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간. 핏물이 다 차올랐으니... >
1.
살인은 순식간에 끝났다.
인간은 동물에 비해 매우 연약하고 상처 하나만으로 죽는다. 마력 각성자라고 해도 단련되지 않으면 마찬가지, 돌진한 살인자는 단 한 번의 칼질로 희생양의 목 동맥을 단숨에 끊어냈고 덕분에 두 사람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후우.”
살인을 다 끝마친 뒤, 살인자는 복수의 여운에 가볍게 부르르 떨곤 죽은 희생양들의 가슴팍 옷을 벗겨냈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갈비뼈 바로 아래의 움푹 들어간 곳을 식칼로 절개하고, 그 틈에 손을 위쪽으로 비틀어 넣어 올려 횡경막을 뚫고 심장을 손으로 잡아 뽑아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몸의 주인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맥동하는 심장.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하는 그 심장을 바닥에 내려놓은 어린 살인자는 손에 쥔 식칼로 스스로의 팔뚝을 길게 그었다. 그리곤-
“@#$!(#&...”
나와틀어로 이뤄진 음산한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팔에서 흘러나온 피를 그 위에 뿌렸다. 그 어린 살인자의 팔에서 흘러내린 더 탁한 색의 피는 심장에 들어가자...
-쿵! 쿵! 쿵! 쿵!
심장은 다시 생명을 얻은 것처럼 ‘펄떡 펄떡’ 뛰었다.
그 뒤, 대환이는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렇게 뽑아낸 3개의 심장을 대환이는 1m 간격을 두고 삼각형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틀어로 된 주문을 암송하며 신에게 기도했다.
부디, 미욱한 자신을 도와줄 이를 불러내주시길.
-화르륵.
그리고, 미궁의 신은 그런 신도의 기도에 응답한다.
3개의 심장이 음산한 핏빛 불길과 함께 녹아내린다. 이어서 녹아내린 그 붉은 액체는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서로 뒤섞여 찰랑찰랑 거리는 원형의 피의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겁쟁이였지만 그래도 귀중한 ‘마력 각성자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피 웅덩이는 ‘가치’가 있었다.
충분히 기적을 일으킬 정도로.
-철퍽!
태막을 찢고 나오는 짐승처럼 피의 웅덩이가 찢어지며 근육질의 손이 뻗어 나온다. 이어서 튀어나온 그 손은 바닥을 짚고 웅덩이 속의 몸통을 끄집어 올린다. 그렇게 나온 것은 한 손엔 나무칼 쥔 건장한 체격의 노인-대환이의 스승인 닥터 크림슨이었다.
핏물 속에서 기어 나와 선 그는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대환이를 향해 웃으며 고갤 끄덕인다.
“훌륭하구나, 제자야! 이렇게 한 번도 안 해본 의식을 단번에 성공하다니! 네가 귀의한지 고작 10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누구도 믿지 못할 거다!”
“아닙니다. 스승님이 잘 가르쳐준 것이지요.”
“하하, 그렇기도 하겠지만 내가 교수 생활했던 40년 동안 자네처럼 성실한 이는 별로 없었어!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어린 살인자의 아부에 한 차례 너털웃음을 흘린 늙은 살인자는 웃으며 질문했다.
“그래, 이 의식을 해보니까 어떻더냐?”
“신기했습니다. 간절하게 기원하니 스승님의 존재감이 느껴지더군요. 손을 뻗는다고 생각하자 스승님이 나왔고요.”
“나도 너의 손을 붙잡고 나왔지.”
고갤 끄덕이며 잡고 일어나라는 듯이 손을 건네는 늙은 살인자, 무릎 꿇었던 대환이가 조심스럽게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가운데 늙은 살인자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피의 전우(Battle Brothers In Blood)’라는 신의 권능을 변형한 것이란다. 원래대로라면 피의 대지에 존재하는 우리 형제들의 ‘투영체들’을 부르는 것이지. 다수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 사용되는 권능이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 감각을 잊지 말거라. 꾸준히 살육을 행하면서 실력을 쌓은 뒤에, 그 감각을 떠올리며 피의 대지에 있는 형제들을 부른다고 생각하면 공간이 찢어지며 전우들이 나타날 테니까. 네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강한 전우를 불러낼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공손하게 고갤 끄덕이는 대환이, 그에 늙은 살인자는 더 말을 이어나가려다가 이내 주위 환경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어이쿠, 교수 때의 버릇이 나와서 따분한 설명만 주절주절 거렸구나! 자, 어서 빨리 청소하도록 하자! 준비는 해뒀겠지?”
“예.”
고갤 끄덕이며 빠르게 준비해뒀던 밀가루 포대에 다가가 뜯는 대환이, 평범한 시체라면 신에게 공양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흔적을 없앨 수 있겠지만 남은 것들은 ‘심장이 없는 껍데기’다. 당연히, 저런 것을 신에게 바칠 순 없으니 일일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스륵! 스륵!
