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핏물 속에서 헤엄치는 방법 >
피눈물을 흘리는 머리통들이 모여 만들어진 혐오스런 인간 형상의 골렘
입만 뻐끔거리는 그 머리통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의 5m는 넘는 거대한 체격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바닥이 진동했지만, 야만인들의 ‘지랄 맞은 호루라기 소리’와 마빡 아가씨가 움직이고 있는 ‘트럭들의 진동과 소음’ 때문에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부패 구름>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야만인들을 짓뭉개며 골렘은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이어서 먹물 같이 질척한 <부패 구름> 안으로 태연하게 들어간 골렘은 투포환을 던지는 자세를 취한다. 고통에 일그러진 머리통들의 눈깔이 향하는 곳은... 어라? 여긴 것 같은데? 곧바로 쪼갠 시야를 전방에 배치했다. 이어서 골렘이 투수처럼 손을 휘두르는 순간-,
“얍!”
“켁!”
여러 개로 쪼갠 눈으로 입체적으로 궤적을 추정하고 반사적으로 뛰어올라 마빡 아가씨의 등짝에 발차기를 날렸다. 갑작스런 내 발길질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마빡 아가씨, 그 빈자리를 던져진 머리통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뚫고 나가 반대편 건물에 부딪친다.
-투쾅!
건물에 부딪치자 폭파 현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그 일부분이 부서진다. 머리통이 터지면서 새겨지는 핏자국과 뇌수는 덤. 거 흉흉한 것이 꼭 볼링공을 던져대는 것 같네. 맞았으면 그냥 몸이 터져나갔을 거다.
“오우, 죽을 뻔 했네요.”
아, 아가씨를 구했다. 기분이 좋다! 사실, 등짝에 발차기를 먹여서 그런 걸지도?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는 동안, 피가 찐득찐득한 지면에 엎어졌던 마빡 아가씨는 이를 악물고 일어선다. 따지고 싶겠지만 방금 전에 저걸 봤으니 죽을 뻔했다는 걸 알겠지.
그리곤, <부패 구름> 사이를 천천히 걸어오는 머리통 골렘을 보며 비명을 지르신다.
“아니, 시발! 저건 또 뭐야? 웬만한 건 저 구름을 못 뚫는다며!”
“저건 언데드예요. 생명체가 아닌 건, <부패 구름>이 안 먹혀요.”
“이익..!”
쌍욕을 내뱉으며 엎어지면서 끊겼던 마법을 다시 일으키는 마빡 아가씨, 손에서 실 같은 정전기가 뻗어나가고 그에 연결된 중형 세단이 잠깐 공회전하더니 ‘끼이이익!’하는 타이어 마찰음을 토해내며 맹렬하게 돌진-다시 투포환 자세를 취하는 골렘에게 들이박는다.
-부아아앙!
-부아아앙!
-부아아앙!
차량에 다리에 박히고도 골렘이 자세만 흐트러졌을 뿐 버티자 아가씨는 연이어서 세단들을 출격시킨다. 그렇게 중형 세단을 4대나 꼬라박고 터트리고 나서야 머리통 골렘이 쓰러진다. 마지막 세단의 일격에 볼링핀처럼 흩어지는 머리통을 보며-.
“아가씨, 나이스샷.”
난 작게 박수쳐줬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상사에 대한 아부는 기본 스킬이지. 하지만, 우리 불만이 많은 마빡 아가씨는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미친놈아! 여유롭게 장난할 때야!?”
“아니, 장난이라뇨! 구해드렸잖아요! 저처럼 확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요?!”
억울하네. 진짜 열심히 했는데 말이지? 그런 내 대꾸에 반박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전기를 흩뿌리는 아가씨, 그에 자동차들도 다시 열심히 괴물들을 뺑소니친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 움직임은 많이 단순하다. 피곤해서 정교하게 조종하는 걸 포기한 게 눈에 보이네.
그나저나, 이제 슬슬 30분이 다 되가는데 하프 드웝녀에게선 소식이 없네?
시선을 돌려 건물 지하실에 있는 하프 드웝녀를 보려고 할 때, 갑자기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재빨리 시야를 옮겨서 확인하니 안쪽에서 오혜영이 다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고갤 돌려 내가 눈치 챈 척을 하자, 그녀는 활짝 웃는다.
“안녕하심까!”
이젠 한손 도끼가 된 부러진 할버트를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르겠다만 자동차 문짝을 들고 나선 오혜영.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빡 아가씨가 흠칫하더니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어, 혜영아. 괜찮은 거야? 쓰러진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붕대도 감고 있네! 가서 쉬어!”
“괜찮슴다. 주방장 아저씨가 음식도 해줘서 먹었고 상처도 다 나았슴다! 흐하아아압!”
살짝 창백한 얼굴이지만 씩씩하게 대답한 후, 그녀는 차량의 뺑소니를 뚫고 다가오는 야만인들에게 돌격해서 방패로 든 차 문짝으로 후려쳐 날려버리고 이어서 한손 도끼가 된 할버트로 내리찍는다. 확실히, 야만인의 피 묻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이 괜찮아 보이긴 하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된 것 같네요.”
