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93화 (93/350)

< 20화. 고통을 넘어서 >

1.

탑차에 간신히 탑승한 뒤, 우린 중앙 지역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확실히, 지하 주차장은 지상에 비해 더 위험했다. 지상의 야만인들에 비하면 볼품없는 망자들, 하지만 이들은 더 ‘절박하고’ ‘혐오스러웠으며’ ‘숫자도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그 살덩이의 물결은 뒤에서뿐만 아니라 앞과 옆에서도 밀려온다.

-부릉! 부르릉!

-부웅! 부웅! 부우웅!

‘자동차’라는 무기가 없었다면 말이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급가속하여 돌진하는 육중한 쇳덩이는 밀려드는 살덩이를 너무나도 쉽게 날려버린다. 그러나 자동차도 아주 만능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많은 망자들은 쿠션처럼 달라붙어 기어코 그런 자동차를 막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는 한 둘이 아니다.

“쯧!”

그런 낌새를 보이자마자 마빡 아가씨는 혀를 차며 자동차의 연료 배터리를 과열시켜 불을 붙여버린 뒤, 화끈하게 터트려버리고는 주위의 새로운 자동차를 조작한다. 그렇게 수백 대의 자동차를 쓰고 내던지며 마빡 아가씨는 거칠게 길을 뚫었다.

다시 봐도 참 대단하네.

힘의 소모가 엄청날 것 같은데,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별로 힘 들지 않다고 한다. 자동차 조종하는 건, 차량 내부의 전자기판을 조작할 ‘컨트롤’의 영역이지 힘과는 별 상관없다고. 소모되는 마력의 대부분은 전기를 멀리 연결하는데 쓰인다고 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가씨가 열일하는 동안, 나는...

“회장님, 나이스 샷~”

쪼그리고 앉아 마빡 아가씨의 허벅지를 양 손으로 붙잡은 채 열심히 응원했다.

미리 말하건대, 이거 절대 성희롱이 아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자신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서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투쾅!

“으엑! 예린씨! 저거 좀 어떻게 해봐요! 나 죽어요!”

시체가 길을 막고 시시때때로 대포알 같은 머리통을 던져대는 골렘까지 뒤섞여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급정지, 급발진, 추가로 급커브까지 돌게 된다! 서예린 같은 괴물이면 몰라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어어!’ 하다가 떨어진다고!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가씨가 잠깐 짬이 나자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소리친다.

“예린이에게만 뭐라 하지 말고 너도 좀 해봐 이 새끼야!”

“전, 여기서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이 없다구요! 원래대로라면 운전석에 탔을 텐.. 멈춰!”

“큿!”

“우왁!”

옆쪽에 날아오는 머리통 포탄, <관찰자의 눈>을 흩어놓은 내 경고에 마빡 아가씨가 다급히 탑차를 정지시킨다. 덕분에 포탄에 직격 당하진 않았다. 대신에 운전석 윗 천장부분이 완전히 박살서 뜯겨져나갔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이네. 그리고...

“이 개...”

“헤헤.”

난 그 급정거를 우리 마빡아가씨의 다릴 붙잡고 버텼다.

우리 마빡 아가씨는 전기로 자기장을 만들어서 탑차의 쇳덩이 부분에 다리가 자석처럼 ‘착!’ 달라붙은 상태거든.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거고, 나도 거기에 계속 달라붙을 수 있는 거지.

아, 급정거로 얼굴에 닿는 우리 아가씨 엉덩이! 크고 따땃하다!

독마법 밖에 모르는 이 무능한 놈은 아가씨만 믿겠습니다요! 그렇게 내가 헤픈 웃음과 함께 아가씨의 엉덩이에 코를 박고 있는 사이-,

“엄호!”

가끔씩 아가씨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만 막던 서예린이 돌연 엄호 해달라는 말과 함께 ‘휙!’ 하고 앞으로 튀어나간다.

-쿠웅! 쿠웅! 쿠웅!

곡예에 가까운 수준으로 앞에 움직이고 있는 자동차들을 디딤돌 삼아 움직인 뒤, 곧바로 앞쪽을 향해 크게 도약하는 서예린. 평범한 망자라면 그냥 마빡 아가씨가 자동차로 뺑소니 쳐버리겠지만... 지금 보니 새롭게 나타난 저 놈은 그게 불가능한 종류다.

====

야만인들이 믿던 허상에게 바쳐진 희생양

야만인들이 믿었던 ‘물과 비의 신’은 오직 어린아이만을 제물로 받았다. 그리고, 야만인들은 그렇게 바쳐진 아이들이 눈물을 흘릴수록 땅이 비옥해진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허상에게 제물을 바치기 전에 아동들을 온갖 고통이 가득한 환경에 내몰았다.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게 만들고 그러고도 울지 앉는 독종이 있다면 직접 손톱과 이빨을 뽑고 뼈를 꺾으며 고문했다.

