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핏물에 빠져 익사하거라! >
4.
검은 태양이 떠오르고 미르가 핏빛 안개에 휩싸인 뒤, 송파구 전역은 패닉에 빠졌다.
저 핏빛 안개가 정확히 뭔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휘말리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게 뻔한 상황, 게다가 지금은 미르만 감싸고 있지만 밖으로 흘러나올 지도 몰랐다. 당연히 송파구에 있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멀리 송파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밀려드는 피난 인파에 검문·검색대는 마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능력 수사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닥터 크림슨에 대한 대처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어요! 중국으로 갔다고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린 거죠! 게다가 중국의 비위를 거슬러서···
정치권과 언론, 두 곳에서 실시간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략적인 자료를 확보한 언론은 이능력 수사대가 닥터 크림슨에 대한 정보를 알았음에도 미진하게 대처해서 일을 키웠다고 뉴스 속보를 쏟아냈고, 거기에 친중 성향의 정치인들이 성난 민심에 가세해서 가열 차게 물어뜯었다.
그 때문에 엉겁결에 이번 ‘미르 습격 사태’의 총괄자가 된 반장은-.
“시발, 자료가 이게 끝이야?”
사건 해결을 위해 움직여도 부족할 판에 이번 사태를 ‘해명’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로 불려가고 있었다. 알고도 못 막았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벌어진 참사,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불과 30분 뒤에 있을 ‘높으신 분들의 질의’에 대답하기 위해 그가 이동식 사무용 벤 안에서 필사적으로 들어온 자료들을 외우고 있는 가운데-.
“어, 추가로 들어온 자료가 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부하직원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그리곤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용케 뽑은 A4용지를 건네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국이 ‘닥터 크림슨’에 대한 자료 공유를 해줬습니다. 외교부에서 내용을 통째로 번역 중이고, 이건 일단 가장 큰 중점을 먼저 번역한 초안입니다.”
낚아채듯 A4용지를 받고 읽어 내리는 반장, 그런 그의 미간이 점점 좁아진다.
“지형지물의 변화, 괴물의 출현, 외부와 내부의 전파 단절...”
“지형지물의 변화와 출현하는 괴물들은 중세 아즈텍 제국의 것과 흡사하다고 합니다. 닥터 크림슨이 미쳐버리기 전에 연구하던 것이 남미의 문명이란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하단 의견입니다. 그리고, 외부와 전파는 완전히 차단되지만 내부에서 교환되는 전파는 짧지만 송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설명을 하는 부하직원에게 반장은 손을 들어 막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런 것 말고 어떻게 하면 이걸 멈추게 하는지에 대해서 없나?! 여기엔 없는 것 같은데.”
“...이 상황을 타게 할 만한 ‘정확한 방법’은 없습니다. 전부 가설뿐입니다. 미국 외교부 측에 질문해봤는데 그쪽도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합니다.”
“망할···”
“그리고, 외교부에서 말한 첨언인데···”
살짝 망설이는 부하 직원, 반장이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그 내용을 뱉었다.
“이번에 닥터 크림슨과 부딪친 중국에선 어떻게 이 의식을 중단시키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한 같은 눈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보 공유를 안 해주겠지. 닥터 크림슨이 어디로 향했는지 파악하고도 말해주지도 않은 걸 보면 뻔해. 오히려 약만 올리고 있을 걸?”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시베리아로 넘어오는 닥터 크림슨을 죽이기 위해 협력했다.
동시에 그 목표를 죽이지 못하면 최소한 옆의 나라로 가게끔 수작을 부렸다. 그리고, 그 지저분한 물밑 암투에 이긴 것은 한국이었다. 똑같이 지저분한 짓을 했기에 쌤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당한 입장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그 말에 차량 안에 있는 대원들의 표정이 침울하게 변하는 가운데-.
-RRR.
반장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전화번호는 이능력 수사대의 사무실, 실시간으로 자료를 받고 작전을 세우고 있는 곳이었다. 반장이 재빨리 전화를 받자 전찬휘 경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장님.
“어, 그래 찬휘야.”
-받은 자료들로 검토해본 결과, 구출 작전은 기존 인원으론 도저히 힘들 것 같습니다. 작전 자체는 세웠는데, 중국의 철혈 돌격대 3개 중대도 갈려나간 위력을 생각하면 저희는 못 버팁니다.
“그래서, 대안은?”
이건, 해결 못한다고 말한 사안이 아니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하는’ 중대 사안, 그런 반장의 말에 전찬휘 경감은 대답한다.
-이종족을 끌어들어야 합니다.
이종족, 미궁에서 튀어나온 지적 생명체들의 통칭. 그들 종족 전체의 역량은 인류에 비해 매우 떨어지지만, 그 개개인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건-.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잖아.”
민감한 사항이다. 인간과 흡사하고 또 그 사이에서 번식 능력이 있는 2세를 낳을 수 있기에 공존을 택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종족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게다가, 그런 외교·정치적인 일은 그의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에 전찬휘 경감 또한 긍정했다.
