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고통을 넘어서 >
4.
그걸 파악한 순간,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 지금의 나로선 이 투명한 실 그러니까 <고통의 공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그것을 더 강화-단순히 고통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 같은 쓸데없는 방법만이 떠올...
아니, 잠깐만. 더 긴밀하게 연결한다?
“흐, 흐히히힣! 히힣!”
이어서 내 몸을 강타하는 수십 개의 ‘고문’, 다채로운 고문의 통증에 전신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지만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가슴팍에 붙어 있는 실낱을 손으로 붙잡고 ‘미약한 마력’을 운용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그 방법을 사용해봤다. 그 순간-
“오...”
한 번의 공명에 끊어지던 투명한 실, 하지만 이젠 한 번의 공명 정도론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 내 쪽에서도 그 실을 받아들이면서 더 ‘튼튼’해졌다. 게다가 고통만이 올라오던 이전의 실과는 달리 더 복잡한 감정들까지 올라온다.
아이들이 당했던 모든 참혹했던 고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때 느꼈던 감정까지도 느낄 수 있다.
죽은 아이들의 낙원인 ‘치치후아쿠아우코’로 갈 수 있다는 사제의 말에 속아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바치는 부모들, 천국에 간다는 말에 신난 아이, 그리고 신전에서 당해야 했던 비참한 고통, 마지막으로 죽어서 그 시신이 부모에게 먹히는 것까지.
단순한 고통 보다 ‘더 비참하고’, ‘더 고통스럽고’, ‘더 끔찍하다’.
순간적으로 아이가 보내는 그 환상이 내 일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으음, 성능은 확실하네. 그런 변화를 눈치 챈 것인지, 내가 <공명 강화>를 연결한 어린이 망령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더 절박하게 자신의 비통함을 내게 보낸다.
그 실을 손에 쥔 채, 몇 번의 테스트를 해봤다.
주문을 머리로 이해한 것일 뿐, 아직 완벽하게 익힌 건 아니다. 실제로 난 마법 자체는 ‘이해’하지만 그 ‘실천’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장, 전투 주문 목록에 있는 고 레벨의 주문만 봐도 그렇다. 게임의 레벨의 제한 때문인지 몰라도 마력 컨트롤에 실패하지.
그렇게 누워있는 사이, 더 많은 망령이 몰려와 날 감싼다.
그들이 전하는 수백 명 분의 고통. 이빨이 뽑히고, 눈알도 뽑히며, 손톱이 뽑히고, 난자당한다. 인간이라면 정신이 무너졌을 끊임없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 안에서 나는 멀쩡... 아니, 멀쩡한 게 아니지.
이미 무너진 탑은 다시 무너트릴 수 없다.
그렇기에 변함이 없다. 이 정도 고통은... 일주일마다 내가 마주쳐야 하는 ‘수면’을, 정확히 말하면 ‘또 르피너스와 마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있다면 매일 받을 수도 있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 감각이 멍해지고 뇌가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 가운데-,
난 마침내 감을 잡았다.
“흐, 흐으으으.”
내 가슴팍에서 솟구치는 자줏빛 광채가 어린아이 유령을 토해내는 검붉은 광채를 밀어낸다. 그리곤 역으로 고문을 가하는 아이에게 닿는다. 아주 단편적인 이미지다. 영겁의 끝에서 걸어오는 그것,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끼.. 끼아아아악! 끄아아아!
발광하는 아이, 하지만 주위의 다른 어린이 망령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나와 연결된 그 아이의 망령은 어떻게 공명의 실을 끊어보려고 하지만...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끼... 끼이이익. 제... 제발 그만! 그만! 그만해!!
내 스스로 받아들인 공명의 실, 그 덕분에 전달할 수 있는 것 또한 더 커졌다. 이전엔 단순한 고통뿐이었지만, 이제는 기억과 감정까지... 아니, 서로 활짝 문을 열어 재끼면서 영혼마저 살짝 얽혔다. 이젠, 한쪽의 일방적인 거부로는 끊지 못하지.
“흐히힣핧!”
이어지는 영상에 계속해서 발광하는 아이의 망령을 보며 난 팔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수많은 팔과 다리가 실시간으로 부서지는 감각, 하지만 계속해서 움직이려는 신호를 보내니 어찌어찌 일어나지긴 한다.