피가 흥건하게 나온 시체에 밀가루를 뿌리고 스승은 이어서 바닥에 깔린 비닐에 시체들을 넣고 묶었다. 그리고 남은 핏자국은 락스로 깨끗하게 처리했다. 늙은 살인자는 말할 필요가 없고 대환이조차 몇 번 연습해봤기에 능숙했다.
우월한 마력 각성자의 체력을 살려서 15분 만에 모든 흔적을 지운 뒤, 스승은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으며 묶은 세 개의 쓰레기봉투를 응시했다.
“그나저나 저것들, 네가 말한 놈들이냐? 그, 널 무시했다던.”
“예, 절 무시하던 나약한 자들이죠. 버러지 같은 놈들...”
말 그대로 쓰레기 보듯이 경멸어린 시선으로 쓰레기봉투를 응시하는 대환이, 그에 스승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네 복수는 다 끝낸 것이냐?”
“...아니요, 몇 명 남아있습니다.”
아직, 대환이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죽여야 할 놈들은 총 4명, 이놈들과 어울리던 여자 애들 두 명과 박혁, 그리고 한새벽이다. 여자애들을 죽이는 건 너무 쉽겠지만... 솔직히 한새벽과 박혁은 저 세 놈과는 달리 지금의 자신으로도 죽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에 스승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쉽게 됐구나. 일이 꼬여서 복수를 못하다니.”
“괜찮습니다. ‘대업’이 먼저지요.”
빙긋 웃으며 공손하게 대답하는 대환이, 하지만 그 얼굴 한 켠엔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묻어나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좀 더 천천히 확실하게 사전 조사를 끝낸 후에 송파구 전역을 피로 물들일 의식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과 이능력 수사대의 움직임이 돌연 이상해진 것이 포착됐다.
게다가 신에게 귀의하면서 얻게 된 ‘육감’이 강하게 경고하면서 늙은 살인자는 계획을 앞당기기로 변경했다. 그래서 이렇게 하루 만에 성급하게 계획을 바꿔서 진행하게 된 것이고. 그러나 갑자기 계획을 바꿨다고 해서 허술하진 않았다.
아주 든든한 ‘내부자’가 있었기에.
“스읍... 하아, 향기로운 피냄새. 그리 숙성되진 않았지만 마력 각성자들이 가득하구나. 몰래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많으니 괜찮아.”
크게 숨을 들이키며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늙은 살인마, 이미 커다란 축제를 벌일 수 있는 재물은 충분하게 있었다. 생도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이 건물에 있는 생도들만 해도 50여명이 넘어간다. 깊은 밤 동안, 몰래 찾아가서 하나씩 살해하고 그 심장을 뽑아낸다면...
미르 정도의 면적에 ‘검은 태양’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 월요일 날 벌일 일을 위해 열매를 수확하자꾸나. 내가 CCTV와 경비를 무력화 시킬 테니 넌 직접 살인을 행하여라. 아, 너무 피 냄새를 풍기면 안 되는 거 알고 있겠지? 수건을 대고, 목 부분만 빠르게. 마력 각성자인 만큼 감각이 민감해서 냄새만으로 깰 수 있어.”
“걱정마십시오. 스승님.”
가슴을 탕탕 치는 제자의 모습에 알몸의 늙은 살인자는 웃으며 창문 밖으로 나섰다.
2.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직장인들은 어깨를 축 늘인 채로 출근하기 위해 움직일 시각, 하지만 경찰청 소속 ‘이능력 수사대’의 인원들은 이미 전부 나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한 순간도 일터를 떠나지 못했다.
코드 108 중 하나-‘칸’의 신도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신고
별 다른 증거도 없는 신고였지만 경찰은 쉬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신고자가 평범한 지상인이 아니라 미궁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코드 108의 진정한 힘을 알고, 두려움에 그 이름을 함부로 팔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 당연히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반신반의하면서도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칸의 신도는 살인자다.
그렇기에 경찰은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 위주로 파고들어갔다. 개인의 스마트폰 위치추적이 당연한 시대기에 작정하면 실종자의 행적을 찾는 건 쉬웠고, 설령 스마트폰이 도중에 꺼졌더라도 곳곳에 깔린 CCTV 영상을 확인하면서 역추적하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남한에 있는 모든 실종 사건을 훑어본 결과...
“군부대엔 연락했냐?”
“예, 하지만 진짜라면 지금 남아있는 이능력 특전단으론 제압하기엔 부족하답니다.”
“젠장, 미르 측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협조 공문 보내봐. 어쩔 수 없다.”
‘심장이 뽑힌 시신’이 발견됐다.
칸의 신도들 중에서도 심장을 뽑는 놈은 딱 하나, 닥터 크림슨(Dr. Crimson) 밖에 없었다. 기괴한 제의를 통해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최악의 범죄자의 흔적에, 그 흔적이 발견된 일요일 새벽부터 경찰은 전력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때문에 엉겁결에 비상대책 TF팀을 맡게 된 이능력 수사부 반장은 지금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송파구의 검문검색 상황은 어떻지?”
“법무부의 출입국·이종족 정책본부 쪽에도 요청해서 이미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항의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최소한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아오...”