어린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진동하는 가운데, 야만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향해 엄숙하게 주문을 읇조린 다음 이들을 제단으로 대려가 목을 베어 죽였다. 그렇게 헛되게 죽어나간 희생양들은 이제 ‘진정한 신’의 힘의 여파에 불완전하게 부활하였다.

이들은 자신이 생전에 겪은 고통을 당신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7~8살 정도의 어린아이의 유령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그 ‘반투명한 몸뚱이’는 삐쩍 말랐고 참혹한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팔과 다리가 기괴하게 꺾인 채로 수레바퀴 같은 것에 묶여있었는데, 그 부러진 뼈가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고통에 벌어진 입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흡!”

물리적 타격이 통하지 않는 영체 형태의 괴물, 하지만 마력이란 에너지가 발견된 지 16년이 지났고 저걸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이젠 상식이다. 게다가 서예린은 아예 미궁 출신이고. 왼손에 쥔 서예린의 단검이 특유의 주황색 마력광(魔力光)에 휩싸인 채 빛나고-

-쫘아아아악!

천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폭발적으로 난도질한다.

자동으로 뜬 <게임 시스템>의 플레이버 텍스트만 봐도 매우 위험하단 것을 알 수 있는 망령, 하지만 서예린의 손에 순식간에 비명도 토해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어서 서예린은 오른손의 장검을 휘두르며 착지 지점의 망자들을 베어낸다. 그래봤자 밀려드는 살덩이를 잠깐 막은 수준이지만-

-콰직! 텅!

-쿵! 쿵!

뒤쪽에서 망자들을 밀어내며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있었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서예린은 용수철이 튕기는 것처럼 뒤로 빽덤블링하며 뒤에서 접근하는 자동차 천장 위로 우아하게 착지한다. 와우, 진짜 영화의 한 장면 같...

“...어!?”

이젠 ‘해골 선반대’가 된 주차장 기둥의 뒤쪽에서 서예린이 찢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망령이 튀어나온다. 그리곤, 그것의 시선과 함께 뻗어 나온 투명한 실이 서예린의 몸에 꽂힌다. 그 광경에 난 기겁했지만 서예린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곧바로 서예린은 다시 도약하려고 하는데-.

-으아아앙! 으아아앙!

아이가 우는 소리와 함께 실을 타고 불길한 붉은 기운이 투명한 실을 태우며 뻗어나가고 서예린에게 닿는다. 돌연, 몸이 ‘덜컥!’ 굳어지더니 뒤로 나자빠지는 서예린. 이어서 뒤쪽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에게 그대로 치이고 바닥을 나뒹군다.

“예린씨!”

그 광경에 마빡 아가씨가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선두의 자동차들을 급정거시키는 가운데, 난 심호흡을 하곤 X를 누르고 커서를 옮겨서 V키로 몬스터의 스펙과 스펠을 보는 ‘상상’을 했다.

====

HP: 40  AC: 0

EV: ++  MR: ++

·이것은 위험해 보인다.

·이것은 <투명화>를 간파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영향력이 없다.

·이것은 화염과 냉기에 저항이 있다.

·이것은 음에너지와 고통에 면역이다.

·이것은 지성이 있다.

·이것은 소형이다.

대상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권능&주문

·<고통의 공명(Resonance of Torment)>

====

‘물리적인 영향력이 없다.’는 걸보니 평타도 못 치는 몹, 붙은 방어 스텟 또한 형편없다. 위협적인 것이라곤 <고통의 공명>이라는 토먼트-고문 계열의 마법 하나뿐.

고문 마법

언데드나 비생물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생명체라면 현재 체력의 절반을 깎아버리는 몬스터 전용 주문이다. 음에너지 저항을 올리면 까이는 체력이 줄어들고. 돌죽 안에서 나온다면 좀 조심하면 되는 잡몹 1이겠다만...

현실로 나온 ‘고문 마법’의 위력은 보다시피 무쌍을 찍던 서예린을 한 방에 쓰러트릴 정도였다.

“이.. 이런! 꽉 잡으세요!”

“이봐요! 뭐하는 거예요! 당장...”

아가씨가 다급하게 내려가려고 하지만 나는 역으로 그녀를 꽉 붙잡았다. 어느새 앞쪽에서 다가와 아가씨의 몸에 연결된 투명한 실, 마력을 담은 손을 뻗어 끊어보려고도 했지만 그냥 손을 통과할 뿐 전혀 끊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으아아앙! 으아아앙!

다시 처절한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실을 통해 붉은 기운이 투명한 실을 태우며 뻗어나가 아가씨에게 닿는다. 그 붉은 기운이 닿는 순간, 서예린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이 벌어지는 아가씨.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뻗어나가던 푸른 번개 줄기들이 사라지고 자동차들 또한 멈춘다.

“웃차!”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지려고 하지만 다행히 내가 붙잡았다. 나름 온전하게 내 품에 안긴 아가씨, 좋아 이걸로 나도 여기서 1인분은 했...

