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83화 (83/350)

< 18화. 핏물에 빠져 익사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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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의 신’의 축복에 의해 일어난 고대의 전사, 생전에 가지각색의 깃털을 붙여서 ‘재규어’모양으로 꾸민 갑옷을 입고 다니던 노련한 전사였으나 살육의 신의 축복 아래에 좀 더 살육에 적합하게 변해 다시 되살아났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닮고자 했던 짐승의 힘까지 얻었다!

이 반야수의 존재는 살육의 충동에 눈을 번들거리며 당신을 죽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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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건물 옥상과 골목 사이로 속속히 모습을 드러나는 존재들

터질 듯한 근육질, 상체를 구부정하게 했음에도 2m가 넘어가는 체격, 얼굴은 인간과 야수가 ‘불쾌한 부분’만 뒤섞인 반인반수(半人半獸)들. 눈알이 없고 그저 뻥 뚫린 검은 공간이 있는 야만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살육에 번들거리는 핏발선 붉은 눈을 지녔다.

인간의 것과 불쾌하게 닮은 웃음을 흘리는 괴물들의 등장에 오혜영과 지아라는 본능적으로 주눅이 들었지만-.

“흠, 고양이 7마리. ᛥᛦᛪ ᛰ ᚳᚷᚼ...”

서예린은 냉소를 흘리며 그 괴물의 숫자를 파악한 뒤, 가볍게 제자리걸음을 뛰며 새로운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그런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에 야수들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캬아아아악!

흉성이 담긴 포효를 내지르곤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고양잇과 야수 특유의 우아하고 날렵한 움직임, 몰이사냥을 하듯이 전방, 위, 옆, 복잡하게 자리를 바꿔가며 도약해오는 그 속도는 서예린 못지않았다.

그에 오혜영은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해야 했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부아아앙!

이어진 일에 멍청하게 두 눈을 끔뻑였다.

뜬금없이 옆에 있는 트럭 한 대가 전력으로 가속해서 선두의 세 야수들을 옆에서 들이박는다. 갑작스런 사고, 압도적인 중량 차이는 어쩔 수 없기에 두 마리 괴물들은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트럭은 확인 사살 하듯이-.

-콰직!

괴물이 날아간 곳에 처박힌다. 그 난데없는 광경에 다른 네 야수가 흠칫하는 가운데,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던 서예린이 그 순간적인 빈틈을 보고 움직였다.

-!!

서예린의 형상이 엿가락처럼 쫘악 늘어난다. 오혜영의 눈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벌어진 일, <가속> 주문으로 접근한 서예린에게 야수는 기겁하며 강철 손톱을 휘둘렀지만-

-?!

그 형상은 그 손길을 뚫고 나간다. 빛의 일그러짐에 의한 환상, 평소라면 속지 않았겠지만 너무 급작스런 적의 맹공에 다급하게 대응하다 생긴 일이었다. 그에 야수는 흠칫했지만 이미 그 ‘속임수에 당한 대가’는 목덜미에 닿았다.

-푸확!

15cm 가량 뒤에 있던 서예린의 단검에 목이 따여 날아가는 야수의 머리통, 그렇게 한 마리가 칼에 베여 허무하게 죽는 순간-.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악!

다른 세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도약, 서예린의 뒤편에서 무방비처럼 보이는 등을 향해 손을 뻗는다. 곳곳에 포진해 있던 <유령의 무기>들이 진로를 방해하지만 오혜영이 보기엔 늦었다. 하지만 서예린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담담함을 입증하듯-

-캬옹!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달려가던 관성으로 얼굴을 바닥에 처박으며 나뒹굴고 또 다른 한 마리 또한 갑자기 펄쩍 뛰며 비틀거린다. 그리고 서예린은 그런 상황을 예측했다는 것 마냥 허릴 튕겨 몸을 돌리곤, 나머지 ‘한 마리’의 멀쩡한 야수를 향해 돌진한다.

-캬오오옹!

폭발적으로 흉악한 손톱을 휘두르는 반인반수, 그러나 모조리 서예린의 손에 들린 장검·단검에 의해 막힌다. 뭔가 잘못됐다고 파악한 야수는 도망치려고 하지만 서예린의 칼날은 야수를 놓아주질 않는다.

그 사이에 날아온 ‘둥둥 떠 있는’ 유령의 칼날들이-.

-푸욱!

-푸욱!

-푸욱!

-푸욱!

연이어 야수의 빈틈에 내리 꽂힌다. 두 단검은 괴물의 양 발등을 꿰뚫고, 두 장검은 각각 심장, 눈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찌른다.

-크르르륵!

그 모습에 나머지 이상반응을 보인 두 반인반수 중 하나가 이를 갈며 서예린을 경계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발바닥에 손을 뻗는다. 거기엔 야수의 피에 의해 드러난 ‘투명한 단검’의 날이 있었다.

“어..?”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오혜영은 얼굴을 처박고 쓰러진 괴물을 확인했다.

