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84화 (84/350)

< 막간. 삼두정(三頭政) 회합 >

1.

‘뉴 송파구’

지하 7km아래로 꺼진 송파구로 향하는 토굴, 건축공학적으로 불가능한 개미굴처럼 난잡하게 파진 그 지하 공간을 개척해서 만들어진 이종족들의 파라다이스. 확장된 뉴 송파구의 총 면적은 이미 송파구 면적의 5개를 뛰어넘으며 아직도 개발 중이다.

그런 뉴 송파구에 거주하는 대부분은 오크다.

8할이 오크, 2할이 다른 기타 이종족들. 무력으로나 영향력으로나 오크가 압도적이며 사실상 오크의 결정에 다른 이종족들이 따라가는 구조다. 그리고, 그런 뉴 송파구에 거주하는 오크들의 꼭대기에는 ‘오크 전쟁 군주’-뉴 송파구의 종신 시장 ‘오무혁’이 있다.

하지만, 그가 혼자서 모든 오크들을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뉴 송파구엔 총 3명의 ‘오크 전쟁 군주’들이 있다.

가장 먼저 인간과 접촉하고 뉴 송파구를 건립을 협의한 살구색 피부의 언덕 오크 출신의 ‘무르굴-오무혁’, 그보다 뒤에 올라온 초록색 피부를 가진 늪지 오크 출신의 전쟁 군주 ‘제롬’, 마지막으로 올라온 뼛가루처럼 창백한 피부를 가진 동굴 오크 출신의 ‘모르칸쉬’.

이 세 전쟁 군주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대신 삼두정(三頭政)을 구성했다.

바깥인간들이 보기엔 오무혁은 여당의 대통령, 제롬은 야당의 실력자, 모르칸쉬는 제 3 극우 강경 파시스트 세력의 수장으로 보이는 불안한 정치 체계를. 이 세 명이서 꾸려가는 통치는 바깥 인간들이 보기엔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꽤나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흔치 않은 삼두정 회의가 열렸다.

“다들, 이 긴급 소집에 오기 전에 대략적인 상황을 뉴스로 들었을 것이다.”

비밀 회의장, 선택받은 극소수의 오크들만이 허락되는 이곳에 오크 전쟁군주들을 포함한 고위층 오크들이 앉아있었다. 하나 같이 전쟁 군주들의 심복이라 평가받는 자들, 가장 상석에 앉은 깔끔한 회색 양복차림의 오무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상의 미르가 ‘칸의 대지’가 되었다. 유혈이 낭자하더군. 그리고, 인간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흠, 귀쟁이와 반토막 새끼들 반응은 어떻나?”

3개의 색상으로 나뉜 원탁의 오른편 중심, 흑청색 양복 차림의 제롬이 질문하자 오무혁은 어깰 으쓱였다.

“뻔하지. 난색을 표하고 있어. 파병할 여건이 안 된다고 말이야. 사실대로 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에 피를 흘리기 싫다는 거지. 카롬쉬, 설명해주게.”

오무혁이 옆에 있는 참모 오크에게 말하자 그는 고갤 공손히 숙이곤 리모컨을 조작한다. 그와 함께 원탁의 중심에 있는 투명한 유리 원통에서 영상이 흘러나오고, 카롬쉬라 불린 오크는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자는 ‘닥터 크림슨’이라고 하는 칸의 신도입니다. 이미, 미국에서 대량 학살을 벌인 자죠.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의식의 안에 있던 생존자는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하고 전멸했습니다. 지금 보시고 있는 영상은 미국에서 벌어졌던 사태 안에서 촬영된 것들을 짜깁기 해놓은 것입니다.”

짧게 짤린 영상, 하지만 내부 상황을 유추하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영상을 보며 회의장의 오크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잔혹해서? 아니다. 거의 평생을 미궁에서 살아온 노련한 그들도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괴물들이 영상에서 날뛰고 있어서였다.

“위험해 보이긴 하군. 미궁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야. 그것도 칸의 신도가 저런 일을 벌이다니... 파병 요청을 거부했으면 굳이 우릴 안 불러도 됐을 텐데, 우릴 이곳에 부른 것은 파병 요청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이겠지?”

“그래, 맞다. 약속한 혜택이 꽤 크거든.”

