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78화 (78/350)

< 18화. 핏물에 빠져 익사하거라! >

1.

월요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건, ‘고귀한 재벌가 아가씨’인 남궁진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휴일에도 무작정 놀기보다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공부등으로 대부분 평일보다 빡세게 보내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휴일이라는 기분을 무시할 순 없다.

그리고 월요일 오늘, 미르로 등교하는 그녀의 기분은 미묘하게 더 나빠 보였다.

실제로 오늘 그녀의 기분은 다른 때의 월요일보다 기분이 더 나빴다. 그런 꿀꿀한 기분 때문일까? 교실로 향하는 중에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도 왠지 모르게 경직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 8시 25분, 정확히 아침조회 5분 전에 맞춰서 교실에 들어갔고-.

“...?”

교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평소처럼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서예린, 하지만 그녀의 복장은 미르 생도복도, 휴일날 입는 힙한 스타일의 사복도 아니었다.

짙은 까만 피부와 잘 어울리는 검정색 가죽 슈트

몸에 착 달라붙는 형태의 그것은 딱 봐도 흔히 볼 수 있는 질감의 것이 아니었다. 미궁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 그것 외에도 허리엔 칼집이 담긴 장검, 묘하게 생긴 청색 광택의 검은색 건틀릿, 가터벨트 형태로 벨트와 연결해 허벅지까지 올린 검은 각반 장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장비들을 입고 있다.

흠집도 잔뜩 나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장식용은 아닌 것들

반 아이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두 눈을 감은 채 명상하듯 앉아있었다. 친구라도 있다면 그래도 말이라도 걸면서 왜 그렇게 입었는지 물어봤겠지만, 워낙 압도적인 모습에 차갑고 도도한 시크한 이미지를 가진 서예린에게 감히 말을 걸만한 깜냥을 지닌 아이는 반에서 별로 없었다.

딱, 한 명. 아이들에게 비슷한 급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그··· 예린양? 그 복장은 뭐죠?”

남궁진아를 빼고. 그렇게 다가온 그녀가 질문하자 서예린은 천천히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반 아이들 또한 딴청을 피우면서 귀를 쫑긋 세우는 가운데, 그녀는 나지막이 대답한다.

“악령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그 악령 가죽이요?”

“영체 형태의 괴물을 마법과 비약으로 실체화 시킨 뒤에 잡아서 껍질을 벗겨낸 거임. 마법을 사용할 때, 많은 방해를 하지 않아서 좋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도 있음. 그것 외에도 몇 가지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고.”

...굉장히 귀중한 장비라는 건 알겠다. 미궁의 동식물 부산물은 기본적으로 희소성이 있으니까. 게다가 대충 설명한 그 기능 또한 꽤 대단하다.

마법 구사자들은 천 옷을 즐겨 입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마법’은 시전자의 마력을 가지고 주위의 마력과 공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금속이나 가죽 재질은 마력의 공명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이 방어를 포기하면서도 천 옷을 입는 거다.

마법 방해가 적은 가죽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꽤나 비쌀 거다.

근데,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중무장을 하고 등교했냐는 거다.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서예린은 다시 두 눈을 감는다. 명상하는 고승 같은 그 모습에 남궁진아는 계속 질문하는 것을 포기하곤 살짝 미간을 구기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곤 한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

짧은 단발을 꽁지머리 형태로 묶은 백색 머리칼, 그리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중성적인 외모의 남자애.

한새벽, 범상치 않은 능력자이기에 친분을 맺어두고 있지만 항상 입가엔 은은한 미소를 띈 ‘왠지 기분 나쁜’ 녀석. 오늘 따라 녀석은 기분이 좋다는 듯, 놈은 턱을 괸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반대로 기분을 잡친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사실, 오늘 기분을 잡친 것도 저놈이 토요일에 보냈던 문자 내용 때문이다.

이종족 문화 교류회의 단톡방에 놈이 올린 ‘당분간 미르에 등교하지 말거나, 혹여 등교하면 전쟁할 각오로 무장하고 오세요.’라는 메시지. 자신을 포함한 애들이 뭔 개소리냐고 물어봤지만 놈은 ‘난 경고함.’이라고 쓰곤 그 이후로 쿨하게 무시했다. 심지어, 자신은 나중에 직접 전화까지 걸었는데도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다른 애가 그런 말을 썼으면 그냥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그녀가 알기로 한새벽은 ‘심상치 않은 놈’이었다. 약간 허당 같긴 하지만 빈 말은 안 하고, 그 능력 또한 정말 대단하다. 덕분에 묘하게 마음에 걸려서 휴일 동안 기분을 잡쳤다. 그리고 지금, 서예린의 중무장을 생각하면 저 놈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최소한 왜 저렇게 중무장하고 왔는지 알 것이다.

