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71화 (71/350)

< 16화. 스며드는 핏물 >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새끼, 김대환이 처음 가출팸에 들어왔을 때 남자가 내린 평가였다.

냉정하게 말해 가출 청소년들은 평균적으로 ‘질’이 좋지 않다. 아닌 애들도 있지만 그건 소수, 진짜 영리한 애들은 힘들더라도 대부분 이를 악물고 가정에서 끝까지 버틴다. 아무리 가정 내에서 부모에게 두들겨 맞고 무시당하더라도 충동적으로 가출하는 것보단 낫다는 계산을 끝내니까.

지능이 떨어지거나, 혹은 인내심이 바닥이거나.

그리고, 대환이는 그 둘에 다 속했다.

그래도 귀중한 노동력이기에 밑의 남자애들을 시켜 두들겨 패고 말로도 구슬려가면서 잘 써먹었다. 실제로 마력을 각성하기 전, 대환이는 감히 그의 눈조차 함부로 마주칠 수 없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었다.

근데, 이 새끼가 ‘마력 각성’이라는 로또에 당첨됐다.

당연히, 계획을 바꿨다. 성공할 것이 확실한 후배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은근히 말로 구슬리고 친한 척을 했다. 근데, 이 새끼가 잘해주니까 너무 날뛰기 시작했다. 자신과 맞먹으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이 팸의 주인인 것처럼 굴려고 한다.

...그래, 맞먹는 것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이 가출팸의 주인 노릇은... 그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역린이었다. 마력 각성 이후, 항상 친한척 사근사근하던 남자의 싸늘한 반응에 대환이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변하는 가운데 그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매 주, 그것도 가장 벌이가 잘되는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까지 거하게 놀고 모아놓은 돈만 쪽쪽 쓰고 가네? 아니, 씨발. 우리 돈 많이 벌지 않냐고? ‘우리’? 우리!? 니가 여기 팸의 두목이야?! 이거 내 돈이야 새끼야! 내 쌩돈 쓰고 있는 거라고!”

“...”

“위쪽에 상납금 내면 진짜 돈 없어. 니가 금토일 3일 동안 쪽쪽 돈을 까먹으니 벌이가 1/3 됐다. 반 토막도 아니고 세 토막 났어!”

“...”

“내가 웬만하면 참겠는데 넌 진짜 못 참겠다. 그냥, 이제 가라. 넌 집에 들어가도 되잖아? 그토록 개 무시하던 애미애비가 이젠 우리 귀한 아들이라며 아주 떠받들어 준다면서?”

신랄한 비난을 쏟아낸 뒤, 신경질적으로 다시 가계부 정리를 시작하는 남자. 그런 남자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한참 동안 아무런 말없이 있던 대환이는...

“씨발...”

“뭐?”

욕설을 내뱉었다. 자기 딴에는 억울함이 가득한 욕설, 하지만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잡았던 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 병신 새끼가 마력 각성해서 좀 대우해주니까 위아래를 구분 못하네... 너, 뒤지게 쳐맞고 싶냐?”

가출 청소년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은 딱 하나, ‘폭력’밖에 없다. 순수하고 날것의 폭력만이 ‘아는 게 없어서 겁 없이 날뛰는 애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남자가 가출팸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폭력이 특출 났기 때문이었고.

나지막하지만 살기가 느껴지는 남자의 음성에 대환이는 순간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대환이가 불리해보였다. 남자는 탄탄한 근육질인 반면에 대환이는 그냥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대환이는 마력 사용자였다. 마력을 각성한 뒤부터 자신의 체격이 커지고 힘 또한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대환이는-.

“뒤져!”

과감하게 달려들어 선빵을 날렸다.

발작적으로 날린 주먹, 마력 사용자의 신체는 단련을 시작하면 이론적으론 계속 성장한다. 하지만, 단련하지 않으면 대부분 엘리트 체육인 수준에서 유지된다.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던 대환이의 주먹도 마력의 영향 덕분인지 평범한 고등학교 애들 수준은 아니었지만-.

진짜 엘리트 체육인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뻐-억!