내 몸에 꽂힌 수백 개의 공명의 실
환하게 웃으며 내 스스로의 문을 활짝 개방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던 그 실들이 굵어지고, 고통뿐만 아니라 그 기억과 감정까지 전해져오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오는 감정과 기억들, 너무나도 많은 자극에 뇌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머릿속을 터트릴 것 같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걸 볼 때만큼은 아니야.”
그래, 너희들이 겪었던 비참한 처지와 고통은 잘 알겠다. 그래, 나 같아도 이런 일을 당하고 죽으면 억울해서 딴 놈들에게 이 고통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 아니, 나도 그렇거든!
그리고 지금, 난 그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즐겁다. 피로하지만, 진작에 쓰러져 죽을 것 같지만, 즐겁다. 미칠 정도로 즐겁다. 정상적인 내가 이 즐거움을 느꼈다면 미쳤을 정도로. 얼마나 즐거우면 실시간으로 박살나는 고통에도, 수백 명이 전해오는 비탄의 감정과 절망에도 이렇게 웃음이 나올까?
하지만 상관없다!
난 지금 즐거우니까!
천천히, 내 몸에 연결된 그 모든 투명한 실들을 한 대 모아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곤, 이미 내가 보여주는 환상에 미쳐 발광하고 있는 아이의 망령을 응시하면서 진하게 웃었다. 그래, 너희들이 억울한 건 알겠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내가 겪은 공포를 맛보지 않으련?
인간의 감각기관으론 절대로 인지할 수 없는 절망과 공포, 그건 이전의 <공명>으로 전달하기엔 부족하다. 그래,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공명>으론 부족하지. 서로 활짝 문을 열고 영혼마저 살짝 얽혀있어야만 줄 수 있는 것. 고통보다 훨씬 심오한 것.
내가 목도했던 그 광경의 기억.
-끄... 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끼아아아악!
내 가슴팍에서부터 시작된 자줏빛의 광채, 르피너스를 연상케 하는 그 광기어린 빛이 아이들에게서부터 밀려오는 붉은색 기운을 밀어내 역으로 타고 올라간다. 그 희미한 편린에 닿은 아이 망령들은 벌써부터 비명을 지르며 발광한다.
이제 고작, 시작일 뿐인데 말이다!
첫 타자처럼 어떻게 공명을 끊으려고 하지만 안 된다. 그렇게 끊길 거였으면 보여주지도 않았지. 그나저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카스’ 종류는 확실한데. 르피너스 카스? 너무 기니까 ‘르카스’ 정도로 하면 되려나?
그래, 무지성 르카스 투하!
-제... 제발 그만! 그만! 그만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아! 아! 아! 아! 아! 아!
-죽여! 죽여줘! 제발 날 죽여줘!
-끼아아아악!
산자에 대한 살인적인 질투, 그리고 원한에 사로잡혀 무작정 고통을 안겨주려고 하던 아이들. 하지만, 내가 보여주는 ‘르카스’ 하나에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그저 고통에 원한에 비명을 지르던 놈들이 정신을 차리며 말까지 할 정도로.
그런 아이들의 비명이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들린다.
아, 이게 인터넷에서 혐짤 달리던 놈들이 느끼던 즐거움이구나! 그리고 저 아이들이 느끼던 쾌락이구나! 비참한 자의 쾌락! 자신의 고통을 나눠주고 싶다! 내 수준까지 떨어트리고 싶다! 그래, 이거다! 사실, 나도 몰랐지만 내 마음속에선 이걸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내 본심, 내 추악한...
-퍽!
광기에 차서 웃고 있을 때, 돌연 나와 연결된 한 가닥의 실이 끊어졌다.
그 생생한 느낌에 고갤 돌렸다. 수많은 아이의 망령 중의 하나가 ‘자살’에 성공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난 어떤 방식으로 자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절대 평범한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최대한 안 받아들이려고 한 게 아니라-.
역으로 ‘한 번에 모두’ 받아들였다.
그 장면에 주는 광기에 스스로의 영혼이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나갔다. 자연스럽게 그 생명과 영혼의 고통 또한 끝났고. 그걸 받아들이고도 무너지지 않는, 르피너스에 의해 뒤틀린 영혼을 가진 나로서는 시도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도주에 내가 눈을 부릅뜬 동안-.
