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66화 (66/350)

< 15화. 범죄는 아니겠죠? >

아니, 혼혈 애들도 그렇고 도대체 왜 미궁 출신들은 왜 마빡 아가씨가 재벌가 일원이란 걸 말할 때마다 신기함과 동경에 찬 눈이 되냐? 난 재벌 보단 이종족하고 미궁 출신들이 훨씬 더 신기한데 말이야. 뭐, 어찌됐든 나로선 나쁘지 않은 반응이지만.

“간단히 스파이에게 역으로 빨대를 꼽아서 같이 자료를 빼돌리는 것, 이게 이번 일의 목표랍니다.”

“흐음, 내가 할 일. 무엇?”

“잠입해서 물건 하나를 잠깐 빼돌려주는 거예요. 그 뒤엔 다시 들어가서 되돌려놓으시고.”

그런 내 설명에 서예린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놔뒀던 음료수를 들어 한 모금 마신다.

“...들키면 범죄.”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죠. 제가 드렸던 시험지들처럼.”

안 들키면 된다는 내 대답에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두 눈을 감는 서예린,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거절하진 않는다. 내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시험지 빼돌린 걸로 어느 정도 증명해서 그런가? 어찌됐든 그렇게 고민에 빠진 듯한 그녀에게 난 쐐기를 박듯 말을 꺼냈다.

“장담하건데, 아주 쉬울 거예요. 예린씨의 움직임과 그 왼손 중지에 낀 ‘반지’와 함께라면 낙승이죠.”

“...!?”

“어때요? 제 안목이? 약간이긴 하지만 좀 믿음이 가지 않나요?”

두 눈을 부릅뜨며 날 바라보는 서예린, 경악하는 그녀를 보며 난 빙긋 웃었다.

<관찰자의 눈>은 마법적인 아우라까지 본다. 그리고, 어떤 물품의 정보창을 띄우려고 생각하면 <게임 시스템>과 <과거시>의 보조로 물품의 자동 감정까지 해주지. 겉으론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서예린의 왼손 중지, 하지만 거기엔 보이지 않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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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반지 (Ring of Ghost)

빛을 완벽하게 투과하는 특별한 수정으로 만들어진 반지. 그 어떤 빛의 반사가 없기에 손가락에 끼고 있어도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을 시, 빛을 완벽하게 굴절시키는 에너지 막이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 몸을 뒤덮는다.

능숙하게 사용할 시,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곳에 자신의 환영을 생성시킬 수 있다.

반지

은밀도+, 발동 시 <투명화> 및 <환영> 사용 가능(마력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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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투명하게 해주고 환영을 생성시키는 힘을 가진 아티팩트 반지, 은밀도+까지 붙어있다. 점심시간마다 교실을 빠져나가는 몸놀림과 저 반지를 쓴 서예린을 생각하면 잠입 같은 건 쉽지. 참고로 이게 끝이 아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법 물품은 하나 더 있다.

저 허리춤에 달려있는 칼집에 담긴 단도, 저것도 보통 마법 물건도 아니고 특별한 이름이 붙은 ‘아티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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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롱니의 약속 (Glongni’s Promise)

겉보기엔 이가 나가고 볼품없이 녹슨 이 단도는 고대의 강력한 마법 물품이다. 볼품없는 외형과는 달리 칼날은 비정상적으로 날카로우며, 손잡이 곳곳에 튀어나온 마법적인 작은 가시는 착용자의 손에 상처를 내 피가 흐르게 하지만 그 대신에 주술(hex) 계통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내 두개골을 곱게 빻아 쇳물에 집어넣어라. 그리하여 칼을 벼려내면 나는 너희를 충만히 북돋는 원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 그롱니가 그의 계승자들에게 약속하며

한손 무기, 숏소드

대미지 6, 명중 +4

기본 공격속도 1.1, 최소 공격 속도 0.5

파괴의 무기(slice), 음에너지 저항+, 독 저항, Hp –5, 주술 마법의 효과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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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단도와 투명화 반지를 감정하면서 그녀의 과거 또한 대충 훑어보듯 볼 수 있었는데··· 무지 살벌하더라.

주술 마법을 써서(알고 보니 그녀도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 <유령의 무기>, <가속>, <환영>등의 강화 마법을 걸고 ‘엘프 검사’와 ‘엘프 마법사’들을 냉혹하게 죽이는 광경은 평소의 쿨하면서도 어딘가 살짝 맹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어. 무엇보다 알고 지내는 사람의 살인 장면을 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어찌됐든 그런 내 말에 서예린은 곧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지막이 물어본다.