재빠르게 날아오는 대환이의 주먹을 피한 뒤, 팸의 우두머리는 카운터를 날렸다. 안면에 정면으로 내리꽂히는 정타, 일반 고등학생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상대방은 마력 사용자였다. 연속해서 남자는 대환이의 명치에 니킥을 꽂고 그 한쪽 멱살을 틀어진 뒤-.

“마력! 사용자가! 되서! 뭐라도! 된! 것! 같았냐!? 이! 씨발! 새끼야?!”

살벌한 폭력을 이어나갔다.

문단을 말할 때마다 얼굴에 내리꽂히는 남자의 주먹, 원래부터 싸움을 잘했고 가출팸의 우두머리가 된 뒤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각 잡고 폭력을 연마한 그 주먹질은 웬만한 아마추어 복서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 잠깐 동안, 대환이의 이빨이 부러져 튀어나왔고 한쪽 광대뼈가 함몰되었다.

대환이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방어하며 멱살을 잡아챈 왼손을 떼어내려고 하자 남자는 빠르게 멱살을 놓고 도장을 전전하며 배웠던 각종 격투기 기술들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니킥, 어퍼컷, 팔꿈치 찍기, 암 트라이앵글 쵸크... 평범한 일반인은 죽을 만한 폭력이었지만 남자는 거침없었다.

그렇게 1분 넘게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진 결과...

“허억! 허억! 허억! 좆도 아닌 게 어디서 깝쳐.”

대환이는 힘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콧뼈가 완전히 내려앉았고, 한쪽 광대 함몰됐으며, 앞 이빨은 모두 박살나서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겁에 질린 그 모습에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뒤, 숨을 헐떡이며 비 오듯 땀이 흐르는 땀을 한 번 쓸어내리곤-.

“병신 새끼가!”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대환이의 머리통을 향해 싸커킥을 날렸다. 그 킥을 맞고 대환이가 완전히 뒤로 나자빠진 가운데, 남자는 천천히 무방비가 된 대환이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패배한 개새끼처럼 벌벌 떠는 대환이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야, 너 미르에서 엄한 애 건드리려다가 두들겨 맞고 겁에 질려 오줌 질질 쌌다면서?”

“...!”

“내가 니 옛날 친구들하고 연락이 안 되겠냐? 니 소문, 우리 팸뿐만 아니라 여기 목포에 쫙 다 퍼졌어. 그냥 다들 모른 척 해주는 거였던 거야. 마력 각성자니 만큼, 앞으로 뭐라도 될 테니까.”

마지막 남은 자존심. 절대로 들키기 싫었던 그 치부를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는 말에 대환이의 두 눈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변하는 가운데, 남자는 잔혹한 웃음을 띠며 한손으로 대환이의 뺨따구를 툭툭 건드렸다.

“그래, 같은 마력 사용자들 사이에선 병신취급 받으니 우리 일반인들에게 섞여서 왕 노릇 하고 싶으셨겠지. 하, 진짜 웃겨. 병신새끼는 마력 각성해도 병신이니... 세상 참 억울해. 너 같은 새끼는 마력 각성하고 훨씬 더 뛰어난 나는 이런 밑바닥에 굴러야 하니 말이야.”

-쫘악!

뺨을 건드리다가 마지막에 전력으로 싸대기를 후려친 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대환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받아먹은 건 갚으라고 하지 않겠다. 그러니 여기서 꺼져. 또 쳐맞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할 말을 다 끝낸 후, 남자가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장부를 정리하려는 찰나-.

“-흐어어엉!”

뒤늦게 수치심과 분노에 눈이 뒤집어진 대환이가 괴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등판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기세는 흉흉했지만 그 만큼 커다란 기척이 났고 남자는 곧바로 옆으로 몸을 피하며 주먹을 뻗어-.

-뻐억!

대환이의 아래턱에 꽂았다.

교과서 같은 카운터 펀치, 인간이면 정신을 잃는 것이 당연한 타격이었지만 ‘마력’은 현실의 법칙을 일그러트렸다. 한 인간이 수십 톤의 무게를 휘두르고, 세계 최강대국을 파멸로 몰고 가는 재앙을 두들겨 패서 으깨버리는 것이 가능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수치심으로 인한 ‘강렬한 분노’

그러한 감정을 원동력으로 대환이는 잠시나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뇌가 흔들리는 타격을 입었음에도 멀쩡히 움직였다. 다만, 달려드는 가속도는 어쩔 수 없었던 지라 대환이는 그대로 식탁을 향해 쓰러지듯 엎어졌지만-.