-예,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이죠. 하지만, 해야 합니다. 반장님, 청와대에 간 김에 요구해봅시다. 그리고,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대략적인 지휘라면 할 수 있습니다.”
“네가?”
전찬휘 경감의 말에 반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휴대전화에선 전찬휘 경감은 씁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국에게 닥터 크림슨을 떠넘겨서 이런 일 벌어졌다고 떠들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해결되어도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
-중국 쪽으로 유인 작전을 처음 구상한 사람이 저였던 만큼, 아마 전 그 책임 명단에 100% 들어가겠죠. 투입됐다 죽으면... 순직으로 가족들이 연금 받는 거고, 아니면 꽤씸죄가 좀 감면되겠죠.
그에 반장은 말리지 못하고 작게 한숨만 내뱉었다.
5.
피에 젖은 대지에서 악귀가 기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르 전역은 사실상 전쟁터로 변했다.
-끼아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 비명소리를 내는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야만인들, 그 심심찮게 마주치는 악귀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항상 똑같았다. 마빡 아가씨가 전격으로 선빵쳐서 순간적으로나마 놈들을 무력화 시키면 칼잡이인 서예린이 튀어나와 단칼에 썰어버린다.
그 뒤, 짐꾼 역할을 하는 내가 튀어나와 금 장신구를 수거하지.
내 역할이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없더라. 이 야만인들 ‘마법 저항력’이 엄청났거든. 마력 각성자들도 그냥 죽어버릴 위력의 전격을 맞고도 비틀거리며 버텨낼 정도, 아가씨가 좀 더 힘을 쏟으면 죽일 수 있지만 효율을 생각하니 전격으로 빈틈을 만들고 그 틈에 서예린이 칼질로 죽이는 게 가장 좋았다.
나? 이전에 말했다시피 독마법은 전기마법보다 순간 화력이 훨씬 약해서 ㅎㅎ...
내가 쏜 <독침>을 맞으면 좀 비틀거리지만 그래도 기어코 돌진하더라. 그래도 물리력을 가지고 있기에 눈이나 귀구멍 같은 곳에 꽂아 넣으면 타격을 입고 무력화되긴 했지만 그게 쉽나? 마법 말고 근접전? 어휴, 중딩보다 못한 체격의 소년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신다.
어찌됐든 간에 그렇게 우리는 대지에서 기어 나오는 야만인들을 뚫고 중앙 지역에 도착했다.
-타다다당!
-탕! 탕!
-사.. 살려줘!
곳곳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그리고 꺼림칙한 소음. 심상치 않은 기색에 우리는 바로 진입하지 않고 정찰 겸 해서 인근 건물로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중앙 지역 근방을 함께 내려다보며-.
“...”
“맙소사.”
서예린은 말없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고 아가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만큼, 상황이 처참했다. 행정처와 각종 편의시설, 상가들이 모인 중앙 지역, 가장 민간인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며 미르를 출입할 수 있는 ‘정문’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이 사태에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테고...
빠져나가지 못하고 기어 나온 야만인들에게 무방비로 당했다.
도로와 인도에 부딪쳐 쌓인 자동차들, 그 사이사이엔 수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야만인들이 인간을 ‘도축’하고 있었다. 진짜 과장 없이 저기에서만 수천 명이 죽은 것 같은데, 더 큰 문제는 그게 아직 진행형이라는 것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
정문 근처, 빼곡하게 낀 자동차 사이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한 미르 생도. 보라색 견장을 보니 1학년이다. 성장이 이뤄지지 않아 일반인과 별 다르지 않은 시점이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서 그런지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잘 도망친다.
-으직!
하지만, 결국에 날아오는 투창에 등짝을 맞아 쓰러진다. 그리곤 뒤따라오던 야만인에게 붙잡혀서 산채로 팔다리가 찢겨지고. 으음, 거 참 잔인하네. 그 모습에 마빡 아가씨는 매스껍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다가...
갑자기 날 보곤 떨떠름한 시선을 보낸다.
“...넌 왜 저걸 보고 웃냐?”
“예? 웃다뇨?”
“...”
“아, 전 돌연변이 부작용 때문에 항상 웃고 있잖아요? 자의가 아니랍니다.”
전자 담배를 쥐고 있던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입꼬리를 내렸다.
하긴, 사람 죽는 모습을 보며 웃다니 미친놈 같겠지. 서예린이 진정하라는 듯이 얼굴을 구긴 마빡 아가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가운데, 난 부서진 차량과 일그러진 건물 상가에서 필사의 숨바꼭질을 이어나가고 있는 수백여 명의 모습을 보며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사람들을 잡느라 야만인들이 여러 곳에 분산된 것 같지만, 저걸 뚫고 서쪽 지역으로 움직이면 우리 쪽으로 시선이 집중될 거예요. 아무리 서예린양과 마... 진아씨라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죽겠죠.”
