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94화 (94/350)

< 20화. 고통을 넘어서 >

2.

...도대체 이 무슨 개떡 같은 일이지?

저런 괴물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난 재빨리 탈출구를 찾기 위해 <관찰자의 눈>을 더 쪼개서 반구 형태로 배치했다. 그 과정에서 탈출구 대신 ‘왜 저곳에 저 괴물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위, 그러니까 지상엔 미르의 ‘동아리 건물’과 융합된 커다란 신전이 하나 있었다.

지상에서 안전지역을 확인할 때, 중앙 지역으로 향하는 방향 서쪽에 석제 피라미드가 크게 있었던 걸 확인했으니까. 건물의 변이가 심하게 되어서 인상 깊었기도 했고. 그 외부에 배치된 피 흘리는 석상과 장식물을 자세히 보니... 인터넷으로 봤던 ‘틀랄록’의 석상과 똑같았다.

그래, 어린아이만을 제물로 받았던 지랄 맞은 아즈텍신의 동상이.

그리고 동아리 건물은 나름 큰 건물인 만큼, 지하 주차장과 다이렉트로 연결된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지금, 그 승강기가 있던 곳엔 대신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영장 같은 커다란 웅덩이가 있고, 승강기 통로가 변형된 위쪽 천장엔 지상까지 뻥 뚫린 구멍이 있다.

그 위에서 박살난 어린아이 시신이 하나 툭 떨어진다.

이어서 아이들의 시신과 피로 가득 찬 웅덩이에서 고통스런 울음소리와 함께 피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 망령이 기어 나온다.

“하아, 아주 아즈텍스럽네요.”

그 지랄 맞은 광경에 난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뱉었다. 탈출구 같은 게 있나 그런 걸 알고 싶었는데, 이런 혐짤만 보이네. 앞쪽엔 코너를 돌아서 나타나는 어린 아이의 망령들이, 뒤쪽엔 몸이 온전치 않은 망자들이. 그냥 답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그나마 딱 하나 괜찮은 점이라면...

“괴물들이... 주춤 거림다?”

“어? 진짜네?”

산자에 대한 광적인 질투심에 뒤따라오던 망자들이 꺼림칙해하는 표정으로 살짝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밀려오는 망자들을 막던 오혜영과 지아라도 그 이변을 눈치 채고. 어린이 망령과 망자들은 서로를 공격하진 않았지만, 망자들은 어린이 망령을 꺼려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난 재빨리 손짓했다.

“앞쪽에 더 끔찍한 괴물들이 몰려와서 그래요! 빨리 이쪽으로! 놈들 눈에 띄면 끝장이에요! 아가씨! 다른 탑차도 옆에 대요!”

슬슬 망령 수백 마리가 코너를 돌기에 재빨리 어리벙벙한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그런 내 외침에 아가씨는 고통스런 표정에도 차량을 조작하고 하프 아이들도 순순히 따라 온다. 그렇게 조그만 탑차 2개를 붙이고 뒤편에 7명이 숨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흐흑! 흐흐흐흑!

-흐흐흐윽!

-흐윽! 흐으윽..

코너를 돌아 수백 마리의 어린 아이 망령들이 나온다.

그들이 내뱉는 비통한 훌쩍거림이 망자들이 내지르는 분노 어린 고함소리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눈치 없이 뒤쪽에서 뭔지 모르고 달려들던 망자들도 그제야 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보곤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아이들의 시선을 피한 우린 그래도 괜찮았지만.

-으, 으아아앙!

-으아아아앙!

-으앙! 으아아아앙!

운전석에 쭈그려 앉아서 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모른척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그들을 포착하고, 연이어 고통에 찬 비통한 울음 소리를 내뱉는다. 실이 이어지고 붉은 섬광이 번뜩인다. 직격당한 이들은 두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떠는데, 다행히 기절만 했지 죽진 않는... 아, 심정지로 한 분 가셨네. 묵념.

“시야에 보이면 토먼트, 시야에 안 보이는 이들은 당하지 않는다.”

<관찰자의 눈>으로 파악한 정보들로 난 필사적으로 머릴 굴렸다. 유리창으로 뚫린 곳에서 모습을 보인 이들은 당했지만 좌석 아래쪽 발을 집어넣는 곳에 숨어있는 이들은 당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야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리고, 물리 공격력도 없으니...

“아가씨, 탑차 안에서 차량을 조종할 수 있나요?”

“으, 구멍뚫고 운전석 쪽에 딱 붙어서 있으면... 가능할 걸.”

고통스런 표정이지만 자동차를 하나씩 조종해서 어떻게 몰래 접근하려는 망자들을 뺑소니 치고 있는 아가씨의 답변에 난 활짝 웃었다.

“그럼 옆의 탑차는요?”

“바짝 붙은 채로. 후우, 후우... 옆의 벽에 구멍 좀 뚫으면 가능해.”

“좋아요. 마지막으로 차량 한 대만 조종해보겠어요? 그, 지금 저 흐느낌이 들리는 전방으로 한 번만. 아, 통로를 막아선 안 되고요.”