제롬의 질문, 그리고 오무혁의 대답. 오무혁이 설명하란 듯이 턱짓하자 카롬쉬는 재빨리 영상을 넘겼다.

“파병 시, 오크들이 소유한 사업체들의 세제 감면을 포함한 뉴 송파구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정식으로 보장받았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구두약속이긴 하지만 ‘지상으로의 진출’에 대해 더 진지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흠, 지상이라.”

참모의 대답에 제롬은 턱을 긁적였다. 지상,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미 지겹도록 지상에 나가봤다. 그리고 마음먹는다면 계속 거기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동족들은 다르다. 인간들의 경계에 나가질 못한다. 확실히 매력적이긴 제안이긴 하지만...

살짝 시큰둥해 보이는 제롬의 반응에 참모가 재빠르게 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남한이라면 몰라도 북한, 그러니까 ‘북쪽’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이어진 참모의 말에 손을 들며 대꾸하는 한 오크, 제롬 측의 인원이었다.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자 의견을 낸 오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어나간다.

“인간들이 기록이 없는 구두 약속을 지킬지도 의문일 뿐더러, 설령 지상을 개척할 권리를 받더라도 북한의 상태를 생각하면 개척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파병을 하더라도 저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북한의 상태는 오크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기반은 이곳 뉴 송파구였다. 지상에 올라가서 딱히 먹고 살 방법도 없는데 올라가봤자 별 쓸모가 없다. 냉정하게 볼 때, 저 제안은 득보단 실이 많다.

그런 부정적 의견에 다른 몇몇 오크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던 도중-.

“흐, 미궁 밖이 특이한 거야.”

원탁의 중심부, 단 3명이 앉아있을 수 있는 전쟁 군주 좌석에서 대꾸가 나온다.

양복차림의 두 오크 전쟁군주와는 달리 위압적인 군장(軍裝) 차림의 오크, 모르칸쉬는 자신 앞에 있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박스에 굵은 검지 손가락을 뻗어 그 안의 내용물을 퍼 올리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미궁 안에서 우린 언제나 위험을 감수했다. 그리고, 쟁취해왔지. 위험하더라도 항상 도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멸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손가락에 퍼 올린 아이스크림을 쪽 빨아 먹는다. 그에 다른 천천히 두 전쟁 군주도 고갤 끄덕였다. 성향의 차이는 있지만 도전을 멈추는 건 그들의 성미완 맞지 않는다.

이어서 오무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의 오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위험하단 의견도 타당하다. 하지만, 난 인간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걸 말하려고 이 삼두정 회의를 소집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나 혼자 독단으로 진행하기엔 예의가 아니니까. 일단, 제 1 전사단과 보조 마법병단을 투입시킬 예정이고... 거기에 나도 간다.”

“네가 직접 가려고?”

오무혁의 말에 제롬은 미간을 구기더니 이내 완강히 고갤 젓는다.

“그럼 난 반대한다. 리스크가 너무 커. ‘다른 이종족들이 외면할 때, 오크만이 인간의 요청에 응했다.’는 적당한 생색만 내도 충분히 이득인데 전쟁 군주가 하나 사라질 수도 있다니...”

대외적으로 만나면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거린다고 알려져 있는 세 전쟁 군주, 하지만 그들은 사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별로 없을 뿐더러 아주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분쟁을 연기하면서 인간과 밑의 오크들을 의도대로 컨트롤했다.

탐욕스럽지만 동시에 종족 전체를 위해서 냉철하게 판단하는 모순적인 존재들

세로쉬의 가호를 받고 ‘전쟁 군주’의 직위에 오르면서 월등한 지성과 힘을 부여받은 초인-초오크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크들의 자랑이자 보물, 이런 일에 그런 지도자급의 동포를 잃는 건 오크 종족 전체의 손해다.

그런 제롬의 반응에 오무혁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전쟁 군주 급의 지원 없이 정예 병력들만 파견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 거라고 보는가?”

“영상을 보건데, 힘들지.”

“그래, 그럴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애들을 보내자니 생색내기 어렵고, 최정예를 보내자니 유능한 부하들의 목숨을 그냥 버리는 짓이다. 손해가 커.”

“...”

