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96화 (96/350)

< 20화. 고통을 넘어서 >

6.

전쟁군주가 이끄는 배틀 바이크 부대의 전술은 중세·고대의 기병의 운용과 비슷했다.

1열에 50명씩, 총 10줄의 밀집 방진을 구성해서 이동하면서 달려드는 잡스런 무리들은 가볍게 박살낸다. 그러다 좀 ‘대열’을 갖춘 적이 나타나면 선두의 열이 급가속, 그 가공할 충격량을 살려 오크 기사들은 적군의 정면이나 모서리를 3m에 달하는 할버트로 후려쳐 으깨버린다.

그렇게 한 번 후려 박은 후, 돌격했던 제대는 흩어져 다시 본대로 귀환한다.

한 번 난자된 적들은 어떻게 그런 오크들의 복귀를 막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흩어지는 순간 이어지는 다음 제대의 돌격에 더 큰 피해를 입으며 순차적으로 으깨져버린다. 그 사이, 복귀한 제대는 다시 뒤에서 열을 이루고. 중세의 카우치드 랜스 전술과 완전히 판박이다.

다른 점이라면 그걸 사용하는 이가 오크고, 그 군마 역할은 배틀 바이크라는 것뿐.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중량과 피지컬을 가진 오크 기사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배틀 바이크는 중세·고대의 기병돌격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적을 으깨버리며 질주하는 오크 부대가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포격을 방불케 하는 원거리 공격 또한 쏟아졌지만-.

-퉁! 퉁!!

200명에 달하는 마법사들, 그들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0여명이 동시에 사용하는 ‘투사체 방어’ 마법은 멀리서 떨어지는 공격을 완벽하게 막진 못해도 속도를 대폭 줄였다. 그 정도는 오크기사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고 가뿐하게 할버트로 쳐내거나 피했다.

“...”

그리고, 전찬휘 경감은 굳은 표정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예 병사들, 냉정하게 말하건대 대한민국의 초능력자 부대들은 이 오크 부대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오크들이 지금 하는 전투가 현대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투 방식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마법사들! 중심 기준 8시 방향의 독수리 인간들부터 처리한다! 그리고 1분견대! 나와 함께 11시 쪽의 적을 요격한다! 거인형 사냥 1번 대형! 되도록 왼쪽 다리부터!”

-부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다른 검은색 배틀 바이크보다 1.5배 더 큰 화려한 장식의 황금빛 배틀 바이크가 무리를 떨어져 나간다. 그와 함께 1분견대라고 불린 15명이 그를 따라 움직인다. 이전까지의 I자 돌격과는 다른 선두가 튀어나온 쐐기형 돌격, 그 선두엔 황금빛 전쟁 군주가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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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들이 세운 ‘거짓된 신’의 우상

비록 야만인들의 착각 속에서 만들어진 거짓된 신이지만, 야만인들은 그 우상을 향해 열광적으로 끊임없이 살육과 인신공양을 올렸다. 석상에 얽힌 그러한 헌신은 ‘유혈의 신’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침략자에 박살난 석상은 다시 맞춰져 일어났으며, 그와 함께 ‘살육을 위한 지성’과 ‘파괴적인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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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을 이룬 오크들에게도 자칫하면 커다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괴수가 서 있었다.

화려한 깃털로 만들어진 험상 굳은 악귀 가면을 쓴 근육질 남성의 석상, 7m에 달하는 그 표면 위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시체의 피부가 얼기설기 걸쳐져있었고 부서진 금 사이는 끈적끈적한 혈액이 흘러내렸다.

우이칠로포치틀리-아즈텍 전쟁신의 석상

미국에서 공유한 자료에도 있는 괴물이었기에 전찬휘 경감도 아주 잘 알았다. 순수 전투력으론 닥터 크림슨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 추정되는 괴물, 미국에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저 괴물 하나에 파견한 이능력자 구조대 중대 하나가 완전히 박살났다.

-■!■■■!

웅웅! 울리는 낮은 저주파 괴성을 내지르며 석상은 빈 왼손을 앞으로 뻗는다. 그와 함께 그 손바닥 위에 검은 구정물이 뚝뚝 흐르는 작은 검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이어서 작은 검은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설적인 검은 빛’이 반경 30m의 모든 빛과 소음을 살라먹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속에서 보이는 건 석상의 붉은 눈뿐이었지만-

-크허어어엉!

얼마 가지 않아 사자의 포효와 함께 그 부자연스런 어둠이 밀려난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전쟁 군주의 모습, 어느새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는 사자의 조각이 새겨진 황금빛 방패로 석상의 오른손에 쥐어진 검-아니 ‘기둥’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정면으로 막아낸 상태였다. 빛과 소음이 사라진 곳에서 그는 석상의 거검을 터프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다른 오크 기사들은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당겨! 못 건 놈은 다시 던져! 왼쪽 다리로!”