저것들은 단순힌 PC게임의 그래픽 쪼가리 몹이 아니다. 나름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협동해서 사냥까지 하는 괴물, 나름 몰래 움직인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 저기 들어갔다간 곧바로 밀려드는 놈들에게 뒤질 거다. 그런 내 답변에 마빡 아가씨가 혀를 차며 대꾸한다.
“그럼?”
“지하를 통해서 가보는 건 어떨까요?”
미르 지상에선 자동차를 거의 볼 수 없다.
지어질 때부터 전 미르의 부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의 지하 주차장을 만들었기에 미르를 방문한 차량은 얼마 안 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지하 주차장은 미르의 거의 모든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지하 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가는 것도 금방이다. 하지만-.
“지하로? 거길 들어가자고?”
그런 내 대답에 동의하긴 커녕 마빡 아가씨는 싫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린다.
사실, 지금 지하도 정상이 아니거든. 밖의 건물들처럼 ‘변화’가 이뤄졌는데, 살짝 들어가 보니 아즈텍식 해골탑-촘판틀리가 융합되어 있더라. 추가로 저런 야만인들뿐만 아니라 ‘더 위험해 보이는’ 기괴한 괴물들도 배회하고 있었고.
그렇게 부정적인 마빡 아가씨의 대꾸에 난 설득을 위해 대답했다.
“저기 위쪽에만 야만인들이 유별나게 많죠? 이곳에 사람이 몰리니 다른 곳에서 있던 놈들도 온 걸 겁니다. 엄청 많아요. 차라리 지하를 통해 가는 게 더 해볼만....”
-우와아아악!
주위를 뒤덮은 야만인들의 비명소리 호루라기 소음을 뚫고 들리는 희미한 함성, 그 목소리에는 사람의 피를 들끓게 하는 ‘마력’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야만인들의 것과는 달랐다. 야만인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공포를 주는 것이라면, 이건 ‘투쟁심’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반사적으로 함성이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고-.
“오혜영씨?”
이종족 문화 교류부의 일원, 하프 오크-오혜영을 볼 수 있었다.
마빡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 난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복장은 평범한 미르 생도복이지만 손엔 도끼창-할버트를 들고 있는 오혜영, 그녀는 상가 쪽의 한 작은 건물 상가의 입구를 막고 선 채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오, 되게 잘 싸우네요?”
싸우는 걸 보니 실력이 좋다. ‘전투 I’ 수업을 듣는 평균적인 생도들보다 훨씬. 무기는 그냥 질 좋은 냉병기인 것 같은데, 솜씨 좋게 야만인을 무기 째로 세로로 토막을 치네. 하지만...
“근데, 얼마 안 가 뚫리겠어요.”
건물의 좁은 입구라는 특성과 도끼창의 이점을 살려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상대하는 야만인들은 숫자가 너무 많다.
게다가 야만인들은 근접 무기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마리를 죽이는 와중에도 뒤편에서 날아오는 흉악한 손도끼와 투창, 대부분은 반사 신경으로 피하거나 무기로 막았지만 몇 개는 그녀의 몸에 박혔다. 지금 또 하나 박혔네. 그런 내 중얼거림에 마빡 아가씨가 큐브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입을 여신다.
“구하러 가죠.”
“네? 어, 그럼 일단...”
제대로 된 작전도 상담 안 하고 다짜고짜 6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마빡 아가씨.
아니, 뒤지고 싶으셔서 환장한 건가!? 싶었는데, 바닥에 닿기 전 큐브에서 거미줄 같은 전격이 뿜어져 나오며 건물에 닿더니 속도가 느릿하게 떨어진다. 아무래도 건물에 박힌 철근을 자력으로 당긴 것 같다.
“ᚵᛔᛗ᛭ ᛞᚶ ᛒᚡᚧ....”
이어서 서예린도 기괴한 마법 주문을 읊조리며 그대로 지상으로 뛰어내린다.
마빡 아가씨와는 다르게 오직 피지컬을 이용한 깔끔한 착지, 그리곤 폭발적으로 달려가 마빡 아가씨의 앞에 서서 길을 뚫겠다는 것처럼 움직인다. 음, 참 보기 좋은 팀플레이야.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영웅 같은 모습, 참 보기 좋아요. 그런데...
“아니, 난 어찌 쫒아가라고요...”
최소한 날 안고 떨어질 수는 있잖아? 이렇게 혼자 남겨놓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 게다가 뒤늦게 따라가다가 야만인들이 날 덮치면 어쩌라구?! 난 지들처럼 강하지도 않는데, 이 썅련들...
“에휴.”
한숨을 내뱉으며 다급하게 쥐고 있는 전자 담배의 카트리지를 진정제에서 도핑 약물로 전환했다. 그리곤, 옥상 계단을 향해 내달리며 난 전자 담배의 도핑을 깊게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