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82화 (82/350)

< 18화. 핏물에 빠져 익사하거라! >

6.

반(半) 인간-하프

인간도 이종족도 아닌 존재들, 이러한 하프들은 인생에 비관적인 이들이 많다. 실제로도 이들은 대부분 불행하다. 인간들에게서는 기괴한 혼혈 괴물 취급, 그리고 이종족들에게선 열등한 피가 섞인 반푼이 취급.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소외감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프 오크-오혜영은 하프 답지 않게 쾌활하고 자기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크, 인간보다 더 빠른 성장속도를 가진 종족. 그들에게 인간의 피가 섞인 하프의 가치는 거의 없었다. 나약하며 종족의 숫자를 늘릴 임신 주머니로도 부적합한 쓰레기,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상과 연결되면서 오크들은 그런 인간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녀의 모친을 살려뒀다.

그 덕분에 그녀는 태어날 수 있었다. 행운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하프 오크 아이들과 형제자매가 되어 외롭지 않게 함께 자라날 수 있었고, 그 아이들 중에서 혼자 선택 받아 지상의 학교 ‘미르’로 입학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의가 아니라 지하 이종족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포석이었지만 어찌됐든 그녀에겐 행운이었다.

이종족들 중에서도 자유롭게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이들은 꽤 손을 꼽았으니까. ‘이종족 문화 교류부’에 들어간 것도 행운이었다. 수상한 인간이 권유했던 동아리였지만 오크들이 요구했던 목적과 부합되기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다른 이종족 혼혈 애들과 만났다.

까칠한 하프 드워프 지아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착한 하프 엘프 이 경, 그리고 말없이 지랄 맞은 반깜귀 이 영, 인간치곤 듬직한 새벽 오빠까지...

그래, 거기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상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항상 자잘한 행운이 그녀를 따랐고, 그녀는 자기가 항상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것 또한 어찌 보면 행운일 거다.

“퉷!”

달려드는 야만인의 머리통을 쪼긴 뒤, 오혜영은 입안에 차오른 가래침을 옆에 뱉어내곤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쪼개져서 나뒹구는 야만인들, 하지만 앞이 쓰러지기 무섭게 뒤에서 계속 치고 올라온다.

-끼아아아아악!

듣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나타난 또 다른 야만인, 이전까지 나타난 건장한 체격의 야만인들과는 달리 놈들은 체격이 좀 더 가늘었으며 무려 3명이나 함께 올라왔다. 들고 있는 무기가 평범한 나무칼이라면 좁은 계단 통로에 서로 방해가 됐겠지만-.

놈들이 든 것은 나무칼이 아니라 짧은 흑요석 투창과 원시적인 투창기-아틀라틀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오혜영은 본능적으로 기다리면 불리하단 걸 깨닫고 도끼창을 쥐고 돌진했다. 허벅지 쪽으로 날아오는 투창 하나는 피하고,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다른 하나는 손잡이 자루 부분으로 막아냈으며, 복부 쪽으로 날아오는 마지막 하나는-.

-푸욱!

옆구리로 받아내는 동시에 가장 선두의 야만인을 도끼창으로 찔렀다. 하얀 빛살처럼 흉골사이의 심장에 내리꽂힌 도끼창, 연이어 오혜영은 ‘힘’으로 창에 꿰인 시신을 움직여 계단 아래에 있는 다른 야만인들을 짓눌렀다.

-끼아아아악!

그런 방해 공작에 훌쩍 뒤로 빠지며 허리춤의 투척용 손도끼를 꺼내 던지는 야만인, 투창보단 느리고 궤적을 파악하기 쉬웠기에 오혜영은 허릴 숙여 하나를 피하고 꿰인 시신을 들어 올려 또 하나를 막았다.

이어서 도끼창을 뽑고 한 번 더 돌진해 찔렀다.

-케..케륵!

이번엔 목을 꿰뚫는 도끼창. 나머지 한 야만인은 동료가 당한 틈에 나무칼을 빼어들고 도끼창의 안쪽으로 파고들지만, 오혜영은 곧바로 창에서 손을 놓고 허릴 숙여 자신에게 날아왔던 투척용 손도끼를 쥐고-.