“우리 셋 중에 하나를 투입해야 그나마 성공확률이 생긴다. 우리 셋 중에서 내가 가장 합류할 명분이 서더군. 지위도 가장 높아서 생색내기도 쉬울뿐더러, 지금 미르엔 명목상이긴 해도 내 딸내미가 있어.”

“그 잡종을...”

이어진 말에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구긴 모르칸쉬, 그에 오무혁이 살짝이나마 언성을 높인다.

“잡종 취급하지 마라. 반쪽이지만 오크의 피가 섞였다. 밖으로 나온 이상, 그들도 이제 오크와 똑같이 취급해야해. 게다가 명목상이긴 해도 내 딸이기도 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나선다.’, 바깥 인간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최고지.”

“참 피곤하게 사는군. 정말 ‘인간’ 같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한숨을 내뱉으며 모르칸쉬가 고갤 절래절래 젓고, 이내 오무혁은 결정됐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찬성이 2, 반대가 1. 그럼 나까지 파병에 나가기로 하지. 그리고 제롬, 내가 이번 작전에서 죽으면 네가 다음 뉴 송파구의 시장을 맡아라.”

“...내가?”

뜬금없는 말에 제롬이 살짝 당황하며 미간을 찡그리는 가운데,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모르칸쉬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동의한다.”

“너도?”

제롬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대꾸하자 모르칸쉬는 어깰 으쓱인다.

“무르굴이 죽으면 다음 시장이 될 사람은 너와 나 둘 밖에 없지. 하지만, 난 극 강경파 오크들을 대변한다. 인간을 포함한 이종족들을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 그럼 남은 선택지는 딱 하나 밖에 없잖아?”

“...흠.”

“인간과의 관계가 틀어져선 곤란해. 당장, 이 뉴 송파구의 전력과 편의시설들이 전부 인간의 기술과 손길에 의해 돌아가는지 생각하면 인간과의 친선은 필수적이지.”

“하긴, 애초에 그렇게 하기로 서로 역할을 나누긴 했지.”

천천히 고갤 끄덕이는 제롬, 오무혁의 예상치 못한 시장직 제안에 당황해서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 들어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모르칸쉬의 모습을 보며 오무혁은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좀 의외로군.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네가 시장 자리에 좀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았는데, 되게 털털해 보이는구나. 모르칸쉬.”

“난... 아니, 우린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잖아? 내가 주류 권력을 잡게 되면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뻔한데. 그렇다고 유화 스텐스를 취하자니 내가 그동안 밖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와 180도 다르고.”

“그렇긴 하군.”

모르칸쉬의 대꾸에 두 전쟁군주가 고갤 끄덕이자, 그는 한탄하듯이 한숨을 내뱉곤 고갤 절래절래 젓는다.

“솔직히, 내가 가장 늦게 지상에 올라와서 가장 좆같은 극 강경파의 구심점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난 별로 극 강경파완 어울리지 않아. 미궁 안이라면 몰라도 밖에서 그러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하긴, 생각과 앞을 보는 비전이 있다면 극 강경파는 절대 안 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굵직한 검지 손가락으로 펀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 모르칸쉬, 손가락을 쪽 빨며 음미한 그의 창백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감돈다.

“난, 매일 아침 먹는 이 아이스크림이 너무 좋거든! 맛도 다양해서 하루하루 바꿔가면서 먹으면 질리지도 않지! 인간이 없다면 이런 건 못 먹잖아?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어.”

“클클, 그렇긴 해. 인간만이 그런 복잡한 맛을 낼 수 있지.”

“인간이 주는 과실을 누리면서 인간을 죽여야한다고 하니 멍청하지! 생각 없는 밑바닥 애들 대가리를 손수 깨부수고 싶다니깐? 생각을 못하는데 머릴 달고 있어봐야 뭐해? 장식이지!”

이어진 그 농담에 다른 두 전쟁 군주도 웃고, 이어서 다른 심복들도 웃었다. 그렇게 딱딱해진 분위기가 살짝이나마 풀어진 가운데, 모르칸쉬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 통을 내려놓곤 한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아참, 이번 안건을 듣고 보니 나도 건의할 게 하나 있다.”

