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간. 살인자의 세례 >
1.
진정한 신을 영접한 뒤, ‘지성체의 살인’이란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식사’와도 같아졌다.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 아니,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행위였다. 육체에 새겨진 본능을 의지로 이기기 힘든 것처럼, 잠시 동안 참을 순 있어도 살인 자체를 끊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도착한 이 땅-‘대한민국’에 대해 조사하면서도 때때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희생양을 물색했다.
그렇게 최소한의 갈증만 채우고 살아가기를 며칠, 인내하며 굶주림을 참고 있는 그의 시선에 ‘마력 각성자’가 눈에 띄었다.
그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진미(珍味)와도 같았다. 이런 변방 도시에선 보기 힘든 존재, 자신을 꿰어내려는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령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먹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아도 굶주린 자가 음식에 시선이 가는 것처럼 그는 그 진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혹시 먹어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 ‘먹어치우기’ 위해서.
그리고, 얼마 안가 감탄했다.
“이거 놀랍구나. 이런 곳에 마력의 축복을 받은 이가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신성한 분노까지 조금이나마 품고 있구나.”
진정한 신을 영접하면서 그는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감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기관이 더 생긴 수준, 그리고 먹어치우기 위해 뒤따라간 그것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분노와 증오를 보았다.
단순한 것이 아닌, 좀 저열하긴 해도 ‘진정한 신을 영접할 수 있는 재능’이.
“...!?”
그제서야 같이 따라 들어온 자신을 알아챈 듯, 화들짝 고갤 돌리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소년. 남자는 빙긋 웃으며 방금 전에 있었던 말다툼과 그 내용, 그리고 소년의 반응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꾀어낼지 순식간에 계산을 끝내곤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열등감과 질투, 인류의 오랜 친구지. 그리고 증오와 분노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
“아이야, 걱정할 필요 없단다. 난 너를 해칠 생각이 없으니까. 지금 당장은 말이야.”
그 당부에도 조용히 바닥을 더듬어 다시 금속 볼펜을 쥐는 소년, 그런 맹랑한 모습에 남자는 푸근하게 웃었다. 그래, 겉으로 보기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왜소한 50대의 중늙은이니 만만해 보였겠지.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의 목격자를 없애보려고 한 것이겠고.
다른 놈이 저런 짓을 했다면 곧바로 목을 찢어발겼겠지만, 같은 신을 따르는 형제가 될 가능성을 품은 소년인 만큼 그는 살의를 억누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성한 분노를 품을 가능성을 지닌 이는 우리의 형제가 될 자격이 있단다. 그리고, 난 그런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진정한 신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
“그 전에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꾸나.”
입고 있는 낚시 조끼 안주머니에서 남자는 뗀석기 같은 새카만 흑요석 단검을 꺼냈다. 그리곤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산한 말을 중얼거리며 스스로의 왼쪽 팔뚝을 그었다. 그 뒤, 단검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으로 상처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받아들었다.
“자, 이걸 바르거나 마시려무나.”
내민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핏물, 그 기괴한 모습에 소년이 흠칫하는 가운데 남자는 재빨리 손을 뻗어 소년의 얼굴에 그대로 피를 발랐다. 움찔한 소년이 반사적으로 금속 볼펜을 휘둘렀지만, 그 일격은 남자의 왼손에 간단히 가로막혔고-.
-우드득!
“아아아...!”
그 소년의 손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금속 볼펜 째로 박살냈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며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에 소년이 공포에 질린 신음을 흘리는 가운데, 남자는 여전히 푸근한 웃음을 띤 채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한 번만 더 날붙이를 휘두르면 기회고 나발이고 그냥 죽여 버릴 거란다. 알겠느냐? 아이야?”
“...흐으. 흐으.”
“쯧, 피를 더 흘려야겠구나.”