내 요청에 아가씨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근처 차량 한 대를 전방으로 움직인다. 자동차를 조종하는 아가씨의 번개 줄기가 끊겨도 가속하여 돌격하는 자동차, 거의 시속 100km가량 가속한 쇳덩이는 이내 ‘쾅!’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친다.

하지만, 차량에 부딪친 망령들은 별 다른 타격이 없어 보인다.

꺾이고 박살나는 시체들과는 달리 풍선 마냥 부딪치면 ‘통! 통!’하며 부드럽게 튕겨져 나오는 망령. 그래, 자동차를 ‘통과’하지 않았다. 그 고무적인 사실에 난 씨익 웃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자동차 안에 있으면... 저것들은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그 결론을 내리자마자 난 곧바로 우리가 등대고 있는 탑차의 창고 문을 열었다.

“히,, 히이이익!”

문이 열리자 운전석 쪽에 옹기종기 붙어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깥의 섬뜩한 광경을 보자 경기를 일으키는 건 덤이고. 마침 내가 던져놓은 가방이 있던 탑차네. 재빨리 안쪽에서 내 가방을 꺼내 연금술 물품을 하나 꺼내며 난 입을 열었다.

“자, 모두 차량에 탑승! 아, 아라양은 옆에 붙인 탑차 쪽에 구멍 좀 내주세요.”

“...뭐하려고?”

“우리는 차를 타고 저 망령을 뚫고 갑니다!”

“뭐?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

“걱정 마세요! 전 다 계획이 있거든요!”

안에선 안 보이는 거? 난 안에서도 밖이 보이거든. 게다가 출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저 놈들만 뚫으면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을 거다! 그런 내 호언장담에 아이들이 떨떠름하면서도 차량에 타는 가운데, 난 남겨 놨던 연금술 용액을 조작했다.

색깔은 최대한 짙게, 얼마 안가 증기로 변화되도록, 그러면서 확 흩어지도록.

“흡!”

그렇게 조작을 마친 용액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아이들의 망령들 쪽으로 떨어져 박살나는 유리병, 이어서 흑색 연기가 맑은 물에 떨어진 구정물처럼 주위를 잠식한다. 재빨리 차량 안에 들어가 밖이 보이지 않도록 문을 꽉 잡으면서 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요!”

“...”

“아가씨,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절 전적으로...”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 재촉에 한숨과 함께 번개 줄기를 뻗어 두 탑차를 움직이는 아가씨, 탑차는 천천히 아이들의 망령이 가득한 곳을 향해 나아간다. 피가 떨리는 상황,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짙어지며 문을 닫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가운데-

-퉁!

아이들의 망령은 예상대로 나아가는 탑차를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이미 확인을 했지만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이 나오네. 만약, 뚫고 들어왔으면 우리 모두 뒤졌다.

-흐흑! 흐흐흑!

-흐으으윽! 흐흐으으...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듯이 문을 응시하며 둥둥 천천히 따라온다. 어휴, 호러영화가 따로 없네. 혹여 라도 문이 열리면 끝장이기에 난 문고리를 손을 꽉 잡은 채로 민활하게 <눈>을 움직여 밖을 주시했다.

“멈추세요.”

“...멈춰?”

“거기서 45도 정도 꺾어서 이동해 주세요. 네, 네. 좋아요. 좋아. 아 반대편 탑차는 약간 느리게.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고통에 얼굴을 찡그러진 채로 열심히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아가씨, 그런 나와 아가씨를 창고 안에 모든 이들이 주시한다. 그리고 탑차는 천천히 순조롭게 출구로 향한다.

“흐, 흐히히히! 완벽해요! 이제 꽈배기처럼 베베 꼬인 경사로 통로만 지나면 완전히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진짜?”

“네!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바퀴는 좀 더 꼬아서!”

실제로 앞에 경사로가 있는 듯, 바닥이 서서히 기울어지는 것과 함께 더 거친 엔진음이 들린다. 그에 주위의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과 아가씨, 심지언 무표정하던 서예린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하하,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근데,-.

“으, 으으으! 나.. 나갈거야!”

“기다려봐 이제 곧...”

“이, 이곳에 있기 싫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탑차 창고의 어둠 속에서 벌벌 떨던 민간인 중 한 명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칸의 축복에 받아 미쳐가는 현상, 이전에 공격성이 강해져서 기절시켜놓고 던져놨던 놈이 기어코 돌아버렸다.

그래도 이전처럼 서예린 혹은 이종족 아이들이 막아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개...”

반쯤 탈진한 상태에서 ‘이제 죽음에서 한 발자국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빠진 아이들이, 이 깜깜한 곳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건 힘들었다. 그래도 서예린만이 번개처럼 반응해 달려드는 남자의 발목을 낚아채려고 하지만, 성치 않은 왼손으로 그게 될 리 없다.

“...!”

가속된 인지력 속에서 천천히 날아오는 남자, 그리고 느릿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서예린. 그 모습을 보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억까 너무 심하네.