당장이라도 저 생글거리는 놈의 멱살을 붙잡고 뭘 알고 있냐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쓰읍...”

속 입술만 질겅일 뿐, 다가가서 물어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놈이 풍기는 ‘왠지 불쾌한 분위기’, 스스로는 ‘마력 돌연변이’라고 하는 그 현상 때문에 왕따는 아니지만 은따인 녀석이니까. 저런 애와 친분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자신의 입지가 미묘하게 무너진다. 아쉽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그렇게 저 빡치게 하는 낯짝에 주먹을 먹이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던 도중-.

-아, 아. 미르 총 교무처에서 알립니다. 오늘, 수업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전면 취소되었으니 미르의 모든 학생들은 퇴교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총 교무처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수업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전면 취소되었으니 미르의 모든 학생들은 신속히 퇴교해주시길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흘러나오는 휴교 알림, 잠시 어리둥절한 아이들이었지만 이내 그 뜻을 이해하곤-.

“아싸!”

편입반은 물론이고 학교 전체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재빠르게 가방을 메는 아이들, 끼리끼리 모여 시시덕거리며 생각지도 못한 휴일에 놀러가자고 하는 가운데-.

“진아야, 오랜만에 노래방 콜?”

그녀에게도 자기 파벌의 아이들이 접근했다. 무리의 대장격인 만큼, 당연히 이런 행사에는 빠지지 말아야 했지만···

“아니,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쉴래. 피곤하거든.”

불길했다. 놈의 경고, 서예린의 반응, 그리고 급작스런 휴교 알림까지. 이어서 그녀는 살짝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랫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사실, 지금 생리 중이라서 컨디션이 좀 별로야.”

“아, 그럼 어쩔 수 없겠네.”

납득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는 아이들.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진 뒤, 그녀는 조용히 아까 한새벽이 움직였던 옥상 쪽을 향해 움직였다. 옥상에 도착하니 아래를 보며 느긋하게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새벽이 보인다. 그 등짝을 향해-.

“참나, 그딴 문자 보내고 휴일동안 아주 깔끔하게 씹네요?”

남궁진아는 이죽거렸다. 그에 한새벽도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전자 담배를 문 입에 걸린 쾌활한 웃음, 항상 웃고 있는 놈이지만 오늘 따라 훨씬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어라? 제게 나중에 문자를 보내셨나요?”

“그럼 당연히 보냈죠! 다짜고짜 그런 내용을 보냈는데 신경 안 쓰이겠어요?”

“...하하, 그렇기도 하겠네요! 미안해요! 워낙 준비할 게 많아서 그거 보내고 신경을 못 썼어요!”

소리 높여 웃는 한새벽, 연극을 하는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쾌활한 모습에 남궁진아는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새벽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자줏빛 홍채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래도 하란대론 다 했군요? 그 푸른 머리띠는 원래 하고 있던 거지만, 시계에, 장화에, 벨트, 반지, 목걸이까지? 어라? 가방 안에도 뭔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야, 걸친 거 다 합하면 도대체 얼마인가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쯤은 되려나?”

“...알아챘나요?”

“그럼요! 제 눈은 좀 대단해서!”

생글생글 웃는 한새벽, 서예린처럼 드러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도 오늘 단단히 무장하고 나왔다. 서예린이 착용한 것들과는 다른, 밖에서 만들어진 ‘세련된 디자인의 마법 장비’들을. 남궁진아는 씨익 웃으며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단발을 쓸어올리며 대꾸했다.

“...뭐, 큰 게 5장 정도는 되죠.”

“큰 거? 마법 장비면... 억 단위도 부족하죠. 50억?”

“500억, 참고로 이 머리띠하고 가방에 따로 챙겨온 것은 별도에요. 비공인 아티팩트거든요.”

어마어마한 금액에 한새벽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고, 반대로 남궁진아는 씨익 웃었다. 이렇게 대놓고 ‘자기가 돈이 많다.’라는 걸 티내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저 녀석만큼은 다르다. 왠지... 왠지 저 빡치게 하는 인간을 골려먹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손을 입가에 댄 채, 살짝 소리 높여 웃으며 그녀는 고갤 저었다.

“호호호! 다 제 껀 아니랍니다. 그룹 차원에서 연구용 샘플로 사두는 걸 빌린 거니까.”

“...그래도 엄청나네요.”

“저도 이거 빌리느라 많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고요. 할아버지에게도 전화도 했다니깐?”

허리에 양손을 대며 그녀는 한새벽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걸 입고 왔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는 거예요.”