그 시체의 목덜미에는 어느새 투명한 장검이 뚫고 나와 있었다. 날아다니는 <유령의 무기>와 똑같은 것, 다른 점이라면 더 투명하단 것뿐이었다. 그렇게 바닥에 박힌 <유령의 무기>를 반인반수가 제거하려는 순간, 그 무기가 사라졌다.

“흐.”

그 사이, 서예린이 폭발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한쪽 발을 절며 서예린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될 리가 없었다. 나머지 <유령의 무기>가 움직이기도 전에 서예린의 장검에 상반신이 비스듬히 베이며 내장을 쏟아내곤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보며 오혜영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맙... 소사, 무기가 6... 아니 8개?”

지금 보니 저 여자가 다루는 <유령의 무기>는 무려 3쌍, 6개에 달했다. 그 중 한 쌍은 <투명화>를 걸어 숨겨놨던 것이고, 그 숨긴 칼날을 배치해 적이 스스로 칼날에 돌격해 찔리게 만들어서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오혜영 상식으론 말이 안 됐다.

양손에 하나씩 무기를 쥐고 휘두르는 것도 자칫 잘못하면 궤적이 꼬이기 십상이다. 저런 <유령의 무기> 또한 마찬가지다. 무기 하나를 조종하는데도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건만 그걸 6개나, 그것도 2개는 <투명화>까지 즉석에서 걸어버렸다. 아니, 도중에 <환영> 또한 사용했었지.

특수한 마법 장비를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무지막지한 테크닉이었다.

“흠, 별것 아님.”

그런 오혜영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서예린은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유령의 무기>를 역소환 했다. 그렇게 불과 서너 호흡도 안 될 시간에 순식간에 괴물을 처리하는 서예린의 모습에 오혜영이 압도당한 사이, 차에 치인 나머지 세 마리의 반인반수는-.

-카아아악! 카아아아아악!

건물 벽과 트럭 사이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도 터프한 맷집으로 무게를 버티며 어떻게 차량을 밀어내 벌어진 틈으로 몸을 빼내려 했지만, 주위의 ‘자동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합세해서 벽을 밀고 있는 트럭을 들이받는다. 그 연이은 질량의 폭거에 괴물들은 피를 토하며 짓눌린다.

“후후, 움직이는 1톤 쇳덩이. 사실, 날붙이보다 이게 더 무서운 무기죠. 아무리 깔짝여봐야 트럭에 치인 것에 비할까요?”

분명, 아무도 없는 핏자국이 가득한 빈 차량들. 하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남궁진아의 손바닥 위의 큐브는 둥둥 떠 있는 채로 범상치 않은 정전기가 빠직빠직 흘러나온다.

“야, 봐봐! 주위 자동차들이...”

지아라의 지적에 멍하니 서예린을 보고 있던 오혜영은 그제서야 주위 환경의 변화를 눈치 챘다. 사방에 가득한 비명소리와 날뛰는 괴물들의 존재감에 묻혀 몰랐을 뿐, 지금 보니 주위에 가득했던 자동차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어느새 그들이 숨은 건물을 중심으로 커다란 빈 공간이 생겨 있었다.

-캬아아악!

“그리고, 전기차의 배터리에 사알짝~ 장난을 쳐주면!”

자동차에 깔려 발버둥치는 반인반수들을 향해 남궁진아는 가볍게 왼손가락을 튕기고, 그와 함께 짓누르는 차량 중 가장 아래에 있던 한 대가-.

-콰-아앙!

굉음과 함께 터지며 불길에 휩싸인다. 그에 고통을 느끼는 듯, 비명을 내지르는 반인반수들. 더 격렬하게 벗어나려고 하지만 불길에 휩싸인 세단 한 대가-.

-빠아아앙! 콰직!

충분히 비어있는 공간을 통해 급가속, 주위에 널린 야만인들의 시신을 발판삼아 살짝 붕 떠오른 상태로 정면으로 반인반수들을 향해 처박히고 폭발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진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왼손으로 목덜미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불타는 흉기 완성.”

“우...우와. 진아 언니, 대단하다...”

“호호, 이 정도야 보통이죠.”

진심으로 감탄을 하는 지아라, 그런 그녀를 향해 남궁진아는 입을 살짝 가리며 특유의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빙긋 웃어준 후에 하늘을 향해 뻗은 오른손을 꽈악 쥐었다.

“자, 그럼 간이 방벽을 만들어볼까요? 예린양, 엄호 부탁해요.”

“음.”

주위에 있는 자동차 한 대가 가속하다가 급정지, 절묘하게 뒤집어지면서 엔진 보닛부분이 땅에 닿아 ∠자로 밑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된 자동차를-.

-부아아앙! 콰직!

-콰직!

-콰직!

다른 자동차들이 하나씩 발판삼아 도약한다. 건물 근처의 좁은 골목 하나에 차례대로 처박혀서 쌓이는 자동차들, 멀쩡한 시기였으면 대형 참사겠지만 지금은 저것들은 든든한 방벽이었다. 그 광경을 야만인들도 마냥 보고만 있지 않는다.

