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85화 (85/350)

< 19화. 핏물 속에서 헤엄치는 방법 >

1.

서예린과 마빡 아가씨가 자기들끼리 사라진 뒤, 난 죽기 살기로 뒤따라갔다.

어디에서나 괴물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 두 괴수랑은 달리 나는 허접이기에 들키지 않도록 폐자동차 사이를 포복으로 기어 다녀야했다. 육군 훈련소 시절, 비온 다음날에 했던 각개전투가 생각나더라고? 캬, 그때 진흙탕을 구르면서 이게 내 인생에 뭔 쓸모가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됐네!

어찌됐든, 따라가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먼저 앞서가서 화려하게 날뛰고 있는 서예린과 마빡 아가씨에게 괴물들의 시선이 쏠렸고, 도핑 물약을 빤 덕분에 몸도 꽤나 재빨랐으며, 무엇보다 <관찰자의 눈>의 도움이 컸다. 몸에서 30m가량 떨어트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야, 냉정하게 3인칭 시점으로 관찰할 수 있었기에 내가 들켰는지 아닌지 파악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계속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는 없었다.

보통 야만인들은 숨을 죽이고 시체인척하면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반인반수-인간과 짐승의 추악한 점을 모아서 만든 듯한 괴물은 기어코 조금씩 접근하는 날 눈치 챘다. 그리곤, 잔학한 미소를 띠며 놈은 내 시야의 사각(死角)에서 슬금슬금 접근했다.

그에 난 가방에서 슬그머니 방독면을 꺼내 쓰고 추가로 ‘준비물’을 꺼냈다.

마법서를 통해 배운 전투 마법들 중 하나인 <시체 부패(Corpse Rot)>, 순수 마법 성공률은 50% 밖에 되질 않는다. 하지만, 난 ‘특별한 눈’으로 마법의 근원적인 원리를 볼 수 있었고 그 동안 싸장님에게 배운 <연금술> 기법들을 응용해서 마법의 발현을 도와줄 수단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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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촉매 약물(potion of decay catalyst)

<시체 부패> 주문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그 원리의 일부분을 액체에 부여한 물약. 이 용액을 뿌린 시신에게 <시체 부패> 마법을 사용 시, 마법의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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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연두색의 액체, 지난 휴일 동안 내가 준비한 것들 중 하나인 ‘부패 촉매 약물’이다. 서 강 아저씨에게서 구한 연금술 재료들과 추가로 싸장님네 가게에서 조달한 것들로 만든 거지. 시체가 없다면 전혀 쓸모가 없는 물품이지만-.

여긴 시체가 널렸거든.

반인반수 괴물이 조용히, 하지만 놀랄 정도로 빠르게 거릴 좁혀가기에 난 곧바로 포션병을 열고 형광 연두색 용액을 근방의 시체에 골고루 흩뿌렸다. 어차피 들킨 거, 과감하게 움직였기에 다른 야만인들도 눈치 챘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시체 부패>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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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부패 (Corpse Rot)

레벨 2 독(연금술)/강령술

시전 소음 : 2

주문 소음 : 0

최대 SP : 0

사거리 : 최대 전방 30m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2P

효과 : 시체의 부패에 관여하는 미생물의 매커니즘을 모방하는 사악한 마법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서 방출하는 마법. 시전자 주변에 있는 모든 시체에선 분해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독성 증기’를 방출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증기는 생명체에게 ‘중독’과 ‘혼란’ 효과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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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화하아아악!

마법이 완성된 순간, 용매에 범벅이 된 시체가 녹아내리며 먹물과도 같은 질감의 기괴한 흑자색 연기가 터져나가듯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캬하아아악!

-켁! 케흑! 케허헉!

‘마법서의 과거’를 통해 봤던 것처럼 야만인들은 물론이고 몰래 쫒아오던 반인반수도,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켠 순간부터 정신을 못 차린다.