-콰-직!

힘껏 내던졌다. 그에 야만인이 비명도 못 지르고 머리가 깨져 박살난다. 그대로 야만인의 몸뚱이는 힘을 잃고 그녀가 놓았던 창대 위에 엎어졌고-.

“하.”

창대의 절반부분, 결합부가 뚝 부러졌다.

그에 오혜영은 쓰게 웃으며 도끼날이 붙어있는 부분을 잡고 쥐었다. 그리 이상할 건 아니었다. 2단 분리형 도끼창, 질 좋은 철로 만들어졌지만 애초에 휴대성에 치중된 물품이었다. 점점 스트레스에 맛이 가다가 이렇게 결합부가 박살난 거겠지.

-끼아아악!

하지만, 야만인들은 그런 사정 따윈 봐주지 않는다.

곧바로 치고 나오는 또 다른 야만인, 오혜영은 한손 도끼가 된 도끼창을 쥐고 대응하려했지만 ‘핑~!’ 도는 느낌에 휘청거렸다. 복부를 꿰뚫은 투창, 폐를 지나가진 않았지만 내장 일부분을 꿰뚫고 등으로 뚫고 나왔다. 게다가 이전까지 입었던 상처에서 잃은 피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오혜영의 목을 향해 흑요석 칼이 내리 꽂히기 직전에-

-뻐-억!

돌연, 오혜영의 뒤편 계단에서 날아온 주먹만 한 돌덩이가 날아와 머리통을 수박처럼 터트려버린다. 완력으로 던져선 절대로 불가능한 위력, 이어서 익숙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낚아채서 뒤로 잡아끈다.

“ᴺᴪᴨ ᵼᴽᴣᵫ ᵺ--ᵾ.”

-콰콱!

그 손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지자마자 ‘특이한 발음의 중얼거림’과 함께 폭음과 함께 날카롭게 깨진 돌조각들이 크레모아 터진 것처럼 앞쪽의 야만인들을 덮친다. 죽이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충격파에 나자빠지게 하는 건 충분한 위력, 그 광경에-.

“나...이스... 임다. 아라.”

오혜영은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쓰러진 오혜영의 앞에 있는 살짝 통통한 체격의 여자애, 오른손엔 공구용 장도리를 왼손엔 돌멩이를 든 하프 드워프-지아라가 서있었다. 그 대답에 지아라는-.

“나이스는 무슨! 늦어서 미안하다. ᴪᴨᴺ ᵫᵼᴽᴣ ᵺᵾ-.”

특유의 시큰둥한 말투로 대꾸하며 마법의 주문과 함께 장도리로 왼손에 쥔 돌멩이를 후려쳤다.

그녀의 마법 주문에 잠식된 돌멩이는 망치질에 유리처럼 작고 날카롭게 깨져나갔고, 동시에 장도리로 후려친 반대 방향-야만인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게 만들었다.

-콰콱!

다시 한 번 쓸려나가는 야만인들, 지아라가 구사하는 대지 마법 중 하나인 <자갈 폭발>이었다. 이번 야만인은 체력이 좋은 듯, 쏟아지는 새끼손톱만한 암석의 폭풍에도 끈질기게 돌진했지만 충격파에 자세가 뭉그러진 터라 이어진 지아라의 장도리질에 대가리가 찍혔다.

“흡! ᵜᵆᴦᴧ ᴦᴨᴦᴭ!”

그렇게 한 놈을 처리하고 지아라는 곧바로 마법 주문을 외우며 마법적 기운에 은빛으로 물든 장도리의 못뽑이 부분으로 옆의 벽면을 후려쳤다. 아주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는 주먹만 한 벽돌 조각. 그녀는 그 돌조각을 왼손으로 낚아채며 까칠하게 욕설을 쏟아냈다.

“씨발, 인간 새끼들이 벌벌 떨기만해서 혼났어. 아니,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걸 그냥 의자로 밀기만 하라고 해도 안하려 하니... 위험한 건 이영하고 이경이 막겠다고 냈는데도 말이야!”