외곽에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구령 소리, 석상이 왼손을 뻗자마자 석상 앞에서 Y자로 흩어진 그들은 꺼낸 쇠사슬 갈고리를 던졌다. 소음과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던졌기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30명에 달했기에 대부분 석상의 몸에 걸렸고-

-■! ■-■■!

-부웅! 부우우우우웅!

배틀 바이크들이 그 쇠사슬 고리를 당겨 석상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방해했다. 석상이 분노하며 그런 날파리들을 떨쳐내려고 하지만, 그 작은 틈을 전쟁 군주가 놓칠 리 없었다.

-콰직!

손에 쥔 수정검을 휘둘러 검을 쥐고 있는 석상의 오른손가락을 절단한 뒤, 이어서 물 흐르듯이 왠지 빈약한 석상의 왼쪽 종아리를 향해 돌진했다.

-■■!

석상이 발버둥치려 하지만 손에 쥔 거검(巨劍)은 손가락이 잘려나가면서 기우뚱하고 떨어졌고, 오크 기사들이 내던진 갈고리가 원활한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기어코 발길질을 전쟁 군주에게 날렸지만 그는 방패로 흘려내며 순식간에 석상의 빈약한 왼쪽 무릎을 절단한다.

“흡!”

이어서 휘청거리는 석상에게 이어서 도약한다. 그리곤, 석상의 왼손 방해를 뚫어내며 기어코 황금빛 목 장신구에 수정 검을 꽂았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쿠우웅!

목을 보호하는 황금색 장신구를 뚫고 연이어 칼을 찌르자 결국 석상은 목이 떨어져 기우뚱하며 쓰러진다. 그렇게 석상을 분쇄한 후, 오크 기사들은 던졌던 갈고리를 회수하고 전쟁 군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뒤쪽에 세워뒀던 황금빛 배틀 바이크에 다시 탑승한다.

불과 10여초 안에 벌어진 일

전쟁 군주의 태도를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미국 측 보고서와 영상자료에 따르면 저건 웬만한 병력으로는 막지 못하는 괴물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괴물이 사용하는 기술과 움직임 같은 정보를 파악했어도, 저런 걸 아무런 피해 없이 순식간에 죽여 버리는 저들이 오히려 이상한 거다.

그리고, 그렇게 괴물을 죽인 이들은 어느새 본대로 합류해서 태연하게 농담을 하고 있었다.

“하, 크락쉬. 솜씨가 많이 녹슬었는걸? 그 큰 놈에게 갈고리 하나 못 맞추다니. 제 1분견대장 실격 아니냐?”

“녹슬다니요! 감각이 상실된 어둠 속에서 어떻게 맞춥니까! 그것도 덩치에 안 맞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놈을! 솔직히, 갈고리 던져 맞추는 건 복불복입니다!”

“분견대장이... 말대꾸?”

갈고리가 빗나간 유별나게 덩치 큰 오크 기사를 장난스럽게 갈구던 전쟁 군주, 그 기사의 항의에 그는 얼굴을 꿈틀 거리더니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안 되겠어. 끝나고 나서 온천 사우나에서 땀 좀 빼고 며칠 동안 나랑 1:1 스파링이나 하자.”

“아, 좀 봐주십쇼... 저 신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너도 전쟁 군주가 한 번 돼봐야지 않겠나? 예전엔 자기도 곧 전쟁 군주가 될 거라면서 떽떽댔으면서... 얘들아, 니들 대장 도망치기 전에 바로 끌고 와라. 알겠냐!”

“옙!”

앓는 소리를 하는 덩치 큰 오크 기사, 그리고 웃으며 대답하는 다른 오크 기사들. 그런 우두머리를 바라보는 오크들의 시선엔 존경과 믿음이 넘쳐난다. 그런 오크들의 모습을 보며 전찬휘 경감은 다시 한 번 ‘오크 전쟁 군주’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정말, 완벽한 지도자다.

‘현대 사회의 지도자’와 ‘야만 시대의 지도자’는 각자가 요구하는 자질이 다르다. 사회가 야만의 시대에서 현대 사회로 진화할 동안, 안타깝게도 인간은 진화하지 못했다.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야만 시대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미덕에 끌린다.

두 시대가 요구하는 장점을 모두 가진 존재가 바로 저들이다.

안전한 뒤쪽에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명령만 하는 높으신 분이 아닌, 선두에서 서서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적을 으깨버리는 ‘가장 힘쎈 우두머리’. 동시에 냉철하게 정치와 군단을 지휘할 수 있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지휘관 겸 정치인’이다.