나와 연결된 다른 아이들 또한 자연스럽게 그 방법을 알아챘다.
-퍽!
-퍽!
-퍽!
보며 이해하는 것만으로 영혼이 부풀어 올라 찢겨져 나가는 그 광기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영혼을 터트려 그 고통에서 도망친다. 모든 아이들이 도망친다. 고작...! 고작 그것만 봤으면서! 아직 그것의 진정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겪은 고통은 아직 멀었는데 도망쳐?!
“도망치지 마! 도망치지 말란 말이야! 견뎌! 맞서 싸워!”
가장 가까운 아이를 붙잡고 으르렁 거렸지만 그 아이 또한 거침없이 자살한다. 저주스런 자줏빛으로 물들어 기괴한 먼지를 사방에 흩뿌리면서. 그렇게 수백 마리의 망령이 모두 자줏빛 가루가 되어 터져나간 가운데-,
“하.”
난 허탈함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싸운다? 아니, 그 기억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그러질 때까지 계속 짓눌리는 거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짓눌리지도 못하고 터지겠지 ...부럽다. 너무 부럽다. 난, 저렇게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르르륵..”
“■■! ■■! ■■!”
망자들이 보인다.
산자를 증오하며 찢기 위해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그들을.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그들과 나의 사이엔 아무런 것도 없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들은 주위에 떠도는 자줏빛 가루를 뚫고 날 향해 돌진한다. 나로선 반항할 힘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찢겨지는 것뿐.
아, 어쩔 수 없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평소에 내 자살을 막고 있던 가슴팍의 괴물이 막지 않으니까. 이번만큼은 죽음을 허락하겠다고 속삭이니까. 죽으면 더 비참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까. 어차피 내 정신은 이미 한계,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조용히 두 눈을 감았지만...
“...”
“...”
날 보고 달려오던 망자들이 하나 둘 씩 제 자리에 선다. 그런 그들에게 처음에 보이던 격분과 증오는 보이질 않는다. 앞에서부터 하나씩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공포와 경악, 그리고... 혐오.
몇몇은 소름끼치게 웃고 있다.
문득, 저 웃음의 의미에 대해 알 것 같았다. 자기보다 비참한 처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웃음, 순수하고 저열한 날 것의 악의(惡意)다. 그 대상은...
그래, 이제 알겠다.
혐오와 공포만 있던 다른 망자들의 얼굴도 그 웃음이 번져나간다. 어느새 시체들이 다 같이 소리 높여 웃는다. 그 조롱 섞인 웃음이 날 비참하게 찢는다.
그렇게 웃는 시체들에 둘러싸인 채, 난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5.
한 미치광이의 발작으로 한새벽이 떨어진 뒤, 남궁진아는 이를 악물고 차량을 움직였다.
한새벽을 구할 틈은 없었다. 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주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아이의 망령이-자신에게 그 고통을 선사했던 그것들이 너무 무서웠다. 열린 문을 통해서 민간인 몇몇이 그 공격에 당한 듯, 눈을 까뒤집었지만 그녀는 맞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아아아앙!
“지상이다! 지상이야!”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사실에 탑차 안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검은 태양이 피를 흘리는 핏빛 하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이었지만 시체의 악취가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지하보다는 나았다. 얼마 안가 반겨주는 야만인들의 호루라기의 소리에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말이다.
-쿵! 쿵! 끼이이이익!
“밖에 나갈 테니 호위해줘! 운전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잠시 차량을 멈춰 세운 후, 남궁진아는 여전히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벌써부터 밀려드는 야만인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창고에서 탑차 2개를 조종할 순 없다. 실제로 먼저 보낸 탑차는 가로막는 차량 몇 대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차량과 부딪쳤는데 전복 당하지 않은 것도 기적이다. 좋든 싫든, 이젠 밖에 나가서 운전해야 한다.
“뒤져!”
“우와아아앙!”
그에 시간을 벌기 위해 서예린과 이종족 아이들은 무기를 꺼내고 튀어나갔다. 그렇게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베어내거나 떼어내는 가운데, 남궁진아는 손바닥을 중심으로 자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곤 입구에서 힘겹게 위를 향해 도약, 창고의 지붕 위로 몸을 당기려고 할 때...