“하, 일반인들이잖습까.”

“일반인? 시발, 나랑 같은 반 새끼도 있다! 아오! 날 왕따 시킬 때는 여포였던 텐련이 이런 일에선 벌벌 떨어요!”

신경질적으로 다시 <자갈 폭발>을 사용해 야만인들을 떨쳐내는 지아라, 그 동안에 오혜영은 숨을 고르다가 이를 악물고 복부에 박힌 투창을 부러트렸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루 이음메가 완전히 부러진 도끼창을 보며 작게 한탄했다.

“하,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제대로 된 무기 들고 올 걸 그랬슴다...”

금요일 저녁, 이종족 문화 교류부 단톡방에 올라온 한새벽의 경고. 이상하게 변한 새벽 오빠였지만 그래도 허언은 하지 않던 그 성격을 생각하니 찜찜해서 이런 휴대용 무기를 가져왔건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지하에서 무길 가져왔을 거다.

그런 오혜영의 중얼거림에 지아라는 쌍욕을 내뱉었다.

“애미, 한새벽 그 새끼. 경고해줄 거면 제대로 해줄 거지 존나 두루뭉술하게 해줘서. 아오...! 위층에서 장도리가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도우러 못 왔어.”

“하하, 그래도 꽤 운이 좋은 거 아님니까? 장도리가 있으니?”

“운이 좋긴 얼어 죽을!”

장도리를 휘두르며 다시 돌멩이를 깨트려 <자갈 폭발>을 일으키는 지아라의 모습에 오혜영은 이젠 한손 도끼가 된 무기를 쥐며 피식 웃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함부로 지하에서 마법 무기를 가지고 나올 순 없었을 거다. 미르 생도라도 해도 자신은 하프였으니. 그래, 이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작지만 행운이다. 다른 인간들이 반항도 못하고 죽는 반면에 자기는 이거라도 챙겨서 반항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우와아아아아악!

심장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내뱉듯, 오혜영은 다시 소리를 내지르며 돌격했다. 그와 함께 아주 옅은 붉은빛이 오혜영과 지아라를 감쌌지만 두 사람 모두 야만인의 피에 붉게 피칠갑을 해서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뒤지십쇼!”

-으적!

하지만, 몸이 가벼워진 느낌에 강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두 사람의 맹공에 으깨지는 야만인들, 동갑내기 미르 생도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용이었다. 지하의 이종족들에게서 배운 전투기술과 우월한 피지컬을 토대로 싸워나갔지만, 그것도 잠깐. 지아라는 힘이 부족했고 오혜영은 부상 때문에 몇 십 초도 되지 않아 죽을 것처럼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야! 넌 뒤에 가서 쉬고 있어!”

“괜찮슴다!”

지아라가 말리려고도 했지만 오혜영은 거침없었다.

복부를 꿰뚫은 상처를 치료하긴 불가능한 상황, 이미 그녀는 죽음을 각오했고 계산을 끝마쳤다. 어차피 죽을 바엔 좀 더 가치 있게 생명을 쓰는 것이 옳다. 자신이 인간을 지키다 장렬하게 죽는다면...

그 기록이 남는다면 자신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올라올 수도 있을 거다.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같이 반쪽짜리로 자란 불쌍한 형제자매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죽더라도 이런 친구들과 함께 죽을 수 있지 않은가? 이 또한 행운이다. 그래, 역시 자신의 일생은 행운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빙긋 웃고 있을 때-,

-콰릉!

청색의 광채가 번쩍이고 번개가 치는 굉음과 함께 뒤편의 야만인들이 살짝 탄내를 품어내며 쓰러졌다. 갑작스런 적의 공백에 두 사람이 가쁜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는 가운데, 번개 치는 굉음이 이어진다. 그리고-

한 생도가 둘의 시선에 드러났다.