칸의 신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살인 성향(마력 각성자, 마법 구사자, 배교자를 죽이는 걸 선호)을 생각해서 내린 조치. 하지만, 평소에도 송파구 밖으로 이종족과 위험 물품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항을 방불케 하는 검문검색이 이뤄지는데, 별 다른 설명도 없이 그게 한층 더 강화되니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부하직원의 말에 반장은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으며 이를 갈았다.
“좆까라 그래. 그쪽에 알려주면 10분 이내에 소식이 언론 쪽으로 흘러들어갈 거다.”
“넵. 아, 추가로 국정원에 요청했던 답변이 왔습니다.”
“어떻데?”
부하직원의 말에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반장.
제발 지금 가정하고 있는 상황이 틀리기를, 닥터 크림슨은 중국에 있고 한국에 있는 것은 모방범 혹은 평범한 살인자이기를 기원하는 모습. 하지만, 부하직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장의 기대를 배신했다.
“예상대로 중국에서 닥터 크림슨에 대한 행적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경계하고 있긴 한데, 거의 형식적인 수준으로 풀어버렸답니다. 안타깝게도... 진짜 대한민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발, 그런 건 국정원이 먼저 알아서 우리에게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야 대비를 하든 말든 하지!”
책상을 후려치며 좌절하는 반장의 모습에 부하직원이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로 사라진 뒤, 그는 기억났다는 듯이 미르를 담당하고 있는 부하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아, 미르 쪽에도 연락은 해뒀지? 닥터 크림슨인 만큼, 소식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긴 해도 거기엔 좀 알려야겠는데?”
“아, 이미 거기엔 알렸습니다. 그리고, 미궁 출신들끼리는 이미 암암리에 심상치 않다고 소식이 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예, 무기도 준비하고 갑옷도 입고... 심지어는 몇몇은 반입 불가 물품도 들고 지상에 올라오려고 하다가 걸렸답니다.”
“하, 그래. 그건 좀 낫네.”
한숨을 내뱉으며 반장은 자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닥터 크림슨,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가 이곳에 오다니... 그가 초조하게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가운데, 내근직 부하 중 하나가 받은 소식을 확인하곤 소리친다.
“미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침 조회시간인데, 생도들이 50~60명가량 결석했다는 소식입니다! 근데, 그 결석 인원을 확인하니 대부분 한 기숙사 오피스텔에 있는 이들이랍니다! 전화를 해도, 담당 경비실에 연락이 두절이고!”
“위치 어디야!”
“A-14동입니다.”
“근처에 있는 경찰들 출동시켜! 그리고, 미르에는 곧 알려주겠다고...”
-드르륵! 쾅!
“해산시켜야 합니다!”
TF팀 사무실의 문을 열고 소리치는 낚시복장의 남자, 휴가를 받고 남해안 섬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던 전찬휘 경위였다. 어젯밤에서야 연락이 닿았고, 섬을 나가는 배가 없었기에 그는 오늘 아침에서야 이렇게 도착할 수 있었다.
달려오는 도중 밖에서 사무실 안의 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허억...! 허억! 놈은 인신공양으로 재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악을 가정해서 그 기숙사의 마력 각성자를 모두 제물로 바쳤다고 생각하면... 놈이 재앙을 일으킬 위치는 뻔합니다! 마력 각성자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곳!”
“...!”
“후우, 당장 미르에 연락해서 생도들이 흩어지게 하는 게 옳습니다! 그게 그나마 피해를 적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에 반장은 고갤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8시 30분, 고갤 끄덕이며 그는 소식을 알린 부하직원에게 말했다.
“당장 찬휘 말대로 미르에 알려. 그리고 찬휘야, 지금까지 왔던 상황 자료들 모아 놨다.”
“예,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냐. 쓰읍...”
속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며 대꾸하는 반장. 전찬휘 경위가 허겁지겁 자기 자리로 돌아가 지금까지 들어온 자료들을 확인하는 가운데,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크게 몇 번 쳐서 모든 부서 직원들의 시선을 모은 후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모든 상황은 이미 닥터 크림슨이 송파구 ‘안쪽’에 진입한 걸로 상정한다! 연락 담당! 청와대와 국정원, 군부대에 이 사실을 알려라! 그리고 놈에게 대항 가능한 병력을 끌고 오라고 해! 방송국에도 알려!”
지시에 고갤 끄덕이곤 바쁘게 움직이는 부하직원들, 그런 도중에 아까 전에 미르 생도들의 단체 결석 사실을 알린 부하 직원이 들어온 소식을 확인하곤 흠칫 놀란다.
“A-14동에서 추가 소식 왔습니다! 오피스텔 내부 경비실 구석에 시체 발견! 오피스텔 1층 거주실 내부에도 심장이 뽑혀나간 거주생의 시체가 있답니다! 다른 방도 현재 확인 중!”
“시발! 역시, 놈이 안에...”
반장이 욕설을 다 내뱉기도 전에-.
-!하@#하% 하*(@ 하!!$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잔혹한 웃음소리’. 수천억의 인간들이 내뱉는 듯한, 듣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게 하는 초월적인 의지. 이능력 수사대는 물론이고 송파구 전역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잔혹한 웃음소리에 압도된 가운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