-콰앙!
“꺄아아아악!”
옆쪽에서부터 강타당한 가공할 충격으로 탑차가 부서지며 그대로 엎어졌다.
손바닥에 자기장을 형성, 탑차의 지붕에 자석처럼 달라붙었기에 남궁진아는 튕겨져 나가지 않았지만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과정에서 팔이 꺾였고 발목이 나갔다. 이미 고문의 후유증에 진땀을 흘리고 있던 그녀로선 버틸 수 없는 충격이었다.
“막아! 막아! 언니를 지켜!”
그런 무방비의 남궁진아를 향해 돌진하는 야만인들을 막아서는 지아라, 어느새 왼손에 쥐고 있는 돌멩이를 터트려서 선두에 있는 야만인들을 날려버렸지만 뒤쪽에 야만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심!”
옆에서 괴물들을 처리해주던 서예린이 그런 지아라의 목덜미를 쥐고 ‘휙!’ 빠진다. 너무 강하게 잡아당겨서 숨이 막힐 지경,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다. 당겨지기 무섭게 그녀가 있던 자리 근방에서-
-투쾅!
그들이 타고 있었던 탑차를 박살냈던 굉음과 함께 피보라가 일어났으니까.
얼굴에 흠뻑 피와 뇌수를 뒤집어 쓴 채, 지아라는 이를 악물고 포탄이 날아온 방향을 응시했다. 수천 개의 머리통들이 뭉쳐진 거인, 그것이 또 다시 자신의 몸뚱이에서 머리통을 뽑아내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쓰읍.”
사방에선 야만인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고 저 멀리선 머리통 괴물이 머리통을 던져대는 상황, 목적지인 중앙 쪽을 보니 여길 눈치 챈 것 같다만 지원이 오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았다. 그에 지아라는-.
“씨발씨발씨발씨바아알! 미안하다! 씨-팔련들아!”
꽤엑 소릴 질렀다.
그 난데없는 괴성에 다른 아이들이 힐끗 쳐다보자 지아라는 이를 갈며 중얼거린다.
“그냥 한새벽 그 새끼가 하는 대로 할 걸! 시잇-팔! 괜히 내가 다 구해보겠다고 지랄하다가 너네들까지 죽여서...”
“하, 그런 거였슴까? 거참.”
그녀의 욕설 섞인 사과에 박살난 탑차에서 쏟아진 민간인들을 지키고 있던 오혜영과 두 엘프 자매들이 피식 웃는다. 이어서 오혜영은 달려오는 야만인 한 놈의 머리통을 날린 뒤, 크게 숨을 들이쉬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죽여 버려!!”
반쯤 본능적으로 포효를 내질렀다.
그와 함께 이종족 아이들은 물론이고 서예린과 반쯤 패닉에 빠진 민간인들의 몸에서도 변화가 벌어진다. 전신의 근육이 살짝 벌크 업(Bulk Up)되면서 체격이 커지고 희미하지만 붉은 아우라를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투쟁심이 감돈다.
“이, 개 같은 새끼들!”
겁에 떨던 한 건장한 중년 남성이 이를 악물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야만인들의 조잡한 나무창을 쥐어든다. 그리곤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내지른다. 야만인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일격, 그래도 한 번 맞부딪칠 수는 있었고 그 잠깐 사이에 이 영이 야만인의 목을 날렸다.
“계속 애들 뒤꽁무니만 붙잡을 거야? 창이라도 잡고 발악해봐!”
처음 무기를 쥔 그가 소리치자 움직일 수 있는 이들도 하나 둘씩 바닥에 있는 무기를 붙잡는다. 오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종족 기술 ‘전투 함성(Battle Cry)’, 투쟁심을 자극하는 그 괴성에 생존자들 사이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방어선을 좁혔음에도 끝없이 밀려드는 야만인, 시시 때때로 날아오는 머리통 포격에 으깨지는 사람들, 그럼에도 도와주러 올 낌새가 보이질 않는 중앙 지역. 어쩌면 도움을 바라는 게 무리일 수도 있었다. 중앙 쪽은 정말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밀려들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1분도 되지 않아 생존자들이 야만인들에게 완전히 밀리려고 할 때-.
-!!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