“수락 안하면?”

“다른 사람 부탁하면 되요. 이영이라고 하프 딥 엘프 친구가 있거든요. 그 아이도 <투명화>를 쓰고 은밀하게 움직이죠. 그럼, 예린씨는 5천만 원과 시험지를 놓치는 거고요.”

“으으으음...”

내 대답에 팔짱을 낀 채 얼굴을 구면서 침음성을 흘리는 서예린. 포섭할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까탈스런 반깜귀 녀석도 생각했다. 근데, 솔직히 걔가 해줄지도 의문이야. 서예린이 거절하면 사실상 이번 계획은 힘들지. 여유로운 척을 하긴 했다만 나도 많이 절박해.

그렇게 탁자를 내려다보며 고뇌하던 서예린은 이내 컵을 들어 올려 음료를 완샷하곤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게 아빠가 말한 덫인 것 같다...”

“원래 세상은 그래요. 주고받고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거부하기 힘든 제안도 생기는 거고.”

“...”

“참가하는 거죠?”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고갤 끄덕이는 서예린을 보며 난 빙긋 웃었다.

6.

서예린이 합류하기로 한 뒤, 난 그날 저녁 알바도 땡땡이치고 스파이의 집을 한 번 정찰했다.

스파이가 송파구 지상의 고급 주상 복합에 거주하고 있어서 찾아가긴 쉬웠다. 그리고, 상점 부분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어서 몰래 묻어가기도 쉬웠지. 그렇게 천천히 아이 쇼핑하는 척하면서 <관찰자의 눈>을 천천히 이동시키며 CCTV나 다른 감시 장치들이 있는지 살폈다.

그렇게 다른 변수가 있는지 정찰한 다음날 금요일

오후 9시까지 진행되는 ‘전투 I’ 수업을 땡땡이 치고 난 이번 계획에 참여할 이들을 불러냈다.

“...”

마빡 아가씨의 아싸단 합류 환영회 때 방문했던 코인 노래방, 내 연락을 받고 온 마빡 아가씨는 내 반대편 좌석에 팔짱을 끼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서예린을 보곤 흠칫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함께 있으니 흠칫할만하지. 그에 난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같은 반이니 서로 아는 사이죠? 이번 계획을 도와주실 서예린 양이랍니다. 포섭하는데 힘들었어요.”

“...어, 그.. 그렇군요. 반가워요. 예린양.”

“음.”

마빡 아가씨의 어색한 인사에 짧게 답하며 고갤 끄덕이는 서예린. 그냥 보기엔 쿨 해보이지만 자주 만나본 난 서예린이 꽤나 긴장했단 게 보였다. 도대체 미궁 출신 애들에게 재벌이 뭐길래 저렇게 사단장을 만난 군바리처럼 바짝 굳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짧은 인사가 끝나고 정신을 차린 마빡 아가씨는 중앙 부스에 앉으며 빙긋 웃는다.

“설마, 예린양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어요. 그나저나 예린양이 당신과 서로 아는 사이, 그것도 이런 부탁을 할 만한 가까운 사이라니 정말 의외네요.”

“가까운 사이. 아님.”

마빡 아가씨의 말에 곧바로 고갤 저으며 반박하는 서예린, 그 뒤에 그녀는 날 보며 고민하더니 이내 고갤 갸웃하며 답한다.

“...주고받는 사이?”

“하하... 뭐, 그렇죠.”

마! 우리 같이 전투 수업도 듣고! 같이 집에도 가고! 같이 밥도 묵고! 시험지도 빼돌려 같이 보고! 이렇게 같이 한 게 많은데 고작 주고받는 사이라니... 서운하네.

뭐, 그래도 이해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내 존재감이 악마 같다고 하니까. 그것도 서강 아저씨가 소환해줘서 봤던 최하급 악마 ‘임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고위 악마. 그러니 이해해야지.

“자, 어쨌든 물주께서 오셨으니 이번 ‘탈취 작전’에 대해 설명하죠.

한 차례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본론을 꺼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난 미리 준비한 공책을 꺼내고 <메모장>을 켜며 브리핑을 읽어나갔다.