사실, 이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부패 구름>은 고작 ‘호흡을 참는다.’는 것 정도로 막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난 그 룬문자의 원리를 볼 수 있었고 ‘약간의 조작’을 통해 호흡기만 자극하도록 마법을 수정했다. 덕분에 이 <부패 구름>을 해독 용액을 적신 솜으로 채운 정화통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추가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안에서 내 초월적인 시야는 멀쩡했기에-.

“에휴, 이런 거 싫은데 말이죠!”

한숨을 내뱉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왼손의 손가락 위에 생겨난 총 5개의 시커먼 <독침>, 그 독송곳을 만들어내어 사방에 흩뿌렸다. 동시에 가까이에 있는 야만인에겐 가방에서 꺼낸 컴뱃 나이프로 목에 칼빵을 먹여줬다. 정정당당히 싸우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자극에 정신 못 차리고 나뒹굴고 있는 놈에겐 쉽지!

그렇게 야만인 일곱 마리, 반인반수 두 마리를 죽인 뒤에서야 난 마침내 먼저 앞서간 배신자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아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 연약한 뚜벅이인 절 두고 자기네들끼리만 가면 어떡합니까?! 죽는 줄 알았다고요!”

방독면을 벗자마자 난 낼 버려두고 지들끼리 움직인 뻔뻔한 배신자들에게 항의했지만-,

“하, 퍽이나!”

“...”

지들 잘났다고 날뛰는 년들답게 사과는커녕 두 사람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 치거나 어깰 으쓱이며 고갤 절래절래 젓는다. 저..저...! 배려심이라곤 없는 싸이코패스년들...!

“그건 그렇고, 저건 뭐죠? 보아하니 당신이 벌인 짓 같은데?”

“아, 연금술로 만들어낸 <부패 구름>이랍니다. 초강력 최루탄이라고 보면 되죠. 제가 준비한 것들 중 하나랍니다.”

“조종 가능?”

이미 저 구름의 정체에 대해 아는 듯, 곧바로 조종 가능하나고 질문하는 서예린. 그에 난 고갤 저었다. 저 구름 자체는 낮은 위계로 쉽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조종은 좀 다르다.

“아뇨, 그건 제 수준이 딸려서 불가능해요. 그 대신, 저 자리에서 잘 흩어지지 않게 만들었어요! 대충 10분은 저 자리에서 계속 갈걸요? 아, 그리고 반가워요! 혜영양! 그리고 아라양! 어라? 다른 두 분도 있네요? 이거, 양우영 빼고 동아리가 다 모였네요? 하하핳!”

건물의 창문 쪽에서 날 빤히 바라보는 이들, 그중엔 반 귀쟁이 애들도 있었다. 내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자 반깜귀년-이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스윽 사라지고, 이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든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활기차기 지내야지.

건물 계단에 걸터앉은 반쯤 시체가 된 오혜영을 향해 걸어가며 난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책가방의 옆쪽 지퍼를 열고 준비물 중 하나를 꺼냈다.

“자, 일단 혜영양의 상처가 심하니 치료부터 하죠. 짠!”

“...포션?”

“네! 외상용 상처 회복 포션이랍니다! 그것도 양산품이 아닌 억대 수제품!”

내 소개에 당사자인 오혜영은 물론이고 지아라와 마빡 아가씨까지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피도 너무 많이 흘리고 사실상 치료 못하면 죽을 상황인데 포션이 나타나니 반색할 수 밖에. 그 소중한 포션을 쓰다듬으며 난 여기에 얽힌 슬픈 사연을 소개했다.

“사실,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장물이에요. 다른 준비물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런 걸 만들 시간이 없었거든요! 혹여 쓸 일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알바 뛰는 상점에서 몰래 가져왔죠! 근데, 이렇게 쓰게 되네요! 아주 잘 가져왔어요! 하하핳!”

이거, 우리 싸장님의 물약 상점에서 몰래 빼돌린 약물이다.

