐만, 컨닝?

섬광처럼 번뜩인 생각에 난 풀이 죽은 채 축 늘어진 어깨로 가방을 걸치는 그녀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근데, 굳이 배우지 않고 시험만 잘 보면 되지 않나요?”

“...뭔솔?”

“혹시, 시험에 나올 문제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걸 볼 의향이 있나요?”

이 시야의 시점은 아주 자유롭다.

그 민감한 서예린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 벽을 뚫는 건 일도 아니지. 교무실 안쪽을 스윽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시험장에서 시점을 위로 올려 실시간 컨닝도 가능해. 그것뿐인가? 응용 기술인 <과거시>는 물체의 과거를 볼 수 있다!

그런 내 의미심장한 질문에 서예린은 혹한 표정으로 변했다가 이내 고갤 젓는다.

“...불가능. 교무실 방비 철저. CCTV깔림. 외부 초청 교수도 추적 힘듬. 걸리면 끝장.”

“그런 대답을 하는 걸 보니 한 번 생각해 봤나보죠?”

“...”

“하핳! 장난이에요! 장난!”

썩어 들어가는 서예린의 표정에 난 재빨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마세요! 제가 마음먹고 손을 쓰면 충분히 들키지 않고 빼내는 게 가능해요. 아, 방법은 비밀이랍니다. 그게 참 스피리츄얼 한 거라서.”

입에 물었던 전자 담배를 떼며 ‘쉿!’하는 손 모양을 하자 서예린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도덕 수업을 받는 만큼, 이게 잘못 된 거란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까? 악마의 속삼임을 듣는 듯, 갈등하던 서예린은 이내 날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대가 무엇?”

“추가적인 요금은 걱정하지마세요. 이번 건, 오늘 점심 사주는 걸로 퉁치는 거니까요.”

“...공짜 없다.”

“맞아요. 공짜는 없죠. 전 지하에 들어갔을 때, 예린양의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만으로도 넘치다 못해 난감해서 이런 거예요.”

“...”

“몽환의 물약, 그거 제가 알아보니 들어가는 재료값만 억 단위였다니까요? 마력 독사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도 귀한 거고. 오히려 빚을 갚지 못해서 난감했죠.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으니 다행이에요. 어때요? 구해다줘요?”

“...진짜 안 들킴?”

“장담하는데, 안 들켜요. 설령 들킨다고 해도 제가 혼자 뒤집어쓰도록 하죠. 콜?”

“...콜.”

그렇게 서예린은 내 기준으로 훌륭하게 사회에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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