“먼저, 제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스파이는 빼돌린 자료를 인터넷으로 전달하지 않아요. 마약 거래처럼 자료가 든 USB를 약속된 장소에 던지고 사라지죠. 근데, 말이에요. 그렇게 쓰이는 USB는 평범한 게 아니에요. 주기적으로 ‘특수한 USB’를 공급받아서 쓰고 있어요.”

“아, 그거.”

서두만 말했는데도 뭘 말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이는 마빡 아가씨, 잘 모르는 눈치인 서예린을 한 번 힐끗 거리더니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간다.

“기업이나 정부의 중요 자료들이 들어가 있는 컴퓨터는 평범한 USB를 쓸 수 없답니다. 인가된 USB만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USB를 꽂으면 바로 경보가 울리죠. 설령, 인가된 USB를 쓰더라도 자료를 옮기면 컴퓨터에 흔적이 카운팅이 돼서 자료가 흘러나갔는지 파악 가능하고요. 하지만, 중국 스파이들이 쓰는 USB-속칭 ‘황금 열쇠’는 그런 방어 장치를 뚫어낸답니다.”

“되게 잘 아시네요?”

“당연하죠. 발견될 때마다 거기에 맞춰서 대처를 하고 있는데, 황금 열쇠도 주기적으로 즉각즉각 계속 버전 업이 되고 있으니 짜증나요. 분명 정부 단위의 개입이 분명한데 중국은 자기네들이 한 거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고. 어휴.”

한숨을 푹 내뱉는 아가씨, 그 친절한 설명에 난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 설명해주셨다시피 그런 특수한 USB가 있어요. 그리고 보안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고 하셨는데...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대충 맞네요.”

“정확하지 않다고요?”

“예, 그 USB는 일종의 일회용 마법 도구거든요. 아가씨가 태블릿PC로 하던 짓과 비슷한 일을 하죠.”

<과거시>로 관찰한 아줌마의 USB는 아주 미약한 마법적 아우라가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사라지고. 관찰해보니까 컴퓨터에 연결할 때, 특이한 마법적 스파크가 발생하는데 그게 하드웨어에 간섭했다.

그런 내 답변에 마빡 아가씨의 얼굴이 기괴하게 변한다.

“진짜에요?”

“네,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고용주님을 앞에 두고서?”

“아니, 국정원이 기업들에게 준 정보엔 그런 게 없었는데...”

“큼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뭐야, 아직 대한민국 정부도 눈치 채지 못한 거였어? 그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알아낸 거고?? 아가씨의 의심스택이 하나 오르겠지만, 어찌됐든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기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주님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USB는 대충 1개월마다 갱신해줘야 해요. 말했다시피 일회용 마법장비에 가까워서 그 효과가 다하거든요. 그래서 한 달 마다 새로운 장비를 소포로 받죠.”

“음.”

“그리고, 하나 더.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용되고 있어요. USB를 배달하는 이가 따로 있고, USB를 회수하는 이가 따로 있죠. USB를 배달하는 쪽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배송회사지만, USB 회수 업무를 하고 있는 이들은 중국 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이죠.”

“...”

“그래서 회수 업무를 하고 있는 이들은 3개월에 한 번씩 나타나요.”

“이런 걸 어떻게 안 거죠?”

“...영업 비밀이랍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 내 밥줄인데.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아가씨의 시선을 영업용 웃음과 함께 어물쩡 넘어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럼 자료를 건네줄 때까지 USB가 3개 생기겠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자료를 넘길 시간이 되었어요! 스파이는 이 3개의 USB를 어떻게 넘길까요?”

“그냥 USB 3개를 함께 놓겠지?”

“아뇨, 스파이는 깐깐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그러지 않아요.”

마빡 아가씨의 대답에 난 고갤 저으며 <과거시>로 봤던 스파이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 누구에게 뒷조사를 맡기더라도 찾기 힘들 스파이의 ‘사소한 습관’, 거기서 난 답을 찾았다.

“스파이는 그렇게 모인 자료를 하나의 USB에 모아서 건네요. 그리고, 그 작업을 집에서, 항상 들고 다니는 노트북으로 하고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 외부의 해킹에서 안전한 문서 작성용 노트북!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

“농담이에요. 농담.”