한 번 더 흑요석 단검을 꺼내곤 음산한 주문과 함께 상처를 헤집는 남자, 그렇게 흘러나온 꿈틀거리는 핏물을 남자는 소년의 으스러진 손에 발랐다. 그 광경을 벌벌 떨면서 바라보던 소년은 이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으득! 으드득! 드득!
으스러진 손의 상처 사이로 꿈틀거리는 핏물이 스며들어간 뒤, 뼈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이전의 형상을 되찾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억지로 뼈를 맞추고 살을 꿰매는 것 같았다.
“...!?”
패닉에 빠져서 몰랐지만 지금 보니 얼굴에서의 통증도 많이 가신 것 같았다. 경악한 표정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더듬는 소년을 향해 남자는 빙긋 웃었다.
“어때, 신기하지 않느냐?”
“...”
“이건 ‘칸의 손길’이라고 한단다.”
피가 흐르는 팔뚝을 소매로 한 번 훑어내는 남자, 보란 듯이 내민 그의 팔뚝은 꿈틀거리는 핏물이 실밥 마냥 상처 주위를 꿰매듯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스스로의 마법 저항력과 재생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은총이지. 하지만, 내가 발견한 비술을 응용하면 이렇게 타인을 치료할 수도 있거든. 자, 소개는 이 정도까지만 하고... 어서 네 부러진 이빨을 모아오려무나. 그래야 붙여줄 수 있단다.”
바닥에 흩뿌려진 이빨을 향해 남자가 턱짓하자 소년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이 일어서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식탁으로 다가가 의자 하나를 잡아서 앉는 남자, 언제든지 다시 잡을 수 있다는 그 태도에 주눅 든 소년은 자신의 이빨을 하나씩 모았다.
그렇게 소년이 이빨을 다 모으고 쭈뼛거리며 남자 앞에 서자-.
“이걸 입 안에 물고 있어라.”
남자는 그 이빨을 받아 아직 손바닥 안에 든 핏물에 섞곤 내민다. 조심스럽게 그 핏물 섞인 이빨 조각을 받아 입에 넣는 소년, 그리고 핏물은 이전의 상처들처럼 조립하듯이 이빨을 붙이고 상처를 꿰맨다.
그렇게 모든 치료가 끝난 뒤, 남자는 다리를 꼰 채 굳어 있는 소년을 응시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 내가 왜 네 앞에 나타난 건지 궁금하겠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좀 난감할 테고. 안 그러느냐?”
“...네.”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하는 소년을 향해 남자는 빙긋 웃었다.
“왜냐면 말이지. 내가 길을 가던 도중에 우연찮게 네가 보였단다. 그리고, 나는 네 안의 특별한 재능을 보았지.”
“...재능이요?”
“그래, 아주 ‘특별한 재능’. 그렇기에 너에게 ‘기회’를 주려고 따라왔고 이렇게 널 치료도 해준 것이지.”
자애로운 웃음을 얼굴에 띈 채, 중년인은 소년을 향해 허릴 숙이곤 작게 속삭였다.
“아이야, 너는 혹시 신에 대해 알고 있느냐?”
“신...이요?”
“그래, 신.”
그 질문에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아니, 아니야! 그런 가짜 사막 잡신 같은 것들 말고, ‘실존’하며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진정한 신’을 말이야.”
소년의 언급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하는 남자, 그의 심기가 불편해보이자 주눅 든 소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 미르의 교양 수업 중에서 한 번 종교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생각난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혹시, 미궁의 신 말하는 건가요?”
“그래, 바로 그거란다!”
“...”
“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미궁의 신께서는 자비롭고, 무엇보다 실존하시지. 그분께서는 자신의 추종자에게 ‘힘’까지 내려주신단다. 지금 자네를 치료해준 것도 그분의 은총이야. 그리고, 그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내가 더 놀라운 걸 보여주마.”
천천히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서는 남자, 그는 보란 듯이 양 손을 활짝 벌리며 상체를 드러냈다. 그와 함께-.