“듀거!!”

민활하게 손을 뻗어 식탁 위에 있던 볼펜을 낚아챈 후, 앞 이빨이 빠져서 기괴한 괴성을 내뱉으며 튕기듯이 다시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아래턱을 날렸으니 당연히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던 남자는 반응이 살짝 늦었고, 대환이는 왼손을 뻗어 기어코 남자의 팔을 낚아챈 뒤에-.

-콰직!

“아아아악!!”

오른손에 꽉 쥔 볼펜을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리고, 황동 재질에 도금처리 된 명품 메이커 볼펜은 남자의 두개골을 뚫을 정도로 튼튼했다. 게다가 거의 야수 수준의 맷집을 자랑하던 대환이와는 달리 남자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한두 번째는 팔다리를 휘두르며 비명을 질렀지만 세 번째에 볼펜이 눈알을 뚫고 찍히자 남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눈이 뒤집어진 대환이는 쓰러진 남자의 위에 올라타 얼굴을 계속해서 볼펜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분노에 차서 미친 듯이 내리찍다가 정신이 들었을 땐-.

“...”

남자는 머리는 완전히 박살나 있는 상태였다. 주먹질로 인해 안면이 움푹 들어갔고, 그 중심에는 볼펜으로 인한 구멍이 숭숭 뚫렸다. 경련하는 남자의 몸뚱이를 보고 대환이는 그제야 피 묻은 볼펜을 떨어트리고 자신이 ‘엿됐음.’을 깨달았다.

“시바...! 시바...”

덜덜 떨리는 피 묻은 손으로 대환이는 스스로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사... 사람을 죽였다. 이게 들킨다면... 자신은 끝난다. 감옥에서 최소 수십 년. 아니, 마력 사용자가 받는 가중처벌을 생각하면 무기징역일 수도 있다.

어서... 어서 이 일을 숨겨야 한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선 뒤, 대환이는 허겁지겁 주방 싱크대로 가 행주를 쥐었다. 그리곤 무릎 꿇고 바닥에 흥건한 피를 닦았다. 번져나갈 뿐 전혀 닦아지지 않는 피, 바지엔 피가 스며들어 더러워진다. 하지만, 패닉에 빠져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대환이는 무작정 손을 움직였다.

한참 뒤에서야 대환이는 현실을 인지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사람의 시체를 처리하는 게 가능할리 없었다. 몰래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 그럴만한 크기의 가방은 없다. 집 안에 숨긴다?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들킬 테고 아무리 협박한다 하더라도... 몇 놈은 말하겠지. 그럼 도망칠까? 근데, 도망칠 수 있을까?

“흐.. 흐흐흐.”

좆됐다. 완전히 좆됐다.

그리고, 억울했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하다. 왜 자신이 이런 꼴이 된 걸까? 이동호, 저 개새끼가 자신을 긁어댄 것도 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저 새끼는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이 모든 것은...

한새벽, 북쪽에서 온 그 빌어먹을 거지 새끼 때문이다.

그 새끼 때문에 미르에서 왕따가 됐고, 그걸 잊으려고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애들이 있는 고향에 들락날락 하다가 이 꼴이 됐다. 애초에 그 새끼가 가만히 있었으면... 자신은 이런 거지같은 구석에 돌아가지도 않았을 거다. 다른 애들처럼 서울에서 연예인 지망생 애들과 놀고 있었겠지.

“듀겨버릴거야...”

항상 입가에 걸려있는 미소, 그 하얀 단발 머리카락 틈에서 번들거리는 자줏빛 홍채.

사람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릴 것 같던 그것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섬뜩함과 공포를 느꼈지만 대환이는 이젠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래, 자신도 사람을 죽여 봤는데 꿇릴 게 뭐가 있겠는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대환이는 그 저주받을 북쪽 거지새끼를 제대로 증오할 수 있었고...

“이거 놀랍구나. 이런 곳에 마력의 축복을 받은 이가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신성한 분노까지 조금이나마 품고 있구나.”

그 증오와 분노의 냄새에 이끌려 괴물이 찾아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