“응? 뭐가?”
“지하로 들어갈 시간이요.”
그 사이에 난 쪼개둔 시야 중 하나를 아래쪽에 보내 확인했다.
건물의 지하 1층, 미친 듯이 은빛으로 빛나는 장도리로 지면 콘크리트를 깨부수고 있는 지아라, 그 아래의 콘크리트 두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연이은 소음에 지하 주차장에 있던 괴물들이 눈을 빛내며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까지 모두다.
“자! 그럼 마지막 연막 리필하고 가죠!”
“아오...”
내 말에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아가씨, 아가씨가 그러건 말건 난 가방에서 이제 2개 밖에 남지 않은 ‘부패 촉매 약물’을 꺼냈다. 그리곤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아가씨와 함께 지면에 방치되어있는 시신들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오혜영에게 짬 때리지 않는 걸 보면 양심이 있네.
서서히 핏물로 녹아내리고 있는 시신들, 하지만 아까 내 독침에 당한 녀석들은 다 녹질 않았다.
-끼이익!
우리 앞에 세단 한 대가 서고, 난 차문을 열고 아가씨와 함께 시신들을 들어 좌석에 하나씩 쑤셔 넣었다. 그 뒤에 약물을 흩뿌리곤 타이밍에 맞춰서 터질 수 있도록 조절해서 <시체 부패>를 사용했다. 그런 내 작업을 보며 마빡 아가씨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진저리를 친다.
“으으, 역겨워...”
‘부패의 마력’과 시신의 ‘잔존 마력’이 뒤섞이고 그 안에선 일반적인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독소가 만들어진다. 시체는 가스에 내부부터 ‘팅팅’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그 피부에선 검은색 고름이 들어찬 낭포가 올록볼록 솟아오른다. 음, 확실히 내가 봐도 좀 많이 역겹긴 해.
“자! 그럼 출발해주세요!”
재빨리 차문을 닫고 소리치자 마빡 아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차량을 돌진시킨다. 그 목적지는 시커먼 <부패 구름>이 뭉클거리는 안 쪽, 그 안에 도착하자마자 아가씨는 차량 창문을 내린다. 이어서 차 안쪽의 시체가 터져나가며 다시 <부패 구름>을 자욱하게 깐다.
“그리고, 위쪽분들! 이제 슬슬 갈 시간이랍니다!”
<부패 구름>의 리필을 마친 뒤, 난 옥상을 향해 소리쳤다. 어느새 남은 독수리 전사를 회쳐버리고 숨을 고르고 있는 서예린과 이영이 내 목소리를 듣곤 서로 고갤 끄덕인다. 이영이 먼저 지상에 착지하고 이어서 서예린이 떨어진다.
그 뒤, 서예린은 날 고갤 까닥였다.
“아까, 지원 감사.”
“하하, 별 말씀을요.”
내가 도중에 도와준 걸 눈치챘나보네. 하긴, 민감한 그녀가 눈치 못 챌 리 없지. 그 사이, 방벽 너머에서 조금씩 삐져나오는 야만인과 괴물들을 자동차로 들이박고 있는 아가씨가 미간을 팍 찡그렸다.
“빨리 가자. 이제 여기도 슬슬 한계다.”
“옙. 아, 그리고 지하에 진입하기 전에 아가씨가 한 번 손을 써야 해요. 땅을 파면서 소음이 났을 테니, 지하의 괴물들이 눈치 챘을 거예요. 작게 구멍을 뚫으면 곧바로 주차장에 있는 차량들을 움직이세요.”
내 질문에 마빡 아가씨는 차량을 움직여 달려오는 야만인 한 마리를 뺑소니치며 고갤 끄덕인다. 그에 난 활짝 웃었다.
“자, 그럼 건물 입구를 완전히 막아 볼까요?!”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내 가방을 멨다.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마빡 아가씨가 푸른 전류의 줄기가 뻗은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그러자 왔다 갔다 하면서 방벽을 뚫고 들어오는 괴물들을 막아내던 자동차들이-.
-끼이이익! 콰앙!
-콰직! 쿵!
일제히 우리가 있었던 건물 입구를 향해 돌진한다.
굉음과 함께 서로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차량들, 그렇게 건물 곳곳의 출입구를 틀어막는 차량들은 얼마 가지 않아 불길이 솟아올랐다. 아마, 괴물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건 꽤 어려울 거다. 대신, 우리도 시간 내에 도망치지 못하면 건물 내에서 노릇하게 익혀지겠지.
입구가 잘 막힌 것을 확인한 뒤, 난 시선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자, 저와 예린양 그리고 진아씨는 지하로 내려가서 정리하고 있을 게요. 다른 분들은 사람들을 지하실로 오게 해주세요.”
“옙!”