-뿌득! 뿌드득! 우두두둑!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음이 그의 전신에서 울려 퍼지며 온몸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피부라는 얇은 막 아래에 또 다른 사람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드러난 그의 몸에선 다른 사람의 얼굴은 물론 팔과 다리의 형태가 울룩불룩 튀어나온다.
그 광경에 소년이 기겁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가운데-.
-두두둑!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하듯,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등가죽과 옷이 찢어지며 한 인간이 튀어나온다. 190cm가 넘어갈 것 같은 커다란 체격의 근육질 노인, 믿기 힘든 그 광경에 소년이 입을 떡 벌리는 가운데 알몸의 노인은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군. 이 가죽은 내겐 너무 작단 말이지.”
“···”
“어때, 신기하지 않느냐?”
허릴 숙여 발목에 걸린 찢어진 옷과 가죽을 줍곤 사람 좋게 웃는 노인. 소년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굳은 가운데 노인은 주워든 옷을 허리춤에 두르곤, 최대한 살기를 숨기려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또렷이 느껴지는 그 눈을 번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허락하신 힘이란다. 아즈텍의 고대문명과 미궁에서 벌어졌던 제의의 유사점을 찾아내곤 내가 발견해낸 비술이지. 그분의 은총이기도 하고!”
“...”
“이런 힘은 마력 각성자라고 해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오직, 그분께 선택될 만한 ‘특별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
“특별한... 존재요?”
“그래, 바로 너처럼 말이야. 그분의 품에 안긴 나는 네 안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단다.”
들려오던 대화, 소년이 보인 감정, 몸의 반응··· 수많은 몸짓 언어를 통해 소년을 분석한 괴물은 차분하게 소년의 열등감과 약점을 공략했다. 특별함, 그것이 소년이 갈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년이 살짝 흥미를 느끼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진정한 신들 중 하나. 살육과 유혈, 격노의 신.”
“···”
“아이야, ‘칸’의 품에 귀의하여 특별해지지 않겠느냐?”
노인의 권유에 소년-대환이는 침묵했다.
솔직히,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심상치 않은 힘을 지닌 마력 각성자가 자기를 보고 따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다짜고짜 신을 믿으라고 한다. 그것도 미궁의 신을. 당연히 정상적인 상황이면 거절했을 거다. 최소한 인터넷에 검색이라도 해보게 조금 있다가 결정하겠다고 하겠지.
그러나, 근래에 기고만장해져서 그렇지 대환이는 아예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노인의 핏발 선 눈, 피가 흐르는 잇몸이 드러난 광기어린 웃음, 좀 전에 자신이 볼펜을 휘둘렀을 때 했던 ‘한 번만 더 그러면 기회고 나발이고 그냥 죽여 버리겠다.’는 살벌한 협박, 마지막으로 살육과 유혈의 신을 모신다는 사실까지.
지금 이걸 거부하면... 신변이 위험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저 미친 괴물의 말에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일단, 가짜로서도 믿는다고 하고 나중에 도망쳐도 될 것이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건... 그래, 대충 저 노인네가 했다고 뒤집어 씌워도 될 것 같다. 살육과 유혈의 신을 믿는 놈인 만큼 설득력도 있다.
그렇게 속으로 계산을 마친 대환이가 천천히 고갤 끄덕이자,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아주 잘 생각했단다. 앞으로 날 선임 사제님이라고 부르려무나. 마침, 적당한 제물도 있으니 입교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자. 그럼 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감출 수도 있을 거야.”
“그... 정말입니까?”
“가능하고말고! 대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단다!”
살인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다는 말에 대환이가 반색하는 가운데, 노인은 허릴 숙여 찢어진 낚시 조끼 안주머니에서 코르크 마개로 밀봉된 엄지손가락만한 유리병을 꺼냈다.
“자, 이리 와서 이걸 마시고 내 앞에 무릎을 꿇으려무나.”