“...우웁. 우웨에엑!”

다고 생각했는데, 몸을 부들부들 떠시더니 내 정수리 위에 뜨뜻한 반죽을 쏟아주신다. 음, 얼굴에 쏟아지는 국물에서 나오는 된장국+스포츠 음료의 냄새... 아침을 한식 스타일로 되게 든든하게 드시는구나? 어이쿠, 콩나물도 있네.

그래, 누군가에겐 포상일 테니 좋게 생각하자.

“실례.”

다시 투명한 실이 뻗어오기에 재빨리 마빡 아가씨를 붙잡고 반대편으로 뛰어내렸다. 곧바로 몸 내부의 마력을 조작해 인가가속 상태로 변화시키긴 했지만, 다리 힘 자체가 약해서 마빡 아가씨를 감당할 순 없었다. 반쯤 엉덩방아를 찧으며 착지한 뒤, 곧바로 두 눈을 까뒤집은 아가씨에게-

-짜악!

“정신 차리세요!”

따귀를 날렸다. 결코 감정이 섞인 것이 아님. 그럼 그럼! 그 슬픈 사랑의 따귀에 정신이 돌아온 건지, 아가씨의 뒤집힌 동공이 돌아오더니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빨을 다닥다닥 떤다.

“너... 너무... 아퍼.”

“아, 따귀를 좀 쎄게 날리긴 했...”

“고문 속성 공격.”

잠시 시선이 쏠린 사이, 차에 튕겨져 나갔던 서예린이 이쪽으로 나타나며 말한다.

혼자는 아니고 탑차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오혜영과 지아라 두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까 충돌 사고가 나자마자 두 사람이 튀어나와서 구한 거겠지. 지금 육안의 방향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두 사람도 운전석에서 나와 주위의 망자를 견제하고 있었다.

“당하면 정신 차리기 힘듦. 아, 감사.”

부축하고 있는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서예린을 놓고, 서예린은 털썩 앉으며 고갤 꾸벅 숙인다. 단검을 쥐고 있는 왼손은 팔꿈치와 팔뚝 뼈가 기괴하게 꺾였고, 무덤덤한 표정의 얼굴은 경련하듯 시시때때로 움찔 움찔 일그러지며 땀을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그에 난 재빨리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납작한 힙 플라스크를 꺼내 내밀었다.

“마시세요. 여분 회복 포션이니까.”

“진아부터. 빨리 정신 차려야 함. 자동차 없으면 뚫림.”

턱짓으로 외곽을 가리키는 서예린, 그곳엔 자동차 군단이 멈춘 틈을 타서 넘어오고 있는 망자들이 있었다. 그에 오혜영과 지아라는 결연한 표정으로 각자 도끼와 할버트를 들고-.

“우와아아악!”

“으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무기로 자동차의 벽 사이로 빠져나오는 망자들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난 마빡 아가씨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진통 성분이 없는데도 아가씨는 포션을 좀 마시자 훨씬 안색이 나아졌다.

“괜찮아요?”

“조... 존나 아파. 너... 너무 아파서 손이 떨려...”

다닥다닥 떨리는 이를 악물며 대꾸하는 아가씨, 실제로 마주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실시간으로 얼굴과 손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서예린도 그렇고 아프긴 진짜 무지 아픈가 보네.

하지만, 그런 걸 받아줄 여력은 없다.

“자동차 조종, 할 수 있겠어요?”

내 재촉에 아가씨는 떨리는 얼굴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손에서 ‘빠직! 빠직!’ 소리가 나는 정전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표정은 영 좋지 않다. 신경질적으로 근처 자동차 한 대에 번개 줄기를 뻗어내서 오혜영에게 밀려드는 망자들을 크게 한 번 치워버리곤 숨넘어갈 듯한 표정으로 고갤 젓는다.

“동시에 여러 갠... 못 하겠어. 아파서.. 집중이... 분산돼. 10m가량 뻗는 것도 한계야.”

“끄응. 그럼 탑차도...”

“그래도 탑차 2개는 붙여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하아, 하아... 하지만, 그거 움직일 때는 다른 거 못 움직여.”

아가씨의 대답에 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작 토먼트 한 번 맞았다고 정신을 못 차리다니? 뭐, 현재 피통의 반이 날아가는 위력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좀 이해가 되긴 하다만 난감하기 그지없다.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에 속입술을 질겅이면서 <관찰자의 눈>으로 주위를 쭈욱 둘러본 순간...

“하, 하하. 망겜, 좆망겜이예요.”

“...뭐?”

“아가씨가 당한 공격을 한 괴물이... 앞에 많아요. 아주아주.”

후방에서 우리에게 밀려들던 망자들 중 몇몇이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그 이유는 앞쪽에 코너를 돌아 있었다. 그곳에 단 한 마리만으로 서예린과 아가씨를 반 무력화 시켰던 박살난 아이들의 망령이...

수백 명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