잽싸가 위쪽으로 향하는 이종족 애들, 남은 우리들은 곧바로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5.
예로부터 지하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공간이었다.
단어의 느낌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하늘 위가 ‘높다’, ‘밝다’, ‘넓다’ 등의 긍정적인 의미가 연상되는 반면, 땅 아래는 ‘낮다’, ‘어둡다’, ‘좁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연상된다. 시체를 땅에 묻는 인간사회의 장례 특성상, 땅 속은 ‘망자들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하였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연관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문화권을 막론하고 지하는 되도록이면 접근을 금해야할 곳이 되었다.
건축물들의 경우 높은 계급층은 대체로 높은 장소에서 거주하는 일이 많았고, 반대로 낮은 계급층은 대체로 낮은 장소(=땅과 가까운 곳)에서 거주하는 일이 많았다. 이는 유혈의 신에 의해 미르에 융합된 야만인들의 공간 또한 똑같았다.
그렇기에 지하 주차장은 ‘비천한 존재들’이 머무르는 ‘죽음과 연관된 장소’가 되었다.
먹다 남긴 인육(人肉) 찌끄러기들, 비참하게 죽어간 야만인의 포로들, 존재하지 않는 야만인들의 가짜 신에게 바쳐진 제물들... 비천한 그들은 살육의 신에게 축복을 받았음에도 완전히 되살아나질 못했다.
게다가 그들 중 몇몇은 운 좋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가 정한 속박에 굴레에 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렇게 지상에도 나가지고 못하고 죽음의 공간에 속박된 자들에게 지상에서 들려오는 충격은 그 무엇보다 시선을 끌었다.
대부분은 그저 고통에 휩싸인 채,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 소리와 울림을 포착한 망자들은 자연스레 그곳에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기를 희망했고, 더 욕심을 부려서 다시 생명을 얻기를 맹렬하게 갈망했으며,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산 자들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굴러 떨어트리기’를 염원했다.
-퉁!
그 비천한 망자들이 뻥 뚫린 안구가 금이 간 천장을 바라보며 고정되어 있을 때, 흔들리던 천장을 뚫고 돌조각을 떨어트리며 뭔가가 뚫고 나왔다.
금속으로 된 가느다란 쇠파이프
망자들은 몰랐지만 그건 지상의 하프 오크-오혜영이 싸우다가 부러트린 조립식 할버트의 봉 부분이었다. 이어서 뻥 뚫린 봉의 안쪽에서-.
-빠지지직!
얇은 번개줄기들이 흘러나와 사방에 흩어진다. 몇몇 줄기가 망자들의 몸에도 닿았지만 망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일반인이 맞아도 살짝 따끔할 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정도의 약한 번개줄기, 감각이 없는 망자에겐 그냥 반짝이는 빛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전자 장비에겐 의미가 달랐다
-삐빅! 삐비비빅!
-삑삑!
음산하게 변한 지하 주차장, 하지만 원래 있던 자동차들은 어디에 가질 않았다. 누군가 전자 열쇠로 조작한 것처럼 알람음과 함께 저절로 라이트가 켜지는 자동차들, 그 이변에 망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멀리 있던 한 자동차가 움직인다.
아주 정확하게 코너를 꺾은 후, 흔들리는 천장의 바로 아래에 있는 통로를 향해서-.
-부아아아앙!
맹렬하게 돌진한다. 그곳에 서 있는 망자들은 그 쇳덩이의 돌진을 막지 못했다. 그대로 볼링공에 맞아 날아가는 핀처럼 튕겨져 나가는 망자들, 연이어 다른 자동차들 몇 대가 똑같이 통로 쪽으로 나와 망자들을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웽! 웽! 웽! 웽!
-빠앙! 빠아아앙!
가만히 그 자리에 있는 자동차들 또한 경보기와 클락션이 켜지며 소음과 빛으로 망자들의 혼란을 부추긴다. 그렇게 망자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가운데, 천장이 있던 자리에 한 번 ‘청소’가 끝나자 마침내 천장이 사람 빠져나갈 크기로 무너지며 한 사람이 바닥에 착지한다.
황금빛 눈동자의 여전사
순식간에 허공을 떠다니는 6개의 검이 생겨나더니 그녀는 손에 쥔 한 쌍의 검과 함께 근처의 망자들을 순식간에 토막쳐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얼마 없는 괴물들을 처리하는 사이, 두 명이 연이어서 바닥에 착지했다.
“흠, 상황을 보아하니 조치가 꽤 괜찮군요.”
“하하! 제가 뭐랬나요? 아가씨, 전적으로 절 믿으셔야 해요!”
피범벅이 돼서 옷차림이 많이 더럽혀지긴 했지만 그래도 도도해 보이는 파란 머리띠의 아가씨와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은 백발의 소년, 간신처럼 양손을 비비며 아부하는 한새벽을 향해 코웃음 친 남궁진아는 손에 쥐고 있던 빈 알루미늄 캔을 들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