인간인 자신도 그 카리스마에 매혹될 정도인데 오크들에겐 어떻겠는가?

전쟁 군주가 없는 오크 집단도 강하고 폭력적이긴 하다만 이런 기계 같은 정교함을 보이지 못한다. 게다가 얼마 가지 않아 구성원끼리 다툼이 일어나 필연적으로 분열하기 일쑤. 하지만, 전쟁 군주의 존재 하나로 오크들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존재들로 탈바꿈한다. 이미 문서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직접 보니 그 위험성이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전찬휘 경감이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음?”

무리에 위협이 될 만한 괴물들을 손수 박살내면서 냉정하게 주위의 전황을 살피고 있던 전쟁 군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그리곤, 그는 자신의 배틀 바이크의 속도를 줄여 뒤쪽에 있는 전찬휘 경감이 탄 배틀 바이크 곁으로 다가간다.

그에 경감이 당황하는 가운데, 전쟁 군주가 입을 열었다.

“정찰 드론을 띄워 볼 수 있나?”

“네? 뭔가 궁금한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목적지 방향에서 살짝 왼쪽에서 괴물의 것이 아닌 고함 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전쟁 군주의 요구에 전찬휘 경감은 곧바로 자기가 탄 배틀 바이크의 아래쪽 보관함에서 정찰 드론을 꺼내 날렸다.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 인간들이 그 비행체를 격추시키려고 했지만 마법사들의 견제에 막힌다. 드론은 포착한 영상을 태블릿PC로 전송했고-.

“생존자가 있군요.”

요새화를 끝낸 뒤, 밀려드는 적을 분쇄하고 있는 중앙 지역. 그 근방에서 한 생존자 무리가 보인다. 영상을 살짝 확대하자 박살난 트럭 차량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생존자들이 보였는데, 그들 중 몇은 외형이 인간과는 살짝 달랐다. 그리고, 그들 중에선...

“크락쉬!”

“옛!”

전찬휘 경감의 생각이 이어지기 전에 전쟁 군주의 호령이 나왔다. 방금 전에 장난스럽게 갈구던 오크 기사를 부르는 전쟁 군주, 그에 기사가 대답한다. 헬멧 바이저 때문에 그의 얼굴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 음성은 이전과는 달리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잠시 본대의 통솔을 맡아라! 예정대로 중앙 지역에 밀려드는 잡것들을 분쇄해!”

“알겠습니다! 전쟁 군주시여!”

“제 5 분견대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목표는 생존자 구출!”

전쟁 군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쪽의 무리들이 떼어져 나온다. 그렇게 전쟁 군주가 그 일단의 무리들을 이끌고 사라지려 할 때-.

“나도 갈래.”

전찬휘 경감의 뒷좌석에서 한 작은 인영이 폴짝 뛰어올라 전쟁 군주의 황금빛 배틀 바이크 뒷좌석에 착지한다.

감히, 전쟁 군주의 탈 것 뒤에 인간이 서다니?

그 불경한 모습에 근처 오크들이 살기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강수영은 그런 시선들을 모두 느긋하게 받아넘기며 자길 뒤돌아보는 전쟁 군주를 향해 씨익 웃는다.

“화면을 보니까 내가 아는 애들도 있어서 말이야. 대신,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골렘들을 처리하는 건 나 혼자 할게. 그 동안, 그 쪽은 최단거리로 돌격하라고. 냉정하게 분대를 또 쪼개는 것보단 낫잖아?”

“흠, 좋다.”

그녀의 제안에 전쟁 군주는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한 순간 덩치가 더 커 보일 정도로 흉곽이 부풀렸다. 그 뒤-,

-모두! 다! 찢어버려!

야만인들이 불어대는 비명소리 호루라기, 곳곳에 들리는 총성과 괴물들의 소음... 모든 소음이 날뛰는 전장이 한순간이나마 전쟁 군주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아이가 멋도 모르고 사용한 미숙한 전투 함성과는 다른 전쟁 군주의 포효가 세상에 울려 퍼지고-

“우와아아악!”

“전쟁 군주께서 전쟁을 원하신다!”

“전쟁! 결코! 다시! 결코! 다시! 전쟁!”

오크들에게 무지막한 효과를 부여한다.

별 다른 말없이 공장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무덤덤하게 괴물을 죽이던 오크 기사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잔뜩 흥분한 채 괴성을 내질렀고 전신에 붉은 아우라가 흐르며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질서가 약간 흐트러졌지만 그들은 맹폭하게 적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그 야수 무리 속에 섞인 전찬휘 경감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변하는 가운데-.

-쿠아아아아아앙!

야수가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엔진 소리를 토해내며 황금빛 배틀 바이크는 생존자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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