노인의 요구에 대환이는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가 노인의 손바닥 위에 있는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보석을 녹인 것처럼 선홍빛 광채가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 뭔지 모르기에 꺼림칙했지만 노인의 심기를 거스를 순 없기에 대환이는 마개를 뽑아 순순히 그걸 마셨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피비린내
반사적으로 나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대환이는 재빨리 삼키곤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흑요석 단검을 꺼내 스스로의 팔뚝을 그었다. 그리곤, 피가 흘러나오는 팔을 대환이의 머리 위에 올려놓으며-.
“나는 그분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자 그분의 사도이니, 이는 곧 내 피 안에 그분의 의지가 깃들고 있음이라. 이에 나의 피로 세례를 하니, 이는 곧 그분의 축복이라.”
세례를 했다.
정수리부터 질척하게 내려오는 피, 먹었던 용액이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이 의식이 영향을 끼친 것일까? 쿵쿵 울리는 심장, 동시에 세상이 점점 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뒤, 노인은 대환이가 충동적으로 죽인 희생양을 볼 수 있도록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자, 두 눈을 감고 기도하려무나. 그리고, 칸께 자신이 살해한 것을 바친다고 생각하면서 네가 가진 ‘증오와 원망’을 해결할 힘을 달라고 빌어보렴.”
귓가에 들려오는 노인의 자상한 음성, 그에 눈이 살짝 풀린 대환이는 옛날 교회에서 봤던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양 손을 깍지를 끼며 기도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와주세요. 저 시체를 가져가고 도와주세요. 그 빌어먹을 북쪽 거지새끼, 자신을 무시하던 미르의 다른 새끼들을 조질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세요.
치기어린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기도, 무심한 지구의 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그 어리석은 청원에-.
-화르륵!
미궁의 신은 응답했다.
시체가 불타오른다. 자연적인 불꽃이 아닌, 피의 질척함이 느껴지는 검붉은 색채의 불꽃으로. 그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새빨갛게 변하는 시야, 머릿속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웃음소리에 대환이는 반사적으로 고갤 들어 위를 보았다.
“...”
천장에 가로막혀 있지만 대환이의 시선은 천장이 아닌 그 너머의 하늘-드높은 천상을 보고 있었다.
핏물에 잠긴 대지 위에 투영된 수많은 이들이 보인다. 인간, 오크, 엘프, 드워프, 거인... 대환이의 알량한 지식으론 알 수 없는, 심지어 인류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지성체들이 각자 다른 시간, 각자 다른 공간에서 증오어린 눈길로 상대방을 찢어 죽이고 있었다.
무한한 죽음, 무한한 살육, 무한한 증오의 연쇄
핏빛 대지 위에 펼쳐진 그 광기에 대환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머릿속에 그 대지에 펼쳐진 살육의 향연이 그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소년이 상상치도 못한 광기에 압도 되어 있을 때, 그런 투영체들 위로 초월적으로 거대한 것이 보인다.
피 흘리는 시체들이 하늘까지 쌓인 옥좌
그 옥좌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존재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의 알량한 인지력으론 표현조차도 불가능한 것이 광기어린 웃음을 흘리며 핏빛 대지를 굽어다보고 있었다. 그 때,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자신이 바친 보잘 것 없는 시체가 그 옥좌에 한 구석에 떨어졌다.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것의 시선 중 일부가 대환이를 향했다.
단순한 시선,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정신은 그 시선에도 버틸 수가 없었다. 그 거대한 존재감에 영혼과 자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부풀어 찢겨져 나가는 듯한 감각에 대환이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찰나 혹은 영겁과도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낱낱이 해체된 영혼과 정신은 서서히 다시 재조립되었다. 분명 대환이지만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그 뒤, 대환이는 자신의 영혼을 채우는 종교적인 법열을 느끼며 천천히 감았던 육신의 두 눈을 떴다.
새빨간 시야
주위를 보니 실제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안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두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닦으며 대환이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런 대환이의 앞에는-
“아이야, 형제가 된 걸 환영한단다.”
자애로운 살인자이자 잔혹한 스승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