거의 다 나와서 마주친 괴물 군집, 겨우겨우 놈들을 통과할 방법을 고안했는데 민간인 중 하나가 트롤링. 그런 트롤을 막아줄 팀원은 때마침 한눈을 팔았고 난 밖에 시선을 주시하다가 이 꼴을 당하다니...

이 좆망 소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시팔ㅠ!

“아가씨! 달려..!”

-쿵!

달려든 남자와 내가 부딪치고 헐겁게 간신히 잡고 있던 문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

-흐흑. 흐으으윽..

-흑흑..

피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밖으로 나와 바닥을 뒹구는 나와 남자를 향했다.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탑차 안의 서예린과 마빡 아가씨, 그리고 아이들. 그러건 말건 망령들은 투명한 실을 뻗어서 나와 발작하는 남자에게 꽂는다. 그 가닥만 수십여 개, 본격적인 고문이 터져 나오기 전에 난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달려요! 상관 쓰지 말고 달려욧!”

괜히 구한다고 미적거리다간 다 같이 망한다. 오히려 차 안에 있는 애들 대신에 나와 발작하는 남자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 도망치는 게 현명하지. 그런 내 외침에 마빡 아가씨가 이를 악물고 자동차를 무작정 악셀을 밟듯이 급가속 하는 가운데-

-으, 으아아앙!

-으아아아앙!

-으앙! 으아아아앙!

아이들로부터 검붉게 빛나는 광채가 연결된 투명한 실을 불태우며 우리 쪽으로 내리꽂힌다.

3.

검붉은 섬광이 내 몸을 강타한 순간, 난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모든 이빨이 썩은 것처럼, 피부가 종기로 뒤덮인 것처럼, 팔다리가 박살난 것처럼, 질병에 숨을 쉬기 힘든 것처럼, 머리가 부글부글 끓는 솥에 들어간 것처럼. 아프다. 너무 아프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아프다. 생각 없이 맞았다간 기절할 정도로. 하지만...

“헤, 헤헤헤. 버틸 만한데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광인과 달리 난 버텨냈다.

그래봤자 ‘육체적인 고통의 향연’일 뿐, 내가 겪었던 ‘영혼을 찢어발기는 공포와 절망’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아니, 냉정하게 말해 <무한의 눈>을 썼을 때보다 통증이 약하다. 게다가 전신이 으스러진 듯한 감각이지만 진짜 몸뚱이가 박살난 것은 아니기에 몸도 움직이고!

서예린과 아가씨가 쩔쩔 매기에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별로네! 그리고 무엇보다...

“...흐, 흐히히히.”

내 심장 안에 있는 ‘르피너스의 선물’, 소리 높여 웃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난 쇼크사할 고통을 받아도 ‘그것’이 심장을 쥐어짜서 움직여줄 거란 것을 확신했다. 한 마디로 이런 고문만으로 날 막을 순 없다.

“흐, 흐흐. 도망쳐야죠. 도망...”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위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한의 눈>을 사용했을 때가 더 고통스럽긴 하지만, 이 고문 속성의 공격은 전신이 으스러진 듯한 감각 때문인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네.

-흐흑. 흐흐흑...

그렇게 무방비로 드러난 내 등짝을 향해 어린 망령들은 투명한 실을 꽂아 넣는다. 그리고, 다시 고문을 토해낸다. 잘 움직이던 팔 다리 관절를 누군가 ‘휙!’ 박살내는 감각, 그에 비틀거리다가 뒤로 엎어져 나뒹굴었다.

아, 이거 개 같네.

움직이다가 ‘고문 마법’을 당하니 왜 좆같은 지 잘 알겠다. 걷다가 발이 박살나는 감각이 느껴지면? 눈으로 보고 있어도, 머릿속으론 아니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진짜 발이 박살났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 이건 본능의 영역이다. 심호흡을 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아, 진짜엑ㄹㄹ...”

보이지 않는 망치가 내 팔과 다리를 연이어 분지르는 감각. 짜증에 소리치려고 하니까 이빨을 그대로 뽑아버린다. 그에 육신은 움찔거리며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뒤의 수십 마리의 망령이 하나씩 투명 빨대를 꼽고 자신의 고통을 내게 토한다.

그리고 뒤쪽엔... 아직 빨대를 못 꼽은 수백 마리의 망령들이 천천히 내 쪽으로 올라오는 중이고.

아무리 버틸만하다고 해도 계속 당하다간 안 좋겠지. 고통은 느끼더라도 어떻게든 이 ‘감각의 혼란’은 막아야만 이놈들에게서 탈출할 수 있다. 어떻게 막는 방법은 없는 지 알아보기 위해 난 심호흡을 한 번 하곤 <무한의 눈>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원리와 ‘룬문자’를 보았다.

위기상황에 깨어난 내 안의 ‘르피너스의 선물’이 소리 높여 웃으며 내게 영감을 불어넣고, 뜯겨져 나간 내 영혼의 조각이 발광하며 구조를 분석한다. 본능적으로 어떤 것인지 파악된다. 원리를 알더라도 인간은 구사할 수는 없는 종류의 마법, 일종의 ‘몬스터 전용 주문’에 가깝다.

이걸 막을 방법은...

“망겜...”

지금의 나로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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