“뭐지?”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되고 그 대가로 북쪽 지역을 개척하게 된다면... 내 아랫것들을 선봉으로 세우고 싶군. 너희들 파벌에 비해 우리 파벌이 극소수긴 해도 좀 숫자가 많아졌거든. 문제 일으키기 전에 좀 ‘처리’해서 숫잘 줄일 필요가 있어.”

너무 당연한 주장이기에 두 전쟁 군주 모두 고갤 끄덕였다. 극 강경파들에 대한 군주들의 판단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폭탄 같은 놈들, 그러니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처리하는 게 옳았다. 그 처리 과정에서 흘릴 피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면 더더욱 좋다.

“흠, 그렇게 하지.”

“참고로 몇몇 세로쉬님의 사제들이야. 오크가 제일이긴 해도 타종족은 무조건 살육이라니... 히틀러도 아니고!”

“하, 독버섯 같은 새끼들.”

이어진 모르칸쉬의 말에 질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뱉는 오무혁, 제롬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절래절래 젓는다. 이미, 종교 개혁 비슷한 방식으로 종단 내 극 강경파들을 처리했건만 또 나온다.

그런 둘을 향해 모르칸쉬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알잖아? 미친 강경파는 언제나 생긴다는 걸. 그리고, 그런 놈들을 쉽게 걸러내기 위해서 내가 이 역할을 맡았고. 우리와 몰래 접촉한 강경파 세로쉬님의 사제 명단들을 넘겨주지. 알아서들 처리하라고.”

“그렇게 하지.”

“하지만, 아무리 공익을 위한 거라도 우리 파벌의 희생이 있으니 대가는 받아야겠어. 이번 사제들의 처리와 향후 북한 개척 중에 우리 파벌이 흘린 핏값은 제대로 받겠다. 남은 애들이 불만이 없도록. 두 사람 모두 괜찮겠지?”

두 오크 전쟁 군주들은 고갤 끄덕였다.

“물론이다.”

“동의한다.”

그 뒤, 얼마 없는 몇 개 안건에 대해 논의하곤 삼두정 회의는 끝났다. 전쟁 군주들이 먼저 자리를 뜨고 그 뒤에 심복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모르칸쉬는 오무혁이 사라졌던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곤 오무혁의 옆까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밖에 가서 죽지 말라고 무르굴, 난 니가 없으면 여기가 더 골치 아파질 것 같거든.”

“흐. 그러냐?”

따라온 모르칸쉬의 말에 오무혁이 피식 웃는 가운데, 모르칸쉬는 담담한 표정으로 높은 통로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궁 바깥은 참 좋은 세상이야. 하지만, 동시에 내가 모르는 문제도 참 많아. 미궁과는 달리 참 복잡하지. 미궁에선 이렇게 이 도끼로-”

한 발자국 앞서 걸으며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두 개의 도끼를 뽑아 휘두르는 모르칸쉬, 살기는 전혀 없었기에 오무혁은 물론이고 다른 오크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췄을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한 호흡 만에 광풍과도 같은 도끼질을 끝낸 후, 모르칸쉬는 양 손에 도낄 쥔 채 어깰 으쓱였다.

“모든 걸 갈라버리면 됐는데, 여기선 말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니 골치 아파.”

“그래, 확실히 어쩔 땐 좀 골치 아프긴 하지.”

“그래서 아직 익숙하질 않고 미숙해.”

양손에 쥔 도끼를 다시 허리춤에 달며 모르칸쉬는 옆에 있는 오무혁을 응시했다.

“냉철하게 말해서 제롬과 나, 우리 둘은 너보다 그런 말로 해결하는 일-정치 감각이 떨어진다. 밀고 당기면서 이득을 극대화? 생각만 해도 어지럽군. 성미에도 맞지 않고.”

“흐, 너도 연습하면 나아질 거다.”

“그렇겠지. 하지만,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러니 이건 확실해.”

진지한 얼굴로 모르칸쉬는 입을 뗐다.

“네가 죽는다면 인간과의 협상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거다. 여기 오크 전체가 위축될 건 필연적이지. 좋지 않아.”

“...”

“나보다 더 생각이 깊은 네가 가겠다고 하니 말라진 않았다만... 어쨌든 죽지마라.”

오무혁의 어깰 툭 치고 앞장서서 걸으며 사라지는 모르칸쉬,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오무혁은-.

“우리도 이만 가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심복들과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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