피로 뒤덮인 미르에서 핏방울이라곤 단 하나도 묻지 않은 깔끔한 생도복, 옷깃에 달린 4학년의 노란색 벳지, 이마를 훤히 드러낸 청색 머리띠와 입가에 걸린 자신만만한 미소... 지옥 같은 상황과는 한 발자국 동 떨어진 도도해 보이는 아가씨.

그녀는 그 둘을 향해 빙긋 웃는다.

“잘 있었나요? 혜영, 그리고 아라?”

7.

“하, 하하하. 역시. 전 운이 좋슴다...”

빠직 거리는 푸른 정전기를 흘리는 남궁진아의 모습에 오혜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또 개소리 한다며 핀잔을 줄 지아라도 이번만큼은 반박하지 못했다. 번개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남궁진아의 등장에 야만인들은-.

-끼아아아아악!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달려들었다.

건물 입구라는 좁은 공간에서 버티는 두 사람과는 달리 활짝 개방된 곳에 있기에 더 거침없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투창들, 하지만 남궁진아의 주위일정 범위 안에 투창이 들어가는 순간 그녀의 몸 주위에서 번개가 뿜어지며 박살난다. 그 박살난 투창 잔해 또한 같은 극의 자석이 밀려나듯이 부자연스럽게 튕겨진다.

“흥.”

코웃음을 치곤 자신만만하게 오른손 위에서 공전하는 큐브를 하늘로 뻗는 남궁진아, 그와 함께 거미줄 같은 얇은 전격이 광범위하게 주위를 뒤덮는다. 하지만, 방금 전에 오혜영과 지아라 앞에 대치하던 야만인들을 쓸어버렸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약한 전격. 그 때문인지 달려오는 야만인들에겐 전혀 소용이 없다.

오혜영과 지아라가 자기들이 나서서 그 앞을 막아야 했나 생각했지만-.

-스카카카칵!

사방에서 달려들던 야만인들이 십 수 명이 토막 나서 잘려나갔다. 너무나도 기괴한 장면에 달려들던 야만인들도 순간 흉성을 잃어버리고 멈칫한 가운데, 컵 안에 든 맑은 물에 물감이 떨어진 것처럼 색채가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곤, 남궁진아 앞에 한 사람의 모습을 만든다.

묘하게 일렁이는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검은 피부의 여인

단검과 장검을 각자 손에 쥔 그녀는 담담하게 남궁진아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어서 근방의 허공에 그녀가 들고 있는 검과 똑같은 형상의 반투명한 검들이 나타난다. 손에 쥔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여인-서예린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직?”

“멀쩡한 차량이 별로 없어서 좀 걸릴 것 같네요. 그 전까지 가능하시죠?”

“당연.”

모습을 드러낸 서예린을 향해 다시 흉성을 터트리며 달려드는 야만인들, 그와 함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반투명한 2쌍의 단검·장검과 서예린의 손에 들린 한 쌍의 칼까지 총 6개의 칼날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우...우와.”

앞에 펼쳐지는 그 광경에 오혜영은 물론이고 지아라까지 입을 벌렸다. 떠 있는 반투명한 <유령의 무기> 하나하나가 각자 하나의 전사인 것 마냥 스스로 움직여 야만인들을 상대한다. 그 4개의 칼날이 움직이는 사이를 검은 가죽 갑옷의 여인이 움직이며 결정타를 날린다.

그건 마치... 칼날의 여신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전사인 오혜영은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무질서하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전투지만, 그 진행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실상은 바둑을 두는 것처럼 상대방의 수를 읽고 치밀하게 계산된 칼질이다.

허점은 보이지 않고 설령 보인다고 해도 전부 함정

최소한 자신의 수준으론 진짜 허점은 보이질 않는다. 어마어마한 고수, 저 사람과 싸운다면 얼마나 버틸까? 아마 몇 초 만에 목이 날아갈 거다. 미궁 인간 출신 교관일까? 아마, 그럴 거다. 저런 무장만 보더라도 한 가락 하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야만인 수십여 명 넘게 토막 나서 갈려나가자-.

-...크르르륵!

이전의 헐벗은 야만인들과는 다른 존재들도 끌려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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