-끼아아아악!

-끼아아아악!

-부우우웅!

비명 소리 같은 호루라기를 불며 돌격하는 야만인들, 하지만 대부분 남궁진아가 차례대로 조종하는 커다란 트럭에 의해 로드킬 당하듯이 튕겨져 날아갔다. 이어서 움직이는 서예린의 마법 칼날들이 빈틈을 드러낸 야만인들을 목을 쳐냈다.

그건 마치 밀려드는 가축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도살장과도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지아라와 오혜영의 얼굴은 물론이고 건물에 숨어있던 이들의 얼굴에까지 희망이 감돈다. 지금 간신히 생존했더라도 죽는 건 기정사실인 상황, 하지만 저 둘의 압도적인 광경을 보니 그러한 공포도 잠시나마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서예린의 미간을 펴질 줄 몰랐다.

냉정하게 볼 때 상황은 좋질 않았다. 죽여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야만인들, 게다가 근방은 물론이고 입구 전체에 퍼진 괴물들이 그들에게 시선이 쏠렸다. 야만인들뿐이라면 몰라도 재규어 전사 같은 것들이 나타나면 위험하다. 방벽을 만든다고 해도 그놈들은 못 막는다.

“후우...”

결국, 서예린은 몰래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도망치기에도 늦었다. 남궁진아가 움직이자 무작정 따라가다니... 자기자신도 모르게 재벌 아가씨의 점수라도 따려고 이런 것인가? 지하에서 생활했을 때는 절대로 이러지 않았을 거다. 냉정했어야 했는데, 풍족한 지상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졌다.

일단, 그래도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해보자며 서예린이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끼... 끼이?

-우웁, 웨에에엑! 웨엑!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수십m 밖에서부터 솟구치는 흑자색 구름, 괴물들도 알지 못하는 일인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구름에 휘말렸던 야만인들이 허겁지겁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뛰쳐나와 헛구역질을 해댄다.

그 모습에 서예린은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미궁 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저게 뭔지 알았다. <부패 구름>, 시체로 만들어지는 흑마술의 일종. 종류에 따라 그 효과가 갈리지만 공통적으로 생명체에겐 ‘굉장히 치명적’이다. 보아하니 저것은 생명체의 감각기관에게 강한 자극을 주는 종류인 것 같았다.

부패 구름의 등장에 괴물의 물결이 끊기면서 여유가 생긴 서예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구름을 응시하는 남궁진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구름 막는 기술 있음?”

“음, 가능은 해요. 전격으로 주위의 공기를 이온화하고 자기장으로 묶어두면 여기에 못 오게 막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계속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한 두 사람이라면 모를까요.”

“내게 걸어주셈. 내가 안에 들어가서 저 마법 쓰는 괴물 죽여-.”

-캬아아아웅! 캬웅!

서예린의 말을 끊어버릴 정도로 커다란 비명소리, 그에 서예린이 다시 칼을 쥐는 가운데 진득진득해 보이는 흑자색 구름 속에서 반인반수 두 마리가 튀어나와 근처에 차량과 부딪친다. 그리곤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린다.

-케헥! 케헤엑!

-하학! 하아학!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발광하는 모습, 이미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듯 두 마리 모두 몸 곳곳에 상처는 물론이고 흑자색 실핏줄이 퍼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이 정답이라는 듯, 흑자색 구름을 뚫고 시커먼 흑자색 가시가 화살처럼 날아와 발광하는 짐승들의 몸 곳곳에 꽂힌다.

-켁... 켈록. 그르르륵!

그렇게 잔혹하게 유린당한 듯한 한 짐승이 결국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아 피를 토한다. 나머지 하나도 발작적으로 도망치다가 남궁진아의 자동차에 뺑소니 치여 쓰러지고. 어찌됐든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지아라와 오혜영이 잔뜩 긴장한 반면에 서예린은-.

“하.”

이내 피식 웃으며 검을 내린다. 이어서, 그 진득진득해 보이는 뭉클거리는 검은 안개 안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 모습에 오혜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새카만 방독면을 쓴 얼굴, 오른손에 든 피 묻은 군용 단검, 피가 잔뜩 묻은 생도복을 입고 있... 잠깐 생도복? 그리고 저 체구는 왠지 익숙하다?

그 뭉클거리는 구름 속을 나온 이질적인 이방인이 빈 왼손으로 방독면을 벗는다.

그와 함께 흘러내는 깨끗한 백발, 눈웃음을 치지만 감고 있는 두 눈, 너무 과해서 부자연스러운 입가의 미소까지. 그렇게 새로운 방문자는 생글생글 웃는 낯을 한 채, 오른손의 단검을 쥔 손으로 서예린과 남궁진아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친다.

“아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 연약한 뚜벅이인 저만 두고 자기네들끼리만 가면 어떡합니까?! 죽는 줄 알았다고요!”

화난 듯이 소리치곤 있지만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너무 즐거운 듯한 쾌활한 어조와 행동.

한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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