아마 지금쯤 우리 싸장님 물약들 사라진 거 알고 대발노발하시겠지? 내가 몰래 재료들 빼돌려 쓴 것까지 생각하면? 캬! 싸장님의 믿음을 배신했구나! 마음이 쓰려! 저번처럼 또 ‘마법 테스트’를 하려나? 그래도 괜찮아! 좆되는 건 미래의 나지 지금의 내가 아니니까!

오혜영 앞에 서서 <눈>으로 그 상처 속을 확인한 후, 난 곧바로 오른손에 쥔 나이프를 들어올렸다.

“딱 보아하니 상처에 찔린 흑요석 파편이 남아있네요. 지금 포션을 먹으면 그 파편이 몸 안에 남을 거예요! 그러니 파내고 포션을 먹도록 하죠! 자, 따끔해요!”

“허억!”

곧바로 컴뱃 나이프로 오혜영의 상처를 헤집었다. 기겁하는 오혜영, 하지만 이내 이를 앙 다물고 버틴다. 상처를 벌려 몸에 박혔던 투창을 억지로 뽑아내고, 추가로 다른 상처 속에 부서진 흑요석 조각을 억지로 빼냈다.

“야, 너무 막하는 거 아니야? 피 좀 봐!”

그런 내 모습에 옆의 지아라가 식겁한 표정으로 참견한다. 그 걱정도 이해된다. 제대로 소독도 안 하고 살을 거의 한 뭉탱이씩 도려내는 것이니까. 덤으로 피도 철철 흘리고. 하지만, 괜찮아! 포션이라는 기적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하핳! 이 약물, 우리 싸장님이 만든 거라 진짜 효과 좋거든요!”

“그 전에 죽겠다! 시발, 잠깐만!”

입고 있던 생도복 겉옷 벗곤, 그 겉옷을 힘으로 ‘부욱!’ 찢는 지아라. 그리곤 내가 헤집은 상처에 묶으며 지혈한다. 확실히 나쁘지 않네! 그렇게 우리가 무자비한 야매 치료를 계속하는 사이-,

“예린씨, 넘어오는 놈들을 부탁할게요.”

“음.”

마빡 아가씨는 서예린에게 경계를 해달라고 부탁하곤 우릴 지나쳐 인기척이 나는 건물 위쪽으로 올라가 내부로 들어간다. 그리곤-.

-오...오오오!

-와아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 펴.. 편입반의 학생 맞죠? 그... 그...

곧바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환호, 그리고 감사 인사. 거참, 내색은 안 해도 우리 아가씨는 관심종자시니 기분 째지시겠구만? 그렇게 아가씨가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는 사이 난 파편을 다 꺼내고 오혜영에게 포션을 먹였다.

“자, 다 됐어요. 이제 좀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고... 고맙슴다...”

“하하, 네. 네.”

“야, 안쪽으로 옮기자. 몸 덜덜 떠는 것 봐. 혜영아, 쫌만 참아라!”

너무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창백한 얼굴로 이를 다닥다닥 떨고 있는 오혜영, 지아라의 말대로 계속 계단에만 있는 것도 별로 좋지 않아 보이기에 지아라와 난 있는 힘껏 오혜영을 들고 위로 향했다. 그렇게 2층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나저나 사람이... 생각보다 많군요?”

밖의 간판으로 보건데, 작은 규모의 파스타 레스토랑. 침식이 이뤄진 듯, 기괴한 디자인이 섞였지만 다행히 비슷했다. 근데, 세상에나... 건물 위층이 꽉 찼다! 아무리 마빡 아가씨가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고 있어서 사람이 몰렸다고 해도 너무 많다.

그런 내 질문에 지아라가 한숨을 내뱉는다.

“3층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200명은 넘어.”

“...200명이요?”

“그래, 우리가 이곳에서 지키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쪽으로 피했거든. 그냥 닥치는 대로 도망치는 사람을 받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 자, 비켜요! 비켜! 사람 치료해야 되가지고 여기 좀 써야하니까! 주방장 아저씨! 여기 따뜻한 물 좀 가져와봐!”