“하하, 그런가요?”

“예, 좀 더 고마워하세요. 아, 참고로 이렇게 입고 왔는데 별일 아니면...”

웃는 얼굴로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룬어를 만들어냈다. 그에 감응되어 손바닥에서 물결치는 정전기, ‘빠직! 빠직!’ 소리를 내는 그 실질적 협박에 한새벽은 전자 담배를 빨아들이며 고갤 저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오늘, 갑작스런 퇴교 조치를 보면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하잖아요?”

“아니, 그럼 그게 뭔지 설명을 했어야죳! 그리고 예린이 보니까 걔에게도 그런 말 한 것 같은데!?”

“흐음, 맞아요. 예린 양에게도 했죠. 아, 지금부터 말할 건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에요. 쉿~”

싱긋 웃으며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대며 전자 담배 연기를 내뱉는 한새벽, 생도도 법적으론 청소년인 만큼 담배를 피는 건 불법이지만 저건 일종의 약으로 알고 있었다. 근데도 참 맛있게 잘 빨아댄다. 피지 않는 자신도 혹할 정도로.

“그나저나 도대체 왜 이렇게 하고 오라고 했어요?”

“...사실, 제가 좀 불길한 소식을 들었거든요.”

“어떤 거죠?”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에요.”

그렇게 증기를 훅 뱉어낸 한새벽은 시선을 위로 향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한새벽. 항상 두 눈을 감고 있는 평소완 달리, 그 선글라스의 틈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은 활짝 뜨고 있었다. 그 자줏빛 홍채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한새벽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고.”

순간, 남궁진아는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하#@하% 하*(@ 하!$!!하!!

기다렸다는 듯이 ‘잔혹한 웃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다.

수천억의 인간들이 내뱉는 듯한, 듣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게 하는 초월적인 의지. 정신의 가장자리를 긁어대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감정이 머릿속으로 박혀오는 느낌에 남궁진아가 덜컥 굳은 가운데-.

“태양은 검게 변하죠.”

쾌활한 한새벽의 음성이 이어진다. 그 순간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빛을 잃고 사방이 어두워지며 다시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천체를 주무르는 것 같은 그 이상 현상에 남궁진아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고-.

“이어서 미르의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요.”

-그그그극...

미르 상공, 한 지점을 중심으로 ‘구름 같은 것’은 빠르게 하늘을 잠식하며 퍼져나간다. 어둠속에서도 똑똑히 보이는 불길한 핏빛, 시시각각 뭉그러지며 형상을 바꾸는 그 모습은 불쾌한 생명력으로 맥동하는 생명체의 내장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생리적으로 혐오감이 드는 그 모습에도 한새벽의 입가에 걸린 병적인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검게 물든 태양이 궤적에서 벗어나 핏빛 구름 위로 향하고.”

일식(日蝕) 때 보이는 태양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악한 검은 태양, 인간의 감각기관으론 인지가 불가능할 ‘검은 광채’를 사람들의 뇌리에 직접 새겨 넣는 그것은 느릿하게 이동하여 미르의 상공에 위치한다. 이어서-.

“그 피눈물을 지상으로 쏟아내기 시작해요. 현실을 뒤바꿀, 비현실의 광기를.”

개기일식의 광배(光背)와도 같은 검은 태양의 흑색 빛무리가 뭉클거리더니 지상으로 쏟아진다. 현실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신의 섭리’가 개입되며 가능했다. 그리고, 그 검은 핏물은 현실을 침식하는 광기가 되어 현실을 거칠게 뜯어내 버린다.

-콰드드드드득!

대기는 바르르 떨리고, 대지는 뒤틀리며 붕괴한다. 그렇게 현실이 무너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공간을 찢고 건축물들이 나타난다. 중세 아즈텍 제국의 유적지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석조 건물들, 해골이 걸려있는 잔혹한 인간 도살장이 원래 있던 건물들과 기괴하게 융합된다.

그 어떤 이성과 합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의 폭거

시시각각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변하는 경험에 남궁진아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한새벽은 양손을 활짝 벌리며 진심으로 들뜬 어조로 소리친다.

“아하하핳! 아핳! 아하하하핳! 와~! 내가 들은 소식이 진짜였네요?! 아아아~”

“...”

그렇게 세상이 변하고 난 뒤, 하늘을 멍하니 지켜보던 남궁진아는 그제서야 시선을 돌려 미르 전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새벽을 볼 수 있었다. 진심으로 신나하는, 마치 놀이동산을 방문한 어린이 같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한새벽. 그런 그의 두 눈에 박힌 자줏빛 홍채는-.

선글라스를 낀 너머에서도 보일 만큼 기괴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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