우리 마빡 아가씨가 가지고 다니는 태블릿PC랑 비슷해서 농담을 날려봤는데, 싸한 눈초리만 돌아왔다. 쩝. 그렇게 내가 쭈그러들자 마빡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곤 납득했다는 듯이 고갤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

“자체 인터넷이 되는 해킹용 USB포트 같은 게 있냐고 물어봤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예, 자체적인 Wifi가 있는 해킹용 USB포트를 그 노트북에 설치해둔다면... 자료를 합치는 그 짧은 타이밍을 노릴 수 있을 거예요.”

“나름 납득이 가는 조치네요.”

천천히 고갤 끄덕이는 아가씨, 좋아 이걸로 클라이언트 설득은 끝났-.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는 걸요?”

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신다. 아니, 이 완벽한 작전에 문제가 있다고?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나오자 아가씨는 앞 탁자에 턱을 괴며 날 추궁한다.

“당신의 말을 들어보면 스파이가 틈틈이 빼돌린 자료를 하나로 합칠 때를 노려서 정보를 빼돌리는 거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스파이가 틈틈히 자료를 빼돌리지는 않는다면요?”

“예?”

“한 달에 한 번씩 빼돌리는 중간 연구 자료들을 생략하고, 막판에 결과물만 빼돌리면 어떻하냐고요?”

음, 우리 아가씨가 주장한 클레임을 알겠다. 확실히, 스파이 아줌마는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자료를 빼돌리지 않을 때도 있다. 3개월에 딱 한 번 자료를 빼돌릴 때도 있었고. 그래서 한 USB만 쓰는 경우도 있었지.

그 질문에 난 어깰 으쓱이며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고요?”

“네.”

내 답변에 앉은 소파에 등을 깊게 기대면서 다리를 꼬는 마빡 아가씨, 어느새 손깍지도 껴서 배 쪽에 올려놓았는데 그 모습이 ‘절대 갑’에 위치한 분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으윽, 나도 모르게 몸이 쭈그러드네.

그걸 파악한 건지 마빡 아가씨는 입꼬리를 올리며 꼬투리잡기에 들어간다.

“전 ‘완벽한 자료’를 원해요. 그리고, 당신에게 약속한 성공 보수는 완벽한 자료를 기준으로 한 거고. 그런 걸로 돈을 온전히 받을 생각하다니, 너무 염치가 없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어쩔 수 없...”

“난. 완벽한. 자료를. 원한다고요.”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기를 시전하는 마빡 아가씨, 저러니 진짜 망나니 재벌 3세 같다. 잠깐 차분히 심호흡을 하며 동요를 가라앉혔다. 그래, 보수를 깎기 위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러시다면 돈을 올려주세요.”

“...뭐라고요?”

“스파이는 관리가 철저해서 ‘연구소에서 자료를 빼돌릴 때’와 ‘나눠진 자료를 합칠 때’를 제외하면 아예 USB를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아요. 그런 자료를 빼돌리려면 주기적으로 스파이의 집에 찾아가서 USB를 ‘직접’ 빼돌려야겠죠?”

“...”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정기적으로 뒷조사와 들어갈 사람을 구해야겠죠? 아무리 잘 준비했다고 해도 계속 그러면 들킬 수도 있으니 위험수당도 필요하겠네요? 그걸 다 합치면... 지금의 ‘단발성 보수’ 가지곤 많이 부족하죠.”

“...”

“그리고, 아가씨가 말한 경우는 드물어요. 그냥 이번 한 번 들어가서 노트북에 백도어를 심고 그걸 안전하게 빼돌리는 게 훨씬 낫죠.”

어떻게든 흠을 만들어서 값을 깎으려는 클라이언트에게 딴지 걸려본 게 한 두 번 인 것 같냐? 30대 직장인을 우습게 보지마! 그렇게 생글생글 영업용 미소를 띠며 안내하자 마빡 아가씨는 잠시 말없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다.

“좋아요. 그쪽이 하란대로 하죠.”

“네에~”

다행히 마빡 아가씨는 순순히 납득하신다. 어설퍼 어설퍼. 여기서 소리를 높여야 진짜 진상 갑인데 말이지. 어찌됐든 나야 좋다. 그렇기 싱글벙글하자 마빡 아가씨는 배알이 꼴린 건지 미간을 꿈틀댄다.

“그럼 이번에 스파이의 노트북을 빼돌릴 방법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아주 자세히.”

“그것도 다 준비해놨죠.”

책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공책을 꺼내면서 난 심기가 불편하신 재벌 3세를 향해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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