구석의 커다란 테이블 위에 오혜영을 내려놓는 지아라, 그렇게 눕히자마자 반 귀쟁이 애들이 쪼르르 달려와 어디선가 가져온 담요를 덜덜 떠는 오혜영의 위에 꼬옥 덮어준다. 그 뒤, 차가운 오혜영의 양 손을 각자 하나씩 꼬옥 잡아준다. 거 참, 보기 좋은 광경이네.

“-아, 네! 감사합니다. 예, 걱정 마시고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저희가 반드시 안전한 곳에 데려다드릴 테니까요! 전 잠시 동료들과 함께 어떻게 움직일지 상담 좀 해보겠습니다!”

그 사이, 극렬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인처럼 움직이던 마빡 아가씨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우리 옆에 다가온다. 지아라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가운데, 마빡 아가씨는 웃던 낯을 싹 꾸기며 우리들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하, 젠장. 너무 사람이 많아. 대충, 많아봤자 40~50명 정도 생각했는데. 어떡하지?”

“확실히, 상황이 별로 안 좋긴 하네요! 그러니까 대책도 안 세우고 무작정 오면 어떡합니까!”

무지성으로 움직이니 이 꼴이 나지. 내가 비난하자 마빡 아가씨가 곧바로 발끈한다.

“아니, 그럼 사람이 위험한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 그것도 쌩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안면이 있는 애들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먼저 생각 좀 하고 움직이자’ 이 말이죠!”

자연스럽게 날 쓰레기로 몰아가는 수준급 정치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진짜, 저분은 정치가 생활이구나! 전문가 수준이야! 그래, 남자는 공감-갬성이 아니라 해결을 해야지! 한숨을 내쉬며 난 <관찰자의 눈>을 위로 올렸다.

내 몸을 기준으로 반경 30m가량 이동이 가능한 시야

30m라니 잘 실감이 되지 않지만 높이로 따지면 아파트 10층보다 높다. 작정하고 올리면 건물 꼭대기에서 본 것처럼 모든 게 보이지. 그렇게 건물을 뚫고 위에서 천천히 조망해봤다.

역시나, 좋지 않다.

내가 일으킨 <부패 구름> 밖에서, 그리고 마빡 아가씨가 불질러놓은 자동차 불벽 뒤에서 대기타고 있는 야만인과 괴물들. 우리가 도착하기 전보다 훨씬 더 많아. 절망적이군! 그렇게 천천히 위를 조망하며 난 육신의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건가요? 여기서 오래 버틸 순 없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구조대도 당분간 올 것 같지 않고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지.”

마빡 아가씨의 목소리에 난 주위를 훑었다. 그래, 그나마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을 법한 곳은...

“그럼 중앙 행정처로 가죠.”

“중앙 행정처?”

“네, 오기 전에 봤잖아요. 농성하는 거. 교사들도 많이 모여 있었을 테니 어느 정도 대비가 되겠죠. 게다가 그쪽에서 계속 총소리 들려오지 않아요?”

미르 중앙 행정처

그곳이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건물에 기괴한 변이-아즈텍식으로 변화도 별로 없고 차량으로 간이 바리케이트를 만들어서 저지선을 만들어 놨다. 상주하고 있는 군인들이 소총으로 달려오는 괴물들을 쏴죽이고 있다. 간혹 군인들의 화망을 넘어오는 괴물들은 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죽이고.

아, 미르의 정식 교사들은 평소엔 티를 안 내지만 다들 한가락씩은 한다.

초인인 생도가 반항하더라도 진압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실제로 생도가 교사에게 강하게 반항하면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팬다고. 말만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럴 리가 없으니까. 그걸 알기에 애들도 크게 안 깝치는 거지. 어쨌든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은 그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마빡 아가씨는 내 제안에 살포시 얼굴을 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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